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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9

       트루먼의 제안에 다른 장관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흑주를 사용한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구제국 영토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라면 저는 반대입니다.”

       “저도요. 너무 무모합니다.”

       

       엘프들도 기억하고 있다.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과, 하늘을 2주 동안 시커멓게 물들였던 광경. 정령계가 한순간에 초토화되던 장관까지.

       

       그 모든 참극을 구현한 악마의 병기가 바로 흑주였다.

       

       “제가 언제 대륙에 떨어뜨리자고 했습니까? 시늉만 하자는 겁니다, 시늉만.”

       “시늉이라뇨?”

       “협박용으로 쓸 겁니다.”

       

       압도적인 군사력은 국제사회에서 좋은 대화수단이 된다.

       

       상천 에테르가 만든 결전병기를 통해 엘프들이 나머지 세 종족을 상대로 국제관계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명목도 충분합니다.”

       

       당연히 명목은 마왕군이었다.

       

       “인간이 먼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우리는 피난온 제국인들을 받아줬는데,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 마왕군과 손을 잡아버렸죠. 그렇다면 그림을 이렇게 그리는 겁니다. 마왕군이, 순진무구한 인간과 수인을 꼬드겼다.”

       

       즉, 아직 마수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군비를 증강할 수 있고, 세계수 묘목을 탈환해 올 수 있는 것이지요.”

       

       트루먼 장관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의견을 전달했다.

       

       “각하, 마왕군이 약해진 지금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말입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스크롤을 재현한다고 해서 바로 저들을 협박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스크롤을 만들어서, 장거리로 쏘아보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모를까…….”

       “그거라면 예전부터 비밀리에 만들고 있던 병기가 있지 않습니까?”

       “장거리 투사체 말인가요?”

       

       마왕군과의 전쟁을 치르기 전부터 엘프들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비록 시기가 맞지 않아 마왕군과의 전쟁에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1~2년 내로 완성 가능한 단계였다.

       

       “보통 장거리 투사체가 아니지요. 여기서 발사하면 엘랑카야까지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적을 타격할 수 있는 최신형 병기.

       

       “분명 그 병기 이름이….”

       “매직 미사일입니다.”

       

       미사일.

       

       에테리아와 카우렐리아. 두 나라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단어였다.

       

       

       **

       

       

       탄두를 완성할 시간이 모자랐다.

       

       때문에 엘프들은 우선 껍데기만 배치하고 그 안에 폭발형 스크롤들을 실었다. 개중에는 반쯤 완성된 흑주도 있었다.

       

       모든 전술적 배치를 끝낸 뒤, 행정부는 대변인을 내세워 에테리아를 압박했다.

       

       “카우렐리아 정부는 마왕군의 횡포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 마왕군은 신속히 항복 성명을 발표하고 세계수를 당국에 양도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의 고향인 엘랑카야 산맥을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었다.

       

       외교에서 결례나 다름없는 짓이었지만, 뭐 어쩔 건가.

       

       – 봤냐! 이게 나라다!

       – 아이젠! 아이젠! 아이젠!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이렇게나 좋아하시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살아간다. 그 지지가 더러운 음식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자고로 정치인의 공약은 설탕처럼 찬란하고, 갓 구운 빵처럼 확실해야 하는 것이니.

       

       “에테리아가 마왕군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국가가 아니라면 당장 마왕군 잔당을 압송하여 보내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부로 에테리아를 마수가 세운 괴뢰국으로 지정하고 무력시위를 마다하지 않겠소.”

       

       이런 성명 한 번 발표할 때마다 지지율이 5%씩 껑충껑충 뛰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쇠뿔도 단 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국내 마왕군 잔당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임으로 인해 국정 탄력을 받은 아이젠 행정부는 옛 정부에서 시행했던 금안족 차별 정책을 부활시켰다.

       

       이를 두고 일부 엘프들이 반발했지만 대다수는 정부의 뜻에 찬동했다.

       

       그들이 죄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

       

       인권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국민이 원하는데!

       

       마왕군과의 전쟁으로 가족 연인을 잃고, 집과 식량을 잃고, 직업을 잃은 사람이 도처에 널렸는데!

       

       …금안족 따위 알 바인가?

       

       모든 게 엘프 국민의 염원에 부응한 결과였다.

       

       단속과 차별이라는 이름의 마수는 이제 어느 금안족 엘프가 사는 해안가까지 밀려왔다.

       

       쾅쾅쾅!

       

       “젠장, 레니냐! 거기 있냐, 레니냐!”

       “막시 삼촌?”

       

       레니냐는 공부하던 책을 덮고는 문을 열었다.

       

       그녀의 삼촌이 숨을 헉헉대며 안으로 들어왔다.

       

       “삼촌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레니냐, 방금 전 소식 들었지?”

       “소식? 무슨 소식이요?”

       

       내일 거 예습하던 중이라 뉴스를 보지 못한 레니냐였다.

       

       삼촌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잘 들어. 조금 있으면 경찰이 우리를 체포하러 올 거야.”

       

       레니냐는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왜요?”

       “몰라서 물어? 너 마왕군 간부랑 연결점이 있잖아! 네 예전 담임이 사천이었다며!”

       

       막시 삼촌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러했다.

       

       레니냐는 얼떨결에 마왕군 소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앞이 흐릿해진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후미진 곳에 와서도 불평불만 한번 안 했는데…….”

       

       온갖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다.

