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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거 잠깐 기다려봐요.”

   

    성이향을 잠시 세워둔 서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건 무조건인데.’

   

    무림 놈들이라고 미적 감각이 다른 건 아니다. 서준이 볼 때 예쁘장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보통 미인이 맞다.

   

   그리고 당연히 얘네도 예쁜 거 좋아한다.

   

    ‘이 정도 얼굴이면 마을에서 짝사랑이든 뭐든 하는 남자가 없을 리가 없지.’

   

    물론 우리 춘봉이보다는 이천만 배 정도 못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한 미인이라 할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서준이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결혼 안 할래요?”

    “예…?”

   

    줄곧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던 성이향이 입을 쩍 벌렸다.

   

    참고로 춘봉이도 마찬가지였다.

   

    “뭐, 무, 뭐…? 겨, 결혼…? 뭐…?”

   

    춘봉이가 망가져버렸다. 

   

    벌어진 채 다물어질 생각을 안 하는 턱을 손으로 딱딱딱 닫아주고 있으니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야, 야! 너 미쳤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왜.”

    “왜? 왜애!? 이, 이 개새끼! 씨발새끼! 그냥 나가 뒤져!”

   

    얘가 왜 이럴까.

   

    금춘봉 수리 전문가답게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높다높다를 시전하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춘봉의 격렬한 반항 아래에 무산되고 말았다.

   

    “나쁜 새끼….”

    “아니, 진짜 왜요…?”

   

    급기야 이젠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당황한 서준이 그녀의 볼을 콱 움켜잡았다.

   

    “그새 그렇게 정이 들었어?”

    “뭐…? 지,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그렇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춘봉이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새 그렇게 정이 들었냐니? 그러면 지난 일 년간의 세월은 도대체 뭐였던 거지? 

   

    너무 충격을 받아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서준이 그런 그녀를 쿡쿡 찔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였다.

   

    주륵-, 흘러내리는 눈물에 식겁한 서준이 그녀를 냅다 안아들었다.

   

    “아, 아니. 진짜 왜 그래. 저 사람이 결혼한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야? 아직 한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야.”

    “나, 나는….”

    “아이고 우리 춘봉이. 그…, 뭐라 불러야 되지? 이향 씨? 얘랑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요?”

   

    가만히 서준을 바라보던 이향이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그 결혼이라는 게 누구와 누구의 결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야 이향 씨랑 여기 마을 사람이랑이죠?”

    “아하, 그렇죠?”

   

    이향이 살풋 웃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던 춘봉이의 몸이 우뚝 멎었다.

   

    이거 딱 그거다. 폭풍전야.

   

    뭔가 좆되는 게 시작되기 전에 미리 경고하는 깜깜한 침묵.

   

    “이, 으아…!”

    “아이고! 우리 춘봉이! 우리 춘봉이 높다높다!”

   

    위기를 감지한 서준이 냅다 춘봉이를 치켜들고 마당을 달렸다.

   

    심각한 병신이 아니고서야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병신이 아니다.

   

    춘봉이가 수치심에 자살하려는 걸 막으려면 혼을 쏙 빼놓을 필요가 있었다.

   

    “우리 춘봉이 최고다! 우리 춘봉이가 제일 착해!”

    “끄, 그으으…!”

    “와! 저기 봐 춘봉아! 햇님이 떴어!”

    “으갸아아아악…!!”

   

    실패했다.

   

   

    *

   

   

    어차피 실패한 거, 좀 놀려도 괜찮지 않을까?

   

    “어유 우리 춘봉이. 오빠가 그렇게 좋았어요? 오빠가 결혼한다니까 막 뺏기는 거 같고 그래?”

    “…….”

    “귀엽기도 하지. 우리 춘봉이 아주 그냥 이 오빠가 평생 데리고 살…. 악!”

    “죽여버릴 거야!”

    “사, 살려주세요!”

   

    실컷 쳐맞은 뒤에야 전에 하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근데 우리 무슨 얘기 하고 있었죠? 아, 맞다. 아무튼 그래서 참한 남편감 하나 구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편은 갑자기 왜….”

    “돌아갈 데가 없다면서요. 그러면 만들면 되죠.”

   

    이름하야 짝짓기 대작전.

   

    서준이 자신만만하게 작전을 설명하자 이향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같은 여자를 받아줄 사람은 없을 거예요. 심지어 이미 더럽혀진 몸인 걸요.”

    “이게 유니콘들도 가끔 상황 봐가면서 뿔을 꺾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예?”

   

    처녀 애호가들도 아주 극성이 아니라면 이 정도 얼굴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게다가 막말로 성이향이 잘못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양반 가문도 아닌 놈들이 그런 걸 그렇게 따질까?

   

    이 남자 저 남자 갈아타는 마을 버스 같은 여자도 멀쩡히 결혼하는데 성이향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성이향은 그중에서 마음 가는 사람 하나 골라잡으면 끝나는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 계획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혹시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라든가 없었어요?”

    “…….”

    “오, 뭐야 뭐야.”

   

    표정 보니까 있는 것 같은데?

   

    서준이 삐죽 웃자 성이향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죠. 분수에 넘치는 사랑에 몸을 불태울 생각은 없어요.”

    “좀 자신을 가져도 될 것 같은데.”

    “허영일 뿐이어요.”

    “흠….”

    

    이렇게까지 싫다는데 억지로 도와주는 것도 좀 그렇다.

   

    서준이 입맛을 다시던 그때,

   

    쿵쿵-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들어본 목소리다. 

