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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에휴, 그래. 뭘 그렇게 의심하고 있냐.

        

       애초에 나 도와주겠다고 데리고 나와준 애였다. 여기에 대고 의심 같은 걸 하면 나만 나쁜 놈이지. 나에게 나름대로 이런저런 걸 경험시켜주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내가 유하늘을 탓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솔직히 나로선 나쁠 것도 없다. 상대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 그것도 충분히 미소녀라고 불러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유하늘이었다. 같이 다닌다고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사실 따지자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전생에는 여자랑 같이 걸어본 기억도 거의 없었으니까.

        

       “아니, 당연히 재밌었지.”

        

       나의 말을 들은 유하늘은 배시시 웃었다.

        

       “이거 녹겠다. 먹자.”

        

       내가 스푼을 들면서 말하자, 유하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생각해보면, 연인이 되면 데이트고, 아니면 그냥 같이 노는 거 아니겠는가. 나도 친구와 만날 때 굳이 떼 지어 만나지 않아도 둘이서 같이 술도 마시고 부대찌개도 먹고 감자탕도 먹고 했으니까.

        

       파르페랑 부대찌개랑 같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야 없다만.

        

       나는 달콤한 파르페를 떠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지금의 상황을 그렇게 합리화시켰다.

        

       *

        

       계산은 내가 하려고 했지만, 유하늘이 결사반대했다. 파르페의 절반 이상을 자신이 다 먹었으니, 자신이 계산하거나 적어도 더치페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끝까지 계산하겠다고 하면 카페를 나오지 못할 것 같아, 결국 둘이 반씩 내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하여간에, 누가 여주인공 아니랄까 봐 고집이 엄청나게 셌다.

        

       하긴, 고집이 이렇게 세니까 남주인공이고 여주인공이고 끝까지 부딪혀서 이어지는 거겠지만.

        

       “아, 저기, 그…….”

        

       카페 밖으로 나오자, 유하늘이 우물쭈물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달라붙어 있던 유하늘이었는데, 나랑 반걸음 정도 떨어져서 그렇게 우물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데이트 명소 검색하던 게 들켜서 엄청나게 민망한 모양이었다.

        

       ……자꾸 나의 팔을 바라보는 걸 보면 팔짱 끼고 싶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내가 물어봤을 땐 친한 친구 사이에선 그럴 수 있다고 했던가.

        

       여기서 내가 거절하면 ‘우리는 친하지 않다’라고 선언하는 게 되나?

        

       그건 싫었다. 단순히 여주인공이라 가까이 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도, 개인적으로 유하늘을 내치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여주인공이라는 것을 빼고 생각해도 예쁘고 착한 애가 아닌가. 솔직히, 친구 대 친구로 생각하면 나에겐 과분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팔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까 어디로 갈지 검색하던 건 너잖아. 길 안내는 확실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하늘의 얼굴이 바로 환해졌다. 아니, 원래 환하기는 했지만. 그냥 표정을 보니 그렇게 느껴졌다는 거다.

        

       “그랬지~?”

        

       유하늘은 그렇게 말하며, 내 왼팔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 몸으로 살짝 매달리듯 달라붙었다.

        

       ……진짜로 친구끼리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서 유하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는가. 뭐, 믿을만한 사람이 두 사람 더 있기는 하다만, 그 두 사람이 당장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쪽이야!”

        

       아까 그랬던 것처럼, 유하늘이 먼저 발을 옮겼다. 나의 팔이 부드럽게 당겨졌다. 나는 그 속도에 맞춰서 발을 옮겼다.

        

       아직 나랑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유하늘과 함께 다녀야 할 모양이다.

        

       뭐, 주말 중 하루를 보내기에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

        

       결국, 그 후로 점심 지나서까지 한참 동안 유하늘과 함께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푸르던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동안 특별히 한 것은 없다. 한동안 걷다가, 근처에서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많이 먹은 나는 반도 채 먹지 못했고, 나머지 조각은 모두 유하늘 뱃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거리로 나와 도심 이곳저곳을 걸었다. 하천 옆을 길게 따라가며 세워진 산책로를 걷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길 가다 보이는 헌책방을 구경하기도 하고, 다리가 조금 아파서 벤치에 앉았다가 추워서 얼른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해가 질 때 쯤엔 다시 우리가 나왔던 저택의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도중부터 일부러 이쪽으로 걷기 시작했으리라. 결국 여기로 돌아와야 하는 나를 배려한 거겠지.

        

       정문은 벌써 열려있었다. 내 뒤를 몰래 따라다니는 사람이 미리 알려준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열려있어도 나 외에 돌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둘 다 별로 달가운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무척 좋던 기분은, 대문 안쪽 저 먼 곳에 있는 저택을 바라보자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저기로 돌아가면, 오늘 느꼈던 소란이 아주 멀게 느껴질 정도로 적막한 곳에 혼자 던져질 테니까.

        

       죽어서라도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던 예사라에게,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고작 두 달 남짓이었지만 예사라는 아홉 살 이후로 몇 년간 쭉 그렇게 생활했으니까. 그나마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하늘이나 이수아처럼 말을 걸어주는 아이도 없었고, 학교 바깥에 신소희 같은 친구도 없었다.

        

       저택 안에서 사용인들은 예사라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대문 옆에 서 있는 경비원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당황했던 것과는 다르게 표정은 없었다. 혹시 다른 사람인 걸까? 뭐, 아침에 놀랐던 걸 생각하면서 다시 놀라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경호원이 옷깃에 붙은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마 양혜인을 부르는 모양이다. 그래, 어제랑은 다르게 오늘은 아침부터 밖에 나가 있었으니까. 여기서 서서 기다렸다면 거의 일과 시간 내내 서 있는 셈이었다.

