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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퀘스트가 뜬다는 말은, 기억 속에서도 퀘스트를 진행하는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일단 자격 요건은 충분하다는 말인데…….’

       

       중요한건 호감도가 올라가는 판정이 어떻게 되느냐다.

       

       ‘나냐, 몰살의 그놈이냐.’

       

       올리비아는 벤치에 앉아 그대로 사색에 잠겼다.

       

       소란스러운 발소리도, 교실로 뛰어들어가는 학생들의 다급한 비명 소리도, 키엘의 시선도, 모두 순식간에 의식 저편으로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아(無我).

       

       고요한 심상세계 속에서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키엘의 기억 속에 처음 들어왔을 때, 키엘의 상태창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키엘 로트실드]

       – 레벨 : 88

       – 직업 : 검성

       – 호감도 : 50

       – 칭호 : 공작, 드래곤 슬레이어, 방랑 검사.

       

       이 때의 키엘은 몰살 회차의 올리비아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키엘 로트실드]

       – 레벨 : 93

       – 직업 : 검성

       – 호감도 : 63(+68)

       – 칭호: 검의 구도자, 드래곤 슬레이어, 공작, 방랑 검사.

       

       이것이 996년이다.

       

       키엘의 호감도는 둘로 갈려 있었다. 이는 키엘이 두 명의 올리비아를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퀘스트를 깨면 호감도 20은 나한테 들어오는게 맞아.’

       

       왜냐면 키엘은 둘을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니까.

       

       그러면 호감도가 무려 88까지 올라간다. 퀘스트 성공 시 보상으로 주어지는 호감도만 계산해도 말이다. 거기에 오늘 내일 각 잡고 호감작에만 집중하면 90까지 찍힐거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키엘은 방해요소가 아니다.

       

       호감도 -10이면 조금 과장해서 악우(惡友)라고 불러도 되는 수준이니까.

       

       [(+68)만큼의 호감도는 996년에 적용됩니다.]

       

       물론 996년까지 계속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해야겠지만.

       

       [악마를 퇴치하라 – HIDDEN]

       – 내용 : 악마 숭배자들이 결국 악마 소환에 성공했다. 악마를 처치하자.

       – 보상 : 악마 퇴치 시 동행한 파티원 1인의 호감도 20 증가.

       

       아무튼 결론적으로 저 퀘스트를 먹는게 맞다는 뜻인데…….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다.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최 뭘 놓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올리비아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무아에서 깨어났다. 

       

       어차피 악마가 소환되는 날은 내일 오후다. 그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아카데미에 잠입한 악마 숭배자들의 신상정보는 다 꿰고 있다.

       

       “뭐가 안 풀리나?”

       

       올리비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키엘이 웃었다.

       

       “……왜 웃냐?”

       “그냥, 신기해서 말이다.”

       “뭐가.”

       “지금의 너와 평소의 너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 말이다. 평소의 너는 그런 고민 따위 하지 않는다. 선택에 망설임이라는게 없지. 그에 비하면 너는 훨씬 인간적이다.”

       “당연한 소리를…….”

       

       음?

       

       올리비아가 눈을 껌뻑거렸다.

       

       망설임?

       

       당연히 몰살 회차의 올리비아는 고민 따위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면 그건 결국 자신의 플레이 기록이고, 몰살 회차에는 락테아를 수천 판 넘게 플레이하며 체득한 경험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어떻게 해야 레벨을 빠르게 올리는지, 어떻게 해야 주요 NPC 15인의 호감도를 90까지 쉽게 올릴 수 있는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몰살회차의 올리비아는 알았다.

       

       그런데…….

       

       ‘왜 호감도가 저것 밖에 안되지?’

       

       몰살회차의 올리비아가 쌓은 키엘의 호감도는 63. 놀랍게도 자신의 호감도보다 5나 낮았다.

       

       992년부터 지금까지 4년간, 단 11밖에 올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저게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말이 안된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키엘. 혹시 요즘도 ‘내’가 너한테 샌드위치 주냐?”

       “음……. 아니다. 생각해보니 내게 음식을 권하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안 준다고? 그러면 숫돌은? 장비 수선은?”

       “그것들도 마찬가지다.”

       “허어…….”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설마 기억을 덮어씌운 스노우볼이 이렇게까지 크게 굴러간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호감도 63은 심해도 너무 심하잖아!’

       

       그렇다고 호감작을 아예 포기했다고 판단하기엔, 키엘을 아카데미에 데려온게 몰살회차의 올리비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아마 여기서 20을 채울 생각이었겠지.’

       

       ……이거 먹어도 되는거 맞아?

       

       이걸 자신이 먹으면, 몰살회차의 올리비아는 죽었다 깨어나도 키엘의 호감도를 90까지 못 찍는다. 애초에 이 정도로 호감도를 퍼주는 퀘스트가 게임을 통틀어서 몇 개 없다.

       

       ‘그리고 그건 다른 NPC들한테 썼거나, 쓸 예정이겠지.’

       

       그렇게되면 키엘의 호감도는 기껏해야 80 언저리에 머물것이다.

