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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원더스타인이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나이스와 니카는 아직도 바위 그늘 밖으로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근처를 배회하는 직원들의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괴해져 갔기 때문이다.

         

       “크륵…….”

       “키아아!”

       “케고록……!”

         

       처음에는 그래도 겉보기나마 멀쩡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려댔으며 양 눈동자는 초점이 맞지 않아 제멋대로 굴러다녔고 걸음걸이도 망가진 책상다리처럼 삐걱거렸다. 지금 저들 손에 붙잡힌다면 곱게 끌고 가기만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머뭇거릴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마침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까지 들려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간을 뭉개고 있어봤자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니카가 용감하게 먼저 몸을 일으켰다. 원더스타인이 없는 이상 그는 자신이 남자로서 아나이스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이스는 이 소녀가 보기보다 용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태자와 귀족들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길래 어른인 자신이 그녀를 지켜줘야겠다 싶었는데…….

         

       “좋아요. 서둘러 나가죠. 싸움에 휘말리기 전에요.”

         

       원더스타인이 말하길 마도사들은 명령을 언제든지 바꿔 쓸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암살자들이 이곳까지 들이닥쳐서 전투가 시작된다면, 여기 있는 직원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확률이 높았다. 암살자들 외의 사람들은 모두 처리하라는 식으로.

         

       두 사람은 원더스타인이 준 이름표를 수영복 위에 부착했다. 아나이스는 그곳에 자신의 시녀 중 한 명의 이름을, 니카는 그곳에 귀족 청년 중 한 명의 이름을 적었다. 두 사람은 과연 이런 종이 한 장에 정말 마법적인 힘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탕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늑해 보였던 온천의 분위기는 상당히 살풍경하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쫓기는 몸이 되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 이곳은 배수로에서 올라오는 증기들 덕분에 탕 밖도 하얗게 김이 감돌았었다. 그러나 수색을 위해서인지 현재 증기 밸브는 잠가둔 모양이었다. 휑한 온천의 풍경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

         

       차가운 바람이 한차례 그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아나이스와 니카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탈의실로 통하는 입구에서 이곳까지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 안에 무려 수백여 명의 직원들이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통상 근무 인원의 몇 배는 되는 것 같은데?’

         

       손님들은 어느새 다 빠져나갔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이 단체로 저러고 있는데 다들 겁에 질리는 건 당연했다.

         

       그들 말고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바위 위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근위대원들뿐이었다. 아무래도 마도사들이 곧 시작될 전투를 위해 근처에 있던 직원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직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을 과도하게 끌면 인식 장애는 깨질 수 있다고 원더스타인이 그랬다.

         

       “끄윽?”

         

       그렇게 막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직원 한 명과 딱 눈이 마주쳤다. 둘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바짝 굳은 자세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아나이스와 니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끄윽?”

         

       그의 고개가 수직으로 뚝 꺾이면서 목이 부러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아나이스는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간신히 참았다.

         

       그 순간, 니카는 자신들을 바라보던 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것을 감지했다. 타인의 호흡을 읽어낼 수 있는 그의 힘이 발휘되었다.

         

       ‘들켰다.’

         

       니카는 재빨리 근처 화단에 있던 돌멩이를 들어 그를 향해 던졌다.

         

       “쓰아아……크왁!”

         

       남자는 예의 그 동료를 불러 모으는 괴성을 지르려다 말고 돌을 머리에 얻어맞고 뒤로 굴러떨어졌다. 아나이스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슨 짓이에요?”

       “방금 저놈이 그 괴성을 지르려고 했잖아요. 아, 젠장……늦었다!”

         

       그들이 내는 소리를 들었는지 계단 아래에 있던 직원들 백여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이곳을 돌아봤다. 그들은 돌에 맞고 쓰러진 직원처럼 잠시 그들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가장 가까이 있던 직 한 명이이 그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예의 그 괴성을 내질렀다.

         

       “쓰아아아아!”

         

       수백 명의 직원이 그들을 향해 우르르 달려왔다. 두 사람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무작정 온천 안쪽을 향해 달렸다.

         

       직원들은 어디에 발이 걸려 넘어지든, 몸이 끼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들을 쫓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의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그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직원들의 시선이 따라붙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탕 구석의 바위 뒤에 숨을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역시 이름표가 안 통하는 걸까요? 젠장, 그 남자! 문제없을 거라고 말해놓고…….”

         

       니카가 분통을 터트리는 것을 아나이스가 재빨리 제지했다. 직원들이 근처까지 왔다. 그들은 두 사람을 놓치고도 원래 자리를 돌아가지 않고 이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릴 당장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 효과가 있는 건 맞아요. 문제는…….”

         

       아나이스는 원더스타인이 해줬던 설명을 다시 곰곰이 돌이켜 봤다. 이 마도구는 인지를 속일 수 있을 뿐이지, 감각을 속이는 건 아니라고 했다. 즉, 보이는 건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짜 맞춰졌다.

         

       저들이 사람을 찾는 단서는 ‘녹색 머리 젊은 여자’, ‘회색 머리 10대 소년’ 같은 시각적인 조건에 의해 탐지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원래부터 ‘아나이스’나 ‘니콜라이’를 알고 있어서 마도사들이 그들을 직접 찾으라고 했다면, 그들은 아마 이름표를 단 자신들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직원들이 사람을 찾는 조건은 눈에 뻔히 보이는 머리카락 색깔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아무리 이름표의 힘으로 다른 사람인 척해봤자 직원들의 눈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더스타인이 짤막하게 설명해준 내용과 얼마 안 되는 실마리를 바탕으로 마도구의 원리를 간파한 아나이스의 추리력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그것이 상황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렸어야 했는데.”

