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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즈라문 군도로 가려면 작은 항구 마을에 있는 유일한 배편을 타야만 했다.

         

        배편 값도 매우 비쌌다.

         

        군도 주변에는 소용돌이 치는 것 같은 기묘한 마력의 흐름 때문에 해류 또한 한시도 잠잠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력 있는 선장과 항해사가 아니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앞서 말한 마력의 흐름 탓에 마법사들이 대륙과 군도 사이에 순간이동을 시전할 수도 없었다.

         

        즉, 마법사 티그리아의 마법을 이용한 기동력으로 린과 루시를 쫓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정도로 접근하기가 불편하니 2대 용사가 마검을 봉인할만한 장소이기도 했다.

         

         

        “다녀올게, 루시.”

         

        “정말 혼자 괜찮겠어?”

         

        “응, 여긴 걱정 안해도 돼.”

         

        “그래도….”

         

        “얌전히 있어줄 거지?”

         

        “대신 빨리 돌아와야 해?”

         

        “최대한 빨리 마치고 올게.”

         

         

        어쩔 수 없이 루시는 린을 배웅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라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지은 죄가 있기에 린의 말을 거절하기란 불가능했다.

         

        적어도 새끼 손가락에 이어진 붉은 실이라도 있으니 루시는 그 감각에 집중하며 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 시 바로 튀어나갈 각오를 했다.

         

        항구 마을은 정말 어촌이나 다름 없었다.

         

        에팔테르가와 비교하기 미안할 규모에다가 마을 이름도 단순하게 ‘군도 가는 길’이었다.

         

        이런 곳에 위협 따위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루시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안일하게 있다가 린이 다치고 그를 뺏길 뻔한 게 바로 엊그제였다.

         

         

        ‘이씨가 널 구했으니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이씨를 지켜야 해. 알겠어? 앞으로 네 모든 삶의 중심은 이씨인거야. 이씨가 시키는대로 하고, 항상 이씨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발터크루아에서 출발한 이후로 래빈의 말이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을 지키기가 은근히 어려웠다.

         

        가끔 린은 지금처럼 처리해야할 일이 있다며 혼자 다녀오고 싶어했다.

         

        그런데 루시가 린을 지키려면 항상 곁을 지켜야 했다.

         

        린을 지켜야 한다와 린의 말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가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지금도 린은 세계 우편부에 편지를 부치러 혼자 나갔다.

         

        그래야만 한다고 하도 신신당부를 하는 바람에 루시가 한걸음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숙소 단칸방 침대에 걸터앉은 루시는 붉은 실에 집중하며 상념에 잠겼다.

         

        생각의 저 밑바닥으로 깊고 더 깊게 내려간 루시는 거기서 변명과 합리화라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변명은 바로 이것이었다.

         

         

        ‘적이 많아서 찾기가 어렵다고 했지, 찾기를 포기한 게 아니었어.’

         

         

        발터크루아에서 마수에 둘러싸인 린을 찾아야할 때 래빈에게 혼났던 내용이었다.

         

        자신의 말이 잘못 받아들여졌다고 여겼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야!’

         

         

        그딴 말 할 시간에 린을 찾기 위해 돌격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잠깐만, 지금처럼 붉은 실을 이용해서 찾아다녔으면 되잖아?

         

        판명, 있던 수단도 똑바로 쓰지도 못한 멍청이의 변명이었습니다.

         

        그걸 한꺼풀 벗어던진다.

         

        두번째, 린이 그녀를 회복시켜준 것처럼 루시도 성검을 희생하여 린을 부활시켰다.

         

        이건 더 볼 것도 없었다.

         

         

        ‘린은 처음부터 마기에 침식되어 가고 있었어.’

         

         

        그것도 용사 파티의 홀대로 인해 그가 마왕의 외뿔을 맨손으로 수거하면서 생긴 부상이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살인미수의 괴롭힘이었다.

         

        그리고 린이 서큐버스에게 죽은 이유도 엘릭서를 마시고 회복 중인 루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판명, 두 번 다시 또 꺼내면 사지를 또 절단내도 할 말 없을 같잖고 같잖은 논리.

         

        바로 벗어던진다.

         

        세번째, 왜 린이 맨손으로 마왕의 외뿔을 만지게 하였는가?

         

        마왕이 죽었기 때문에 권능: 마기도 소멸하면서 당장만 아프고 끝나리라 생각 했었다.

         

        정말 잘못되면 아르실이나 티그리아가 나서줄 줄 알았다.

         

        판명, 미친년 아냐 이거?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판명, 모조리 가당찮은 변명과 합리화.

