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

       붉은 머리의 사내가 만두머리 소녀를 발로 차서 넘어트렸었다.

         

        같은 일행이었던 거 같은데, 왜 그랬던 걸까.

         

        솔직히 괘씸하긴 한데 다른 사정이 있겠지.

         

        그 여자가 난 버리고 너희끼리 살라고 미리 말했을 수도 있고.

         

        …그래도 발로 차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그래도 뭐, 나 보고 도망가느라 울고불고했으니까 한 번만 봐줄게.

         

        세세한 건 잊자.

         

        그들의 사정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알아야 하는 건 그 여자가 넘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날 보고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크게 다친 거 같진 않으니 다리를 접질렸던 거 같다.

         

        그게 아니면 온순한 날 보고 도망치는 일행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는 거고.

         

        두 번 움직이긴 귀찮으니 필요한 걸 대충 챙기자.

         

        쉬릭.

         

        혀를 날림거리면서 땅바닥을 더듬거렸다.

         

        여기쯤이었나.

         

        유난히 땅이 축축한 부분을 찾아냈다.

         

        악어왕도마뱀류 용조수 제8식.

         

        땅 마구 파내기.

         

        강아지가 뼈다귀를 숨겨둔 땅을 파듯, 앞발로 흙을 마구 파냈다.

         

        투다다다다!

         

        땅속에 있는 건 여러 가지 식물들과 물건들이었다.

         

        번개 모양의 돌같이 좀 희귀해 보이는 물건을 모아뒀다.

         

        그러니까 당장 쓸 거 같진 않은데, 버리긴 아까운 물건 저장소라고 해야 하나.

         

        지금 꺼낼 건….

         

        아 여기 있네.

         

        식물의 뿌리같이 생긴 걸 살짝 들어 올렸다.

         

        이름이 뭐였더라, 하수오였나?

         

        다쳤을 때 하수오의 즙을 상처에 바르면 금방 낫곤 했다.

         

        나야 칭호 덕분에 물에서 물장구 몇 번 치면 알아서 상처가 나아서 쓸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나중에 투스 푸스에게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챙겨뒀는데, 이렇게 쓰게 되다니.

         

        옆에 고이 모셔둔 푸스의 거미줄도 챙겼다.

         

        잘 짓이긴 하수오를 나뭇잎으로 감싸고 거미줄로 상처에 감싸면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다.

         

        재료만 던져주면 알아서 치료하겠지.

         

        좋아, 가보자.

         

        약재를 찾느라 조금 수고를 들이긴 했지만, 내게 제일 좋은 상황은 아까 쓰러진 여자가 스스로 도망가는 거였다.

         

        아직 인간이랑 엮이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

         

        슬픈 이야기지만, 백연영 같은 괴짜가 아니라면 날 무서워하는 거 같다.

         

        이왕 사람을 만날거면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옷이라도 만들어 입으면 좀 나아지려나.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방금 인간과 조우한 것도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내 영역에서 내쫓았으니 무시하고 잠을 청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있는 인간이 죽는 걸 보는 건 사양이다.

         

        조금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빨리 나아서 내가 안 보이는 곳으로 가주렴.

         

        타다닷.

         

        최대한 덩치가 작아 보이기 위해, 네발로 땅을 기었다.

         

        입에 물고 있던 칼이 문제였을까 싶어 꼬리로 옮겨 쥐었고.

         

        이제 슬슬 다 온 거 같은데.

         

        그래 저기 있네.

         

        내가 보았던 그 여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죽은 건 아니지?

         

        자세히 보니 백연영보단 작은 흉부가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않고 있나 보다.

         

        살금살금 움직여 그녀의 뒤로 갔다.

         

        혹시나 놀랄까 싶어 신사적으로 땅을 두어 번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히, 히익!”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울먹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자,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오….”

         

        아냐.

         

        오해야.

         

        나 사람 안 먹어.

         

        *

         

        당소영은 무에 대한 자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당가는 정정당당한 무보단 암기와 독을 주로 사용하니까.

         

        무에 대한 자질은 없었으나, 독을 다루는 재능은 뛰어났다.

         

        그녀가 다루는 독이 특별히 강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녀보다 훨씬 강한 고수조차 당할 수 있다는 의외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당가의 사람들은 그녀를 귀하게 사용하려 했다.

         

        그래, 사용이다.

         

        그들이나 독이나 암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당가의 작자들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핏줄을 사용한다.

         

        독인이라는 말은 마냥 전설 속에나 나오는 경지가 아니었다.

         

        가문의 꼭두각시가 된 채로, 그저 하나의 독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그들이 스스로를 자조하듯 부르는 멸칭이었다.

         

        당소영은 그녀만의 독을 사용하는 걸 거부했다.

         

        그것이 그녀의 존재의의였으니, 당가타에서 그런 소리를 한 그녀가 멀쩡한 꼴을 보긴 힘들었을 거다.

         

        같은 피가 흐른다고 하더라도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암굴에 갇혀 또 하나의 독인이 되어 이지를 상실한 장기말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소영은 그러지 않았다.

