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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루시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귀여운 단어였다.

   

   이전에 그녀가 했던 여러 말들에 비하면 얼빵영애 정도야 뭐.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화를 낼 수준도 아니었다.

   

   사교계에서 성격 나쁜 사람들이 하던 뒷담화 중에는 저것보다 심한 말들도 많았으니까.

   

   조이가 당혹스러워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예상치 못한 말을 예상도 못한 타이밍에 들어서 그런 것뿐이었다.

   

   얼빵영애인가.

   

   오라버니말고도 나한테 얼빵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티가 나는 건가?

   

   “제가 얼빵해 보이나요?”

   “이런. 실례했습니다. 말실수를 했네요.”

   

   루시는 그리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가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치켜 올라간 입꼬리와 그 입을 가리는 얄미운 손동작은 분명한 도발이었다.

   

   처음엔 얼빵영애라는 단어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조이지만 그 동작을 보고 나니 조금 열이 올랐다.

   

   “제 덕에 티어라 마스에 들어오셨으면서 그런 말을 하시다니. 너무하시네요.”

   “설마 얼빵영애께선 자신의 베품에 대가를 바라시는 건가요? 후후. 공작 영애치고는 속이 좁으시네요.”

   

   또 얼빵영애라고 불렀어.

   

   거기에다 나보고 속이 좁은 사람이라니?!

   

   틀린 말이라고는 양심상 말 못하겠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나!

   

   내가 왜 티어라 마스의 식사를 먹여주고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야!

   

   조금씩 루시의 도발에 넘어가고 있는 조이는 당초 루시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단 생각을 이미 잊어버린 뒤였다.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루시님의 저 건방진 모습을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래. 맞아. 내일 소울 아카데미의 시험이 있잖아.

   

   “루시님. 내일 소울 아카데미의 시험을 치시죠?”

   “네. 그런데요.”

   “그 시험에서 제가 얼빵하지 않다는 걸 입증해 드리겠어요.”

   “어떻게 말인가요?”

   “시험의 성적으로 내기를 해요. 제가 루시님보다 성적이 높다면 루시님은 저보다 못한 사람이니 얼빵하단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루시는 조이의 말을 듣고는 키득거리며 웃음을 흘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제가 성적이 더 높으면 얼빵영애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요?”

   “그 호칭. 받아들이죠.”

   

   조이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루시님이 알른 가문의 핏줄을 이은 사람인지라 육체적인 능력은 많이 오른 것 같지만 그 뿐이다.

   

   아카데미 시험은 실기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비중이 더 높은 것은 오히려 필기시험이다.

   

   소문에 따르면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라는 루시가 그녀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카데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그녀가 어떻게 조이를 이기겠는가.

   

   “두고 봐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어서 다신 얼빵영애라는 소리를 내뱉지 못하게 만들어주겠어.

   

   *

   

   소울 아카데미의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철문 앞에 도착했을 때에도 나는 정신을 반쯤 놓아버린 상태였다.

   

   어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아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조이의 면전에다 대고 얼빵영애라는 소리를 내뱉다니!

   

   당연하게도 본의는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조이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은 그저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삿말뿐이었다.

   

   그런데 메스가키 스킬이 제멋대로 내가 한 말을 왜곡해서 얼빵영애라는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처음에 조이가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을 때 거부했어야 했어.

   

   메스가키 번역이 참사를 일으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애정캐랑 티어라 마스에서 식사를 한다는 환상적인 상황에 이끌린 나머지 현실을 부정한 게 문제가 됐다.

   

   사실 식사 중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말이 왜곡될 거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냔 내 전략은 괜찮게 먹혀들어갔으니까.

   

   식사의 분위기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이는 티어라 마스의 음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식사를 하는 내내 부드럽고도 잔혹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은 꼭 사람 하나를 묻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땐 그냥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내가 얼빵영애라는 소리를 내뱉은 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녀는 입술을 굳힌 채 가만 나를 바라보았다.

   

   조이의 외모 때문에 정확히 그녀가 어떤 기분인지를 추측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확실했다.

   

   ‘제가 얼빵해 보이나요?’

   

   그렇지 않았다면 살벌한 어투로 그런 물음을 던지지 않았겠지.

   

   그 말을 들은 나는 패닉에 질려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말실수를 했습니다.’

   

   허나 무작정 내뱉은 사과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올 땐 전혀 다른 말이 되어 있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말실수를 했네요.’

   

   그건 분명한 도발이었다.

   

   사실 얼빵하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기분 나빠 보이니까 거두어 줄게 라는 표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조이의 표정이 더 험악해졌던 걸 생각해보면 그녀도 나와 비슷한 해석을 한 것이리라.

   

   그 말을 하고부터는 머리가 하얘져서는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조이 분명 화났겠지.

   

   으으. 망했어.

   

   애정캐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내 손으로 날려버리고 말았어.

   

   안 그래도 평판이 나락인 사람이 그런 무례까지 저질렀으니 절대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여아야. 언제까지 어제의 일을 가지고 땅바닥을 파고 있을 셈이냐.>

   

   할배의 목소리를 듣고서 현실로 돌아왔지만 우울한 기분은 그대로였다.

   

   <지난 일을 후회한들 무엇이 달라지더냐. 지금 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지만요. 할아버지.’

   <오해는 나중에 다시 만나 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애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에 합격을 해야 할 터 아니더냐.>

   ‘…그건 그래요.’

   <그 조이라는 아이는 험악히 생겼어도 훌륭한 천성을 지닌 사람 이라하지 않았느냐. 후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 이해를 해 줄 것이다.>

   ‘제 말투로 잘 해명을 할 수 있을까요?’

