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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아무리 대식가라고 해도, 한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전부 다 씹어먹을 수는 없다.

     그게 설령 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100송이가량 되는 시든 꽃을 씹어먹는다?

     이건 그냥 고문이다.

     

     안에 마나가 깃들어있든 말든,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왜. 두렵나?”

     “…….”

     에단은 떨리는 손으로 솜누스 꽃 한 송이를 들었다.

     아그작.

     그러고는 바구니만 노려보며, 첫 한 송이를 그대로 씹었다.

     으적, 으적, 으적.

     소태를 씹는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진다.

     

     솜누스 꽃 자체는 아무런 맛도 없어, 진짜 잡초를 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으적, 으적!

     이번에는 두 송이를 집어 든다.

     

     나를 슬쩍 한 번 올려다본 뒤, 본격적으로 입에 가득 넣고 씹기 시작했다.

     “흐음.”

     눈에 마력을 집중한다.

     솜누스 꽃에 아주 희미하게 반짝이는 마나는 에단의 몸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직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고작 꽃잎을 먹는 거로 마나가 본격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면, 에단은 진작 마나를 깨우친 상태로 여기에 왔을 것이다.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

     마나에 감응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아버지가 고아 중 무려 12명이나 누아르 곁에서 달리게 할 정도로 가치 있는 존재다.

     만일 마나가 개방된 상태였다면, 미르딘 부인이 자기 밑으로 입적을 하지 않았을까.

     “훗.”

     개봉되지 않은 채로 온 보물상자를 여는 기분이다.

     나는 내게 가까운 솜누스 꽃을 하나 들어, 꽃잎부터 한입에 삼켰다.

     “!!”

     “뭘 그렇게 놀라.”

     막 꽃을 다섯 송이가량 집어삼키며 내게 보란 듯이 시위하려던 에단이 눈을 끔뻑거린다.

     “설마 내가 너를 괴롭히기 위해서 이걸 먹으라고 한 거라고 생각하나?”

     “……꿀꺽.”

     “나 이거 좋아해.”

     지브롤터의 장남이 솜누스 꽃도 씹어 먹는다더라.

     “몸에 좋다는 건 닥치는 대로 먹지.”

     가문 내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지브롤터 가문의 일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이들도 알고 있는 정보다.

     ‘진짜인 줄도 모르고 무시하는 놈들도 있지만.’

     으적, 으적.

     맛은 없다.

     하지만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혀끝에 집중.’

     꽃잎과 줄기 사이에 흐르는 미약한 마나를 찾아 먹는다는 느낌으로 먹으면 된다.

     “먹으면서 듣도록. 에단. 네가 바라는 게 뭐지?”

     “…예?” 

     “아. 그냥 들으면 돼. 내가 묻고 내가 답할 거니까.”

     에단이 벙찐 얼굴로 멍하니 입을 벌렸다.

     “네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정하는 게 답이고, 너는 그중 원하는 걸 선택하는 거지.”

     나는 녀석의 벌어진 입에 솜누스 꽃을 한 송이 쑤셔 박으며 말을 이었다.

     “네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얌전히 보육원에서 사라지는 거.”

     에단이 꽃을 그대로 씹는다.

     대답 대신이라는 듯.

     “좋아. 나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두 번째는 너를 보육원으로 보내준 사람, 미르딘 부인을 고발하는 거야.”

     “……??”

     “호인이든 일부러든, 미르딘 부인에 대해서는 조사를 할 거거든.”

     차라리 그냥 고아를 보냈다면.

     “미르딘 부인이 반역자라고 몰고 보육원을 나간 뒤, 고발에 대한 보상금을 두둑하게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

     “미르딘 부인은 뭐…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게 될 테고. 후견인이고 나발이고, 지브롤터에 너를 보내서 정보를 빼내 오게 했다고 말할 건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건…!”

