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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레너윌은 엘프 사절단을 데리고 내 무덤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세계수 씨앗을 심고 마력을 흘리는 과정을 직관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엘프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허어.”

       

       아무 데나 상관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하필이면 내 무덤 바로 옆에다가 세계수를 심냐.

       

       세계수는 보통 나무가 아니다.

       

       여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목. 어느 지역에 심어지느냐에 따라 국제정세가 크게 뒤바뀌는 것이다.

       

       그걸 레너윌이나 로즈마리가 모를 리 없는데.

       

       [이렇게 식목 행사에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레너윌이 한마디 할 때마다 엘프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굳었다.

       

       얼굴색도 엘프마다 뒤죽박죽이다. 누구는 빨간색, 누구는 노란색, 또 누구는 새파랗게 질려선…. 신호등이냐고.

       

       [유감입니다.]

       [저도, 유감입니다.]

       

       가감 없이 불편함을 내비치는 엘프들.

       

       그러나 이를 어쩐다?

       

       저들이 난감해하면 난감해할수록, 국제정세는 균형을 맞추게 된다.

       

       균형이야말로 여신 르퀴네스가 바라는 일이다.

       

       여신은 어느 한 종족이 온 대륙을 집어삼키길 원하지 않는다. 모든 종족이 조화롭게 살아가며 영토를 나눠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

       

       세계수를 인간들에게 먼저 준 건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저렇게 두면 엘프들이 강하게 나오지 않을까?”

       

       도발을 하면 처맞을 각오도 해야 한다.

       

       비록 경제가 작살났다고는 하지만, 카우렐리아는 여전히 강대국이다. 신생국가가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야.

       

       “이것 참, 직접 도와줄 수도 없고.”

       

       정령은 어디까지나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인간과 엘프가 싸우면 둘을 중재할 생각을 해야지, 판에 끼어들어서 누구누구 이겨라 했다간 세상 망한다고.

       

       아직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한숨을 쉬며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에테르의 우려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엘프 사절단은 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땅을 내려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완전히 당했소!”

       “굴욕이오!”

       

       외교부장관 아래로 줄줄이 머리를 박았다. 일부는 사표를 쓰기도 했다.

       

       대통령 지지율도 떨어졌다.

       

       “각하, 이대로 있다간 연임은 물건너 갈 겁니다.”

       

       조만간 대선이다. 한창 실적을 쌓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시기인데, 잘 나가다가 그만 헛발질하고 말았다.

       

       아이젠 대통령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리 묻자 관료들 사이에서 말이 오갔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된 화친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당장 세계수를 빼앗아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는 에테리아를 무시한 뒤 내정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군.”

       

       대통령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제부장관을 불렀다.

       

       곧 마샬 로스차일드가 하품을 훔치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눈그늘이 자욱하게 낀 모습이 며칠은 자지 못한 사람 같았다.

       

       “그렇군요. 분열 정책은 실패했다….”

       

       사정을 들은 마샬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차일드 장관, 당신에게 현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외교는 잘 모릅니다.”

       “행정, 외무, 사법고시를 전부 패스한 천재 중의 천재 아니오? 장관의 고견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마샬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재떨이에 담배를 떨어뜨리던 그의 입이 조만간 열렸다.

       

       “레너윌 하스펠트는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어중간한 외교로는 손해만 보겠죠.”

       

       제국이 무너져도 하스펠트 가문은 건재하다. 대가 끊기지 않는 한 수재들을 계속해서 배출할 것이다.

       

       게다가 현재 에테리아 실권의 3분지 1을 그가 지니고 있으니. 설령 그가 실각한다고 해도 에테리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그를 상대할 방법은 두 개입니다. 나라가 강성해지기 전에 치거나, 국운이 기울 시기를 기다리거나.”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당장 다다음 달이 선거인데!”

       “그렇다면 첫 번째 방법을 쓰셔야죠.”

       “장관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카우렐리아는 내정부터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마샬이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무얼 친다고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에테리아를 치는 얘기가 아니라는 얘깁니까?”

       “그렇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샬은 왼쪽 벽면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곳에는 금실로 표구한 아렌스 대륙의 지도가 붙어있었다.

       

       마샬 장관의 손끝이 엘랑카야 산맥을 넘어 그 이북을 가리켰다.

       

       “우리가 치는 건 마왕군입니다.”

       

       

       **

       

       

       외교 사절단이 파견됐다가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카우렐리아의 대선까지 몇 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 레임덕에 걸린 듯했던 행정부는 최선을 다해 경제를 복구했다.

       

       한편 야당에서는 온갖 반발이 일어났다.

       

       “외교를 개판으로 했는데 경제에만 집중하면 다인 줄 압니까?”

       “세계수를 빼앗겼잖아요, 세계수를!”

       “마왕군 앞잡이 정부는 하야하라!”

       

       국회는 진작 야단법석이 되었다.

