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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녀의 이름은 바로 유미르.

    그녀는 안경을 벗어 침대 옆에 놓은 뒤에 이불을 목 아래까지 들어올렸다.

    땋았던 머리는 진작에 풀어두었다.

     

    분명 아주 편안한 자세였건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

     

    머릿속에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 밖에.

     

    그 때 그 칠판 지우개는, 만약 서드가 자신을 대신해서 먼저 문을 열지 않았다면 아마도 자신이 맞아야 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유미르는 계속 그 생각이 들었다.

     

    ‘서드는 정말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걸까?’

     

    자신이 문을 열려고 했을 때 열지 말라는 듯이 문을 붙잡은 그 때, 분명 목소리와 표정은 무서웠지만 어쩌면 그건 자신을 향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눈치라도 챈 것이 아니면 도저히 그렇게 떨어지는 칠판 지우개를 그렇게 가뿐하게 잡아챌 수 있었을리가 없잖은가?

    정말로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면, 칠판지우개는 아마 서드의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겠지.

    그러니까, 아마 거기에 그런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는 건 미리 알았을 거라는 추측은 힘을 얻는다.

     

    아직도 유미르의 귓가에는 계속 그 낮은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런 시덥잖은 장난 치는 거 내게 보이면. 내가 주동자를 찾아낼거다.’

     

    낮게 날세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을 노려보는 서드의 모습은 마치 백마 탄 왕자님처럼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은 이 나이 되도록 수염도 안 나서 놀림받는 반푼이 드워프였다.

    키도 작고, 못생긴 여자애한테 잘해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의 도움을 받을 만한 동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냥 거지에게 적선하듯이 선행을 베풀어준 것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동정심이라는 것 마저도, 유미르에게는 꽤 소중했다.

     

    무심코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있다면, 무심코 한 행동으로 구원받는 개구리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개구리는 결국 개구리.

    안타깝게도 서드와 자신은 너무나 다르다.

     

    그 때, 유미르의 방에 누군가 들어와 말한다.

     

    “불 끌 테니까, 얼른 자라. 그래야 수염도 자라지.”

    “네, 엄마.”

     

    하지만, 유미르는 결국 일찍 자지 못했다.

     

    ——-

     

    “그래? 축제 때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고?”

    “으, 으응. 그렇게 됐네.”

    “그거 참 놀라운 일이로구나! 분명 노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걸로 아는데.”

     

    헬레나는 루크의 놀란 듯 한 목소리에 조용히 대꾸했다.

     

    “그으, 네 말대로 나한테 그런 재능이 있었나봐.”

     

    사실, 저번에 루크가 자신에게 노래에 재능이 있다고 말한 직후, 헬레나는 노래에 흥미가 생겼다.

    그동안 노래를 진심으로 불러 본 적이 없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루크가 국제 마법 경시대회를 나가고 집에서 컴퓨터를 조립(또는 건설)하고 있을 무렵, 헬레나는 재미삼아 음악동아리에 들어가 축제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놀랍게도 헬레나는 바로 합격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헬레나는 졸지에 무대에서 공연하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이제 헬레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긴장돼서 죽을 것 같아. 올라가서 실수하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가서 안 한다고 말할까…….”

     

    평소에는 그래도 루크에게 꽤나 자신감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던 헬레나였는데, 아무래도 무대에 서는 것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헬레나를 독려할 필요성을 느낀 루크는 축 처진 헬레나의 등을 힘있게 두드리며 다른 손으로는 주먹을 쥐어보이며 말했다.

     

    “하하, 걱정하지 말거라. 너무 긴장해서 떨지만 않아도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분명 잘 할 수 있을 테니.”

    “그럴까…….”

     

    헬레나는 그런 루크의 말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으로 속이 좀 더부룩했는데, 그것도 나아진 것 같고.

     

    사실은 루크가 이전에 기운 없는 상태의 시루드에게 했듯이 등을 두드리며 ‘혈’을 짚어 주었기 때문이었지만, 헬레나가 그것을 눈치챌 수 있을 리 없다.

     

    “너에게는 그만한 잠재력이 있으니까. 네 목소리는 정령도 인정한 목소리가 아니더냐.”

    “응.”

     

    루크의 격려에 헬레나는 조금은 밝아진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곁에서 헬레나의 말을 같이 듣던 시루드가 입을 열였다.

     

    “근데 너도 참 대단하네, 연습도 많이 안했는데 바로 오디션 합격이라니.”

