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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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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은 커다란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을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람도 있고 좌절하여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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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라고 해서 다를 거 하나 없었다. 나 또한 여러 유형의 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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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되겠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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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일어난다고 해서 죽을 일은 없다. 만약 죽게 되더라도 귀신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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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보니 저절로 태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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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와 함께 투기장에 던져졌을 땐 바짝 긴장하지 않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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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나와 달리 쉽게 죽을 수 있는 아이리스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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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걱정되는 건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는 내 모습에 눈이 돌아갈 흑마법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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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처럼 클리셰 발언으로 죽일까? 아니면 아는 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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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선 상대가 이성이 있든 없든, 어떤 종족이든 간에 가족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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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오랜만이네!”라고 말 걸면 갑자기 이성 없던 짐승이 이족보행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거나, 제 털 속을 뒤적거려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엄마, 리안이라는 애 알아요? 네? 제 소꿉친구요?”라는 전개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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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말해 가스라이팅만 잘하면 괴물이랑 친구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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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문제를 피해 가는 방법은 매우 많았다. 그래서 난 선택받은 다른 노예들과 달리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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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습을 보고 노예들이 이상한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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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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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입에 샌드위치를 물려주고 있을 때, 나처럼 피맥스 대신 투기장에 올라가게 된 노예가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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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깔끔하게 밀어 밤송이처럼 생긴 노예가 갑자기 내 옆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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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발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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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냅다 무릎을 꿇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살려달라는 말까지 하니 할 말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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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물오물,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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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노예가 무릎을 꿇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입에 음식이 사라지자 입을 벌리고 얌전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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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반사적으로 노예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이리스의 입에 작게 자른 샌드위치 조각을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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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든 염소처럼 오물거리는 아이리스를 바라보다가 노예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증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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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엥?”
    “제발 도와주세요!”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그런 강자이신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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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을 꿇고 있는 노예들은 전부 검투 경기에 나갈 예정자들이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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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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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을 꿇고 있는 노예는 총 4명으로 그중 2명은 어제 피맥스의 뒤에서 나를 비웃던 노예들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처음 보는 노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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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아,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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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이 빠져있는 사이 아이리스가 입을 벌렸다. 나는 아기 새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어미 새처럼 아이리스의 입에 샌드위치를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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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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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뒤 말 다 자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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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왜 당신들을 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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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티를 내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던 밤톨이가 구구절절 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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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해보자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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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맥스는 못해도 여기에서 두 개의 층은 더 올라갈 만한 성적을 가진 강자였다. 당연히 상대하는 마물도 매우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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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듯이. 이곳 층에 있는 사람 중 피맥스가 상대했던 마물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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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맥스 대신 경기를 뛰라는 건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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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하는 사람이 바뀌었으니까 상대할 마물도 바뀌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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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질문에 밤톨이 우울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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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투 경기를 위해 마물을 준비하는 건 꽤 많은 수고가 든다고 한다. 싸움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전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흥분시켜야 하고, 투기장 손님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마법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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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투기장에서 쓰일 마물은 못 해도 일주일 전부터 준비한다고 한다. 그 말은 곧, 그들은 피맥스와 싸우기로 준비되어있던 마물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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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맥스 한명이 출전할 경기에 다섯명이나 되는 인원이 출전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숫자로 어떻게든 막아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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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실패하면? 어차피 노예들인데 무슨 상관인가? 새로 사 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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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맥스같은 실력자가 아니면 전부 소모품처럼 사용될 뿐이었다. 이번에 지목된 노예들에겐 그냥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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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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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예! 어제 신묘한 힘으로 죽어가는 마물조차 살려내지 않으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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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톨이는 애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싫다고 하면 바지라도 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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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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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입에 샌드위치 조각을 하나 더 넣어주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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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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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 살아남는 것과 이 녀석들을 구하면서 살아남는 건 난이도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피맥스와 함께 아이리스를 모욕했던 노예들을 챙겨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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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와준다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두 노예 정도만 도와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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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볼게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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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톨이는 그 말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듯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밤톨이는 어제 피맥스와 함께했던 노예가 아니었기에 별 거부감도 들지 않아 그만 무릎 꿇고 일어나라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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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톨이는 훌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덩치가 큰 노예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덩치가 큰 노예도 처음 보는 노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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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저 꼭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를 갚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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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피맥스와 붙어먹던 놈들은 ‘생각해보겠다.’