        

       “……내일 보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내 팔을 잡고 있던 유하늘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조금 주춤거리면서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즐거웠어.”

        

       내 말에, 유하늘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무래도 좀 쑥스러운 모양이다. 사실 나도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부끄럽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다음에, 또 와도 돼?”

        

       “응.”

        

       사실 안 될 수도 있다. 양혜인의 말 대로라면, 오늘 같은 이변이 회장에게 보고되지 않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보고가 되었다면, 회장은 어떻게든 다시 나를 옥죄여 올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유하늘에게도 무슨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역시 최대한 빨리, 외부에서 나를 돕던 사람을 찾아야겠다.

        

       “그럼, 학교에서 보자.”

        

       내 말에, 유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다시 한번,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저택으로 가는 도중에 마주친 양혜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그 옆을 지나갔다.

        

       한동안 내가 걷는 소리와 내 뒤를 따르는 양혜인의 걸음 소리만 들렸다. 분명 저 대문 바깥에선 차와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 안만 고요하게 느껴졌다.

        

       공기도 정체된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의 저택. 예사라를 가두던 감옥.

        

       아이러니하게도, 이 저택의 문은 내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열린다. 내가 움직이는 것을 공유하기라도 하는지, 내가 저택 안에서 어디로 가려고 하면 문을 열어주었으니까.

        

       하지만 예사라는 그렇게 활짝 열려있는 문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옷을 받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양혜인에게, 오늘 사서 입고 있던 점퍼와 손에 들고 있던 체육복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건넸다. 나머지 짐은 점퍼 주머니 안에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보통은 옷을 받은 양혜인은 허리를 숙여 보이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고,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방 안에 늘어져 있게 된다.

        

       당연히 오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짐을 받은 양혜인은, 바로 자신의 할 일을 하러 가지 않았다.

        

       잠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던 양혜인은,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마치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어쩌냐 싶은 듯한 말투였다.

        

       “…….”

        

       나는 잠시 멍하게 양혜인을 올려다보았다.

        

       양혜인은 여전히,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네, 즐거웠어요.”

        

       “……그랬군요.”

        

       양혜인은 나의 대답을 잠시 곱씹듯 그렇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고 다시 나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 몸을 돌려 자신이 할 일을 하러 갔다.

        

       “…….”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저 멀리 걸어가는 양혜인의 뒷머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하늘아……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집으로 돌아온 유하늘은,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어 얼굴을 묻었다.

        

       사라 옆에서 열심히 나댈 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한 행동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순서대로 떠올랐다. 친구 관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라에게, 오늘 유하늘은 팔에 반쯤 매달리고,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같이 한 메뉴를 시켜서 먹고…… 하여간에, ‘데이트’에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한 것이다.

        

       물론 약간씩은 중학교 친구들과도 했던 일들이다.

        

       팔짱을 낀다든지, 입에 먹을걸 물려준다든지, 같이 빙수를 시켜 먹는다든지 하는 일은 얼마든지 해봤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사라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지, 오늘은 좀 많이 폭주한 것 같다.

        

       “사라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이상하게 생각할 뻔하긴 했다. 사라의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해서 넘기기는 했지만.

        

       사라도 그 말을 받아들였기에, 아마 그 이후에 유하늘이 한 행동들을 그저 받아들였던 것이리라.

        

       “꺄악!”

        

       유하늘은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로 발을 버둥거렸다. 아직 입고 있는, 사라가 선물해준 원피스의 치맛자락이 펄럭거렸다.

        

       부끄럽다. 엄청나게 부끄럽다. 사실, 월요일에 사라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상하게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왠지, 또 이렇게 함께 걷고 싶었다.

        

       “……아.”

        

       하지만, 순간 유하늘의 머리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스쳐 지나갔다.

        

       사라는 아직 친구 간의 정확한 거리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오늘 유하늘이 가르쳐 준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대로 믿어버리면…….

        

       “……아…….”

        

       유하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큰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사라가 다른 ‘친구’들에게, 오늘 자신이 가르쳐 준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에게 자주 보여주는 그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유하늘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안돼!”

        

       대체 뭐가 안되는지, 왜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유하늘과 사라는 친구 외에 다른 관계는 아니니까. 사라가 좋아서 하는 행동을 유하늘이 멋대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월요일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사라에게 다시 한번 자기 행동을 해명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유하늘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님, 후원 감사합니다!

    사실 이전 작품도 그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다시 회수해야 할 떡밥이 늘고, 그 떡밥을 회수하다보니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고 하던 것이 조금씩 늘어나 200화가 되었던 거죠. 물론 이 소설도 짧게 쓰고 끝내려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글을 짧게 쓰면서 이야기를 전부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하지만 이 소설의 분량이 정확히 어느정도가 될지는 저도 확답을 드릴 수가 없겠네요. 캐릭터별로, 그리고 스토리별로 플롯은 정해두었지만, 그 플롯을 이야기로 짜내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더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기왕이면 지난번에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것만큼 오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로 깔끔하게 끝내는 것도 좋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글의 분량이 쌓이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성격이라서요. 지금 이 소설을 쓰면서도 하루에 두 화씩 쌓이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덕분에 독점 플러스도 제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달 수 있었네요. 분절해서 올리라고 조언해주신 분들, 전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후원해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제게 투자해주신 후원과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매일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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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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