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

       

       

       

       

       “허허허, 이런 우연이 다 있군요.”

       

       마이어 씨는 내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낸 히파르 온천 이용권을 보며 껄껄 웃었다. 

       

       “히파르 온천을 운영하고 있는 월튼이 바로 저와 사촌지간입니다. 히파르 쪽에 올 때마다 꼭 들러서 쉬고 가라고 해서 한 번씩 들르거든요.”

       “사촌 분이…! 그렇군요.”

       

       진짜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그렇게 들를 때마다 월튼 녀석이 이용권을 여러 장 챙겨 주곤 하는데, 저는 그걸 받아서 직접 쓰기도 하지만 납품 가는 곳이나 안면 있는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합니다. 제가 각지를 돌아다니는 상인이다 보니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는 거지요. 월튼 녀석도 그걸 알고 주는 거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까 ‘받아 왔다’고 말씀하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긴, 히파르 같이 관광객의 소비가 주 수입인 도시에서는 새로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테니까.

       

       저렇게 이용권을 뿌리면서 자연스러운 마케팅을 하다니, 역시 히파르의 명물인 히파르 온천을 경영하는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어 씨는 내가 들고 있는 이용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튼, 제가 그렘 마을에 왔을 때에 받아 놓은 이용권이 딱 두 장 남아 있었지요. 어차피 히파르로 가는 길이니 하나는 제가 쓸까 하다가…. 느긋하게 온천에서 쉴 시간은 없을 것 같아 그냥 두 장 다 이벤트 추첨 상품으로 사용하라고 기부했었습니다. 그걸 레온 님이 당첨되어 받으셨다니, 아마 1등상이었을 텐데 운이 굉장히 좋으셨군요.”

       

       나는 그 말에, 다시 쿠키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운은 제가 아니라 아르가 좋았죠. 아르가 다트를 던져 과녁을 맞히고, 직접 제비까지 뽑았거든요.”

       

       주변인의 다트 기회 어시스트가 있긴 했지만, 여튼 뽑기 운 자체는 아르가 좋긴 했으니까.

       

       “쀼웃!”

       

       남은 쿠키를 입에 쏙 넣은 아르가 자신이 해냈다고 말하듯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나는 아르의 입가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를 손으로 털어 준 뒤, 아르를 들어 내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뀨우.”

       

       이어서 간식을 배부르게 먹어 통통해진 배를 쓰다듬어 주자, 얌전히 앉아 내 손길을 즐기는 아르의 입에서 작은 뀨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얘가 진짜 복덩이예요. 가는 길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렘 마을에 며칠 정도는 더 머물 생각이었는데, 아르가 온천에 바로 가고 싶어하는 눈치라 의뢰나 마차편을 알아보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마이어 씨의 의뢰가 있어서 바로 수주를 했죠.”

       “허허. 그랬군요. 저도 길드에서 의뢰가 올라오자마자 수주되었다고 하기에 신기해했었습니다. 그렘 마을에서 히파르, 캐머해릴행 편도 호위 임무가 이렇게 빨리 수주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원래 히파르로 가려고 하셨던 거였다면 이해가 되는군요.”

       

       나는 그 말에 조금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저희야 좋긴 한데, 뭔가 한편으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해요. 마이어 씨 덕분에 온천 이용권을 받은 건데, 그걸 쓰러 가는 길에 호위 의뢰로 마이어 씨의 마차를 이용하잖아요. 이 의뢰가 아니었으면 아마 돈을 내고 마차편을 이용해야 했을 텐데….”

       

       반대로 마이어 씨 입장에서는 온천 이용권도 공짜로 줬는데, 그거 쓰러 가는 사람들을 돈 주고 태워 주는 셈이지 않은가. 

       

       ‘물론 호위로서 충실하게 할 일만 다 하면 전혀 문제 될 건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좀 민망한 건 어쩔 수가 없단 말이지.’

       

       거기다가 한 세트에 3실버나 하는 최고급 수제 쿠키를 비롯한 간식들까지 공짜로 얻어 먹었으니, 이제는 나와 아르의 행운이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이러다 진짜 벼락이라도 맞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마이어 씨는 의외로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걸 신경쓰고 계셨군요. 오히려 저는 레온 님이 히파르에 가려고 의뢰를 수주하셔서 더 좋은데 말이지요.”

       “…예?”

       “좋다기보다는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요. 사실 용병들이 왕복 의뢰를 선호하다 보니, 의뢰하는 입장에서도 편도는 괜히 좀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물론 돈을 왕복급으로 주면 불만이야 사라지겠습니다만, 저희도 예산이란 게 있으니….”

       “아하…. 그거야 그렇긴 하죠.”

       

       듣고 보니 마이어 씨의 말도 이해가 갔다. 

       

       ‘의뢰하는 입장에서도 그게 신경이 쓰이긴 하겠구나.’

       

       보수는 왕복의 절반, 그렇다고 돌아갈 교통비까지 챙겨 줄 정도의 상인은 드물고.

       

       제일 마음이 편한 건 목적지 근처에 볼일이 있는 용병이 흔쾌히 호위 의뢰를 맡아 주는 것이리라. 

       

       ‘하긴, 돈 주는 입장이어도 무조건 갑인 건 아니니.’

       

       특히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질 나쁜 용병들한테 잘못 걸리면, 호위를 맡은 용병이 길 가다 마주친 무뢰배들과 한패를 먹고 상인을 털어 먹는 경우도 있으니까.

       

       한 술 더 뜨면 처음부터 한패였다는 골 때리는 경우도 있고.

       

       ‘돈만 털어 먹히면 다행이게.’