라는 말이 불안했는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다가, 짜증을 내자 기겁하며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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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아이리스 이제 다 먹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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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들이 떠나는 것과 동시에 샌드위치가 전부 떨어졌다. 아이리스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날이 갈수록 자잘한 반응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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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와 좀 더 시간을 보내자 어느새 경기에 참여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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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시간이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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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이리스를 침대에 앉혀두고 곧바로 방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 순간, 아이리스가 내 옷자락을 확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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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앗..! 아,아이리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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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마치 “어디가?”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 조심히 떼어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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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돌아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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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딱 봐도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시간이 다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이리스를 두고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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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내 동생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피맥스 꼴로 만들어버린다?”
    “힉…!”
   “헙…같,같은 공간에서 숨도 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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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하는 노예들을 구경하기 위해 복도에 나와 있던 노예들에게 으르렁거리듯 경고하자, 놈들이 바짝 얼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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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접근하는 놈이 있으면 패버리라고 했으니까..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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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을 토막 내던 아이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노예는 전과 같은 통로로 안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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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들은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한쪽에 놓인 무기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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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검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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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장검을 들기엔 힘이 들었다. ‘적당히 단검이라도 챙길까?’라고 생각하며 무기들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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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검들이 거치대에 걸쳐져 있었고, 날이 나가거나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검들이 뚜껑 없는 오크통에 가득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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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치되어 있는 건 전부 장검이라 어쩔 수 없이 오크통 쪽에 시선을 뒀다. 다른 노예들은 전부 튼튼한 장검을 찾기 위해 오크통에는 시선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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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쓸만한 게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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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이 가득 꽂혀있는 우산꽂이에서 내 우산을 찾을 때처럼 검 손잡이를 이리저리 밀어내며 쓸만한 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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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거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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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가 짧아 손잡이가 안쪽에 들어가 있는 검 손잡이가 보였다. 최대한 다른 검들을 밀어낸 후 단검으로 추정되는 검을 꺼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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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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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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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보니 손을 넣다가 그만 베이고 말았다. 피가 뚝뚝 떨어져 단검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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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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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이라면 화들짝 놀라 손을 뺄 법도 하지만, 다쳐봤자 금방 회복해 버리는 나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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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빨리 빼버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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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꽂이에서 우산 꺼낼 때, 다른 우산들 때문에 내 손등이 젖는다고 본인 우산을 안 챙기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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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검에 손이 왕창 베이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단검을 꺼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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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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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릉하고 뽑아 든 단검은 생각보다 날이 잘 서 있었고, 날에 금이 가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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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신의 길이는 16cm 길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꽤 짧았지만 쓰다가 쉽게 부러질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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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너무 많이 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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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으로 닦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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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나를 깨운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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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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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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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신에 맺혀있던 핏물이 순식간에 검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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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달콤하다 달콤해! 당장 나에게 더 많은 양의 피를 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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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검이 내 배를 푹하고 찔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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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하하하! 그래, 이거다 이거야! 아아 -…수백 년 만에 먹는 피는 이토록 달콤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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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경박한 웃음소리가 웅웅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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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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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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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를 준비하던 다른 노예가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없이 내 배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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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도 없는데 왜 말도 없이 배를 찌르고 난리야! 말로 했으면 옷이라도 벗었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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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쮸아압 소리를 내며 피를 흡수하던 검이 잠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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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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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헤엄치는 새 님! 흙군 님! 혈소연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피를 먹으면서 강해지는 마검 VS 아무리 피를 흘려도 무한 리필되는 리안