     “혹시 알아? 미르딘 부인이 친 제국주의자고, 너를 이용해서 지브롤터의 정보를 빼낸 다음 제국에 그 정보를 넘기려는 건지.”

     “…….”

     “네가 그녀를 그렇게 고발한다면, 미래는 그렇게 되겠지. 바른 소리만 하는 착하디 착한, 하지만 돈은 많은 미르딘 부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꽤 있거든.”

     차라리 군부 세력이 아니라 도박으로 망한 가문의 아이를 보냈다면.

     “대충 예상은 가. 네 부모님이 미르딘 부인에게 사정했겠지. 제발 아들을 지브롤터로 보내달라고. 미르딘 부인의 추천서를 자기 아들에게 써달라고.”

     보육원이라고 해서 고아만 모으는 건 아니다.

     “비율은 고아가 더 높지만, 몇몇 아이들은 일부러 보낸 경우도 있거든.”

     가령,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키우기 힘들 경우.

     “재능은 있는데 가난해서 키우기 어렵거나, 어떻게든 눈에 들게 해서 양자나 시종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지브롤터에서 후견인이 되어 대신 키워주는 경우도 가능한 곳이다.

     “너는 어느쪽일까. 네 부모님은 네가 지브롤터의 후견을 받아 가문을 부활시켜주기를 바랄까, 아니면 세자르의 성을 버리더라도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랄까?”

     에단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9살로, 누아르보다는 1살 어리다.

     “아직 판단하기는 어렵겠지? 정해야 할 시간도 짧고.”

     제법 잔혹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선택은 네 몫이다. 지금부터 네가 이 보육원에 남을 경우, 세 번째 선택지야.”

     나는 밖을 슬쩍 가리킨 뒤, 솜누스 꽃의 줄기를 손가락에 빙글빙글 감았다.

     “보육원 아이들은 너를 싫어할 거야.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들과 달리, 그래도 따뜻한 빵과 수프는 먹을 수 있었던 귀족 가문 출신이니까.”

     “…….”

     “보육원 아이들은 이미 경쟁을 시작했지. 누구보다 지브롤터의 눈에 잘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어. 당장 밖에 있는 아이들만 하더라도….”

     마침, 좋은 예시가 창문 밖에 보인다.

     “저기 터벅터벅 걸어오는 애들 보이지? 창문 밖에. 쟤들은 기사의 자질이 보여서, 아버지에게 선택받았지. 지금까지 검술을 훈련하다 왔어.”

     “!!”

     “이대로만 잘 크면 하급 기사가 될 수 있겠지. 우리의 추천장을 받으면 다른 귀족 가문에서 봉신 기사로 계약을 맺어 진짜 귀족 작위를 노려볼 수도 있을 거고.”

     기사가 되었다고 다 귀족이 되는 건 아니지만, 결혼과 자본이라는 길이 있다.

     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하거나, 양자로 들어가거나, 좀 돈은 많이 들더라도 작위를 사면 그만이니까.

     “네게 무재(武材)가 있다면 저들과 같이 기사 코스를 밟을 수도 있겠지. 다른 아이들처럼 손재주가 있다면, 지하에서 솜누스 꽃을 기를 거고. 머리가 좀 좋다면, 내 연구를 도와 마력초 실험에 동원될 거야.”

     이게 보육원 아이들에게 있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길.

     “나머지 평범한 재능의 아이 중에는 이미 집사나 메이드…시종의 길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지. 알겠어? 이곳의 아이들은 이미 다 깨달았어. 이곳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보호받는 임시 피난처지, 마냥 평생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라는걸.”

     “…….”

     에단은 여전히 꽃을 씹고 있다.

     “잘 기억해둬. 나중에 또 다음 후보가 들어오면 네가 이걸 설명해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

     “질문, 있습니다.”

     에단이 씹던 꽃을 크게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시간은 차감 안 한다?”

     “레타르…아가씨의 호위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새ㅡ끼.”

     아차.

     “…크흠.”

