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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이리저리 낡은 데다가 반쯤 가려져 있긴 했지만, 분명히 그렇게 읽혔다.

         

       하늘 천(天)에 임금 황(皇).

         

       천황(天皇)이라고 말이다.

         

       “이런 제기랄, 이게 뭐야?”

         

       간부는 자신도 모르게 구수하게 욕설을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상자에 들어있으니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천황이라고?

         

       ‘아니, 왜 여기서 일본 물건이…. 아니, 잠깐만. 이게 일본 물건이면….’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괴물이 출현한 산에서, 주술사가 직접 찾은 원인이, 일본 물건이다.

       심지어 그 일본 물건에 대놓고 천황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이건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난리가 난다.

         

       ‘아니야,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 않나?’

         

       군인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가,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난리가 난다.

       그래. 그건 확실했다.

         

       그런데 뭐?

       그게 국방이랑 무슨 상관인가.

         

       일본과 마찰이 일어날 수는 있었겠지만, 그거야 외교 쪽 일이다.

         

       군인은 그냥 나라만 잘 지키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막말로 일본과 전쟁을 할 것도 아니고, 일본 놈들이 눈이 획 돌아서 테러를 저지를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겠는가.

         

       뭐 해군 놈들이야 시비 걸리고, 대응하고 하면서 좀 바빠질 수 있겠지만 그건…. 뭐. 알 바 아니다.

         

       그는 육군이었으니까.

         

       그냥 증거 발견에 공을 세웠다면서 칭찬받고, 상 받고, 가서 쉬면 그만이다.

       진급에 유리하게 되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찾았습니다-! 이거 뭔가 범상치 않은 물건인 것 같은데, 주술사님이 내려와서 직접 확인해주십쇼!”

         

       “그리하겠습니다.”

         

       군인은 그렇게 여기며 마음 편히 진성을 불렀다.

         

       자신은 알 바가 아니라고.

       이건 다른 놈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진성은 군인의 부름을 들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섰다.

       뭐가 나왔을까 기대를 품고 있는 PD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구덩이 안으로 들어간 둘은 간부가 비춰주는 강렬한 손전등의 불빛에 의지해서 빼꼼 모습을 드러낸 나무 상자를 확인해보았고, 군인이 그러했듯 살짝 보이는 비단 조각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했다.

         

       “흐음. 조금 낡기는 했지만, 글자는 무리 없이 읽히는군요. 천황이라…?”

         

       진성은 그 글자를 보고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태도는 마치 학술 가치가 있는 것을 본 학자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은.

         

       “허, 허억, 허억.”

         

       뒤로 넘어갈 것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씨, 씨, 씨발. 씨발….’

         

       하늘 천.

       임금 황.

         

       초등학교 때 천자문을 외우기만 했다면, 중학교 때 한문 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알 수 있는 단어다.

         

       너무 쉽고 간단한 글자.

         

       그런데 그 두 개가 합쳐지면….

       지뢰가 되어버린다.

         

       ‘이, 씨발. 어쩐지 잘 풀리나 했더니.’

         

       잘못 밟으면 정치와 얽히게 되어버리는 지뢰가 말이다.

         

       그나마 평상시라면 노이즈 마케팅처럼 관심을 끌어모을 수단이라도 되었으련만.

         

       지금 상황에서 이게 나온다고?

       최악이다.

         

       게다가 그냥 나온 것도 아니다.

       주술사가 이번 소동과 관련된 물건을 찾았는데 저게 나온 거다.

       그럼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아니 머리가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소동은 일본 놈들과 관련이 있다.’라고 여길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아니, 방송이 관심받기를 원하기는 했는데.’

         

       방송이 흥하기는 흥할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

         

       ‘…관심받기를 원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크게 관심받기를 원하진 않았어!’

         

       그게 과해서 문제였다.

         

       그냥 시청률 많이 나오고 화제 되기를 원했지, 나라를 뒤집어버리고 외국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게 만들기를 원하진 않았다!

         

       그래.

       일본 물건이 나오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예상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이거 일본 짓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천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이러면 외교 문제가 된다고!’

         

       천황이라는 게 예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다른 왕실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가의 상징이고, 명목상 국가를 이끄는 머리이자 얼굴이다.

       그런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가볍게 해결하기에는 글렀다는 말과 같다.

         

       아마 이 소동과 천황이 연관이 있다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나가는 순간,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칠 게 뻔했다.

       조작 방송이라느니, 일본의 국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더러운 수를 쓴 것이라느니, 당장 해명하지 않으면 경제적 제재를 검토해보겠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거기다가 독도 근처로 자위대를 보내서 도발을 할 수도 있었고.

       아니, 할 수도 있는 게 아니다.

       분명히 한다.

         

       ‘아니, 아니지. 혹시 모르잖아. 그냥 글자 두 개만 보이는 거니까, 안의 내용은 다를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PD는 완전히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그냥 글자 두 개만 보인 것이지 않은가.

       까보면 천황을 찬양하는 문구가 적혀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외교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소행으로 둘러댈 수 있었다.

         

       하지만.

