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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9

   대해의 파수꾼, 자라탄.

   10성급 침식종인 자라탄은 대해조차 일부 증발시킨 백염에 휘말려 끝을 맞이했다.

     

   대해의 심해 속에서 크라슈가 조금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멸천화룡을 쓴다 해서 예전처럼 바로 고꾸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피로감이 남아 있었기에 잠깐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 순간 크라슈는 자신의 발아래가 휘감기는 느낌을 받았다.

   크라슈가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그림자가 휘감겨 있었다.

     

   자기 발목을 휘감은 그림자를 보던 크라슈는 그대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저 앞.

   글라이드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의 손아귀에는 자라탄을 쓰러트리고 분해한 해룡왕의 알이 쥐어져 있었다.

     

   크라슈는 글라이드를 물끄러미 보았다.

   왜냐하면 그의 반대 손에는 새까만 그림자가 일그러진 채 모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림자로 만들어진 폭탄에 가까웠다.

   만약 저대로 폭발한다면 이 일대를 날려 버리겠지.

     

   크라슈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더니 어이없이 웃었다.

     

   “이제 일 다 끝마쳤으니 죽이기라도 하겠다?”

   “어떻게 변명해도 네가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고 있는 쓰레기라는 건 변함 없다.”

     

   극도의 세계 침식 혐오주의자.

   글라이드를 바라보던 크라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패황께서 나를 직접 익시온의 미끼로 삼았다는 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익시온은 지금 세계가 공표한 적이다.

   그리고 크라슈는 제국과 락테아, 여러 집단이 익시온을 낚기 위한 미끼로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 만큼 여기서 크라슈를 죽였다간 계획들이 전부 물거품이 된다.

     

   그것을 뻔히 아는 주제에 죽이려 든다라.

     

   “한 가지 모르는 것 같으니 이참에 알려주지.”

     

   글라이드는 크라슈의 앞에서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섰다.

     

   “내 형, 글라이즈 락테아는 그림자에 세계 침식의 힘을 담았었다.”

     

   그리고 이건 크라슈도 정말 모르는 이야기였다.

     

   락테아 직계 중 첫째 글라이즈 락테아.

   세계에 퍼진 이야기로는 그는 세계 침식자에게 죽임당하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그의 어머니인 패황은 극도의 세계 침식자 혐오자로 변모하였고, 끝내 락테아의 목표를 세계 침식자 섬멸로 잡았다.

     

   하지만 이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본디 스킬 움브라를 이었던 우리 락테아가 신과의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이유 또한 그에 있지.”

     

   스킬 움브라.

   지금 그 스킬은 올해 라헬른 아카데미를 졸업하게 된 조디악 클로리아가 지니고 있다.

     

   본디 움브라는 글라이드의 말대로 락테아가 다루던 스킬이다.

   그렇기에 락테아의 비술은 모두 그림자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지금 락테아는 그러한 움브라의 스킬을 이어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락테아 가문의 첫째, 글라이즈 락테아 때문이다.

     

   “우리 형은 세계 침식이라는 힘에 눈이 멀었다.”

     

   세계 침식의 힘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이는 직접 다루고 있는 크라슈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힘.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룰 수 있다면 자신이 지닌 한계선을 무척이나 가볍게 돌파할 수 있다.

     

   그렇기에 특히나 자신의 한계점을 느낀 이들이 세계 침식자의 종으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머니는 대단했지.”

     

   패황, 글라이시스 락테아.

   전성기 시절, 그녀의 활약은 많은 이가 혀를 내두를 만큼 엄청난 것이다.

     

   천상사강들이란 어느 사람이든 그렇다.

     

   세계의 정점인 네 명.

     

   거기에 속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재능과 노력을 갖춰야만 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재능을 시기하고, 때로는 동년배는 물론 후계조차 그들의 재능에 파묻히기도 한다.

     

   글라이즈 락테아는 그런 어머니의 재능에 묻힌 이였다.

     

   글라이즈는 무슨 노력을 한들 자신의 어머니인 글라이시스를 뛰어넘을 수가 없다.

     

   천상사강이라는 것은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글라이즈는 어머니의 명성에 파묻혀 갉아 먹히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 기대는 금방 실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귀에 누군가가 속삭였다.

     

   「도달할 수 없다면 다른 힘으로 도달하지 않겠나.」

     

   그 속삭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세계 침식자였다.

   글라이즈를 이용해 락테아라는 거대한 가문을 집어삼키고자 한 세계 침식자.

     

   놈은 글라이즈에게 세계 침식이라는 새로운 힘을 보여주며 그를 삼키려 들었다.

     

   그러나 이는 글라이즈를 너무나 얕본 행동이다.