     나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레타르가 예쁘긴 해. 실제로 저기 막 들어온 기사 후보생 12명, 쟤들 중에도 레타르의 호위를 노리는 애들이 있지.”

     누구나 꿈은 꿀 수 있다.

     “어떤 녀석들은 누아르를 노리고 있기도 해. 여자애들이지.”

     “…도련님은 어떻습니까?”

     “아부하는 거냐? 뭐, 나를 노리는 녀석은 있을지 몰라도, 미래까지 생각하면 누아르 쪽이 낫겠지. 걔는 아버지께 검을 배우고 있으니까.”

     하인이 귀족의 눈에 들어 가문을 장악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다른 귀족 가문에 융화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을 노리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네가 레타르의 마음을 훔친다면, 가능성은 확실히 열려있겠네.”

     실제로 내가 자주 쓰는 전술이었으니까.

     -그레이. 항복한 귀족들을 가려야 한다. 진정으로 제국에 충성하는 자들과 아닌 자들을.

     -제국 출신 하녀를 보내시죠. 예쁘고 젊은 처녀로.

     -…아카데미에 그런 적절한 인재가 있나 한 번 살펴보지.

     덕분에 많이 잡아냈다.

     앞에서는 황제 폐하 만만세를 외치며, 뒤로는 혁명군에 몰래 자금을 대던 망국의 충신들.

     ‘베갯머리 앞에서는 사람이 다 약해지는 법이니.’

     인간은 사랑을 갈구하는 종족이고, 결국 사랑 때문에 파멸하기도 한다.

     “솔직히 묻자. 너, 레타르한테 반했냐?”

     “……지금까지 본 어떤 사람보다 예뻤습니다.”

     “응, 그래. 이상한 일은 아니야. 지브롤터의 핏줄에 어머니의 미모까지 더해졌으니.”

     레타르가 죽은 날.

     모두가 저 악녀 잘 죽었다고 외쳤지만, 일부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저렇게 죽을 거였다면, 차라리 내가 한 번이라도-

     “…쓰읍.”

     “…….”

     “아. 긴장할 거 없어. 이건 줄기가 썩었네.”

     나는 막 씹었던 꽃을 뱉어냈다.

     “그런데 너, 그 자리에 오를 실력은 있어?”

     “어려서부터 검을 배우기는 했습니다.”

     “네 경쟁자들은 짧게는 몇 달 전부터 지브롤터의 교육을 받았는데.”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냐.”

     아이와 성인, 현재와 회귀 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근성 하나는 확실하겠네.”

     미래, 고문악녀 레타르의 가학행위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냈던 인간이 바로 에단 세자르다.

     고문 속에서 어떤 감정이 생긴 건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그때를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흘러들어. 나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너에게 고마운 게 있어.”

     “예…?”

     “그냥 흘려들으라고. 레타르에게 반해줘서 정말 고맙다.”

     “……??”

     반했기 때문이겠지.

     그 이유가 아니라면, 고환이 터지는 고문을 당하고도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레타르의 시신은 내가 수습했다.

     제국의 검시관과 마도공학 수사대의 수사 결과, 레타르를 죽인 범인은 에단 세자르였다.

     그리고 부검 결과.

     -아가씨께서는 백은에 취한 상태에서 살해당하셨습니다.

     -그 말은….

     -고통 없이 가셨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군요.

     레타르는 정제된 백은에 취해 죽었고, 칼에 찔리는 과정에서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런 말씀까지 드리기는 뭣하지만, 정절이 희롱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미친개는 그렇게 당해놓고도, 복수로 죽이기만 했을 뿐 시신을 능욕하지 않았다.

     -마법으로 확인한 결과, 여전히 순결을 지키고 계셨던….

     “음. 잡담은 여기까지.”

     막 에단이 세 송이를 입에 넣은 순간, 나는 바구니를 당겼다.

     “30분 지났어. 나 자러 가야 해.”

     “아앗…?!”

