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8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평소라면 방송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음…… 지루하군.

       

        내가 왜 방송을 할 시간에 방송하지 않고 있는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방송 규정 위반으로 인해 ‘3일’ 방송이 정지됩니다.]

       

        “쩝.”

       

        보다시피, 내 방송 계정이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게이트 내부에서 사냥 방송을 하던 난, 게이트 보스와 싸우다 말고 내 아바타의 나체를 방송에 내보이고 말았다.

        물론 그 일 자체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체를 남에게 보이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의복’을 착용하는 지성체들의 특징이지, 나와 같이 ‘의복을 착용하지 않는’ 생물에게는 수치심이 되지 않으니까.

       

        ‘내 아바타는 인간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겐 인간이었던 전생의 기억이 있고, 내 본체와 달리 아바타는 인간의 형상이니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전생의 기억은 내 안에서 많이 바랜 기억이 되었다.

        아바타의 나체를 남에게 보인 것은…… 쉽게 설명하자면 ‘원격 조종하는 개미형 로봇의 나체를 남에게 보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개미가 나체인 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해 봤자, 인간은 그런 개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딱 그런 심정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나체인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 버렸다.

        생각해 봤자 의미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내 ‘수치심’에 관한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내 나체의 모습’이 방송을 타고 다수의 인간들에게 보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본인의 나체가 남에게 보여지는 것도 부끄러워 하지만 동시에 남의 나체를 보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이상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었다.

       

        “나체를 보인 것은 나인데, 왜 인간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인지…….”

       

        인간들의 상식으로 생각해 보면, 피해를 본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내 방송 계정이 정지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렇게 불만만 중얼거릴 필요 없이, 다트 스트림이라는 회사에 직접 항의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다.

        나는 나 혼자의 힘으로 지구 전체를 뒤집을 수 있는 초월자고, 약자인 인간들은 내가 아무리 불합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주어야만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내가 ‘방송 정지를 풀어 주어라’라고 한마디만 한다면, 인간들은 내 방송 정지를 곧바로 풀어 주겠지.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얌전히 방송 정지를 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이번 방송 정지는 ‘인간의 규칙’에 따라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인간들의 규칙에 따르겠다’라고 선언한 바가 있다.

        그리고 이번 방송 정지도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규칙’에 따른 결과다.

        인간들이 규칙을 어기고 나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라면 모를까…… 내가 먼저 그들의 규칙을 깰 이유는 없다.

       

        “그나저나…… 시간이 남는구나.”

       

        두 번째로 맞이하게 된 방송 정지.

        단 하루만 정지 당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이번에는 무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방송을 정지당하게 되었다.

       

        “…….”

       

        뭘 해야 할까?

       

        “어디…… 블레이즈는 무엇을 하는고?”

       

        어제 몸풀기를 한 큰아들의 행방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단 3명만 존재하는 S랭크 헌터의 파트너이기 때문일까?

        블레이즈의 행방은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일본에 갔다고?”

       

        인터넷 뉴스에선, 블레이즈와 이현이 일본에 생성된 S랭크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이동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몸을 푼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벌써 게이트를 닫으러 움직이기 시작했단 말인가?

        부지런하구나.

       

        “벨제투스는 연락이 없고…….”

       

        내 게이트에 들렀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벨제투스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원래도 연락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어리광을 부리는 면이 좀 있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면도 존재한다.

        아니,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외톨이’스러운 면이라고 해야 할까?

       

        “헤니시아와 슈르네도 소식이 없고…….”

       

        헤니시아는 무엇을 하는지, 연락을 시도해도 답이 없었다.

        슈르네야 워낙 자유로운 아이니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말이다.

       

        “음…….”

       

        정말로 할 일이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할 일이 없다…….

       

        “그냥 본체로 돌아갈까?”

       

        이렇게 지루함을 느낄 바에는, 차라리 아바타를 본체로 되돌리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인간형 아바타인 나와 본체는 체감하는 시간 감각이 다르다.

        인간에게는 24시간이 하루의 시간으로 느껴지겠으나, 본체에게는 인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으로 느끼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서, 본체는 인간보다 시간을 훨씬 빠르게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3일의 시간이 느리더라도, 본체에겐 3일의 시간 따위는 잠시 눈을 감으면 금세 지나가는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니 아바타의 모습으로 지루함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본체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고, 방송 정지가 풀렸을 때 다시 아바타를 만드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3일을 그냥 잠만 자면서 보내기에도 무언가 아쉽구나.”