         

        심지어 마왕의 외뿔을 포함한 마왕 토벌 여정 시절 모든 과오는 괜한 미움과 경솔한 괴롭힘에서 비롯되었다.

         

        변명, 합리화, 거짓, 궤변, 알량한 자존심.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남은 것은 린에 대한 아집과 집착이었다.

         

         

        “허억… 허억…!”

         

         

        역겨웠다.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들여다 본 자신의 행적과 내면은 역겨움 그 자체였다.

         

        발가벗겨진 루시는 순식간에 자기혐오와 우울감의 늪에 빠져들었다.

         

         

        “큭… 우… 아아…!

         

         

        첫 만남부터 꼬여버린 루시와 린.

         

        누구 탓인가?

         

        루시 탓이다.

         

        용사 파티 내에서 홀대에 홀대를 더해 괴롭힘이 가해졌다.

         

        누구 탓인가?

         

        루시가 주도했다.

         

        그 뒤 배신부터 최근까지 루시는 린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아니 전혀.

         

        오히려 린을 더 힘들게 했다.

         

        역겨워역겨워역겨워역겨워역겨워역겨워

         

        그런 주제에 잘도 린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거야?

         

         

        “커흐윽…! 우웁…!”

         

         

        과호흡이 심해진다.

         

        호흡이 빨라질수록 뇌는 쉴틈없이 루시가 잘못한 기억들을 재생시켰다.

         

         

        ‘너는 자격이 없어.’

         

         

        있었던 자격마저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넌 린에게 고통만 주는 존재야!’

         

         

        래빈의 말이 다 맞았다.

         

        자신은 하등 쓸모 없는 여자였다.

         

         

        ‘방패기사놈이 안 건드렸으니까 몸만 처녀지. 마음은 걸레 중에 걸레인 년이…!’

         

        “아아아아악!”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길이 없는 부덕함은 자해로 이어졌다.

         

        몇 번이나 관자놀이를 후려치고 힘줘서 압박했다.

         

         

        ‘넌 자격이 없어. 이씨는 내가 맡는다. 내가 그 아픈 몸을 고치고 평생 내 곁에서 쉬게 해줄거야.’

         

        “안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린.

         

         

        “제발 린을 데려가지 마.”

         

         

        동료들은 그녀의 팔다리를 잘랐다.

         

         

        “제발….”

         

         

        약혼자인 척 행세를 하던 역겨운 방패기사는 손수 그녀를 반역도로 지목했다.

         

         

        “하아… 하아…!”

         

         

        그녀를 껴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린 건, 영웅이라 칭송 받던 동료들이 아닌 일개 짐꾼인 린.

         

        그녀의 수발을 들어주며 마족과 목숨 걸고 싸워 회복시킨 것도 민간인이었던 린.

         

        그런데,

         

        래빈이 나타났다.

         

        자기보다 훨씬 자격 있는 그녀는 루시를 다그치고는 린에게 자신의 꽁지머리를 잘라담은 주머니를 쥐어줬다.

         

        린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당장 곁에 있는 자신이 멀리 떨어진 래빈에게 진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마용사 파티의 환술사 아도라가 나타났다.

         

        루시가 무능하다고 잔잔히 분노하며 그가 마기에 침식당한 사실을 알려줬다.

         

        정작 자신은 그때까지 몰랐다.

         

         

        “하아하아…!”

         

         

        아무것도 몰랐다.

         

         

        “허억…!”

         

         

        못난 년 같으니.

         

         

        “루시!”

         

         

        울지도 마라 넌.

         

         

        “숨 셔, 숨!”

         

         

        너 따위가 감히 린과 함께…!

         

         

        “머리는 왜 때리고 그래, 루시!!”

         

         

        그래도,

         

        린과 같이 있고 싶다.

         

        이 뻔뻔함이 죽도록 싫었다.

         

        치직

         

        붉은 실이 타오르며 그녀의 감각을 일깨웠다.

         

         

        “커흑! 컥!”

         

         

        그제서야 루시는 참아왔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흐려졌던 시야가 돌아왔다.

         

        그녀의 앞에 땀에 젖은 채로 다급하게 자신을 살피는 린이 있었다.

         

         

        “린…?”

         

        “루시, 정신이 들어?”

         

        “나… 나 대체 뭘….”

         

        “과호흡 상태였어. 들어올 때부터 자기 머리를 때리지를 않나, 갑자기 호흡까지 멈춰서 놀랬다고.”

         

        “미….”

         

         

        멈칫

         

        너무나도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 두려웠다.

         

        미안하다고 하면 할수록 사과의 가치가 떨어져가는 느낌.