       

       카우렐리아는 능력주의 국가라며, 자신이 잘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며 매일같이 위로했고 또 노력했다.

       

       그렇게 일리야드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그 이후로도 열심히 공부했다.

       

       심지어 전쟁이 터졌을 땐 마왕군에 동조하기는커녕 에테르 선생님을 도와 사천을 쓰러뜨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게 이거다, 레니냐. 금안에 대한 차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다 같은 엘프인데, 눈이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일까?

       

       레니냐는 퀭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 하나 없이 좁디좁은 컨테이너.

       

       금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청년주택 청약조차 못해서 이런 성긴 지역에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

       

       레니냐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시간 없다. 빨리 도망치자.”

       

       그때였다.

       

       쾅쾅!

       

       – 당장 나와라!

       

       “……!”

       

       경찰? 아니면 성난 주민?

       

       누구의 것인지 모를 목소리가 문밖으로 요란하게 들려온다.

       

       쾅쾅쾅쾅!

       

       – 문 열어라! 마수 놈들아!

       

       레니냐의 삼촌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내질렀다.

       

       “우린 마수 아니다! 이 썩을 것들아!”

       

       쾅! 쾅!

       

       – 안에 마수가 있다! 야! 에어 커터 준비해!

       

       빠득.

       

       그 소리를 들은 레니냐는 이를 부러질 듯이 갈았다.

       

       허둥지둥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정리했다. 몸을 빠릿하게 움직여 가방을 군장 싸듯이 챙겼다.

       

       – 나와!

       

       “나간다 이 씹새끼들아!”

       

       부식까지 챙긴 레니냐 일병은 스태프를 말아쥔 채로 문을 박찼다. 저항 없이 열린 철문이 경찰 둘을 촤르륵 밀어냈다.

       

       “으악!”

       “이, 이 미친 것들이!”

       

       지레 겁먹은 경찰들과 주민들.

       

       레니냐는 떠올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자신의 선생님이, 이런 몹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지를.

       

       “너흰 좀 맞아야 해.”

       “으아아악!”

       

       그날, 메르헤름의 해변가에는 깡통 차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퍼졌다.

       

       

       **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레니냐와 그의 삼촌인 막시는 경찰의 눈을 피해 산중에 몸을 숨겼다.

       

       헐떡대던 삼촌이 숨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허억, 못, 허억… 돌아가….”

       

       경찰들을 휘모리장단으로 두들겼으니 공권력과 척을 진 셈이다.

       

       “조만간 지명수배가 떨어지겠지. 이제 이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됐어.”

       

       레니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등록금, 분할납부 해야 하는데….”

       

       그나마 세실 르네이 총장의 배려로 아카데미는 계속 다닐 수 있었는데, 이젠 이마저도 못하게 됐다.

       

       학교로부터 완전히 소외됐다.

       

       학업을 익힐 곳이 없어진 셈이다.

       

       “지금 공부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디로 갈지 생각해야 해.”

       “삼촌은 생각해 둔 곳 있으세요?”

       “나는 남동쪽 교외 지역으로 갈 생각이다. 거기서 몰래 결탁하던 동지들이 있거든. 어떻게든 머리를 모아야지.”

       “그러면 저는…….”

       “잘 들어라, 레니냐. 너는 이대로 티림스 강까지 올라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에테리아로 도망쳐야 한다.”

       

       막시 삼촌이 북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간다고 말한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저, 저는 삼촌이랑 떨어지기 싫어요.”

       “안 돼. 여기 있으면 너까지 죽어.”

       “갈 거면 삼촌도 같이 가요. 다들 데리고 에테리아로 도망치면 되잖아요.”

       

       그리 말해도 삼촌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나라가 미쳐 돌아가면 그걸 뒤엎는 게 어른된 일이다. 너는 가서 공부나 하고 있으렴. 시간이 지나면 이곳도 좋은 나라로 변하게 될 테니까.”

       

       레니냐의 입이 밀랍으로 봉해진 편지처럼 다물어졌다.

       

       삼촌의 눈동자는 전에 없이 결연했다.

       

       “가라.”

       

       걸음을 머뭇거리던 레니냐는 이내 북서쪽을 향해 뛰었다.

       

       머지않아 추격자가 붙었다.

       

       “저기 금안이 있다!”

       “마왕군 잔당이다!”

       “잡아! 잡아서 구치소로 넘겨버려!”

       

       엘프는 인간보다 밤귀도 밝고 눈도 좋다. 근처 시민들이 레니냐를 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가는 곳마다 광기로 휩싸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마왕군으로 의심되는 금안족을 제보하거나 경찰 대신 잡으면 포상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돈과 분노에 눈이 먼 사람들을 피해 레니냐는 뛰고 또 뛰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아악!”

       

       서두르다가 그만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눈앞에 팟, 하고 섬전이 튀기며 등골이 아찔해지는 감각. 레니냐는 그대로 넘어지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 저쪽이다. 금안족이 저리로 도망쳤다!

       

       서걱, 서걱! 마체테로 수풀을 가르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엘프들은 밀렵꾼처럼 숲을 헤쳐오고 있덨다.

       

       젠장….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만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거의 두 시간 내내 뛰었다. 물도 마시지 못한 채였다.

       

       목이 바싹 마르고, 발목은 시큰거리고.

       

       여기까진가?

       

       그리 생각할 찰나였다.

       

       “……!”

       

       몸이 부웅, 하고 들어올려졌다.

       

       누군가가 레니냐를 번쩍 들어 업어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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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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