       

        지난번 방송 정지 때처럼 인간들의 사회로 놀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때는 서울 구경을 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놀러 가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3일이라는 시간까지 주어졌으니, 그때보다 좀 더 여유롭게 놀 수 있겠지.

       

        “어떻게 할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내 생각이 ‘여행을 떠나자’라는 부분으로 흘러가던 찰나였다.

       

        띠롱!

       

        “음?”

       

        갑자기 들려온 신호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헌터 협회의 협회장인가?

       

        “통화 받았느니라.”

       

        = “아! 라그나 님! 안녕하십니까!”

       

        인간들의 나이로 ‘노년’을 바라보는 협회장이었으나, 언제나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언제나처럼 활기찬 협회장에게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더냐?”

       

        = “아, 저번의 문의 주셨던 알 있잖습니까?”

       

        “알? 아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 헤니시아가 놓고 간 무정란을 두고 헌터 협회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 알을 가지고 방송 콘텐츠를 하나 제작할 생각인데, 혹시나 인간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 묻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나도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그래. 답이 나왔느냐?”

       

        = “네. 안타깝지만, 방송에선 사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니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나는 아쉬움의 감정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알을 이용해 시청자 참여 보물찾기와 같은 콘텐츠라도 해 보려 했건만…….”

       

        = “아니, 그걸 왜 보물찾기 따위로…….”

       

        “음? 뭐라고?”

       

        = “아무것도 아닙니다!”

       

        통화에 잡음이 끼는 바람에 협회장의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

        뭐, 본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니 아무것도 아니겠지.

       

        어쨌든 헤니시아의 무정란을 방송 콘텐츠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헤니시아의 무정란은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할 텐데…….

       

        “……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헤니시아의 무정란. 3일이라는 시간. 그리고 유흥이라면…….’

       

        내 머릿속에서 각각의 생각들이 조합되고, 이어서 그것은 하나의 아이디어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협회장이여.”

       

        = “네, 넷?!”

       

        “내가 알기로, 너희들이 ‘시베리아 숲’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분명 인간이 살지 않는 곳이었지?”

       

        = “그, 그렇습니다.”

       

        협회장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도 딱 좋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협회장에게 말했다.

       

        “외출하겠다.”

       

        = “……네?”

       

        나는 협회장의 대답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방송실을 나갔다.

       

       

        *            *            *

       

       

        쩌저적!

       

        공간이 갈라지고, 이내 전혀 다른 두 공간을 잇는 웜홀이 생성된다.

        나는 그 웜홀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휘이이이잉!!

       

        “기온이 확 떨어지는구나.”

       

        “그렇습니다.”

       

        나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침수의 숲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를 대략 찍어 공간 이동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목표로 한 곳에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따라온 권속들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준비하자꾸나.”

       

        “네.”

       

        내 명령에, 시녀들이 각자 챙겨 온 물건들을 이용해 ‘야영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건물이 생겨나고, 야영장의 가운데에는 결계석이 설치되었다.

        결계석이 가동되며 야영장의 주변을 덮은 결계가 만들어지자, 매섭게 휘몰아치던 강풍이 잠잠해졌다.

       

        “주인님.”

       

        “음.”

       

        자예가 나에게 따듯한 음료를 내밀었다.

        인간들이 ‘핫초코’라 부르는 음료를 혀로 살짝 맛보고, 이내 얼굴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너무 달구나.”

       

        “새로 가져오겠습니다.”

       

        재빠르게 내 손에서 핫초코를 집어 간 자예가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주방용 건물로 들어선 자예가 주방장들에게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설탕을 줄이세요!”

       

        “넵!”

       

        “거기! 카카오 제대로 갈도록 하세요!”

       

        “넵!”

       

        총주방장마저 자예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보인다.

        이전에 총주방장과 서열 싸움을 벌였다더니…… 아무래도 자예가 이겼던 모양이다.

       

        주방에서 소리치는 자예를 뒤로한 채.

        나는 새하얀 눈이 쌓인 시베리아의 숲을 바라보았다.

       

        “흠…….”

       

        숲의 안쪽에서 이쪽을 살피는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시베리아라는 장소에 살아가는 짐승들이다.

        자신들의 터전에 들어온 낯선 존재들을 관찰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런 시선을 모른체하며, 천천히 금속 지배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나의 조종을 받는 금속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눈으로 뒤덮인 대지의 아래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나는 숲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는 새로운 컴퓨터를 샀습니다.

    컴퓨터가 너무 예뻐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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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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