       “자책하지 마세요. 쉽지 않은 발상이잖아요. 여자한테는.”

       “…….”

         

       니카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바깥으로 고개를 빠꼼이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직원들은 어느새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자신들을 발견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호흡, 흐름, 기세.

       모든 것을 들여다봐도 돌파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끝나는 건가? 이렇게?

         

       세상을 바꾼다니 어쩌니 잘난척하던 황태자의 최후가 온천에 여자 수영복을 입고 숨어있다가 직원들 손에 끌려 나와서 그들의 손에 맞아 죽는 거라니. 니카는 허탈함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니카 양은 저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풀려날지도 몰라요.”

         

       아나이스의 위로에 그는 속에서 뭔가 울컥 치솟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위로는! 천한 신분의 계집 따위가!

         

       그는 어차피 죽게 된 거, 그녀에게 자신이 바로 황태자 니콜라이라고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나이스가 그의 몸을 꽉 끌어안고 속삭였다.

         

       “하지만 아닐지도 몰라요. 그냥 죽여버릴 수도 있죠. 아니면 저 직원들처럼 마도의 제물로 쓰일지도 모르고요. 만약, 그걸 피하고 싶면……무슨 일이 있어라도 살아남고 싶다면……제 말에 따라보시겠어요?”

       “그게……무슨……. 설마 방법이 있다는……?”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자신도 모르는 해답을 네가 어떻게 알겠냐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던 여자였다. 코카와의 비겁한 승부도 놀라운 지략으로 거의 이길 뻔했었다. 정말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니카는 그녀의 호흡에서 느껴지는 머뭇거림에서 그것이 보통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읽어냈다. 분명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뭐죠, 그게?”

         

       어차피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는 아나이스가 이름표에 적는 단어를 보고 자신의 각오에 대해서 정말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끼익!”

       “끄르륵!”

         

       그러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직원들이 이제 바로 코앞까지 왔다. 니카는 두 눈 딱 감고 그녀가 적은 것과 같은 이름을 적었다.

         

       “끄륵?”

         

       바위 뒤를 확인한 직원은 뜻밖의 광경을 마주했다. 그곳에는 그들이 찾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2마리의 개였다. 뭔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긴 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은 두 발로 걸으니까. 이놈들은 네발로 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게…….

         

       그들이 빤히 바라보자, 개들은 화들짝 놀란 눈빛을 서로 주고받더니 재빨리 개 다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녹색 털의 개는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거리며 여직원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댔고, 회색 털의 개는 멍멍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렸다.

         

       비로소 그들이 개임을 확신한 직원들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목표가 아니었다.

         

       직원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영복을 발견했다. 옷에 남은 온기를 봤을 때, 분명 방금 벗어던진 게 분명했다. 옷을 벗고 어디로 도망친 것일까?

         

       그러나 주술에 의해 조작되는 그들의 판단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찾던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뭔가 추론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수색 작업을 재개했다.

         

       두 마리의 개는, 아니, 벌거벗은 채 엎드려 기는 자세를 취하고 있던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 통했네요…….”

         

       직원들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아나이스가 뒤에 있는 니카를 향해 속삭였다. 그녀의 얼굴을 새빨갛게 익어 있었고, 눈동자는 부끄러움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두 사람 다 방금 자신들이 한 행동에 큰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개 흉내를 내다니.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워, 원더스타인 단장님이 있었다면, 이러지 못했을 거예요…….”

         

       아나이스는 방금 혓바닥을 내밀고 사람에게 아양을 떨었던 자신을 잊으려 애쓰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더는 떨어질 곳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더 있을 줄은 몰랐다.

         

       “그, 그래도 니카 양은 같은 여자니까…….”

         

       그녀가 그를 돌아보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도 방금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국의 황태자가 사람들 앞에서 개 울음소리를 내며 알몸으로 엉덩이를 흔들다니. 이게 세상에 드러난다면 그는 끝장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남자였다.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여자보다 덜했다.

         

       그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가 남자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해 엉덩이를 쭉 뺀 채 엎드린 그녀의 나신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물건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허벅지 사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까는 옷을 벗고 재빨리 엎드린 탓에 다리 사이의 물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보다 더 커진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필 그녀가 그보다 앞장서고 있던 탓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엉덩이가 자꾸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가슴은 작은 편인 그녀였지만, 허리와 엉덩이의 선은 놀랍도록 유연하게 잘 빠져 있었다.

         

       그것만 해도 남자인 니카에게 참기 힘든 장면이었는데,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엉덩이골 사이로 보이는 두 개의 구멍이 벌름거리는 모습은 그를 미치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앞으로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대번에 다리 사이의 물건을 들킬 것이다.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아나이스는 그가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자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녀는 이 죄없는 소녀가 자꾸만 자신들의 일에 휘말려 고생하는 것이 미안했다.

         

       니카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네발로 기어 직원들 사이를 지나 온천을 통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우냥 님, 100코인 후원! 꾸준한 응원 감사합니다!…요즘 장사의 신 유튜브 보면서 글 쓰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고 있습니다. 결국 요리사가 미묘한 차이 어쩌구 하면서 자기 만족할 때까지 공을 들인다고 해도, 손님들은 많은 양, 적당한 자극, 빠른 속도를 원하는 거고, 장사를 하려면 거기에 맞춰야 하지 않나 싶더군요…내년 초에는 일이 또 많긴 한데…좀 더 빨리 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의 모든 빌드업은 이때를 위한 것!!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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