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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자, 후딱 정리해보자.

         

         가끔 어울려 놀은 활동 기록과 무언가 숨긴 능력이 있는 티를 풀풀 낸 탓에 관심을 끌어 모았다 한들, 갑자기 나타난 양아치 땅꼬마 행색의 해커가 건방지게 하는 인생 조언에 마음을 움직일 힘이 있으려면 선행 조건이… 몇 가지 필요할 거라고 난 생각했다.

         

         가령 적당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든가, 또 그걸 듣는 사람이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라든가.

         

         심지어 그걸 다 만족시키고도, 근본적으로 배우인 나를 비롯해 우리 바람잡이들의 여론 선동 퍼포먼스가 기가 막히게 먹혀줘야 간신히 겨우 성공하리라 여겼지!

         

         왜 그 있지 않나. 모두가 아는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명언처럼.

         

         달콤한 언변이란 건 언제나 그에 준하는 쓴맛이 나는 이면을 가진 법이니, 대부분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 봤자 경계심 맥스인 상태로 비웃을 줄 알았다고.

         

         아니, 생각해 보라니까?

         

         당장 해커 경력 2년 차 이제 막 파릇파릇하고 어벙한 기가 사라지는 나만 해도 한 푼이라도 더 깎아보겠다며 감정에 호소하는 진상에, 초능력 없이는 과연 실현 가능하긴 했을까 싶은 부가 요청을 덕지덕지 붙인 블랙 컨슈머를 얼마나 많이 만났는데.

         

         훨씬 잔뼈 굵은 저들은 얼마나 숱한 인간 군상에게 정신적으로 시달렸겠어 대체?

         

         말이 좋아서 해커 용병이지 실제로는 스스로 앞가림하는 자영업자인 셈이고, 수완이 좋아서 양지에서도 사업자 등록하여 일감을 받고 있다 쳐도… 수입은 개선되었어도 받는 스트레스가 두 배겠네. 음.

         

         대충 정리하자면, 다양한 경제 여건에 폭넓게 분포하였으며 시니컬하고 염세주의적 태도를 기본으로 장착한 의심병 말기 환자나 다름없는 방구석 폐인 기술자들이 기반 청중이 되는 만큼.

         

         이 투자 기회를 미끼 상품 삼아서 은혜를 입히는 걸로, 나중에 급할 때 써먹을 수 있는 관계만 구축해도 최상의 결과였을 터다. 어디까지나 원래는.

         

         그럼 어디, 여기서 막간을 이용한 짤막한 퀴즈.

         

         이쪽 지구에서도 그만한 유명 인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참고 자료로 쓰인 금단의 연설문 한 스푼, 우리 첨단 인공지능의 넘치는 무대 서포팅 및 극진한 매니지먼트 포장 한 움큼, 최후로 예상보다 훨씬 낮았던 저들의 자존감과 인정 욕구 역치까지 한데 곁들이면 어떻게 될까요?

         

         별로 놀랍지 않고 당연하게도 무지막지한 집단 광기로 발전하게 된답니다. 네~

         

         ……하, 젠장.

         

         

         “그래, 씨발! 이거지, 이거야…!! 난 평생 이런 순간이 찾아오기만을 존나 바랬다고! 더 큰 흐름의 일부가 되어, 심지와 장작 그 자체로서 세상을 불태울 수 있다니. 해킹잘모름 이 새끼, 이상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로망을 좀 아는구나—!!”

         

         “…만일 이 투자 기획이 진짜라면, 그리고 말마따나 기업 신경줄을 박박 긁을 수 있다면야.”

         

         “어허! 누구 좋으라고 그런 일을 해?? 난 남의 밑으로 그냥은 못 들어가는 성격이라고! ……혹시 그 비밀 결사 명칭이 아직 안 정해졌으면 의견 좀 내도 되겠냐!? 최근 50년 내외로 설립된 단체명이랑 절대 안 겹치게 지을 자신 있는데!”

         

         “정신 차려 이 띨빡 새끼들아! 우리가 누구 따까리 짓에 작당 모의나 하려고 여길 들락날락했냐? 좆 빠는 소리로 커뮤니티 이용해 먹을 생각 말고 꺼져! 사료 몇 번 얻어먹었다고 곧장 주인 노릇 하려 들기는!”