     

   글라이즈는 세계 침식자의 뜻대로 세계 침식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글라이즈는 다른 의미로 자신의 최악의 재능을 깨닫고 말았다.

     

   스킬 움브라와 세계 침식의 힘.

   이 두 가지를 합칠 수 있는 재능을 말이다.

     

   본디 어떠한 종류의 힘이든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건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릇의 한계선이라는 것은 재능을 가리킨다.

     

   「하, 하하, 그랬어. 그랬구나.」

     

   하지만 글라이즈는 그러한 재능의 한계선을 타파하기 위해 신이 부여한 스킬, 움브라를 역이용하기 시작했다.

   움브라의 그림자를 그릇으로 사용한 것이다.

     

   신의 힘이라는 것은 본디 신기다.

   그러한 신기를 세계 침식의 힘으로 타락시키는 금기를 범한 것이다.

     

   이는 스킬을 부여한 그림자의 신의 분노를 사는 행동이다.

     

   그러나 글라이즈에게 금기 따위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는 제일 먼저 자신에게 세계 침식의 힘을 부여해준 세계 침식자를 그림자로 집어삼켰다.

     

   「네놈, 나를!」

     

   글라이즈를 통해 락테아를 집어삼키려던 세계 침식자는 역으로 글라이즈의 제물이 되었다.

     

   세계 침식의 힘에 매료된 글라이즈는 세계 침식의 힘을 닥치는 대로 그림자에 담았다.

     

   이는 당연히 그림자 신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그 결과, 락테아에 재앙이 들이닥쳤다.

     

   락테아의 관련된 모든 이들이 전부 그림자에 삼켜져 죽어 나갔다.

   그림자의 신의 분노가 락테아 전체를 향한 것이다.

     

   순식간에 가문 전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때.

   글라이시스 락테아는 자기 아들을 쫓아 기어코 발견했다.

     

   「글라이즈!」

     

   세계 침식의 힘을 집어삼킨 글라이즈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 침식자보다 더한 괴물이 됐다.

     

   글라이시스에게 선택권은 없다.

   그녀는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결국 자기 아들을 제 손으로 죽였다.

     

   글라이즈는 그녀의 손에 그렇게 죽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글라이시스만이 안다.

     

   그날로 그림자의 신은 락테아를 떠났다.

     

   대신, 락테아와 글라이시스에게는 풀 곳 없는 원한이 자리 잡았다.

     

   자기 아들을 죽인 건 누구인가.

   락테아 가문을 이렇게 무너뜨린 건 누구인가.

     

   글라이시스는 자신에게 책임 전가를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무너질 것은 물론, 가문조차 함께 무너질 테니까.

     

   그렇기에 글라이시스는 원한을 세계 침식자로 향해야 했다.

     

   자기 아들을 유혹한 간악한 존재들.

   그들은 지금도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세계 침식자의 종을 만들어 냈다.

     

   글라이시스는 자신과 같은 재앙이 들이닥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모든 세계 침식자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이다.」

     

   그러니 그녀는 락테아를 바꾸었다.

   세계 침식자라는 존재를 섬멸하기 위한 가문.

     

   지금의 락테아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락테아를 잇기 위해 태어난 둘째, 글라이드 락테아.

   이것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세계 침식자와 세계 침식을 증오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나는 세계 침식자를 증오하기 위해 태어났다.”

     

   아들을 잃었던 어머니는 태어난 둘째 아들이 절대로 첫째 아들과 같은 절차를 밟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게 세계 침식의 현실을 알려 주었다.

     

   정확히는 주입 당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내 형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는 이가 있다.”

     

   그의 손아귀에 쥐어진 그림자 공간이 흉흉하게 힘을 쏟아 냈다.

     

   “너 또한 형과 같은 절차를 밟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

     

   오직 자신만을 위해 세계 침식의 힘을 삼키다 끝내 주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 보장.

   그 보장이 어디에 있냐고 글라이드는 물었다.

     

   “없어.”

     

   그리고 그 질문에 크라슈는 무척이나 덤덤하게 대답했다.

     

   세계 침식의 힘은 위험하다.

   이는 한때 저주 받이였던 크라슈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다.

     

   저주마저도 사람을 갉아 먹는데 그 힘의 본질인 세계 침식의 힘은 어떨까.

     

   크라슈가 수많은 저주와 여러 가지 비술을 통해 세계 침식의 광증을 억누른 건 괜히 한 게 아니다.

     

   지금도 세계 침식의 힘으로 인한 광증은 크라슈의 몸속에 잠들어 있다.

   하물며 천살성까지 지니게 된 크라슈는 글라이즈보다 훨씬 위험했다.

     

   만약 조금만 삐끗하는 순간 크라슈 자체가 세계의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크라슈는 세계 침식의 힘을 포기할 수 없다.