       

       그리고 호감도 90과 80의 차이는 딱 하나다.

       

       ‘공격을 망설이느냐, 망설이지 않느냐.’

       

       호감도 90은, 기사의 신념마저 꺾는다.

       

       물론 그래봤자 초 단위 차이기는 하지만, 고렙끼리의 대결에서 1초 차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게 왜 문제냐고?

       

       ‘이거 하나 때문에 키엘의 마지막 기억이 얼마나 바뀔지 모르니까.’

       

       다시 말하지만 여긴 키엘의 기억 속이다. 비록 자신은 제국력 996년까지 밖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키엘은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끝까지 가진 채 998년까지 살 것이고, 몰살을 시작하려는 올리비아에 맞설 것이다.

       

       검에 망설임이 없어진 키엘은 스스로가 더 오래 분전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지금과는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원래 키엘은 얼어 죽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에르나의 칼날’은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법이니까.

       

       그것은 올리비아의 마지막 인정(人情)이기도 했다.

       

       하지만, 키엘의 검에 망설임이 없어진다면, 그의 검이 더 날카로워져 목숨에 위협이 된다면.

       

       분명 키엘은, 더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원망을 가지고 회귀하겠지.

       

       올리비아가 혀를 찼다.

       

       이게 꿀인지, 독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경험 상, 보통 이런건 독이었다.

       

       아주 치명적인 극독 말이다.

       

       

       *****

       

       

       깨작깨작.

       

       뒤적뒤적.

       

       “…….”

       

       키엘은 음식을 먹지도 않고 뒤적거리기만 하는 올리비아를 묘한 얼굴로 바라봤다.

       

       맛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름 미식가의 반열에 드는 키엘도 만족스러울 퀄리티의 스테이크였다.

       

       “배가 안 고픈가?”

       “……아니, 생각 중.”

       “무슨 생각을?”

       “먹을지 말지.”

       “……그럼 그냥 먹으면 되잖느냐.”

       

       올리비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독이 들었을지도 몰라서 그래.”

       “…….”

       

       키엘이 허탈하게 웃었다.

       

       아카데미의 요리사들이 미쳤다고 대마법사가 먹는 음식에 독을 넣었겠는가. 설령 그렇다고 한들, 애초에 올리비아 정도 되면 독이 통하지 않는다.

       

       마력으로 독기를 밀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올리비아가 모를 리 없을 터.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 독이 아닌가보군.’

       

       경지의 이른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독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다.

       

       심마(心魔).

       

       마음의 병이자, 정신을 갉아먹는 극독.

       

       키엘이 나직하게 말했다.

       

       “혹시 그 독이 무슨 독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왜, 조언이나 해주게?”

       “가능하다면.”

       “…….”

       

       올리비아는 말 없이 키엘을 쳐다봤다. 어떻게 설명해야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예시야.”

       “그래. 알아먹었다.”

       “들어봐. 내가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 그 중 하나는 내게 엄청난 이득을 줘.”

       “엄청난 이득?”

       “그래, 엄청난 이득. 굳이 표현하자면,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고나 할까나? 인생이 조금 편해지고, 어려움도 줄어들고……. 아무튼 그래.”

       

       멈칫.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니?”

       “아니, 비유가 그렇다고. 비유가.”

       

       올리비아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그걸 선택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거야. 높은 확률, 아니. 거의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내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뒤틀려서……. 언젠가 내 목을 조르러 오겠지.”

       “그런가?”

       

       키엘이 식기를 내려놓고 묵묵히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엄청난 이득을 포기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지?”

       “음.”

       

       올리비아가 신음했다.

       

       “아무일도 안 일어나.”

       “아무 일도?”

       “그래. 아무 일도. 그리고 세계는 내가 알던 대로, 그리고 네가 알던 대로 흘러갈거야. 아무런 고저 없이. 평탄하게.”

       “…….”

       

       키엘은 올리비아를 보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표정을 숨겼기 때문이 아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감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망설임, 비탄, 아까움, 혐오…….

       

       온갖 쓰디 쓴 감정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사실 두 번째 방법이 무난하기는 해. 그치?”

       “…….”

       “야. 조언해준다면서.”

       

       키엘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 3자가 듣는다면, 이것은 별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게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느냐, 같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를 올리비아가 한다면 다르다.

       

       ‘……조언?’

       

       그녀의 말이 맞다고 하면, 그것은 죽으라고 하는 것이고.

       

       ‘나 따위가?’

       

       그녀의 말이 아니라고 하면, 평생 스스로를 저주하며 살라는 것이다.

       

       키엘이 탄식했다.

       

       올리비아는 애초부터 조언을 구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단호한 결심을 몇 번이고, 다시 몇 번이고 마주했기에 안다.

       

       올리비아는 확언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그래.”

       

       키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 도리가 없었다.

       

       “네가……. 네가…….”

       

       그녀가 품고 있는 독은, 너무나, 너무나도.

       

       “네가 옳다.”

       

       아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선작 6000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표지 완성본이 나왔습니다!

    예전과 아름다움이 차원이 다르니 한 번씩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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