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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제국력 107년 2월.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지브롤터 감옥에 갇혔으니까.

     -매국노 그레이 지브롤터, 전과 13범! 그대를 체포한다!

     비리, 횡령, 살인, 고문, 기타 등등.

     -황명에 따라, 사형!

     제국법으로 엮어서 적당히 쳐내기에 너무나도 많은 죄목이 내게 걸려있었고, 제국 법원은 지브롤터 변경백의 권리남용을 주장하며 사형을 판결했다.

     감히 지브롤터를?

     그야 당연히, 무력으로 억누를 수 있을만큼 제국이 힘을 길렀으니까.

     제국은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

     노스트럼이 멸망했으니 이제 힘을 기르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혁명군의 연쇄 테러로 제국 시민들의 마음 속에는 전쟁에 대한 여운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힘을 잃었다가는 노스트럼이 부활할 수 있다.

     무력을 내려놓는 순간, 지브롤터가 다시 배신할 수 있다.

     그러니 더 힘을 기르자.

     노스트럼의 2등 시민들을 전부 힘으로 억압하고 그들의 모든 걸 빼앗으며, 우리 편이 된 지브롤터까지 무력으로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기르자.

     마스터를 늘리든, 마스터를 죽이는 기술을 늘리든, 아니면 마스터조차 당할 수 있는 극독을 만들어내든.

     7년 동안의 연구는 마스터조차 일시적으로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누아르를 죽인 매독은 노스트럼의 피를 이어받은 영웅적인 존재가 일으킨 황금의 기적이었다면, 매국노 그레이가 흐트러지게 만든 건 7년 동안 몸에 누적된 백은의 잔재였다.

     나는 백은에 중독되어 있었다.

     내가 피우는 것 이외에도, 그 이상의 백은이 몸에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을 만든 건 지브롤터에 스며든 제국의 그림자들.

     지브롤터와 같이 7년, 아니 내가 17살일 때부터 아버지가 몰래 협곡 성벽 아래에서 데려온 제국의 행정관들은 10년 동안 지브롤터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워왔다.

     어느 연회.

     나는 독이 든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암살자가 나타났고, 그들은 아스타시아를 노렸다.

     네 명 정도 썰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이들이 그 정도고, 일단 베고 본 것들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이 되었던 것 같다.

     마스터가 넷.

     그들이 팔신장 중 넷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내가 감옥에 사슬에 묶여 갇혀있다가 깨어난 뒤였다.

      나의 아래에서 매국노들을 위해 잔을 따라주던 제국 행정관들은 나를 감시하는 간수가 되었다.

     백작가가 여는 연회장에 찾아와서 멸망한 노스트럼을 비웃던 매국노들은 나와 엮일까봐 바로 잠적했다.

     나의 아내였던 아스타시아는-

     “그레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그레이를 죽인다고 그래요.”

     통일대륙의 황녀이자 나의 아내로서, 나를 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애를 썼다.

     “괜찮아요. 차라리 다른 여자를 안으세요. 아스타시아가 아닌 제국의 황녀는 수도 없이 많으니까. 그렇게 하면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아스타시아는 나를 살리기 위해 황제가 바라는 길을 선택하도록 나를 끊임없이 설득하고자 했다.

     “제가 공주님 이외의 여자를 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죽어요!”

     “미안합니다, 공주님.”

     “그레이!”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신이 아닌 여자를 안아 임신시키는 순간, 황제는 당신을 죽일 겁니다.”

     내가 다른 여자를 통해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준수한 재능을 보이기만 하더라도, 아스타시아는 숙청당하리라는 걸.

     “제가 공주님이 아닌 다른 여인을 품는 즉시, 당신은 죽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제게 당신을 죽여서 살라고 하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을 살리고 싶은 거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님.”

     자신을 죽여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린다.

     우리는 그 부분에 있어,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도망치십시오, 공주님.”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제안했다.

     “이 저주받은 땅을 떠나 도망치십시오. 합스베르크를, 이 대륙을 떠나 살아남으십시오.”

     “그레이…!”

     “반드시 살아남으셔야합니다. 살아주셨으면 합니다.”

     설득했다.

     “당신 없이 어떻게 살라고…!”

     “당신이 죽는다면 저는 끝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다면,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스타시아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길을 선택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한 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

     “제가 살아남으면 그저 저 한 명이 살아남는 거지만, 당신이 살아남아 도망치면 두 명이 살아남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황제는 명령했었다.

     아스타시아에게, 나를 강제로 덮치라고.

     자신이 임신하면 아이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아스타시아는 황제가 보는 앞에서 나의 아이를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진짜로 아이가 생겼다면, 도망쳐서 어디 숲으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키워주십시오. 그 아이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어머니로서 가르쳐주십시오.”

     나를 살리기 위해서.

     황제의 재촉으로부터 면피를 위해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임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였다.

     “부디, 우리의 자식은 우리와 같이 자라지 않기를.”

     하지만 그렇게라도 설득을 해야만 했다.

     “그러니-”

     “나의 것이 되세요.”

     그 때, 아스타시아는 어떻게 하고 있었더라.

     “순순히 나의 것이 된다면.”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대본을 읊는 것처럼, 주어진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통곡했던 것 같다.

     “그대의 목숨만은 살려드리겠어요.”

     황녀는 망가져있었다.

     오직 나만을 살리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그렇게도 증오하고 두려워하던 자에게 반쯤 세뇌되어 있었다.

     “거절합니다.”

     나는 황녀를 향해 말했다.