         

       “흐음. 보자, 비단이 낡아 글자 몇 개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중간중간 읽을 수 있겠습니다.”

         

       “뭐, 라고 적혀있습니까?”

         

       “어디 보자. 천황, 하사, 만세 영광, 지맥, 귀환…. 뭐 이런 글자들이 읽히는군요.”

         

       PD의 이런 희망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나무 상자를 완전히 열고 본 비단에서는 심상치 않은 글자가 보였다.

         

       게다가 비단의 내용만 심상치 않은 것도 아니다.

       비단으로 싼 물건 역시 심상치 않았다.

         

       “흐음. 어디 보자, 이거 주물이로군요.”

         

       주물(呪物)이 있었다.

         

       제의용으로 보이는 검 한 자루.

       검의 손잡이 부근을 둘둘 말고 있는 목간 하나.

         

       게다가 그 주물들은 자신들이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도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묘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주물에 대해 문외한인 PD도 ‘저거 위험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검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날에 베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목간을 보고 있자면 당장 카메라를 집어던지고 다가가서 풀어 헤친 다음에 그것을 읽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아, PD님께서는 시선을 돌려주시지요. 이 주물에는 사람을 현혹하는 기운이 있어 가만히 보고 있자면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현혹하는 주물이라니.

         

       어째 찍히는 것 하나하나가 범상치가 않았다.

         

       ‘아, 망했다.’

         

       과유불급.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

         

       차라리 모자랐다면 조금 아쉬워하면서 무사히 방송에 내보낼 수라도 있었을 텐데.

       너무 대단한 것이 나오다 보니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PD는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와, 진짜 망한 것 같은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중 이런 것이 있다.

       진짜 심각한 강력범죄는 뉴스로 방영되지도 않는다고.

         

       ‘그거랑 이거랑 무슨 차이가 있나….’

         

       PD는 그 도시 괴담 비슷한 이야기가 지금 자신에게 적용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특종이 있다.

       대박이 있다.

         

       그런데,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PD는 아쉬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최대한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서 이상하게 변해버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어쩌면 OK가 떨어질 수도 있어. 어쩌면 위에서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그냥 진행하라는 사인이 나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된다면 이걸 방송에 내보낼 수도 있을…리가 있나. 이건 그 양반들도 책임 못 질 것 같은데.’

         

       그는 그렇게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지만 그의 손만큼은 본능에 따라 진성을 착실하게 찍고 있었다.

         

       “일단 검 같은 경우에는 일본풍이라기보다는 중국풍 느낌이 듭니다. 은으로 이런 문양을 그린 것으로 보니 고대 중국의 느낌이 나는데…. 제가 고고학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확답을 내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낮은 가치로 보이지는 않네요.”

         

       진성은 PD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멘트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유심히 나온 주물을 살펴보면서 착실하게 평을 내리기도 했고, 앞으로 촬영에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 ‘고고학이나 유물에 조예가 있는 분을 찾아가 보셔야 하겠다.’라는 멘트까지 쳤다.

         

       ‘멘트도 좋은데….’

         

       완벽했다.

       처음 TV에 나오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좋았다.

       저것 뒤에 전문가를 찾아가는 내용을 붙여도 되고, 전문가가 저 주물을 감정하는 내용을 붙여도 된다.

         

       머릿속에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는 후보군이 여러 개가 순식간에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떠오르면 뭐 하는가.

         

       방송이 나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목간…은 지금 손을 대서는 아니 되겠군요. 목간에 사람을 해할 수 있는 삿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목간 자체가 품은 기운인지, 그렇지 않다면 이 검에서 나오는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풀었다가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 같군요. 억눌려 있던 사악한 기운이 폭발적인 기세로 뻗어나갈 것은 분명하며, 자칫 잘못하면 애꿎은 사람이 액(厄)을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끼이익.

         

       “일단 여기서 자세하게 살펴보기는 무리인 듯하니, 일단은 봉하고 나중에 시간을 들여 살펴봄이 옳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성은 PD가 좋아할 만한 멘트를 치고는 주물을 다시 나무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아까처럼 나무 상자의 틈새로 주물이 보이지 않도록 가지고 온 가방에서 테이프를 꺼내 그 위에 칭칭 감았고, 찐득한 붉은색의 물감으로 그 위에다가 이상한 문양을 그림으로써 흘러나오는 기세를 완전히 죽여버렸다.

         

       그 솜씨가 아주 멋들어지고 신비스럽게 보여서, 딱히 크게 편집을 하지 않아도 끝내주는 영상이 뽑힐 것 같았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말이다.

         

       “예, 그…러는 게 좋겠군요. 박진성 주술사님 말대로, 일단 들고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PD는 진성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진성의 말대로 주물을 찾아보기 위해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엿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방송국과 정부와 상의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일개 PD의 권한으로 그냥 진행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사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건 무조건 보고해야만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다.

         

       ‘제발, 제발 그대로 진행되게 해주세요.’

         

       그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이 영상을 쓰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렇게 끝내주게 영상을 담아왔으니, OK 사인을 내줘야만 한다고 말이다.

         

         

         

        * * *

         

         

         

       “아니,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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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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