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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9

       열린 문 너머에 있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치였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고, 이쪽 세계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나선형으로 꼬인 모양으로 올라간 작은 기둥 제일 위에 나침반 같은 모양의 원판이 달렸지만, 실제로 나침반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침반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바늘이 없었으니까.

        

       형형색색의 빛이 마치 모양을 이루듯 그 특이한 장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지, 사실 진짜로 바람이었던 것은 아니리라. 내 앞에 서 있는 여자애의 머리카락도, 그리고 내 몸에 남아있는 깃털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왔다고 느낀 것은 나의 감각이었을 것이다.

        

       내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것’같은 감각은, 내 몸의 상처가 하나하나 나아가는 감각이었다.

        

       그 빛이 와 닿은 가슴팍에서부터 몸의 뒤쪽까지, 아주 빠르게.

        

       빛을 잃었던 깃털의 색이 돌아오고, 그사이에 길게 벌어졌던 상처가 마치 흉터도 남기지 않은 채 꿰매지는 것같이 사라졌다.

        

       피부에 돋아나 있던 우둘투둘한 종양,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아 진물이 흐르던 고름이 하나하나 사라졌다.

        

       저 장치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반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힘 빠졌던 다리에 다시 힘이 돌아왔다.

        

       억지로 버티고 섰던 몸은 어느새 바닥에 발을 단단히 디딘 채 제대로 서 있었다.

        

       “…….”

        

       한동안 그렇게 상쾌한 기분을 즐겼다. 지난 수년간의 시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마음 편한 기분이었다.

        

       목에 달린 사슬도 없고, 나를 가두는 철창도 없었다.

        

       시선을 내려서 내 앞의 소녀를 보았다.

        

       이제 나한테 뭔가 요구할 생각일까?

        

       자기 곁에 남아 함께 싸우라고 할까? 자신이 나를 구해줬으니 이제 아군이라는 말을 할까?

        

       솔직히, 조금 정도는 도와주어도 되었다. 물론 나를 억지로 가둬두려고 하면 다시 격렬하게 저항할 생각이었지만—

        

       하지만, 소녀가 꺼낸 말은 달랐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와 마찬가지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소녀는 손을 들어 넓은 복도를 가리켰다.

        

       “가십시오.”

        

       소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듯했다. 그저 그게 당연하다는 듯, 복도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자유.

        

       세상을 살아가는 온 인류에게 주어졌다는 권리. 물론 그 권리가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는 곳도 많았다. 같은 사람을 가두고 괴롭히는 이들도 많았고, 더 심하게는 죽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쪽 세계에서도 그리폰은 대단한 생물인 모양이다. 나를 가두었던 인간들이 나에게 가진 기대점이 그렇게 높았던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짐승이었다. 그러니 그런 짓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애초에 사람이 가졌던 권리를 동등하게 지니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그런 짓을 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었던 거겠지.

        

       “…….”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모른다. 복도에는 창문 하나 없었고, 이쪽으로 오는 길에는 여러 짐승의 시체가 있었다.

        

       아마 저 일행이 여기까지 오면서 싸워온 흔적이겠지.

        

       저 치료 장치는 소녀가 가져다 둔 것일까? 그럴 것 같았다. 자신들과 싸우는 이들을 막기 위해 저런 짐승들을 배치해둔 놈들이었는데, 기껏 그렇게 해둔 주제에 정작 자신들이 대기 중인 방 앞에 치유 장치를 두어 상대가 치료를 마치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

        

       그렇게 몇 걸음쯤 가다가, 한가지 잊은 것이 생각났다.

        

       나는 뒤로 휙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날개를 펄럭 펼쳤다가 다시 접었다.

        

       온몸의 관절이 무언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얼마 만일까. 그래서 사실 제어가 잘 안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놀랐을 만도 한데, 소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과연 이런 사선을 넘어온 아이였다.

        

       나이가 그렇게까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도, 이미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웃고 있었으리라.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폰의 몸으로 그렇게 한다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는 전하고 싶었다.

        

       그 진짜 목적은 알 수 없어도, 구속되어있던 나를 풀어주고 몸의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으니 당연히 이 정도 감사의 인사는 전해야겠지.

        

       시야에 보이던 소녀가, 손으로 자기가 입고 있는 치마 끝을 살짝 집어 올려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판타지 세계 귀족의 인사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 인사법은 분명 완벽한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앞으로 달렸다.