   

    드륵-,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춘 노파가 성이향에게 말했다.

   

    “향아, 열어줘라.”

    “…예.”

   

    머뭇거리며 대문으로 다가간 성이향이 조심스레 대문을 열었다.

   

    “향아.”

    “아저씨….”

   

    대문 너머에 서있는 사내의 얼굴이 익숙하다. 어제 성 씨와 함께 와서 그를 말리던 그 사내였다.

   

    “…어제는 정말 미안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

    “…아녜요. 아저씨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내가 잘 말렸어야 했는데.”

    “그런 말 마셔요. 아저씨한테는 정말 서운한 것 하나 없어요.”

   

    머뭇거리며 대화하는 두 남녀. 가만히 지켜보던 서준이 옆에 있던 춘봉이를 툭툭 두드렸다.

   

    “야야, 저거 그거지?”

    “…….”

    “춘봉 씨? 금춘봉? 거 춘보이?”

   

    애가 반응이 없다. 아직 후유증이 남은 모양이었다.

   

    입맛을 다신 서준은 차마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들 자신은 없어서 얌전히 춘봉이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 기침하셨소 은인.”

   

    그곳에는 왕대산과 장유호가 있었다. 

   

    장유호는 아직 몸이 성치 않은 듯 식은땀에 젖은 채 잠들어 있었고, 왕대산이 그의 이마에 얹어진 물수건을 갈아주고 있었다.

   

    “애는요?”

    “소령이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아직 자고 있소.”

    “아하. 하긴, 애들이 그렇죠.”

   

    여전히 굳어있는 춘봉이를 바닥에 내려준 서준이 왕대산에게 다가갔다.

   

    “근데 저번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 뭐든 물어주시오 은인!”

    “소령이 걔는 왜 호위랑 둘이 그렇게 나갔던 거예요? 산을 건너네 마네 하는 거 보면 집에서 꽤 멀리 나온 것 같은데.”

    “아, 그건….”

   

    후우…. 왕대산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하오.”

    “아뇨, 뭘.”

    “소령이는…, 그게. 주변 친구들이 조금 활동적인 편이라 말이오. 여기저기 여행을 자주 다닌다 하더이다.”

   

    왕대산이 잠시 말을 끊고 미간을 손으로 주무르다 말을 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령이도 여행이 가고 싶어졌던 모양이오.”

    “그걸 보내줬어요?”

    “장 호위는 일류의 고수요. 괜찮을 줄 알았지. 게다가 그리 멀리 나가는 것도 아니었소. 가문에서 산 하나 넘으면 있는 거리의 마을이 목적지였으니.”

   

    빠득-, 왕대산이 이를 갈았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바쁘다고 가문에 남아있던 게 문제였겠지. 다음부터는 결코 소령이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오.”

    “거 딸이 크면 그게 쉽지 않을 텐데. 아빠가 너무 들러붙으면 질색할 걸요?”

    “어, 어찌 그리 심한 말을 하시오 은인!”

    “아이고 저런.”

   

    이 사람 소령이한테 사춘기라도 오면 바닥에 주저앉아서 우는 거 아니야?

   

    끌끌 혀를 찬 서준이 춘봉이의 머리를 쓰다듬….

   

    탁-

   

    “…나 좀 내버려 둬.”

   

    춘봉이가 축 처진 걸음으로 터덜터덜 방에서 나갔다.

   

    서준이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 금 씨…?”

    “…은인. 이제 보니 은인께서 내 선배였던 것 같소. 소령이에게도 언젠가 저런 날이 온다면…. 허어….”  

   

    왕대산 개새끼의 추가타에 기어코 무너져버린 서준이 절규했다.

   

    “아, 안 돼애애애애…!!”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

   

   

    물론 진짜 울진 않았다.

   

    솔직히 나였어도 그런 착각을 하면 부끄러울 것 같긴 하니까.

   

    이럴 때는 슬쩍 다가가 적당히 선 잘 타면서 놀려주면 풀린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였다.

   

    “금춘봉을 잡으러 갈까요~.”

   

    자작곡을 흥얼거리며 방에서 나오자 성이향과 예의 그 사내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슬슬 대화가 끝나가는지 인사를 나누는 것 같은데….

   

    “오오.”

   

    사내가 성이향의 손을 붙잡고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자 성이향이 귀를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나이 차이가….’

   

    아빠 뻘쯤 되는 것 같긴 하지만, 뭐, 서로 좋다면야 문제될 게 없다.

   

    이거 중매쟁이 짓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밌겠구만.

   

    서준이 두 남녀를 훔쳐보며 실실 웃고 있을 때, 뒤에서 왕대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인.”

    “아오!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아카에 무라사키까지 연계할 뻔했다. 목숨을 건진 줄 모르는 왕대산은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하룻밤을 내내 고민했소.”

    “뭐를요?”

    “은인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옆으로 다가온 왕대산이 성이향과 사내 쪽을 잠시 흘끗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리 고민해보니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공밖에 없더이다.”

    “무공이요?”

    “물론 은인께서는 나보다 강한 무인이오. 하지만 우리 왕 씨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도법은 일절이라 할 수 있소.”

   

    왕대산이 손가락 하나를 펼쳐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검과 달리 베기에 특화된 도는 아마 은인께 꽤나 생소할 것이오.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더욱.”

   

    손을 거두며 포권한 왕대산이 진지한 눈을 하고 말했다.

   

    “그러니 내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은인께 도움을 드릴 기회를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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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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