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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9

        

         “으으음……! 후아~”

         

         곁에는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직장인의 친구 커피…가 분위기에는 참 어울렸겠으나, 대신 카페인과 불그스름한 석양이 듬뿍 들어간 대체 음료 잔이 달그락.

         

         얼음 흔들리는 소리와 직장인들의 생활 소음을 안주 삼아. 오늘따라 한층 더 윤기가 감도는 듯한 갈색 피부를 자랑하는 것처럼, 여자는 소매까지 걷어붙인 채로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막간의 휴식의 만끽했다.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타이밍이 있다.

         

         끼리끼리 노는 넷 상에서 뭐 재밌는 일이라도 생겼는지 주기적으로 외출하던 감시 대상도 용무를 미루고 잠잠하다든가, 그나마 밖에 돌아다니던 목표물들도 VR방 같은 프라이빗 룸으로 기어 들어가서 자연스러운 접촉이 불가능해진 만큼 할 일이 없어진다든가.

         

         물론 당연하게도 일시적인 휴업 상태에 불과하다. 오늘은 퇴근이 좀 늦을 예정이라… 쯧.

         

         금방 또 저기 대리점 쪽에 나가서 가벼운 시장 조사도 해야 하고, 오늘까지 무조건 만나서 활동 동향을 체크한 다음 상부에 인사 평가서를 제출해야 하는 회색 분자 놈도 있고.

         

         그렇지만 그간 일처리가 능숙했던 덕분에 밀린 보고서도 없겠다. 그런 사소한 당일치기 업무 정도로는 스트레스는커녕 사소한 불안감조차 유발하지 못했다.

         

         반면 밤낮 구분없이 빈 시간대가 1초라도 생기지 않도록 배치된 인터넷 감시 담당들은 지금쯤 터진 사건 해결에 바쁘겠지만… 사무직에 비해 평균적으로 몸은 피곤해도 개인 재량이 훨씬 통용되는 게 현장직의 장점 아니겠나?

         

         하여간 비슷한 맥락으로 HR(Human Recruiter) 계열 일들을 원체 이런 능동적인 처세를 많이 요구하는 게 보통이기에. 엘리시움의 정직원 필드 헤드헌터, 마르티나 크립토보아는 정말 편히 벤치에 자리잡고 쉬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잠시 후에 일어나야겠다. 아주 푹 평화를 즐기고 있었는데.

         

         [ 현재, ‘발신자 표시제한’으로부터 식별 번호 EHR-2737A를 이용해 사용자님께 연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해당 전화를 무음 상태로 보류하시려면…. ]

         

         “푸흡?! 콜록, 콜록!!”

         

         돌연 갑자기 최대 음량으로 고막을 후려갈긴 전화 수신음 및 안내 메시지에 사레가 들린 마르티나가 마구 기침했다.

         

         수면 중에도 절대 놓치지 않도록 설정된 전용 볼륨도 그렇고, 대놓고 착각하지 말라는 의미로 사원 번호를 미리 찍은 것도 그렇고 딱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으로 엘리시움 본사에서 온 비상 연락이었으니.

         

         사측에서 현장 요원에게 먼저 접선할 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매번 익명 발신 기록을 유지하는 건 고맙고 이해하나, 괜히 방식이 저렇게 수상쩍은 탓에 정작 뒷부분까지 미처 표시되기도 전에 차단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건 과연 어떨까 싶지만… 그건 다른 부서에서 개선할 문제점이니까 뭐.

         

         그러나저러나, 통신 보안 건은 사고의 저편으로 제쳐두고서라도 당장 그녀에게 거슬리는 건 거기에 담긴 용건.

         

         ‘씹, 오늘 근무 태도 감사가 있다고 했던가? 전해 들은 게 없는데!’

         

         사소한 일탈에 일일이 제 발 저릴 만큼 경력이 일천한 건 아니었지만, 막 땡땡이치는 와중에 공교롭게 온 연락이 불성실함과 아예 관련이 없을 거라 단정짓는 건 너무 낙천적이지 않나.

