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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기어이 120분을 채우고서야 일장 연설을 끝낸 학장이었고, 교원들은 드디어 회의란 이름에 연설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음에 진심 어린 박수 소리를 내었다.

       내심 만족하는 학장의 얼굴을 뒤로하고 해산하는 교원들이었으나, 반대로 몇몇 인원이 뭉쳐 함께 대화를 나누는 무리가 형성되었다.

         

       학부가 다른 만큼 쉽게 마주하기 힘든 얼굴들이었으니,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내심 왕따 생활이 확정됐으리라 여겼던 이한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우연치 않게 안면을 튼 한스는 호인이었다.

         

       모난 놈에게 지인을 소개해 줄 정도로.

         

       “도로시에요. 미술학부 강사고, 종교화 전공이고요.”

         

       “캄이라고 부르시오. 몰락귀족에 불과한 통계학부 강사요.”

         

       “건축학부의 덴이요. 과분하게 교수를 맡고 있지, 허허.”

         

       “알렝 드 바그너요. 고리타분한 역사학부 교수지. 편하게 알렝이라 부르시오.”

         

       하나같이 한스의 지인이었으며, 자신들을 별거 아닌 사람이라 말하고 있으나 그는 이들이 거물임을 안다.

       신문과 거리가 먼 이한이었으나, 기사단의 유일한 친구 녀석이 가끔 그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었고, 그때마다 단골처럼 나오던 이름이었으니까.

         

       “떠오르는 신예화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중에 실패작이어도 좋으니 그림 한 장 구매할 수 있게 해주시죠, 도로시.”

       “어머나?”

         

       젊은 여류 화가 중 가장 미래가 기대된다는 신예.

         

       “왕실의 부름마저 거절한 이를 마냥 몰락귀족이라고 무시할 순 없지 않을까 싶구려, 캄.”

       “호오.”

         

       왕실마저 탐내는 젊고 유능한 학자.

         

       “왕도를 재건축할 때 전두지휘 했던 거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소, 덴. 그리고 목숨 걸고 브리튼 유물발굴을 하러 간 전설적인 고고학자가 고리타분하다고 무시하는 건 미친놈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알렝 교수.”

       “허허, 이거 참 쑥스럽구먼.”

       “생긴 거랑 다르게 제법 견식이 좋구려.”

         

       저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거물들까지.

         

       웬만한 귀족조차 쉽게 인맥을 쌓을 수 없는 자들뿐이다.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건 그만큼 명성 높고, 고고하다는 뜻이니까.

       길드에서도 상시로 보호하는 중요 인사들일 터.

         

       “다행입니다, 소개해준 보람이 있군요.”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소개해준 거물급 장인 한스까지.

         

       ‘끼리끼리 논다더니….’

         

       옛말 틀린 거 없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드림팀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검 휘두르는 것밖에 없는 군인이 상대하기엔 다들 너무 거물이군, 이건.”

       “하하! 누가 누구 보고 겸손하다는 건지, 백은사자 소속 기사를 한낱 공무원이라고 하는 이들은 미친놈들일 거요, 안 그렇습니까?”

       “맞는 말이죠.”

       “말씀하신 대로, 그림 한 장 드릴게요. 호의의 표시로.”

         

       물론 그런 그들에게조차 기사란 인종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었다.

       정확히는 백은사자 소속 기사란 것이 더욱 그를 거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비록 좌천되어 교관이 되었다지만, 그렇다 하여 무시하는 이들은 없다.

       이미 봤지 않은가.

         

       검투로 유명한 폴렛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을 압도하던 실력을.

         

       허나, 그런 걸 제외하고도 그들 자체가 제법 선하고 마음이 넉넉한 이들이었다.

       명성이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그냥 제 분야에서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유명해진 것뿐.

         

       그렇기에 그들은 지인인 한스가 소개해줬다는 이유만으로도 그에게 과한 선의를 보였다.

       이한이 먼저 그들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는 이상, 그에게 색안경을 끼진 않을 터.

         

       ‘…큰 빚을 졌네.’

         

       그들이 거물이란 사실보다, 성실한 호인이란 사실에 호감이 더 생겼고, 이들을 소개해준 한스에게 큰 빚을 졌다는 느낌이 든다.

       물건은 돈만 있다면 살 수 있지만, 타인의 친분과 선의란 건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언젠가 갚긴 해야겠어.’

