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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9

       탈의실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이 겨울에 차가운 돌바닥을 기어 오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후…….”

       “겨우 끝났군요.”

         

       주변에 언제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상황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었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오자 몸에서 힘이 풀렸다.

         

       “볼일이……보고 싶네요.”

       “저도……그렇습니다…….”

         

       저 추운 바깥에서 알몸으로 있었던 탓인지 안도감과 함께 배뇨감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당장이라도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일단 옷가지를 챙기기로 했다. 이대로 계속 알몸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탈의실 안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독한 기름 냄새였다.

         

       “누가 들어온 거야?”

       “어, 뭐야?”

       “웬 개들이지?”

         

       복면을 쓴 수수께끼의 무리가 탈의실 바닥에 기름통을 들이붓고 있었다. 니카는 구석에 세워둔 피 묻은 무기들을 보고 그들이 바로 암살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아까 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건가?”

       “흠, 그런데……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래. 맞아. 개들치고 좀…….”

         

       그들의 본직은 사냥꾼이었다. 누구보다 동물의 습성과 행태에 대해 잘 알았다. 심지어 상대는 개들이었다. 그들이 다루는 데 익숙한 동물이다. 그들은 대번에 두 사람이 가진 위화감을 읽어냈다.

         

       “월월!”

       “멍!”

         

       두 사람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재빨리 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아나이스는 발라당 뒤로 누워 배를 보이며 네 발을 든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의심을 시작한 사냥꾼들의 경계는 그런 어설픈 연기로 풀리지 않았다. 개들을 쏘아보는 그들의 눈매가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끝이다…….’

         

       니카는 그들의 호흡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0.5초 정도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것이다.

         

       황태자 니콜라이. 적들 앞에서 알몸으로 엎드린 채 개처럼 짖다가 사망.

       이보다 더 비참한 결말이 있을까.

         

       그때, 온천 쪽에서 그들의 동료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뭐해? 싸움 시작한다! 어서들 불 지피고 나와!”

         

       그들은 서로를 돌아봤다. 확실히 황태자 암살이라는 중대사를 두고 개들 따위에 신경 쓰고 있는 건 시간 낭비였다.

         

       그들은 개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바닥에 뿌린 기름에 성냥불을 던진 다음 반대편 문을 통해 온천으로 나갔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들어왔던 문으로 재빨리 몸을 뺄 수 있었다.

         

       “하, 하마터면……들킬 뻔했어요…….”

         

       아나이스는 말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사람처럼 굴었다.

         

       아까 직원들 앞에서 했던 것과는 수치심의 차원이 달랐다. 그때는 적들이 이지를 상실한 자들이었지만 방금은 멀쩡한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발라당 누워서 배를 보이고 다리를 벌렸던 것에는 그녀 자신도 놀랐다.

       아나이스 베르그송. 그 자존심 높던 부잣집 아가씨는 사실 이것밖에 안 되는 여자였을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천박해질 수 있는?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보다 더 간편한 설명이 있다. 사실 자신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아나이스’가 말했던 대로 나는 자신도 속이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가짜일지도 몰라.’

         

       억눌렀다고 생각했던 미혹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렇게 추락할 대로 추락한 자신이 진짜 자신일 리 없다는 자기방어에서 비롯된 의심이 점점 굳어져 갔다.

         

       니카는 아나이스의 호흡에 울적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게나 총명하고 이지적이던 여자가 저렇게 공황 상태에 빠지다니.

         

       그는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비참함을 느낀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권력자들과 싸움을 벌여온 그였다.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한낱 병사 몇 놈이 내뿜는 기세 앞에 겁먹은 짐승처럼 몸을 웅크리고 목숨을 구걸하고 말았다.

         

       ‘내가 잘난 척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진 황태자라는 신분이 있었던 덕분일까? 그걸 벗어던지면 난 아무것도 아닌 걸까?’

         

       그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실의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복도 저편에서 두꺼운 가죽 장화 소리가 몰려오는 것이 들렸다.

         

       암살자들이었다. 놈들은 호텔 여기저기서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저들과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니카는 사냥꾼들이 쉽게 인식 장애를 꿰뚫어 봤던 것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그들이 오지 않았어도 떠나야만 했다. 탈의실 안에서 붙은 불이 이제 복도까지 번지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가죠…….”

         

       호텔 내부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아나이스가 길을 선도했다. 물론 여전히 네발로 긴 채였다. 행여나 이런 꼴을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들은 이제 감히 일어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들은 암살자들과 마주치려고 할 때마다 계속 경로를 수정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군데군데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직원들과 살해당한 근위대원들의 시체가 보였다.

         

       두 사람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텔 분위기가 이런 탓에 복도에 나와 있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호텔 밖으로 달아나거나 객실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무작정 암살자들을 피해서 한참을 달아나던 두 사람에게 미뤄두었던 요의가 다시 찾아왔다.

         

       “저, 저 싸, 쌀 것 같아요…….”

         

       니카가 몸을 배배 꼬며 숨을 헐떡였다. 안 그래도 아나이스도 오줌이 마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몇 분 전부터 화장실을 찾아 움직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호텔이란 곳은 건물 크기에 비해 공용 화장실의 수는 매우 적었다. 객실마다 화장실이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공용 화장실의 위치는 이곳에서 너무 멀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아나이스가 발길을 틀어 이곳으로 향한 것은 바로 이곳에 정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그곳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물 벽들로 둘러싸인 중정(中庭)이었다. 손님들이 돌아다닐 수 있게 산책로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천장에 유리로 된 개방형 지붕도 달린 덕분에 실내의 따뜻함과 실외의 청정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당연히 이곳도 다른 곳처럼 사람이 없을 줄 알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정원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자기 방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복도를 가로지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사방이 트인 넓은 곳에 여럿이 모여 있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수십 명이 있으면 암살범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니카는 저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알몸으로 오줌을 싸야 한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그, 그냥 복도에 싸는 거 어떨까요?”