웅장하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보통 사람은 커다란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을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람도 있고 좌절하여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개그 세계라고 해서 다를 거 하나 없었다. 나 또한 여러 유형의 사람 중 하나다.

‘어떻게든 되겠지,뭐.’

개그 세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일어난다고 해서 죽을 일은 없다. 만약 죽게 되더라도 귀신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 보니 저절로 태평해진다.

아이리스와 함께 투기장에 던져졌을 땐 바짝 긴장하지 않았느냐고?

그건 나와 달리 쉽게 죽을 수 있는 아이리스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필요 없었다.

그나마 걱정되는 건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는 내 모습에 눈이 돌아갈 흑마법사들이다.

‘어제처럼 클리셰 발언으로 죽일까? 아니면 아는 척할까?’

개그 세계에선 상대가 이성이 있든 없든, 어떤 종족이든 간에 가족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여~ 오랜만이네!”라고 말 걸면 갑자기 이성 없던 짐승이 이족보행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거나, 제 털 속을 뒤적거려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엄마, 리안이라는 애 알아요? 네? 제 소꿉친구요?”라는 전개가 가능했다.

쉽게 말해 가스라이팅만 잘하면 괴물이랑 친구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여튼 문제를 피해 가는 방법은 매우 많았다. 그래서 난 선택받은 다른 노예들과 달리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노예들이 이상한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저…”

“응?”

아이리스의 입에 샌드위치를 물려주고 있을 때, 나처럼 피맥스 대신 투기장에 올라가게 된 노예가 말을 걸어왔다.

머리를 깔끔하게 밀어 밤송이처럼 생긴 노예가 갑자기 내 옆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

“제발 살려주세요!”

냅다 무릎을 꿇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살려달라는 말까지 하니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오물오물, 아 -.

아이리스는 노예가 무릎을 꿇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입에 음식이 사라지자 입을 벌리고 얌전히 기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노예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이리스의 입에 작게 자른 샌드위치 조각을 넣어주었다.

나이 든 염소처럼 오물거리는 아이리스를 바라보다가 노예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증가해있었다.

“엥?”

“제발 도와주세요!”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그런 강자이신지도 모르고…!”

무릎을 꿇고 있는 노예들은 전부 검투 경기에 나갈 예정자들이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무릎을 꿇고 있는 노예는 총 4명으로 그중 2명은 어제 피맥스의 뒤에서 나를 비웃던 노예들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처음 보는 노예였다.

“아 -..”

“아,그래.”

얼이 빠져있는 사이 아이리스가 입을 벌렸다. 나는 아기 새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어미 새처럼 아이리스의 입에 샌드위치를 넣어주었다.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

앞뒤 말 다 자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제가 왜 당신들을 죽입니까?”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티를 내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던 밤톨이가 구구절절 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약해보자면 이거다.

피맥스는 못해도 여기에서 두 개의 층은 더 올라갈 만한 성적을 가진 강자였다. 당연히 상대하는 마물도 매우 강하다.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듯이. 이곳 층에 있는 사람 중 피맥스가 상대했던 마물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피맥스 대신 경기를 뛰라는 건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출전하는 사람이 바뀌었으니까 상대할 마물도 바뀌지 않나요?”

내 질문에 밤톨이 우울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검투 경기를 위해 마물을 준비하는 건 꽤 많은 수고가 든다고 한다. 싸움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전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흥분시켜야 하고, 투기장 손님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마법도 걸어야 한다.

그렇기에 투기장에서 쓰일 마물은 못 해도 일주일 전부터 준비한다고 한다. 그 말은 곧, 그들은 피맥스와 싸우기로 준비되어있던 마물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피맥스 한명이 출전할 경기에 다섯명이나 되는 인원이 출전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숫자로 어떻게든 막아보라는 것이다.

만약 실패하면? 어차피 노예들인데 무슨 상관인가? 새로 사 오면 되지.

피맥스같은 실력자가 아니면 전부 소모품처럼 사용될 뿐이었다. 이번에 지목된 노예들에겐 그냥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나라고 한다.

“내가?”

“예! 어제 신묘한 힘으로 죽어가는 마물조차 살려내지 않으셨습니까! ”

밤톨이는 애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싫다고 하면 바지라도 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아 -.”

아이리스 입에 샌드위치 조각을 하나 더 넣어주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내가 왜?’

나 혼자 살아남는 것과 이 녀석들을 구하면서 살아남는 건 난이도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피맥스와 함께 아이리스를 모욕했던 노예들을 챙겨주고 싶지 않았다.

도와준다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두 노예 정도만 도와주고 싶었다.

“…생각해 볼게요.”

“..! 감사합니다!”

밤톨이는 그 말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듯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밤톨이는 어제 피맥스와 함께했던 노예가 아니었기에 별 거부감도 들지 않아 그만 무릎 꿇고 일어나라 말해주었다.

밤톨이는 훌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덩치가 큰 노예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덩치가 큰 노예도 처음 보는 노예였다.

“저,저 꼭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를 갚을게요!”