         

         시큼한 목청을 가다듬고 혹시나 엿들을 사람이나 여러 방면에서 접근 가능한 범위 내에 녹음 기능이 달린 전자기기가 존재하는지부터 후딱 확인.

         

         다행히 주변에 행인은커녕 가게 사장님들이 무단으로 설치한 외부 카메라도 안 보이는 터라 말이 헛나갈 위험성이 굉장히 높은 뇌파 전달 모드는 안 써도 돼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인사고과를 작살내는 걸 전제로 깔고 들어갈 뻔했다.

         

         설령 진짜 감사 팀이 실시간 보고한 걸 바탕으로 쪼아대려고 온 전화라 한들, 겉으로 보기엔 약속을 기다리는 것과 진배없었으니 휴식을 방해받아 짜증났다는 기색만 절대 안 내비치면….

         

         “…어흠! 네~ 크립토보아 전화 받았습니다. 곧 가벼운 브라운 백 미팅(Brown bag meeting; 식사와 함께 일에 대해 자유롭게 떠드는 행위)을 가질 거라 오래 통화하기는 힘듭니다만,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마치 거래처나 아는 지인에게서 온 연락을 받은 것처럼 능청스러운 연기는 누가 보더라도 저기 엘리시움 소속보단, 여기 정보 통신 구획에 널리고 널린 하청직 출신에 훨씬 무게를 실을 만했다.

         

         …다른 말로 하면 정작 그걸 들을 사람이 본사 담당자 하나밖에 없는 지금은 쓸데없는 행위나 마찬가지일진대, 호오오옥시나 진짜 감사 팀이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리스크를 분배하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 아닐지.

         

         심지어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위장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와중이니까, 정말 존나게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대강 빨리 마쳐달라는 돌려 말하기마저 완벽했다.

         

         짧은 순간에 발휘한 기지치곤 지적할 점이 거의 없었다 해도 좋으리라.

         

         다만 본사에서 자신을 찾은 이유 때문에 더 빡세게 머리를 굴려야 할 걸 미리 알았다면, 그녀도 겉치레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좀 덜 썼으리란 점이 아쉬울 뿐.

         

         – 수고 많으십니다 에이전트 크립토보아. 저희 쪽도 지금 센티넬(Sentinel; 보초병) 강습전단 출동 준비로 진짜 많이 바쁘기에 짧게 교차 검증만 마치려 합니다만. 혹시 도청 위험성에 노출된 상황이시거나 직언이 어려운 여건일 경우 방금처럼 에둘려서 말씀하셔도 됩니다. …단, 코드 칼라미티가 발효된 사태이므로 긍정인지 부정인지 확실하게 이분법으로 갈리는 표현만을 사용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

         

         “이런 미친…?”

         

         어쩐지 잠깐이나마 운수가 좋더라니.

         

         듣자마자 두통이 확 올라오는 골치 아픈 소식에 노출되기엔 선선한 바람도 좋고 저녁 노을도 너무 예쁘더니만, 이건 아주 비싼 값을 치르게 될 모양새가 아닌가.

         

         코드 칼라미티, 사실상 단어 그대로 비상 사태 선포나 다름이 없다.

         

         물론 엘리시움 코퍼레이션은… 아무래도 여타 흔한 기업들과는 가치 판단 기준이 많이 차이나는지라, 네트워크 사건 분류에 한정해서만 붙이는 명칭이기도 하고, 해당 시국에 대해서도 대처하는 규범이 세세하게 나뉘어 있긴 하다.

         

         더럽게 비싸게 먹히겠지만 긴밀한 협력사에 요청해서 특정 건물을 궤도 폭격해버릴지, 물밑 협상을 통해 양측이 원하는 바를 이루면서도 적대 세력의 영향력을 깎아낼지.

         

         그것도 아니면 ‘최소 변인, 최대 효율’이라는 원칙에 따라. 그리고 HR부서를 자체적으로 운용할 만큼 포섭에 열성인 메가 코프답게, 늘 즐겨 쓰는 방식대로 원인이 된 싹을 뿌리내린 흙 채로 퍼내다가 옮겨 심어서 배양해보려 시도할지 말이다.