     “내가 이야기하는 거에 집중하고 있느라 시간이 이만큼 오래 흘렀는지도 눈치를 채지 못했구나.”

     계속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고, 중간중간 씹어 삼킬 시간적 여유를 주기도 했다.

     “어디 보자. 나도 먹기는 했지만, 50송이는 훨씬 많이 남은 것 같네.”

     “저, 저한테 주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나 자러 가야 한다니까.”

     “주시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다 먹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게 여기 있을 수 있도록…!”

     “안 돼. 못…이것봐라.”

     에단이 내게 달려든 순간.

     “죽이지 마.”

     “커헉?!”

     빛처럼 튀어나온 거한이 바로 에단의 등을 짓밟았다.

     “로버트 경. 그러다 애 잡겠어.”

     “애도 도련님께 위해를 가할 수 있습니다.”

     나의 전속 호위 기사, 로버트.

     그는 공기처럼 가만히 있다, 나를 향한 위협이라고 생각되자마자 바로 몸을 움직였다.

     “제, 제발…!”

     “근성은 확실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 경에게 밟혀있는데도 계속 발버둥을 치니.”

     “도련님께서 신이 나셔서, 결론을 이야기하지 않으셔서 그런 겁니다.”

     “내가 신이 났다고?”

     “그게 아니라면 이런 녀석에게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음….”

     

     하긴.

     “그렇네.”

     여차하면 쳐내겠다고 생각했지만, 미래의 소드 마스터를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들떴나 보다.

     “일단 놔줘. 다시 달려들면 그때는 아예 주먹을 얼굴에 꽂아버리고.”

     “예.”

     로버트가 발을 치우자, 에단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다행히 달려들지는 않네. 이건 내가 먹을 거고, 너는 ‘내 시험’에 통과했다. 쫓아내지 않을 거야. 합격. 이해했냐?”

     “예…?”

     “레타르의 친오빠 앞에서 레타르의 호위 기사가 되겠다면서, 그 이유로 ‘반했다’라고 지껄이는 미친놈이라는 걸 증명한 것만으로 충분하지. 음.”

     나는 가볍게 주먹으로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 겁대가리 없는 태도, 용기. 정말 좋아. 내일은 나보다 더 심각할 테니, 어디 한번 잘해보라고.”

     “어….”

     “오늘은 예습이야. 흐흐, 앞으로 보육원 생활 좀 힘들 거다? 너, 지금 나한테 특별대우 받은 거거든.”

     그레이 지브롤터의 특강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일 아침은 오늘보다 더 힘들 테니.”

     나는 꽃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역시 메릴리.”

     문밖에는 그 누구도 없었고, 오직 메릴리만이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한테 달려드는 근성을 봐서 쫓아내지는 않기로 했고, 절차대로 해.”

     “예.”

     메릴리가 슬쩍 복도 끝과 계단을 눈으로 가리켰다.

     아마 궁금해서 내려온 일부 아이들이 숨어있겠지.

     어떻게 한다.

     손을 거들어줘야 하나, 아니면 알아서 잘하게 해야 하나.

     음.

     “메릴리.”

     “예.”

     “혹시 저 녀석, 에단 세자르의 ‘체벌’이 필요할 때는 말이지.”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명랑하게 말했다.

     “나한테 보내. 내 손으로 직접 조질 테니까.”

     * * *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네가 내 딸의 호위 기사가 되고 싶다고.”

     백작성, 응접실에 한파가 몰아쳤다.

     “나는 네 꿈이 뭐냐고 물었지. 다른 아이들은 우리 가문의 기사가 되고 싶다거나, 지브롤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키워주신다면, 은혜를 갚겠다면서. 그리고 너는 나의 딸, 레타르를 곁에서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맞나?”

     “예.”

     미래, 레타르의 개로 고문받던 영웅은.

     “왜?”

     “첫눈에 반했습니다.”

     진짜로, 미친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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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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