         

        몰래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 힘의 이름은 바로 지식이었다.

         

        그녀는 내공을 쌓는 대신 수많은 지식을 쌓았다.

         

        당가의 원로조차 알지 못하는 지식을 쌓으니, 그녀를 다른 곳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녀가 쌓은 지식 중 제일은 영물에 관련된 지식이었다.

         

        당가는 갑작스러운 영물들의 대거 등장 이전에도 그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두던 세력이었다. 강한 영물이 강한 독을 뱉어내는 법이었으니까.

         

        잘해봐야 이류 무인에 불과한 그녀가 당가를 대표해 이 원정에 참여할 수 있던 것도 그간의 행적 덕분이었다. 아성체의 딜로포사우루스를 다룰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인재였으니까.

         

        물론 그녀를 십만대산에 보낸다는 건 도박과 마찬가지였다.

         

        힘은 보잘것없지만,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당소영과 귀하디귀한 영물의 아성체를 한 번에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거기서 원로원은 남궁연이라는 사람에 주목했다.

         

        청무린이라는 첩자에게 얻어낸 정보에 의해 남궁연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했다. 이류 무인이라고 알려진 자지만, 그건 의도적으로 정보를 통제한 것이었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된 원로원은 당소영과 아성체의 영물을 보내는 판단을 했다.

         

        잃을 것 보다 얻을 게 많았다.

         

        남궁연이 같이 있는 이상, 쉽게 죽지도 않을 것이다.

         

        딜로포사우루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딜로포사우루스를 놓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습격한 짐승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가지고 있는 연막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피를 봤을 게 분명했다.

         

        이제 그녀의 수중에 남은 건 약간의 식량과 암기 몇 개와 침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괴력난신과도 같은 존재를 만났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내면에 엄청난 양의 내공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게다가 평범하게 쌓은 내공이 아니었다.

         

        확인할 수 있는 내단만 해도 최소 넷이었고 공청석유의 기운까지도 느껴졌다.

         

        그런 영물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어 넘어졌는데,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리까지 다쳤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영물이 돌아올 때까지.

         

        “자,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오….”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다.

         

        쉬릭.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영물의 혀가 날름거렸다.

         

        당소영이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은 순간, 그녀의 앞에 어떠한 물건이 떨어졌다.

         

        실눈을 뜬 당소영의 눈엔 식물의 뿌리가 보였다.

         

        하수오.

         

        그것도 최소 백 년 하수오였다.

         

        영물은 발로 그걸 몇 번이나 지르밟더니, 비단과 같이 생긴 실과 나뭇잎을 그녀에게 건넸다.

         

        저 아까운 하수오를!

         

        평소의 당소영이라면 그런 말을 했을 거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신보고 바르라는 걸까?

         

        “그르르….”

        “바, 바를게요!”

         

        무섭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덧난 부위에 하수오즙을 발랐다.

         

        시간이 지나니 점차 고통이 가셨다.

         

        당소영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자신을 치료해 주는 걸까?

         

        혹시, 찻잎을 먹인 돼지고기를 요리에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을 더 맛있게 먹으려고 하는 걸까.

         

        아니, 당소영은 조금 더 희망적인 생각을 품어보기로 했다.

         

        이 영물은 자신을 해할 생각이 없다.

         

        칼을 잡고 있는 꼬리가 휙휙 흔들리는 게 매우 불안하긴 했지만 잡아먹을 거면 진작에 잡아먹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단순한 변덕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잡아먹히는 것보단 나았다.

         

        적어도 뭘 할 수는 있으니까.

         

        당소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상대를 직면했다.

         

        커다란 몸.

         

        날카로운 발톱.

         

        도대체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되게 섬뜩하다고 느껴지는 미소 아닌 미소.

         

        그것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던 당소영의 뇌리에 한 가지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당가에 존재하는 한 가지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한 영물이 있다. 그것은 짐조와도 비교되지 않는 최강의 독물이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옛 존재, 죽음의 꼬리, 오래된 죽음.

         

        그것은 죽음과 폭력을 상징하는 압도적인 존재며 사천당문이 그토록 염원하던 존재였다.

         

        칼날을 우습게 막아내는 단단한 갑주. 운석으로 벼린 검보다 날카롭다는 스무 개의 발톱. 호신강기조차 우습게 뚫어버린다는 날카로운 이빨. 짐조보다 강하다는 죽음의 독.

         

        고모도(古氂屠).

         

        눈앞의 존재는 고모도와 흡사했다.

         

        물론 전승 속에 묘사된 것과 차이가 있긴 했다.

         

        덩치는 그것보다 살짝 작았으며, 피부색도 달랐다.

         

        그냥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 갈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마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소영은 그러지 않았다.

         

        학자로서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눈앞에 있는 영물이 자신이 찾고 있던 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저, 저기!”

         

        당소영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영물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고모도 대협이신가요?”

         

        *

         

        위잉 위잉.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사이렌이 울렸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인간.

         

        명석한 두뇌가 돌아간다.

         

        미친 사람이다!

         

        어후, 빨리 도망가야지.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