       

       대통령더러 내려오라는 시위가 넉 달 넘게 지속됐다. 심지어 곧 있으면 대선인데도 말이다. 경제가 차츰차츰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이 정도 가지고 공(功)이라 하기에는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국민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여당과 정부에서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야당과 국민의 여론이 이 지경이 되도록 외교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때가 되었다.

       

       대선까지 정확히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드와이트 아이젠 대통령은 선거유세를 겸하여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그동안 전후복구에 힘쓰느라 외치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우리 정부는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알면 좀 하야하라! 그런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야당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

       

       그 말이 신호탄이었다. 

       

       “뭐, 뭐?”

       

       좌중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곧바로 시끌벅적하게 바뀌었다.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경호원들은 야단법석으로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물리치기에 바빴다.

       

       “마왕군의 소탕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에테리아를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인정하지만, 그들 중에는 마왕에게 충성을 바쳤던 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야당 중진들의 말씀대로, 우리는 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쯤에서 하피 알을 던지려던 난동꾼들의 표정이 멍청하게 변했다.

       

       저 대통령이 치매가 왔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야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짓이었으니.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네거티브 전략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 엘프는 여신께서 보우하시는 종족입니다. 세계수 묘목을 장악하고 있는 마왕군 잔당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또한 여신 르퀴네스 님께서 응당 바라시는 일입니다!”

       

       우와와아!!

       

       때를 맞춰 준비한 선동꾼들이 함성을 내지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 입장에서는 감화될 수밖에 없는 연설이었다.

       

       “여러분, 우리 엘프가 어떤 종족입니까!”

       

       대통령이 양 주먹을 말아쥐며 거세게 소리쳤다.

       

       “여신님께 선택받은 종족입니다. 우리가 마왕군을 몰아내고, 하늘에 서야 마땅합니다!”

       “옳소!”

       

       이후 대통령은 같은 연설을 전국 각지에서 동일하게 진행했다.

       

       “경제, 살리겠습니다! 민생, 되찾겠습니다! 마왕군을 몰아내고, 세계수를 바른 곳으로 가져오겠습니다!”

       

       야당들 입장에선 할 말이 없었다.

       

       자기들이 그렇게 성토하던 이야기를 상대 당에서 나온 대통령이 하고 있었으니까.

       

       선거의 시기.

       

       곧 정쟁의 시기.

       

       민주주의의 꽃이자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의 열매를 수확하는 이 시기에서, 드와이트 아이젠은 세계수 탈환과 마왕군 잔당의 소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도층을 성공적으로 흡수했다.

       

       그렇게 대선이 치러졌고.

       

       “각하!”

       “당선입니다. 재선에 성공하셨다고요!”

       

       아이젠은 꽃다발을 받을 수 있었다.

       

       야당 후보가 아이젠을 공격한 반면에, 아이젠은 감정이 좋지 않은 다른 나라와 다른 종족을 공격했다.

       

       승리의 비결이라고는 그뿐이었다.

       

       “재선 축하드립니다, 각하!”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다시 일하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행정내각을 인수인계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장관이 대선 이전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하며 업무를 이어나갔다. 아이젠이 그들을 빠짐없이 중용한 것이다.

       

       “선거도 끝났고 경제지표도 우상향을 그리고 있으니, 이제 처리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좁혀진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경제부장관 마샬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건넸다.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1. 국내 금안족 이주 정책]

       [2. 에테리아-엘랑카야 원정]

       

       아이젠이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관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국정안이었다.

       

       “금안족 또한 마왕군의 잔당입니다. 이들 중 수뇌부는 처형하고,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힘을 못 쓰도록 철저히 거주 구역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에테리아 원정의 시발점이 되겠지요.”

       “원정은, 직접 군사를 보내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현재 우리 상황으로는 대규모 원정군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요.”

       

       국정안 개요를 천천히 읽어나가던 대통령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왕군 잔당을 소탕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러자 한 관료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그게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뇨?”

       

       목소리를 낸 엘프는 정갈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국방부장관.

       

       펙튼이 야전사령관으로 강등된 뒤, 그를 대신하여 국방부의 수뇌부 역할을 맡았던 백전불태의 참모.

       

       “흑주를 사용합시다.”

       

       헨리 트루먼.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섬뜩한 의견을 내걸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자님께서 ‘앞으로 버멜이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주셨습니다.

    네, 버멜은 앞으로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일단 후일담에서는 확실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버멜과 에테르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버멜은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대가로 에테르를 정령으로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에테르에겐 남남이 되었으니 if에 해당하지 않는 현재 후일담 스토리에서는 더는 등장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 후일담이 다 끝나고 완전한 엔딩에 접어들면 단편적인 외전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외전은 당장 생각해 둔 플롯이 거의 없고, 에피소드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버멜이 다시 등장할 수 있습니다. 단, 등장하더라도 현대에서만 나오고, 얼굴을 비추는 수준으로만 등장할 것입니다.

    답변이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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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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