         

       놀보다 못한 것들에겐 한없이 인성 파탄이 의심되는 군상처럼 굴어도, 인격자들에겐 그 또한 호인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한과 교원들은 간단히 제 소개와 함께 간단히 티타임이나 가질 겸 카페에 가기로 했다.

         

       참고로 왕국 카페에 아이스 커피를 파는 곳은 없다.

         

       오로지 에스프레소 아니면 허브 또는 홍차.

       커피에 얼음 넣어 달라 요구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랬다간 경멸 어린 시선이 사방에서 쏟아질 터이니 참는다.

         

       그렇게 내심 아쉬움을 느낄 때.

         

       “-잠시 실례해도 되겠소?”

         

       “오, 오드왈 공.”

         

       “허락한 것으로 알지.”

         

       “어….”

         

       강압적이면서도, 이미 답이 정해졌다는 듯 말하는 무뢰한의 등장에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묘하게 경직됐다.

       생긴 것부터가 괴팍했으며, 남 의견 따윈 전혀 들을 것 같지 않은 꼬장꼬장함이 느껴진다.

       교원들이 뭔가 잘못 밟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으나, 그는 남들의 표정 변화 따위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배려감이라곤 전무해 보이는 인간상.

       그리고 그가 이한을 향해.

         

       “아이린 윈들러, 그 순수한 천재에게 괜한 헛짓거리하지 마라. 이는 부탁이나 조언이 아닌 ‘경고’다. 만약 그녀의 재능에 조금이라도 불순물을 더한다면…, 그땐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

         

       정중한 ‘협박’을 건넸고, 흉흉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기사와 대화하는 것조차 혐오스럽다는 듯이.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음, 이봐 주문쟁이 노인네.”

       “!!?”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못 알아먹어서 그런데 한 번 더 지껄여줄래? 앞뒤 다 잘라먹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먹어? 지 혼자 결론내고 자빠졌네.”

         

       마법사가 보이는 적의 못지않은 ‘경멸’을 숨기지 않으며 막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좀 떨어져서 말해, 이를 얼마나 안 닦은 거야? 더러워서 진짜.”

       “!!!”

       “왜? 해 보려고?”

         

       이한은 다시금 도발하며 내심 원하였다.

       이놈이 지팡이를 꺼내들기를.

         

       그렇게만 하면.

         

       ‘간만에 손맛 좀 보겠네.’

         

       마법사를 팰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좋다며 이한은 더할 나위 없는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상대는 전혀 해맑게 느끼지 않을 터이지만.

         

       *

       *

       *

         

       …아쉽게도 마법사는 그냥 가 버렸다.

         

       좀 더 도발하면 넘어올 것 같긴 했으나, 주위에 새로 사귄 지인이 있으니 이한은 눈물을 머금고 도발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오드왈 공을 그리 무시하면 안 됐는데, 으음….”

         

       한스를 비롯한 이들이 걱정 어린 기색을 보였다.

         

       카페에 도착한 뒤 꾸준히 이한을 향해 던져지는 걱정.

       본인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한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늘 처음 만난 타인을 위해 걱정의 눈빛을 보내는 정상적인 지인이라니….

         

       ‘멋지다 멋져.’

         

       차와 디저트를 쏜 게 안 아깝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걸 사과하는 김에 산 것이었고, 이한은 제 몫으로 산 핫초코를 마시며 오늘 치 당분을 보충하곤 확언하듯 말을 이었다.

       

       “책임은 제가 다 질 겁니다. 그와 다툼이 생기든, 갈등이 더 커지든. 여러분에게 절대 피해가 갈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니, 우리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압니다, 걱정해주는 거. 그런데 진짜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저 이래 봬도 튼튼한 놈입니다.”

       “…그 노인은 겨우 튼튼한 거로 넘어갈 수 없는 무서운 분입니다.”

         

       아마 한스가 생각하는 튼튼함과 이한이 말하는 튼튼함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을 듯하지만, 이를 모르는 한스로선 무거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드왈 공은 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오드왈 버나드.

       조금 전 이한에게 시비를 걸듯 다가왔던 마법사의 이름이었으며, 모든 교원들이 껄끄러워하는 교원이기도 했다.

         

       왜 껄끄러워하냐고?

         

       그가 [마법사]니까.

         

       마법사.

       오로지 선천적으로 타고나야만 하는 축복 등으로 일컬어지는 마력의 선택을 받은 자들.