         

         센티넬 부대가 언급된 걸 보면 어느 정도 무력을 동반하되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거기에 비록 활동적이긴 해도 인텔리 계열인 자신이 낄 건덕지가 있나…? 더듬던 마르티나는, 바로 다음 얘기를 듣고 유일무이한 자신의 경력 오점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 DB 기록 상으로는 귀하가 블랙마켓 해커 아이보리. 그러니까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에 대한 개인 면담 시행과 성격 유형 분석 및 동향 보고서를 최초로 작성하고. 반기업적, 반사회적 성향이 일절 없는 우수한 인재란 리포트를 올렸다 되어있습니다만. 이게 정확히 맞습니까? –

         

         “제에에에…가 담당했던 일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네요 그건. 불행히도, 네.”

         

         – 또한 그 이후에 네오 헤이븐 해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idkHacking의 원주인이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작성했던 걸 철회하신 걸로 되어있는데. 이 판단에 대해서도 여전히 동일한 견해를 유지하고 계신가요? –

         

         오케이, 방금 그건 등골이 약간 오싹했다.

         

         숨이 턱 막히고, 미처 다 못 쓴 유급휴가가 불현듯 떠오르고, 따듯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보가 그립고, 너무 일에만 매진하지 말고 소박한 취미라도 만들 걸 싶고… 기타 등등.

         

         정신 좀 차려라 마르티나 이 년아, 여기서 갑자기 입을 다무느니 차라리 보안부로 자진 출두해서 물벼락 맞아가며 마저 떠들겠다고 하는 편이 낫겠네!

         

         “…기본적으로 다크 웹 관련 물증이 존재하기 힘든 명제에, 개인적인 추측을 지나치게 강하게 넣은 것 같아서 뒤늦게나마 배제했는데. 데이터 정제 과정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면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서 자료와 함께 보충 설명을 실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것보다 더 매끄럽게 핑계를 대려면 진실을 모조리 토해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마주친 헤드헌팅 리스트의 최상단 해커가, ‘하필’ 자신과는 결부터 다른 타 메가 코프의 언더커버 에이전트였던 결과, 집적거리다가 ‘재수 없게’ 힙스터 도깨비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전속 호위에게 붙잡혀서 극적으로 타협하고 빠져나왔다고 말해?

         

         그냥 저는 변절 가능성도 넘치고, 정신 상태도 걱정되는 직원이니 다음 분기에 정리 해고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시발.

         

         물론 규칙도 무섭지만 가까이 있는 주먹은 더 무서운 법이다.

         아직도 경추가 부러질 뻔했던 경험을 되새기면 목이 서늘하다고.

         

         – 아, 따로 문책하라는 명령 같은 건 없었습니다. 질의 응답이 공격적으로 들렸다면 제가 더 죄송하네요. 그저 해킹잘모름으로 확실하게 이렇다 단정할 인물이 없으니, 프로파일링에 들어맞으며 의심 가는 관계자 전원을 소환 조사하라고 하는데. 지부 센티넬 팀 전원이 나서도 23… 아니, 247명 동시 포획은 많이 아슬아슬해서 조금이라도 숫자를 줄이라고 각 담당자가 달달 볶이고 있어서요. –

         

         “그런 거라면 뭐… 크게 도움은 못 되고 숫자 하나만 겨우 줄여드릴 수 있겠네요.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제외해도 아마 괜찮습니다. 코드 칼라미티 급 재해를 일으킨다 한들 득 볼 게 없는 질서 유지파에요 그녀는.”

         

         에나마의 견제일 가능성? 그건 낮아도 너무 낮았다.

         

         해당 코드는 광범위한 혁명과 저항 키워드로 묶인 특수 사건에만 붙는 기호.

         메가 코프에 소속된 사람이 자기 발등을 내려찍는다니, 그게 진짜라면 우리 쪽에서 참견하기 전에 내부 총질이 먼저 터질 것이고 그걸 탐지하는 건 또 다른 사람들 일이다.