어제 피맥스와 붙어먹던 놈들은 ‘생각해보겠다.’라는 말이 불안했는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다가, 짜증을 내자 기겁하며 도망갔다.

“아 -.”

“아이리스 이제 다 먹었어.”

“응..”

놈들이 떠나는 것과 동시에 샌드위치가 전부 떨어졌다. 아이리스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날이 갈수록 자잘한 반응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아이리스와 좀 더 시간을 보내자 어느새 경기에 참여할 시간이 되었다.

“출전 시간이다. 나와.”

나는 아이리스를 침대에 앉혀두고 곧바로 방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 순간, 아이리스가 내 옷자락을 확 잡아당겼다.

“으앗..! 아,아이리스?”

“아..?”

아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마치 “어디가?”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 조심히 떼어내며 말했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아이리스는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딱 봐도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시간이 다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이리스를 두고 방에서 나왔다.

“너희 내 동생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피맥스 꼴로 만들어버린다?”

“힉…!”

“헙…같,같은 공간에서 숨도 쉬지 않겠습니다!”

출전하는 노예들을 구경하기 위해 복도에 나와 있던 노예들에게 으르렁거리듯 경고하자, 놈들이 바짝 얼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만약 접근하는 놈이 있으면 패버리라고 했으니까..괜찮겠지?’

괴물을 토막 내던 아이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노예는 전과 같은 통로로 안내되었다.

노예들은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한쪽에 놓인 무기를 향해 달려갔다.

‘가벼운 검이 있으려나?’

아직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장검을 들기엔 힘이 들었다. ‘적당히 단검이라도 챙길까?’라고 생각하며 무기들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검들이 거치대에 걸쳐져 있었고, 날이 나가거나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검들이 뚜껑 없는 오크통에 가득 담겨있었다.

거치되어 있는 건 전부 장검이라 어쩔 수 없이 오크통 쪽에 시선을 뒀다. 다른 노예들은 전부 튼튼한 장검을 찾기 위해 오크통에는 시선도 두지 않았다.

‘어디, 쓸만한 게 어디 없나?’

우산이 가득 꽂혀있는 우산꽂이에서 내 우산을 찾을 때처럼 검 손잡이를 이리저리 밀어내며 쓸만한 검을 찾았다.

‘아, 이거 괜찮네.’

길이가 짧아 손잡이가 안쪽에 들어가 있는 검 손잡이가 보였다. 최대한 다른 검들을 밀어낸 후 단검으로 추정되는 검을 꺼내려고 했다.

샥.

“앗..”

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보니 손을 넣다가 그만 베이고 말았다. 피가 뚝뚝 떨어져 단검을 적셨다.

“음…”

보통 사람이라면 화들짝 놀라 손을 뺄 법도 하지만, 다쳐봤자 금방 회복해 버리는 나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빨리 빼버리지 뭐.’

우산꽂이에서 우산 꺼낼 때, 다른 우산들 때문에 내 손등이 젖는다고 본인 우산을 안 챙기는 사람은 없다.

내가 검에 손이 왕창 베이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단검을 꺼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오.”

스릉하고 뽑아 든 단검은 생각보다 날이 잘 서 있었고, 날에 금이 가있지도 않았다.

검신의 길이는 16cm 길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꽤 짧았지만 쓰다가 쉽게 부러질 것 같진 않았다.

“피가 너무 많이 묻었네.”

‘옷으로 닦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 …네가 나를 깨운 건가? ]

머릿속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슈우욱.

검신에 맺혀있던 핏물이 순식간에 검에 흡수되었다.

[ 아아 -..달콤하다 달콤해! 당장 나에게 더 많은 양의 피를 다오! ]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검이 내 배를 푹하고 찔러버렸다.

[ 크하하하! 그래, 이거다 이거야! 아아 -…수백 년 만에 먹는 피는 이토록 달콤하구나!]

머릿속에 경박한 웃음소리가 웅웅 울렸다.

챙그랑.

“무,무슨…!”

경기를 준비하던 다른 노예가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없이 내 배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옷도 없는데 왜 말도 없이 배를 찌르고 난리야! 말로 했으면 옷이라도 벗었을 건데!”

쮸아압 소리를 내며 피를 흡수하던 검이 잠시 멈칫했다.

[ 무,뭐? ]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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