     황녀의 뒤, 그림자 속에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합스베르크 황제를 향해 분명히 말했다.

     감옥 밖에서 아스타시아를 분명 세뇌했겠지.

     네가 그레이 지브롤터를 설득하지 않는다면, 그레이 지브롤터를 가장 먼저 죽여버리겠다고.

     

     “당신…어째서?”

     아스타시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내가 고집을 꺾지 않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

     아스타시아는 자신을 죽여 나를 살리려고 했다.

     “황녀라고요! 나의 것이 된다면, 다음 황제는…!”

     내가 아스타시아와 그대로 아이를 낳으면, 그 다음 황제는 분명히 선별되었겠지.

     그래서 물었다.

     “황녀님의 뜻은 황제의 뜻입니까, 아니면 독단입니까.”

     정말로 아스타시아 본인의 생각이냐고. 

     정말로 우리의 자식들의 미래를 저버리고 나를 살리려고 하는 거냐고.

     우리 자식들에게 또다시 그 피로 점철된 환경을 물려주려고 하는 거냐고.

     “그, 그건!”

     아스타시아는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나를 살려야한다는 생각에 급급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제가 설득하면 돼요! 그러니까…!”

     황제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서라도, 그녀는 나를 살리려고 했다.

     아스타시아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미 황제가 펼쳐놓은 덫에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황녀님. 저는.”

     알고 있다.

     “당신은 분명, 당신의 아이가 죽는 순간 자결할 겁니다.”

     아스타시아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 황제에게 살해당하거나 버림받는 순간, 자신을 자책하며 죽어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는 건, 곧 저도 죽는 것.”

     “그, 그건…!”

     “예. 잘 낳으면 되겠죠. 기적적으로, 초인과도 같은 아이를.”

     오직 살아남을 길은 아스타시아가 낳는 아이가 우리보다도 더 뛰어난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 뿐이지만.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해도, 그 자라는 환경에 우리가 바라던 사랑은 없을 겁니다.”

     “…….”

     아스타시아는 나를 바라봤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뒤에 서 있는 황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 순간.

     “우리.”

     아스타시아는 나를 이해했다.

     “같이 죽어요.”

     콰ㅡ앙.

     폭발이 일어났다.

     * * *

     -제국력, 아마도 107년 언젠가.

     망국의 공주,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그녀는 감옥에 테러를 일으켜 나를 구출했다.

     

     나에게는 그 때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노스트럼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지브롤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떠한 경로에서 알아냈겠지.

     하지만 그녀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두 명의 지브롤터 중 한 명은 처형되었으니까.

     아버지는 죽었다.

     황제는 크림슨 지브롤터를 처형한 장면을 영상으로 남아 내가 볼 수 있게 뿌렸고, 나는 아버지가 묵묵히 처형당하는 걸 보고 말았다.

     “가야합니다.”

     “어디를.”

     “아스타시아를 구하러.”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속에서도, 나는 아스타시아를 구하고자 했다.

     어머니, 레타르, 누아르가 죽었을 때도 무너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었지만, 자세가 무너진 건 그저 체력이 닳고 닳은 나머지 다리에 잠시 힘이 풀려서 그랬던 것 뿐이었다.

     황제는 납치된 나를 찾기 위해 아스타시아를 인질로 내세웠다.

     아버지가 죽은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아스타시아는 만인이 보는 앞에 목에 칼이 드리워져있었다.

     “공주님.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해도, 이 순간만큼은 이래야 한다. 내가 책임진다.”

     망국의 공주는 혁명군 간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데리고 직접 현장으로 향했다.

     “설령 이대로 끝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망국의 공주가 배려해준 덕분에 나는 현장에 도착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아스타시아는 나를 발견했다.

     “사랑하는 나의 왕자님.”

     마지막에 뭐라고 말을 했더라.

     “나는 당신이, 꼭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기억이 섞인다.

     “내가 설령 죽더라도, 당신만큼은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기억을 떠올리기를 매번 주저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백은으로 끄집어내려고 했던 악몽의 속에서 변주가 일어나는 건지.

     “죽지 마요. 나의 사랑.”

     아.

     “명령이니까.”

     기억났다.

     “나 대신, 내 몫까지 살아줘요.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그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저주이자 유언이었다.

     서걱.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칼날에 목을 그었다.

     * * *

     덜커덩.

     “……!”

     순간적으로, 나는 내 전신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 언제더라.

     나는 여기에 왜-

     “그레이!”

     “…공주님?”

     앞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하지만 어딘가 좀 더 젊고 어리다.

     “……아아.”

     잠시, 악몽을 꾼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좀, 졸았던 것 같네요.”

     “괜찮아요!”

     바이크의 떨림이 앞에 앉은 아스타시아를 통해 전해진다.

     “제가 혹시 자는 사이에 뭔가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까?” 

     “…안했어요!”

     “그렇습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있어 악몽은 언제나 미지의 환경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경험이 아닌, 과거의 실패와 좌절로 인한 후회였으니까.

     “마침 잘 됐어요. 슬슬, 지브롤터니까…!”

     서서히.

     지브롤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 찾아왔던 새벽의 여명은 어느덧 사라지고, 하늘에는 태양이 하늘을 가운데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

     빠직.

     무언가 깨지는 소리.

     나는 그 소리가 내 품에서 들린 것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악몽 속, 나의 과거 기억 속.

     아스타시아가 자결하기 직전에 느꼈던 그런 불안감.

     “이게….”

     아버지와 연락하기 위한 수정구가 깨져있었다.

     “…….”

     하늘.

     어두운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기 시작하며,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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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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