       또한 마력을 통해 ‘주문세계’란 것을 형성하여 자연의 법칙마저 조작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기에, 마법사는 마법사란 이유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기 충분했다.

       자칫 엮였다가 어떠한 화를 입을지 모르니 말이다.

         

       “뭐, 그래도 아까 교관님의 발언이 시원하긴 했어요.”

         

       허나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마법사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인 이들은 드물었다.

       마법사란 인종은 기본적으로 안하무인이니.

         

       “괴팍한 노인네죠.”

       “남 험담을 뒤에서 하면 안 되긴 하지만, 부정하기가 힘들지요.”

       “괴팍한 걸 넘어 불같은 인간이니 말입니다.”

         

       마법사는 마법을 쓸 수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며, 자신들의 특별함을 상시 드러내며 대접받길 원한다.

       귀족과 왕족마저 무시하며, 설상가상으로 신에게마저 불경한 어투를 아끼지 않는다.

       뭐, 그 정도로 막돼먹은 이들은 대부분 밉보여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기 마련이지만.

         

       물론 앞서 언급한 마법사처럼 오드왈이 막 나가는 부류가 아닐지라도, 마법사 특유의 안하무인 태도가 여실한 그였다.

         

       일례를 들자면,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6년 전 입학식 당시, 불꽃을 쏘아대며 날뛰는 사건을 일으켰지요. 본인 소개 순서에 일반 생도가 겨우 기침을 하였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선배님이었구먼.”

       “터틀 경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그자가 한 것은 그저 폭력에 불과하니.”

         

       이한이 저지른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거.

       명분도 없고, 그저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인 무자비한 폭력.

       그때 사고로 생도 몇 명이 다치고, 강당도 반쯤 소각되었으니….

         

       범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가 이런 말하긴 뭐한데, 그런 양반이 여전히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뭡니까? 보아하니 아카데미가 아니라 감금되어 있어야 할 양반 같은데.”

       “……음.”

         

       이 부분에서 교원들은 잠시 말을 아꼈다.

       그들도 내심 그리 여기고 있던 사실을 콕 짚어 말하는 거니까.

         

       “후우, 마법사는 귀한 재원이니 말입니다. 일명 대체 불가한 인력이지요. 인성은 모났지만, 살인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일단 감싸주는 편이지요.”

         

       나름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으나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테고, 실상은 뭡니까?”

       “…혹시, 생긴 거랑 다르게 눈치가 좋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으십니까?”

       “그런 편입니다.”

       “하하.”

         

       한스는 진솔 담백한 기사의 발언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귀족 출신 기사가 아니기 때문일까?

       말 안에 가시가 없고, 마냥 직설적이다.

         

       마치 길드의 장인들을 대하고 있는 느낌.

         

       ‘관계를 트길 잘한 것 같군.’

         

       그 또한 난폭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선을 지킬 줄 아는 자 같다.

         

       “…오드왈 공을 후원하는 귀족들이 많습니다. 또한 그를 후원하는 귀족들 중에는 매년 막대한 아카데미 지원비를 내는 이들이 수두룩하지요. 하니 그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겁니다.”

       “웃긴 노인네일세.”

         

       마력을 못 쓰는 자들을 모두 경멸하는 주제에, 후원자는 필요한가 보지?

         

       더 웃긴 건 그런 인간에게 후원하는 귀족들이다.

       대체 무슨 생각들인지, 원.

         

       “어쨌든 터틀 경. 조심하십시오. 경이 강한 것은 알고 있으나, 그자는 위험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터틀 경을 위협할 우려가 있어요.”

         

       이한을 향한 진심 어린 충고였고. 이한은 내심 걱정할 거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진지한 충고를 건네는 이들의 말에 설렁설렁 대응하는 모지리가 아니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필히 기억해두도록 하죠. 다만….”

       “?”

       “으음, 이건 제 숨겨진 재주 같은 건데, 여러분만 알고 계시죠. 이 재주를 아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무슨…?”

       “제 숨겨진 재주는 말입니다.”

         

       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 재주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미치광이를 착하게 만드는 재주죠.”

       “??”

       “하하, 그렇게만 알아두십쇼.”

         

       그거 아는가?

       아무리 미치광이라 할지언정 ‘착하게’ 만드는 요령이 있음을?

         

       다름 아닌.

         

       ‘숨을 쉬지 않으면 착해지더라고.’

         

       아.

         

       심장까지 안 뛰면 더 베스트더라.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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