         

         약간 섣부른 대답이라 또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긴 한데,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이미 서로 소 닭 보듯 하기로 약조를 맺은 만큼 과거의 행적이 들춰지는 건 마르티나로서도 원하는 바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이것 또한 평소에 원만한 커넥션을 유지하고, 완벽에 가까운 업무 평가를 유지한 덕에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얼굴은커녕 이름도 잘 모르는 본사 직원이 바쁜 와중에도 같이 상부에 쪼이는 신세라며 농담까지 건네지 않았나? 이래서 뭐든지 신경 쓰며 피곤하게 사는 것도 그렇게 꼭 나쁜 건 아니라니까.

         

         – 에이전트 크립토보아. 헤드헌팅이 잘 되어가고 있는 인물이라 방어적으로 변호하신 건 잘 알겠지만, 대상이 현재 가상현실 접속 중이 아니라는 촬영물 같은 것도 없이 차마 그 정도 보증으로 제가 멋대로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건 굉장한 월권 행위인 것 같네요. …가급적 관대한 센티넬 부대원을 배정해달라 의견은 넣어두겠습니다. 그럼 이만, 통신 종료. –

         

         “어머나, 이런. 급하기도 하시지.”

         

         마지막 변호는 괜히 덧붙였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늦었네.

         

         나름 재치 있게 대응했거늘, 긴급 상황에 선을 한참 넘는 의견 제시로 혼선을 줘서 점수를 깎아먹은 게 느껴졌다.

         

         헌데 정말 본사가 정신없고 바쁘기는 한 모양이다. 분위기 잡은 초반과는 달리 필요한 대답이 얼추 나온 낌새가 보이니까 허겁지겁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걸 보면.

         

         영차—. 우선 닥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데 의의를 두고 마르티나가 다시 한 번 시원하게 스트레칭을 했다.

         

         안 되겠다. 잔뜩 긴장한 것 때문에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족히 30분은 차분하게 다리를 풀어준 다음 움직여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겠다. 아니, 어쩌면 전화하는 사이에 목표물을 놓쳐서 그대로 퇴근해야 할 수도 있고!

         

         “……?”

         

         헌데, 왜 자기가 답지 않게 한 마디를 덧붙여가며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했더라~ 마르티나의 머리가 삐딱한 각도를 그리며 기울어졌다.

         

         …그 복고풍 닌자 흉내내는 미친 여자가 마지막에 뭐라고 협박한 걸 상기해내고 늦기 전에 수습하려 한 거 아니었나? 아마 정확히.

         

         

         ‘추후, 엘리시움에서 나온 이가 소인이 모시는 분 앞에 또 나타나 불편한 얘기를 꺼내거나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설령 위에서 협의를 했더라도, 그대가 함부로 입을 나불거린 거라 여기고 소인이 직접 영원히 침묵하게 만들어 주겠소이다. 허니 부디, 권한이 닿는 한도 내에서 처신 잘 하길 바라오.’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코앞에서 들었던 탓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불똥이 튀어 2차 화재가 발생하는 걸 막으려 했던 것…인데. 어… 음…… 허어……….

         

         “…여보세요? 거기 사회질서보장청 맞나요? 어, 대니! 나야, 마르티나! 저기 갑자기 대뜸 부탁부터 해서 미안한데, 기록 안 남게 메트로폴리스 플래시 메모리에 검색 한 번만 때려줄 수 있어? 진짜 억울하고 무고한 시민 목숨 하나나 둘 살린다 생각하고. 응??”

         

         이젠 빈말이 아니라 당장 진짜로 쥐가 날 것 같았지만 죽어라 뛰어야 했다.

         

         누명은 정말정말 나쁜 것이니, 그런 오물을 굳이 여럿이서 같이 뒤집어쓸 필요는 없지 않겠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유, 네. 그럼요~

    별로 착하지 못한 사마리아인 발생! 도움!

    민트찹쌀이 님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기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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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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