   

   내 질문은 들은 할배가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까지 잘만 나불거리던 인간이 갑자기 침묵을 지키다니.

   

   제대로 해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할배?

   

   진짜 너무하네.

   

   이럴 때는 거짓말로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줘야지.

   

   이런 꼰대 할배가 어떻게 이백년 전 영웅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사인지 모르겠네.

   

   분명 할배가 죽기 전에 음유시인들한테 돈을 뿌리고 다녔을 거야.

   

   뇌물로 자신의 행적을 멋지게 꾸며달라고 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영웅담 속의 루엘과 메이스에 깃든 할배 사이의 격차를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속으로 잔뜩 성을 내고 나니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날아갔다.

   

   하아.

   

   오해를 푸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못하면 그 기회조차 얻지 못해.

   

   뭣보다 아카데미 시험에서 떨어지면 루시의 삶이 끝날지도 모르잖아.

   

   지금은 어제 일을 잊고 시험에 집중을 할 때야.

   

   가자! 시험을 치러!

   

   *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며 소울 아카데미 시험장에 들어온 나지만 책상에 앉은 순간부터 의욕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나를 기다리는 건 수많은 글자가 적힌 종이더미였으니까.

   

   오래 전부터 필기시험을 때려치우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이미 공부포기자라 불러 마땅한 상태였다.

   

   그런 내가 시험을 위해서 준비한 건 단 하나였다.

   

   바로 다섯 개의 숫자가 각 면에 적힌 펜.

   

   잘은 모르지만 지금 내 운 스텟은 꽤 높은 상태다.

   

   주신 교회의 목걸이가 주는 운 스텟에 루엘의 둔기가 지닌 운 스텟이 합쳐졌으니까.

   

   상태창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평균치보다는 높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백지나 다름없는 내 머리로 문제를 푸는 것보단 하늘에 계신 위대한 다이스 갓의 점지를 받는 편이 더 높은 점수를 보장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들이 책을 꺼내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책상에 펜 하나만을 올려둔 채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

   <왜 그러는 게냐?>

   ‘주변에서 제 눈치를 보고 있는 거 맞죠?’

   <그래 보이는 구나.>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는 동안 느낀 거지만 시험장에 들어와 나를 본 사람들이 자꾸 내 눈치를 살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계를 한다고 해야 할까.

   

   내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부터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이 사람들이 얼마나 날 싫어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여아야. 대체 무슨 업보를 쌓고 다닌 것이냐.>

   ‘글쎄요.’

   

   저도 알고 싶은 내용입니다.

   

   사교계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귀족 자제분들이 하나 같이 나를 피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시험장 내에서 내 주변 자리는 함참동안 텅텅 비어 있었다.

   

   결국엔 자리가 부족해서 채워지긴 했지만.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시험이 시작되었다.

   

   첫 과목은 바로 역사였다.

   

   시험 과목에 대해 아는 게 없다시피한 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백지나 다름없는 과목.

   

   ‘신성왕국의 왕이었던 니챠드 3세는 외적의 침입에 맞서…’

   

   첫 문제의 지문을 읽던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깨닫고는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서 기도를 올렸다.

   

   다이스 갓이시여.

   

   부디 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십시오.

   

   제가 굴리는 주사위가 저 알아 정답의 길을 찾아가도록 보우해 주시옵소서.

   

   만일 제 기도를 들어준시다면 제 모든 것을 걸고 다이스 갓의 위대함을 세상에 널리 떨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3번이 정답이구나.>

   

   오오! 다이스 갓께서 응답을 해주셨다!

   

   저는 당신께서 펜으로 대답을 해주시리라 믿었거늘 이 불경한 자를 위해 직접 강림을 해주신 겁니까?!

   

   <무얼 하고 있느냐. 빨리 눈을 뜨고 다음 문제나 읽거라.>

   ‘…할아버지였어요?’

   <그럼 너에게 속으로 말을 걸 사람이 나 말고 더 있느냐?>

   ‘저는 다이스 갓께서 강림하신 줄 알았는데!’

   <다이스 갓? 그건 또 어디의 이교더냐?>

   

   이교라뇨!

   

   다이스 갓께서는 이 게임 세상을 보우하시는 위대한 확률의 지배자란 말입니다!

   

   그 분을 모욕하면 명중를 100%를 찍어도 감나빗이 뜨는 벌을 받게 된다고요!

   

   뭐. 이건 농담이고.

   

   ‘할아버지가 이걸 어떻게 알아요?’

   <내 말하지 않았느냐. 역사에 관해 공부하는 것은 귀족의 소양이라고.>

   

   그런 말을 하긴 했죠.

   

   공부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서 흘려들었지만.

   

   <예전부터 알던 것들에 더해 하르네라는 녀석이 알려준 것이 더해졌으니 어지간한 것은 다 외웠다고 생각한다만.>

   ‘어. 그럼 2번 문제의 정답은 뭔가요?’

   <이건 1번이다.>

   

   할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귓가에 정답을 속삭여 주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단호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심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아 루엘님! 당신이 영웅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제가 감히 당신을 의심하다니!

   

   죄송합니다! 회개하겠습니다!

   

   <하아. 어찌 지난 두 달 간 공부를 한 나보다 평생 수업을 들어온 아해가 부족할 수 있는 것인지.>

   

   감탄을 하는 내 귓가에 날 깎아내리는 말이 들린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세상을 구한 영웅인 성기사 루엘이 그런 말일 할 리 없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정답을 가르쳐 주는 건 불법이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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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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