       

       잘못하면 전 재산을 털리고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 

       

       물론 용병 길드에서 정식으로 의뢰해서 구한 검증된 용병이라면 그런 짓을 할 확률은 낮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흔히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나한테 걸리면 백 퍼센트’라고 하지 않는가. 

       

       ‘이래서 이 세계에선 자기 몸 지킬 힘 정도는 있어야 한다니까.’

       

       그게 쉽지 않아서 그렇지. 

       

       ‘나도 아르가 없었으면 지금쯤 파이어 볼 하나 제대로 못 썼을 가능성이 높으니.’

       

       나는 귀여운 마법 천재 아르의 배에 손을 올린 채 생각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마음이 편해지네요. 그럼 히파르에는 며칠 정도 머무실 생각이신가요?”

       “가능하다면 첫날에 납품 및 기타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튿날에 출발하고는 싶습니다만….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 이틀 정도 머물게 될 것 같습니다. 레온 님은 그간 온천에서 편히 쉬고 계십시오.”

       “하하, 네. 감사합니다.”

       

       원래는 예의상으로라도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할 타이밍이긴 하지만.

       

       ‘이럴 땐 확실히 쉬어 줘야 되거든.’

       

       아르를 데리고 히파르 구경도 좀 하고, 온천에서 하루 동안 극락의 시간도 보내고.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만. 

       

       “쀼우!”

       

       포만감과 내 손의 온기에 눈이 반쯤 감긴 채 듣고만 있던 아르도 온천 이야기가 나오자 기대가 되는지 눈을 뜨며 쀼우 소리를 냈다. 

       

       나와 마이어 씨는 그 이후로도 마차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국 동부나 남부는 요즘 어떤 상황이고, 어떤 마물이 기승을 부리더라 하는 이야기부터, 최근에는 이런 이런 간식이 유행을 하는 것 같더라, 거래하는 제과소에서 신메뉴를 개발 중인데 기대하고 있다는 등의 잡담을 나누면서 간식을 먹기도 했다. 

       

       “뀨우…. 큐우우….”

       

       아르는 자신의 배에 올려진 내 손을 앞발로 꼬옥 잡은 채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아르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자세를 바꿔 주려다가, 내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어 안는 모습을 보고는 자세를 바꿔 주는 걸 포기하고 그대로 두었다.

       

       ‘아직까진 순조롭네.’

       

       아까 얘기하면서 잠깐 본 지도 상으로는 히파르까지의 루트도 딱히 나무랄 데가 없었다. 

       

       역시 그렘 마을과 히파르에 주기적으로 들르는 베테랑 상인이라 비교적 어느 길이 안전한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안전한 정석 루트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아직까진 순조롭네’라는 불온한 생각을 품어서였을까.

       

       “…….”

       “큐우우….”

       

       덜커덩.

       

       어느새 할 말도 다 떨어지고, 간식을 먹기에도 배가 부르고, 졸음은 쏟아질 때쯤. 

       

       “히이이이잉!”

       “으아앗! 마, 마이어 씨! 용병!”

       

       앞쪽에서 들린, 말의 흥분한 울음소리와 마부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마자.

       

       “무슨 일입니까!”

       “쀽?!”

       

       나는 벌떡 일어나, 화들짝 놀라며 깨어 침을 호로록 삼킨 아르를 품에 안은 채 마차 밖으로 나왔다. 

       

       “사, 산적입니다! 그, 그런데 인원이 좀 많아 이를 어떻게 해야….”

       

       말을 간신히 진정시켜 멈춘 마부의 의자 옆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마부와 화살의 위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위협용 화살이군.’

       

       일부러 말이나 마부를 맞히지 않았다. 

       

       즉, 마차에 실린 물건뿐 아니라 말까지 전부 온전히 처먹겠다는 도둑놈의, 아니 강도놈의 심보. 

       

       하지만 그 덕분에 아직 마차 자체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뭐야, 호위 용병이 저 한 놈이 다야?”

       “푸하하핫! 오늘은 아주 거저 먹는 날이로구만.”

       “이봐! 순순히 물러나면 네놈은 그냥 보내주지. 대신,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빤쓰 한 장 못 가지고 나갈 줄 알아라.”

       

       문제는 여유롭게 이쪽으로 걸어 오고 있는 산적의 수가 무려 일곱이나 된다는 것.

       

       머릿수로만 따지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놈들의 무기 상태를 보니 승산은 있다.’

       

       애초에 산적들은 전문적으로 용병 일을 해 돈을 벌 실력이 없는, 일반인보다 조금 강한 수준의 잡배가 대부분.

       

       물론 가끔 양학을 하러 나오는 고렙 산적들도 있긴 하지만, 그건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보면 바로 구분이 가능하다. 

       

       지금 저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죄다 최하급에서 하급품들뿐이고.

       

       “아르야, 아무래도 간식 값 할 차례인 것 같다.”

       “쀼, 쀼우!”

       

       처음 겪는 대인전이었지만, 아르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듯 내 어깨 위로 올라와 앞발을 꼭 쥐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뭐야, 저 쪼그만 놈은?”

       “혹시 사역마인가?”

       “생긴 건 되게 귀여운데…?”

       “잠깐만. 저렇게 생긴 마물이면…. 잡아다 암시장에 팔면 꽤나 돈이 되겠어.”

       “이거, 어쩌면 마차보다 맛있을 수도 있겠는데?”

       

       대충 마차 하나 통째로 먹을 생각만 하다가 아르를 발견한 산적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놈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들아, 저놈부터 잡아라. 사역마는 우리 거다!”

       “혹시 그냥 저희가 키우면 안 될까요?”

       “닥치고 일단 잡아나 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즈니 님, 대라 님 각 20코인씩 후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독자님들 덕분에 공모전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독자님들이 키운 아르 보러 자주 와 주세요!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