        

       멈추어있던 공기가, 나의 몸에 와 부딪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

        

       움직이는 내내 아픈 곳이 없었다. 발끝에 땅이 닿는 감각이, 폐로 공기가 들어오는 감각이 사랑스러웠다.

        

       힘껏 외쳤더니, 퓌요오오, 하고 서부극에서 종종 듣던 맹금류 울음소리가 들렸다.

        

       복잡한 길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문이 작아도 상관없었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나의 몸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달릴 수 있었다.

        

       눈앞에 나를 가뒀던 기사와 같은 놈들이 나타나도 나는 그냥 달렸다.

        

       날아오는 화살과 검은 나의 깃털도 자르지 못하고 맥없이 튕겨 나갔다. 마법은 처음부터 시전된 적 없는 것처럼 몸에 맞자마자 소멸하였다.

        

       힘껏 달리는 나의 몸에 부딪힌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고, 내 발에 밟힌 이들은 발톱에 몸이 찢겨나갔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

        

       그 생각으로 지금까지 쭉 버텨왔었는데, 그놈들이 내 몸 때문에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멈추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것이었다.

        

       내가 죽지 못해 살게 만든 녀석들이다.

        

       게다가 이제 20살도 되지 않은 애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던 녀석들이고.

        

       몇 놈 정도는 정말 죽어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저 앞으로, 앞으로,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달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폐를 채우던 그 어떤 공기보다도 신선한 공기가 얼굴로 들이닥쳤다.

        

       마지막으로 보였던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과 벽을 동시에 부수며 밖으로 뛰쳐나오자, 높다란 천장이 보였다.

        

       성당일까?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앞에 보였다. 달빛과 별빛을 받아 스테인드글라스는 밤인데도 화려하게 빛났다.

        

       “헉……!”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내려보니, 두 부류의 기사들이 보였다.

        

       한 부류는 나를 가두어두었던 놈과 똑같은 갑옷을 입은 놈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그보다는 덜 화려한 갑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같은 소속인 줄 알았지만, 잘 보니 그 둘은 서로를 마주하고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반목하는 사이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마도 이 성당의 소속일 것 같은 녀석 중 몇 명을 뭉개버렸다.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그 녀석들을 앞발로 높이 던져버린 뒤, 양 날개를 있는 대로 펼치고 크게 외쳤다.

        

       퓌요오오오, 하고, 멋들어진 소리가 들렸다.

        

       두 종류의 기사들 모두 기가 질린 듯 몸을 멈췄다.

        

       나는 활짝 펼쳤던 날개를 펄럭여 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이것도 그리폰의 본능일까?

        

       힘껏 날아오른 나는,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이름 모를 여인을 깨뜨려 보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높이, 더 높이.

        

       분명 차가운 밤하늘을 높게 날고 있는데도, 나는 전혀 춥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 아래로 펼쳐진 도시가 반짝이고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집마다 켜둔 불이, 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그 상쾌함을 만끽하며, 나는 도시를 작게 한 바퀴 돌았다.

        

       자유.

        

       누구도 막지 못할 완벽한 자유.

        

       몇 번이고 소리를 지르고, 하늘을 날면서 나는 한동안 그 자유를 만끽했다.

        

       *

        

       한동안 그렇게 날아다니던 내가 내려앉은 곳은 어느 들판이었다.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그 뒤로 든 생각은 그렇게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뭐 하지.

        

       내가 알던 세상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이 세계에서 뭔가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복수? 글쎄, 굳이 그렇게 하기는 귀찮다. 어차피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은 그 자리에서 죄다 그 소녀한테 패했으니까.

        

       특히 그 성직자는 팔 한쪽이 날아가 버렸다.

        

       솔직히 그대로 소녀랑 하이 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러기에는 우리 둘의 덩치 차이가 너무 컸지만.

        

       음.

        

       어차피 그 실비아라는 아이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면, 그 싸움을 조금 도와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뭐, 아무래도 상대는 전부 사람이다 보니 내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당황하겠지만……

        

       …….

        

       좋아.

        

       그럼, 일단 한 번 가보기라도 하자. 뭔가 일이 꼬일 것 같으면 얼른 날아서 도망가버리면 그만이고.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 모양이다.

        

       한참을 날다가 내려왔더니 배가 고팠다.

        

       일단은, 뭔가 먹어서 배부터 채우기로 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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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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