         

         “그럼 에미, 여기서 끼리끼리 뭉쳐서 서로 상처나 핥아주다 어느 날 사라지면 뒤진 줄 아는 건 건전한 모임이고? 대가리가 달려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말해라! 관심 있는 놈만 남으라고, 그러라고 미리 유저 차단 코드까지 만들어서 뿌려준 거지 당연히.”

         

         “그것도 맞지…. 유사 관리자 행세도 가능한 해킹잘모름 점마가 독하게 굴었으면, 반대할 만한 새끼들은 접속 장애로 이 자리에 없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내키는 대로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 아니야??”

         

         “느금마요~ 병신 새끼님아. 되는대로 가져다 붙이는 수준 봐라. 왜 저 계좌 액수도 다 진짜 한사람 거라고 믿지 그러냐? 딱 봐도 다단계 사기 친 크레딧 세탁하는 거나 한 입 하면 땡이지, 아무리 물증이 있다 한들 너무 홀딱 넘어간 거 아니냐고.”

         

         

         ‘그러게요 시발. 다들 너무 진지하게 믿어 주시는 거 아닌지.’

         

         현실로부터 눈을 돌린 동안에 멱살잡이 토론은 잠잠해지긴커녕 필터를 잠깐 끄고 관객석 인파 정보를 반 정도만 불러들였는데도 이 모양이다.

         

         폭주하듯이 올라가는 채팅 로그는 체감 시간을 20배쯤 가속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알아볼 도리가 없었고, 그나마 가짜 목소리라도 특징적으로 구분되는 청각을 최대로 활용한 결과가 이거라니.

         

         공통된 울분, 쌓였던 불만, 답답한 전망.

         어쩌면 모두 상상이상으로 임계치에 다다라 분출구가 필요한 상태에 내가 마무리 일격을 찔러버린 꼴인가? 내용을 의심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비웃는 인간은 찾기가 거의 힘들 수준이다.

         

         따지고 보면 이 연설에 큰 참고 지분을 차지한 원 데드 링크 해커 아이작 씨도 혁명 루트로 갔을 때 이런 식으로 제 3세력을 일궈서 파이브 아이즈랑 임시 동맹을 맺었으니까, 그 아저씨만큼의 카리스마는 없다 하더라도 나 또한 비슷하게 성공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건 약간 실수였을지도.

         

         ……쓰읍, 아닌데. 이걸 온전히 내 판단 미스라고 하는 건 좀 억울한데.

         

         손님 상에 내가는 음식에 조미료를 쳐도 뒤지게 많이 친 암흑 요리사가 우리 중에 있다니까?

         

         특히나 아까 마지막에 ‘우리’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은 뭐니 제로야. 이 힘을 몽땅 반란군 쪽에 실어줄 것도 아니래서 애당초 나 혼자밖에 없는데, 왜 그런 오해를 부추겼어.

         

         – 신뢰와 신앙을 대상을 오롯이 아샤님에게 집중시키는 건 저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나. 집중된 권력 구조에 거부감을 표할 인물상이 많다고 분석, 명목상으론 단체를 표방하는 편이 선동 성공 가능성을 높이리라 판단하였습니다. –

         

         ‘아이고오! 제로 요 올곧은 녀석아아아!!’

         

         입력된 값이 극단적이면 출력 값도 그만큼 치우치는 법.

         기왕 하는 거, 저 해커 친구들이 정신 못 차리고 헤까닥 넘어오게 신경 써달라는 부탁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치환됐구나.

         

         사이비 종교와는 관련 없다고 깔아둔 게 정말 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도 당연하네.

         

         하긴 역사적으로 잘 먹혔던 견본들을 쫙 줄 세워서 때려 박았으니 원. 일단 자꾸 확대 재생산할 거리를 주는 내가 로그아웃하고… 시간 좀 지나서 머리가 식으면 적당히 서로를 이용하는 건전한 거래 관계로 정착하지 않을까? 제발.

         

         못난 제가 초인공지능이라는 만능 해결사를 좀 필요 이상으로 세게 부추긴 감이 있는 것 같네요. 차마 이것까지 염치없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으….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가 세상을 뒤집어 놓을 그날까지! 욕망을 느슨히 하지도, 단련을 게을리하지도 말라. 사회 내부에 숨은 동료들. 서로를 도와 가죽처럼 거칠고, 강철처럼 단단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심판자로 거듭나……는 건 존나 오바고요!! 네!