   아우라만큼이나 세계 침식의 힘은 크라슈에게 가장 큰 화력이니까.

     

   “뻔뻔하군.”

     

   글라이드의 말대로 크라슈는 뻔뻔했다.

     

   “그래, 뻔뻔하지. 그런데 말이야. 세상 사람들이 다 네 형과 같은 꼴이 되지도 않아.”

     

   하지만 이건 크라슈가 뻔뻔할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이 있는 덕분이다.

     

   “나는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기 전부터 세계 침식자보다도 더 저주를 깊게 공부하고 다뤘다.”

     

   저주의 본질은 세계 침식의 힘이다.

   그렇기에 저주를 다룬다는 건 곧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는 것과 다루지 않았다.

     

   크라슈는 저주 받이로서 수많은 저주를 제 몸에 담았다.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거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크라슈는 타고난 독종이다.

   그리고 그 독종은 저주 받이 시절에도 똑같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바닥을 악착같이 기어서라도 해내는 게 크라슈였다.

     

   수많은 저주를 흡수하고, 상쇄시키고, 제힘으로 다뤘다.

     

   이는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는 세계 침식자조차 못 할 일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 누구보다 세계 침식의 힘만큼은 잘 다룬다고 자신할 수 있어.”

     

   크라슈는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룰 자신이 있다.

   그렇기에 그는 이 힘을 손에 넣고, 지금까지 다뤄왔다.

     

   그건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썩을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크라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니까.

     

   “네가 믿고, 자시고 내가 나를 믿기에 나는 이 앞으로도 이 힘을 사용할 거다.”

     

   그러니 짜증 나게 앞길 막지 마라.

     

   크라슈가 글라이드에게 경고했다.

     

   “…….”

     

   침묵한 글라이드가 조용히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러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크라슈를 보고 있었다.

     

   크라슈는 굳은 심지가 있다.

   실제로 그는 지금도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며 수많은 사람을 구해내고, 영웅이라 불리고 있다.

     

   이는 글라이드도 무척이나 잘 아는 바였다.

     

   오죽하면 자신의 어머니인 글라이시스가 직접 말했겠는가.

     

   「무황이 아들 한 번 독종으로 낳았더구나.」

     

   거기에는 글라이시스가 크라슈를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자기 아들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는 크라슈를 보며 말이다.

     

   비록, 글라이시스의 앞에서는 아우라만을 다뤘던 크라슈지만.

   이는 크라슈를 눈앞에서 본 글라이드에게 많은 의미를 줬다.

     

   “……내 형도 어쩌면 너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글라이드가 조용히 물었다.

     

   “모르지.”

     

   그리고 그것은 크라슈도 답할 수 없는 거다.

     

   사람이란, 어느 하나의 작은 계기 하나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크라슈는 회귀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

     

   쿠웅!

     

   그 순간 글라이드가 쳐둔 그림자 감옥이 거칠게 흔들렸다.

   외부에서 무언가 공격을 해 온 것이다.

     

   글라이드가 힐끗 그림자 감옥 너머를 보았다.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자 감옥 창설 너머, 거대한 눈동자가 하나 보였다.

     

   그 눈동자는 용의 것이다.

     

   “해룡.”

     

   대해의 주인, 해룡.

   놈이 파수꾼을 죽인 크라슈와 글라이드를 응징하기 위해 직접 나타났다.

     

   툭-

     

   그 순간 크라슈는 자신에게 날아든 걸 받았다.

   그건 해룡의 알이었다.

     

   “먼저 가라.”

     

   글라이드는 손에 쥔 그림자와 함께 몸을 돌렸다.

     

   “적어도 그릇된 선택을 한 내 형이 다른 길을 밟을 수도 있다는 걸 보겠다.”

     

   그 말을 남긴 글라이드가 사라졌다.

     

   해룡과 맞설 속셈인가.

     

   크라슈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글라이드가 직접 나섰음을 눈치챘다.

     

   크라슈는 그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천하십강 후보로 뽑힌 글라이드다.

     

   어련히 알아서 시간 끌고 빠져나오겠지.

     

   크라슈는 해룡의 알을 손에 쥐었다.

   동시에 몸을 돌리며 크라슈가 입을 열었다.

     

   “에벨아스크, 크림슨가든.”

     

   두 사람을 호명하며 크라슈의 눈이 와락 찌푸렸다.

     

   “조디악 클로리아, 당장 그 녀석을 찾아줘.”

     

   글라이드에게 들었던 이야기.

   스킬 ‘움브라’에 세계 침식의 힘을 담을 수 있다는 말.

     

   이것을 혹시나 아벨라가 알고 있다면.

     

   그 녀석은 반드시 스킬 움브라를 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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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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