Switch Mode

EP.337

       “제국인들이 새 나라를 세웠습니다.”

         

       엘프국의 대통령은 눈을 감은 채로 신음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내정을 정비하는 사이에 우려하던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 나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에테리아, 라고 하던군요.”

         

       에테리아.

         

       틀림없이 상천 에테르의 이름을 딴 것이리라.

         

       이는 금안족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작명이었다. 금안족은 인간과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못했으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결속을 다지려는 생각이었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대통령은 한숨을 쉬면서도 끌끌 웃었다.

         

       제국이 무너지고, 새 나라가 건국되는 광경.

         

       그리 흔한 광경은 아니다. 그 강성하던 필리우트 제국이 무너진 건 거의 1천 년 만이니까.

         

       새 나라의 출몰이 이리도 빠를 줄은 대통령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인간들이 우리 엘프를 배신하고 도망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아 나라를 건설했지요. 괘씸하다고는 하나, 속도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어야겠습니다.”

         

       그 말에 비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 이렇게 된 이상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좋습니다.”

         

       이대로 ‘에테리아’가 커지는 걸 방관할 수만은 없다.

         

       곧 대통령령이 떨어졌다.

         

       “즉시 외교 사절단을 꾸리십시오.”

         

         

       **

         

         

       머지않아 에테리아로 향하는 사절단이 만들어졌다.

         

       그 숫자만 물경 8백 명.

         

       신생국가에게 주기 위한 선물을 실은 골렘은 미어 터질 지경이었고, 그것들을 점검하는 공무원들은 꼬박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만큼 정성을 담았다.

         

       그렇지 않으면 눈속임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카리나 씨. 맡은 임무를 잘 해내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장관님.”

         

       카리나는 외교부장관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은 결의를 다진 사람처럼 굳건했다.

         

       카리나 르제프.

         

       그녀는 대통령 경호실장까지 맡은 적 있는 유능한 여성이었다.

         

       다만 경호실장으로서 세운 공적보다는, 삐진 에테르가 컨테이너에서 나오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했던 것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카리나는 직업 특성상 잠행에 탁월했다.

         

       수인을 꼬드겨 인간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덴 그녀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출발합시다!”

         

       마력을 주입한 골렘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하루 뒤.

         

       티림스 강 상류에 도착한 사절단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외교부장관이 이끄는 가짜 사절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리나가 이끄는 진짜 사절단이었다.

         

       가짜 사절단은 티림스 강에서 곧바로 북쪽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구제국의 수도를 경유하여 에테리아의 수도가 위치한 구살리에르령으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허례허식을 부릴 예정이다.

         

       그러는 동안, 진짜 사절단은 서쪽을 통해 삼림으로 우회한다.

         

       서북부 삼림지대는 미개척지다. 그리고 이런 미개척지라 하면, 보통 수인족의 땅이었다.

         

       카리나가 이끄는 진짜 사절단은 삼림지대를 통과하며 여러 수인 부족을 만나고 그들의 협력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래, 그럴 생각이었는데.

         

       “여긴 지나갈 수 없습니다.”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네?”

       “여긴 에테리아 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땅입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공무원 무리가 카리나 일행을 에워쌌다.

         

       당황한 카리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정에 없던 상황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어떻게 하면 좋지? 무얼 해야 하지?

         

       그러는 사이에, 공무원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통행증 있으십니까?”

       “통행증, 이요?”

       “네. 통행 허가증 말입니다. 에테리아 당국에서 발행한 통행증 없이는 이곳을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카리나의 표정을 확인한 공무원이 덤덤하게 말했다.

         

       “통행증이 없으시다면 이곳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자, 잠깐만요.”

         

       재빨리 사고를 정리했다. 다행히 명분이라면 남아있었다.

         

       카리나는 카우렐리아 대통령의 인감이 찍힌 공문서를 대신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는 카우렐리아에서 온 외교 사절단입니다. 저기, 이걸 보시면…….”

       “저런.”

         

       공무원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면 길을 잘못 드셨습니다. 사절단이 오시는 길은 저기, 남부 산맥을 넘어 동쪽입니다.”

         

       카리나도 이에 질세라 변명거리를 추가로 만들었다.

         

       “아, 그런가요? 실례지만 저희가 정말 바빠서요. 이쪽 길로 지나가면 안 될까요?”

       “타국의 높으신 분들 아니십니까? 위험한 길로 지나가게 둘 수는 없습니다.”

       “만일의 사고가 생기더라도 책임은 저희가 질게요.”

       “저희 같은 말단이 구두로 해결할 업무가 아닙니다.”

         

       그 뒤로 무얼 말하든 똑같았다.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다.

         

       카리나는 데려온 골렘으로부터 짐을 내렸다.

         

       “그게 뭡니까?”

       “보시고 말씀해 주시지요.”

         

       카리나는 씩 웃으며 꾸러미를 풀었다.

         

       보따리에 든 것은 상당량의 은괴였다.

         

       “어떠신가요? 이래 봬도 순도가 아주 높은 것이랍니다.”

         

       본래는 조족(鳥族)을 회유할 때 쓸 물품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 길을 지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물건이든 내어 주리라.

         

       “…….”

         

       그러나 반응은 예상 외로 뜨듯미지근했다.

         

       공무원 중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다.

         

       “그냥 돌아가십쇼.”

         

       뇌물조차 받지 않겠다는 의사.

         

       카리나의 얼굴이 어두운 석회처럼 굳었다.