     

    아무리 재능이 있기로서니,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고 바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할 정도면 너무나 대단한 게 아닌가?

    노래나 음악에 별 관심도 없는 시루드가 보아도 그것은 꽤 엄청난 일이었다.

    헬레나가 무슨 루크도 아니고 말이다.

     

    그 말에 루크 또한 시루드의 맞장구를 친다.

     

    “맞다. 헬레나가 가진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재능이지.”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서 정령이 인정한 목소리라는 것은, 일반인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재능을 의미했다.

    말 그대로,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엄청난 재능이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루크는 헬레나가 이 참에 노래에 재미를 붙여서 그 재능을 한껏 꽃피우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헬레나가 묻는다.

     

    “그런데, 루크. 너는 어때? 이번 축제 때 뭐 할거야?”

     

    루크가 이번 학년을 마치면 졸업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야, 옛날부터 루크의 조기졸업은 말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루크의 축제 참여는 약간 불투명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원래 졸업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시험공부를 하려고 축제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그만큼 졸업시험은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가 함축된 헬레나의 질문에, 루크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제빵 동아리의 학생들과 카페를 하기로 했단다.”

     

    하지만, 루크는 굳이 공부해야 졸업을 따낼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냥 졸업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이미 합격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니까.

     

    의외의 대답에 헬레나와 시루드는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진짜? 카페를 한다고?”

    “혹시 카페에서 또 뭐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아니지?”

     

    루크가 제과제빵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것이 굳이 카페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것이었는지는 처음으로 알았다.

    만약 루크가 축제에 참여한다면 마법연구부의 마법공연이라던가, 마법 전시회. 뭐 그런 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카페를 선택하다니?

    아무래도 제대로 빵만 만들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루크는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희들은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거냐. 그냥 카페다.”

     

    종업원의 복장이 시중의 일반적인 카페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제대로 케이크와 디저트를 음료와 함께 판매하는 일반적인 카페일 뿐이다.

    아이들에게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뭐어, 그럼 그렇다 치구.”

     

    헬레나가 주제를 돌렸다.

     

    “시루드, 너는 축제 때 뭐 하는 거 없어?”

     

    약간 기대하는 눈초리, 하지만 시루드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없어. 그냥 집에 있을 생각이었는데. 딱히 끌리는 것도 없고.”

    “그, 그래?”

     

    하긴, 축제의 참여는 어디까지나 학생의 자율이었고, 축제를 원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축제는 그저 휴일이나 다름없는 날이니까.

    게다가 시루드는 딱히 동아리에 든 것도 아니라서 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눈에 띄게 실망한 느낌의 헬레나를 바라보던 시루드가 물었다.

     

    “그럼 축제공연은 언제 한대?”

    “아마 점심 때쯤……? 근데 왜?”

    “그럼 나 그때 보러 가게.”

     

    솔직히, 궁금했다.

    루크야 뭐든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무런 걱정이 없지만 헬레나는 왠지 덜렁거린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어쩌면 시루드의 머릿속에 예전에 베리튼의 별장에서 헬레나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한 때의 기억이, 꽤나 깊이 각인된 것일 수도 있다.

     

    “지, 진짜? 보러 오게?”

    “안돼? 역시 부끄러운가.”

    “아, 아니. 난 괜찮은데…….”

     

    그러자 또 눈에 띄게 밝아진 표정의 헬레나가 시루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시루드가 공연을 보러 온다는 것이 여간 기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시루드에게는 솔직한 것이 좋다는 루크의 조언 때문일까?

    지금의 헬레나는 예전의 틱틱거리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헤헤…….”

     

    얼마나 좋은 지, 부끄러운 것도 잊고 솔직하게 웃음을 흘리고 말 정도였다.

     

    시루드는 친구가 공연을 보러 온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웃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좋아서 마주 웃었다.

    “오, 오면 잘보이게 손 흔들어줘. 알겠지?”

    “응, 그러지 뭐.”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던 루크도 마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와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번 축제는 이 아이들에게는 참 즐거운 축제가 될 것 같았다.

    그런 헬레나의 반응에 뿌듯했는지, 시루드는 루크에게도 말했다. 

    “아, 그래. 혹시 너도 너무 바쁘면 나한테 연락해. 친구로서, 서빙 정도라면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남자답게 가슴을 두드리는 시루드의 귀여운 행동에, 루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어. 염두해두지. 고맙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이제 축제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리고 시루드 너 그거 함부로 약속하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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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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