       “복도에요?”

       “네. 어, 어차피 우리는 지금……개잖아요…….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나이스는 니카의 제안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옷도 전부 벗고 네발로 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볼일만은 화장실이나 수풀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몸을 돌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려는데 어느새 나타난 암살자 몇이 그곳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들은 경보를 듣고 천상 욕탕으로 달려가던 근위대원을 쫓아 막 그의 등에 칼과 화살을 꽂아 넣던 참이었다.

         

       “저, 전하를 위하여…….”

         

       피투성이가 된 근위대원의 시체가 벽을 타고 쭉 미끄러져 내렸다. 사냥꾼들은 그의 시체에 몇 번 더 검을 찔러 넣어 확인 사살을 하고는 온천 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아나이스와 니카가 엎드려 있던 그 복도를 향해 말이다.

         

       “세상에, 세상에……어디서 저런 살인귀들이 나왔지?”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태자 전하를 노리는 것 같은데…….”

       “경비대건 뭐건 빨리 왔으면 좋겠군.”

         

       정원 안에 모인 사람들은 창 너머로 암살자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 마리의 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소란이 막 들려왔을 때, 재빨리 정원 쪽으로 들어온 덕분에 저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를 피한 그 행동은 그들로 하여금 또 하나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했다.

         

       “아, 안 돼요……. 싸, 싸겠어요…….”

       “윽……! 저, 저도…….”

         

       소변을 참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 이제는 다시 복도로 나갈 시간이 없었다.

         

       “다, 다리를 드는 것을 잊지 마세요……. 지금은 우리는 개라는 걸……하악!”

       “아, 알고 있어요. 들키면 안 되는 걸……흐윽!”

         

       두 사람은 그렇게 수십 명의 사람 앞에서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에 그들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은 수치심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 그런 것이다.

         

       사람이 오줌을 한참 참았다가 배출할 때, 웃음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개운함, 상쾌함,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쾌락 중추가 자극되기 때문이다.

         

       ‘나, 나는 그, 그런 변태가 아니야…….’

       ‘내가, 내가 이런…….’

         

       아무리 감정 표현을 억누른다고 해도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자신들은 분명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거벗은 채 소변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상회의 회장이라는 여인과 제국의 황태자라는 소년이!

         

       “앗, 으잇……앗!”

       “흣, 흐읏……흣!”

       

       결국 마지막 잔뇨를 짜내기 위해 괄약근에 힘을 준 순간 그들의 얼굴 근육에 힘이 풀려버렸다. 황금빛 물방울이 그들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고, 그들은 헤벌레 웃고 말았다. 아름다운 미녀와 예쁘장한 소년이 알몸으로 정원에서 개처럼 혀를 내밀고 침을 흘리며 쾌락에 들뜬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외설스러운 회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그 극적인 순간에 화가가 앉아 있어야 할 법한 장소에, 그러니까 두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오줌을 싸고 있는 바로 앞 유리창에 4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아나이스와 니카는 순식간에 차가운 돌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을 느꼈다.

         

       나타샤는 제국 정보부의 상급 요원이자 니카의 측근이었다. 그녀는 오늘 주군의 명에 따라 황금정 최고의 때밀이이자 마사지사인 칼슨을 조사하기로 했었다. 그가 몇 개월 전, 제3 황비가 이곳에 휴양차 왔을 때, 몸을 봐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황비가 정말로 임신했던 건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캐묻기도 전에 암살자들의 습격이 터지고 말았다. 칼슨의 작업실은 천상 욕탕 바로 옆에 있었다. 두 사람은 멀리서 총과 칼 소리를 듣자마자 천하 주루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은 각자 이 움직임이 니카와 아나이스를 향한 것이라고 여겼다.

         

       두 사람은 거기서 드미트리와 바텔을 만났다. 그 둘도 일이 터지자 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그들이 찾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다.

         

       주변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어도 직원들은 모두 주술에 조종당해 맛이 가버렸고, 있던 손님들도 사방팔방 달아난 뒤였다.

         

       그래도 정보부 요원인 나타샤는 매일 아침 니카의 몸에 추종향을 뿌려 뒀기에 다람쥐로 그 냄새를 추적할 수 있었다. 그들이 찾는 사람이 오늘 아나이스의 대전 상대였다는 것을 안 바텔과 칼슨도 두 사람과 함께했다.

         

       그렇게 추종향의 냄새를 맡은 다람쥐의 신호에 따라 마침내 넷은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찍찍!”

         

       다람쥐는 정원 안쪽을 향해 울부짖었다. 네 사람은 정원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밤인데다가 밖은 정원이라 등도 몇 개 없었다. 거기다 사람 수는 수십 명이나 되었다. 얼핏 보는 것만으로 그들이 찾는 사람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았다.

         

       “추종향은 여기서 끊겼어요.”

       “그럼 들어가 보지요.”

         

       네 사람이 정원 안으로 진입했다. 아나이스와 니카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돌처럼 굳은 채 그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굴해 님, 100코인 후원! 지속적으로 응원해주셔서 감사힙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자살엔딩 님, 123코인 후원! 앗, 정말 딱 2000코인 맞추셨네요…언제부터 그리신 큰 그림인지…꾸준한 응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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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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