         

       ‘여기까지 공무원을 배치한 것도 모자라, 봉급도 잘 줄 정도로 국력에 여유가 있다고…?’

         

       말이 안 된다.

         

       그리도 비참한 몰골이었던 제국인들이,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회복했단 말인가?

         

       신생 국가에 돈이 많을 리 없다.

         

       “사절단이시라면 동쪽으로 우회해 주시길 바랍니다.”

       “맞습니다. 귀하신 분들인데 가능하면 잘 닦인 도로로 모시는 게 정답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격식을 차린 말이었지만 카리나에겐 조소처럼 들렸다.

         

       장담컨대 너희는 우리나라를 분열시킬 수 없다. 꼭 그런 식으로 말하는 듯했다.

         

       결국 카리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네… 자네들이 왜 여기서 나오나?”

         

       당연히 외교부장관을 비롯한 ‘가짜 사절단’도 당황했다.

         

       “저, 그게…….”

         

       외교부장관은 카리나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밀담 아닌 밀담이 오갔다. 장관은 카리나를 수십 분에 걸쳐서 쪼아댔고, 하급자인 카리나는 이에 머리를 툭 떨구고 있어야만 했다.

         

       “우리가 저놈들 시선 돌리려고 얼마나 선물을 많이 줬는지 알아?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국가 건설에 필요한 철근, 스크롤, 골렘, 면직물, 리튬, 게다가 식량까지…! 그렇게나 퍼부었는데!”

         

       외교부장관은 가슴을 팍팍 쳐댔다.

         

       “이거 완전히 호구 잡힌 꼴이구나!”

         

       죽 쒀서 개한테 준 꼴이었다.

         

       “이보게, 카리나 양. 외교부가 일을 못 하면 누가 옷 벗는 줄 아나?”

       “자, 장관님이요…?”

       “멍청한 소리!”

         

       외교부장관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바로 국민이다. 외교가 망하면 국력이 쇠하고, 국력이 쇠하면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야! 카우렐리아가 사라지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필시 거지꼴이 될 게다!”

         

       장관의 말을 들은 카리나는 우뚝 굳었다. 머리는 이미 숙일 대로 숙여서 땅을 뚫을 기세였다.

         

       죄송하다는 말을 백 번 해도 모자랐다.

         

       “자네가 들키지 않고 수인족 영토에 들어갔더라면 1년 뒤 국제정세는 안정적으로 변했겠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장관은 신경질이 난다는 듯 시가를 물었다. 카리나의 머리 위로 희뿌연 도넛이 슬슬 지나갔다.

         

       “됐고,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아, 그건…….”

         

       그때였다.

         

       “두 분이서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누십니까?”

         

       외교부장관은 흠짓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장관의 발밑을 따라 어스름한 그림자가 두 개 있었다.

         

       “저희도 같이 이야기해요. 모처럼인데.”

         

       카리나는 숨이 멎고 말았다.

         

       한 명은 구제국의 사대공작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마왕군의 상급 간부였던 금안족 소녀였다.

         

       ‘하스펠트 공작과… 위령의 로즈마리……!’

         

       둘 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만약, 조금 전 대화를 엿들었더라면…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외교부장관과 카리나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 이것 참. 글쎄 이 친구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지 뭡니까? 오늘 그만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거리길래, 한 소리 하고 있었습니다.”

       “흐응, 그런가요?”

         

       로즈마리가 고개를 까닥이며 산드러지는 소리를 냈다.

         

       곧이어 그녀의 날카로운 금빛 눈동자가 두 엘프를 구석구석 훑었다. 마치 노련한 저격수가 탄환을 박을 곳을 탐색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피곤하시다면 먼저 쉬러 가셔도 좋습니다.”

         

       카리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런 것치고는 안색이 안 좋은데요?”

         

       로즈마리의 눈길이 매섭다.

         

       어쩐지 저 금색 눈동자를 마주볼 때마다 몸이 굳는 듯하다.

         

       두 엘프는 화제를 돌릴 겸 와인잔을 들었다.

         

       “단순한 피로예요. 연회를 즐길 정도는 돼요. 자, 자! 그러지 말고…! 건배! 에테리아를 위하여!”

         

       짠!

         

       “위하여!”

         

       레너윌과 로즈마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와인을 넘겼다.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카리나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 무렵이었다. 그녀는 점차 말수를 늘려나갔다. 반쯤은 술기운 때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혹시 그때 생각나시나요? 제국 여러분이 티림스 강으로 도망쳐 오실 때, 저희가 선박을 딱 준비해서 대기했잖아요.”

       “하하하!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요.”

       “맞아요! 기억하시죠? 우리 두 나라 사이에 우정이 그 정도라니까요?”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취기는 무르익었다. 이쯤에서 카리나는 레너윌과 로즈마리가 자신들의 대화를 엿듣지 못했으리라고 확신했다. 또한 이 확신이 논리적인 근거에 의한 확신인지는 일단 제쳐 두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인데요.”

         

       살리에르산 포도주 한 병을 비워낸 로즈마리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저희 내일 세계수 심을 건데, 보러 오세요.”

         

       카리나의 눈동자가 왕방울이 되었다.

         

       “아.”

         

       술 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50코원 후원 감사합니다! 응에테르는 언젠가 큽니다! 프레이보다 훨씬 더 커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거랍니다! 그때 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겠죠? 하지만 그전에 하계로 내려온다면… 틀림없이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말 거예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