         

        미안하다고 해놓고 또 잘못을 저지르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언제까지 그의 상냥함에 기대어 같은 짓을 반복할 지 모르는 두려움.

         

         

        “우… 으읏…!”

         

         

        울지 마.

         

        눈물 흘리지 마.

         

        그에게 부담을 지우지 마.

         

        이 못난 것아.

         

        하지만,

         

         

        “루시 괜찮은 거지?”

         

         

        끝까지 자신을 걱정하는 린에게 그녀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안간힘을 쓰면서 눈물을 참는다.

         

         

        “린….”

         

         

        울지 마.

         

         

        “괜찮아?”

         

        “왜 나 같이 못된 년이랑 같이 다녀주는 거야?”

         

         

        울지 말라고.

         

         

        “나 린한테 너무… 잘못한 게 많은데… 왜… 날 데리고 다녀 주는 거야?”

         

         

        네가 뭔데 감히 울어.

         

         

        “세상을 위해서라면… 내가 린이 시키는대로 할 테니까… 나 때문에 힘들고 아픈데… 억지로 있는 거라면… 난 괜찮아. 린은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알려줘. 내가 알아서 할게.”

         

        “왜 그런 소리를 해.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하지만 린은… 내 곁에서 고통 받고 있잖아. 나 때문에… 팔도… 마음도….”

         

        “루시.”

         

        “나는 모르겠어… 린이 너무 소중한데, 너무 늦어버린 느낌이야. 이제 와서? 린에게 온갖 아픔을 주고 이제 와서? 난 모르겠어.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어떻게 갚아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해냈다.

         

        목소리가 떨리긴 했지만 울지 않고 똑바로 다 말했다.

         

        이제 그의 선택만 기다리면 돼.

         

        루시는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자.

         

         

        “루시.”

         

        “네…!”

         

        “잘못했어?”

         

         

        아, 평소와 다른 반응.

         

        평소라면 괜찮다고 했을 텐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래도 대답은 똑바로 하자.

         

        사람새끼라면 대답이라도 제대로 하자.

         

         

        “응… 잘못했어….”

         

        “정말?”

         

        “정말… 많이… 잘못했어.”

         

        “그렇구나.”

         

         

        린은 루시를 안아줬다.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마.”

         

        “…!”

         

         

        울지, 말라고….

         

         

        “으흑…! 우우우우우우우…!”

         

         

       

       루시는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착각하지 마라.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다.

         

        엄연히 다르다.

         

        이걸 꼭 명심해 루시.

         

        하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앙-!!!!”

         

         

        괜찮다고만 하던 린이 드디어 본심의 아주 작은 부분을 보여주었다.

         

        비록 원망의 편린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또 한 번 그의 자비에 의존했다는 실망감과 안도감이 그녀의 속을 헤집어 놓았다.

         

        수도꼭지마냥 눈물샘은 터져버렸고 서럽디 서럽게 루시는 오열했다.

         

        당연히 이번 한 번으로 그가 마음을 풀었다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 루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감격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허어어어어어엉…!!”

         

         

        얼굴을 잔뜩 일그린 채로 울며 그에게 매달린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네…!”

         

         

        체통 따위 신경도 쓰지 못하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탈수로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던 루시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린에게 매달렸다.

         

         

        “린.”

         

        “응, 루시.”

         

        “내 유일한 아군이지?”

         

        “그럼.”

         

        “내 최고의 동료.”

         

        “당연하지.”

         

        그리고 그 다음은 당연히 나의….

         

         

        “평생 당신만을 섬길 거에요.”

         

        “…?!”

         

         

        놀라서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눈빛을 가진 용사가 있었다.

         

        과거의 악덕을 모두 품었음에도 올곧게 바라보는 그 시선은 아까 전의 온몸으로 용서를 구하던 그녀의 모습에 이어 린에게 또다른 큰 울림을 주었다.

         

         

        “정말 많은 잘못은 한 저지만, 이대로 같이 나아가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물어오는 루시에게 린은 그녀를 구한 첫날에 이어 두번째로 큰 따스함을 느꼈다.

         

        철컹!

         

         

        “과거가 아무리 아프고 부끄럽더라도 우리가 써나가야 하는 건 현재야.”

         

         

        그래서 진심을 담아 그녀의 뺨을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그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반성하고 더 발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돼.”

         

        “항상 명심할게, 나의 린.”

         

         

        차르르르르르

         

        두번째 사슬이 풀려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태까지 풀린 사슬들은 고작 2개.

         

        문은 아직도 숱한 사슬에 묶여 봉인 당한 채였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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