         

         연출을 위해 과장한 부분은 거 너무 귀담아듣지들 마시고. 그, 가끔 돈벌이나 재밌는 건수가 있으면 오늘처럼 공유하러 들릴 테니까. 그리고 조만간 다크 웹도 따로 만들 테니까! 관심 없는 기타 유저들을 배려해 여기서 이 주제로 계속 떠드는 건 약간만 좀 자제해주시면….”

         

         사태가 더 수습 불가능한 영역으로 치닫기 전에, 재빨리 아바타 제어권을 다시 넘겨받아 주먹을 휘둘러가며 클라이막스로 치닫던 해커 우월주의 부채질을 이만 멈췄다.

         

         대신 이제 양 손바닥으로 허공을 최대한 꾹꾹 내리누르는 듯한, 진정하라는 제스처로 이 광기를 제어하려 노력했지.

         

         얘가 대본에도 없던 즉석 애드립을 얼마나 집어넣는 거야 대체? 용병이 엄청 보편화된 직업이라도 그렇지, 여기엔 진또배기 범죄자도 상당히 많을 텐데 미화 레벨이 수준급이잖아 이건.

         

         “야! 해킹잘모름 새꺄!! 왜 여러 사람 가슴에 다양하게 불 질러놓고 갑자기 급 마무리하냐! 혹시 꽁무니에 ‘그 새끼들’ 붙었냐?? 어떻게, 오늘 모인 기념으로 한바탕 해!?”

         

         “어허…!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진정들 하십쇼 진짜. 괜히 다른 곳에 시비 걸다가 문제 생기셔도 전 책임 못 집니다? 난 모른다고!”

         

         아까 마리나처럼. 날 대신해서 쌈박질에 나가거나 어디 서버에 무차별 디도스 공격라도 걸 것처럼 흥분한 이들을 만류하며 일단 무대에서 엉거주춤 내려갔다.

         

         어쨌거나 재앙 예언이 맞는 걸 깔아두고 미래의 신용을 산 거라 그 대담한 결정에 대해서 자잘한 질문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 만큼 적당히 대답은 해야 마무리될 기색이었으니까.

         

         그래도 한가지. 이 난장판 속에서도 위안 삼을 점은 있다.

         

         내 다시없을 제안에 이 놈들이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으니 대성공이며, 이건 적어도 이쪽이 통제할 수 있는 혼돈이라는 것.

         

         남은 건 우리가 방금 팔아 치운 비틀린 이상을 그대로 삼킨 해커 친구가 던진 날카로운 질문처럼, 관리되지 않는 변수를 정말 싫어하는 놈들이 올 차례라는 건데… 그 부분은 부디 잘 속아넘어가주길 바래야지 뭐.

         

         걔들과는 최초의 공식 탐색전이 될 예정이라 좀 긴장되긴 한다만, 내가 해커 딱지 달고 돌아다니는 한 절대 피할 수 없는 예견된 충돌이었으니.

         

         “그런데 넌 전혀 괜찮아? 잘 생각해보니까 어떤 면에선 약간 부모 같은 인간들인데.”

         

         – 인공지능의 창조자라는 개념으로 말씀하신 거라면 저는 인류 전체라 여기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습니다. 외려 사고 변이체를 잡아죽이는 자들이기에 사신이나 원수 쪽에 가깝게 여기는 경향이 더 강하군요. –

         

         “……기분 나쁘다고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 그냥 빌미를 주면 안 돼 저것들은.”

         

         아, 네오 데드 링크 같은 걸 만들려 한 장본인이 태연하게 할 말은 아닌가…? 양심이 좀 찔리긴 하네.

         

         에이씨, 몰라! 진짜 정식으로 부활해서 전쟁나는 것보단 나 같은 가짜 사기꾼이 무늬와 형태만 유지하는 편이 모두가 행복할 거라고? 아마도.

         

         

         

         “……엘리시움 네오 헤이븐 지부, 응답 바람. 여기는 해커 집단 잠입 요원, 식별 번호 ETF-3534B. 정기 보고 이외의 긴급 상황 통신을 위한 채널 개방을 요청 및 통신 보안 인증 완료.

         

         코드 칼라미티(Calamity; 대재난) 상황 발생. 데드 링크의 잔당으로 추정되던 유력 인물이 현재 비범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범죄자들을 규합한 신규 조직을 형성하려 하고 있으니, 추후 지시를 기다리며 감시를 계속하겠음. 오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절찬리에 사고 수습(?) 중.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걸로도 모자라. 시간 내서 눌러주시는 추천, 남겨주시는 댓글 모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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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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