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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종목은 어떤 걸로 하시겠나요.”

“8번이요.”

“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무덤덤한 안내를 받아 움직였다. 조금은 씁쓸한 감도 있다.

나 때는 8번 한다고 들면 주변에서 최소한 놀라는 척이라도 해줬는데.

어차피 실패하고 말겠지, 그런 생각이거나. 애초에 관심 자체가 사그라들어버린 것이다.

“오빠, 화이팅.”

“응. 다녀올게.”

역시 우리 마리아밖에 없다.

곧 펼쳐질 광경을 고려하면 이게 거창하게 응원씩이나 받을 일인가 싶으면서도.

“왜 이 몸은 그대가 하려는 그걸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더냐?”

“마리아도 그렇고, 아스트레아 너는 다른 종목이면 더 쉽게 통과할 테니까. 사람이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반면에 나는 이게 가장 확실하다.

몬스터에겐, 몬스터만의 방식이 있는 법이니까.

금쪽이 천마의 불평을 배경 삼아 게이트를 건넜다.

* * *

8번 종목을 담당하는 가상의 수호자. 마룡 오페이크.

한때 마계를 찾아온 외부인을 어느 순간 나타나 습격하여, 마계의 악몽으로 통했던 녀석이다.

그런 악몽을 베어낸 것이 용살자 루이비통이었으니. 이를 기려 탄생한 게 바로 이 예선전 8번 종목 되시겠다.

[단검으로 마룡의 심장을 찌르십시오.]

허공에 떠오른 설명에 눈길을 한 번 줬다가. 루이비통에게 작은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종목이 생긴 계기도, 단검을 가슴팍에 찌르기만 하면 되는 것도. 다 마룡을 일격에 해치운 그의 덕택이니까.

‘마룡의 첫 패턴은, 개미 털기.’

가만히 엎드린 채 이쪽을 응시만 하는 놈을 마주 보며.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다.

가상 공간에 입장을 하면, 마룡은 우선 날갯짓을 통해 자신과 대적할 자격을 검증한다.

그 바람에 주저앉으면 뭘 해보기도 전에 당하는 거고, 입구 밖으로 밀려나면 그대로 실격이다.

···

불어오는 바람은, 없다. 가만히 엎드려만 있다고 설명해다시피, 마룡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마룡의 패턴을 세세하게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여기서 이미 놀랐을 거다.

‘구경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여기선 밖을 확인 못 한다는 아쉬움을 뒤로. 멈추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날갯짓을 견뎌 자격을 증명한 다음은, 드래곤이라는 생물의 상징과도 같은 브레스가 날아온다.

마기를 품어, 닿은 존재만이 아닌 공간 자체를 오염시키는 재앙과도 같이.

아이템이나 장비마저 오염시켜 못 쓰게 만들기에. 막지 말고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그런 공격을 이 밀폐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광범위로 쏘아대는 거다. 괜히 통곡의 벽으로 불린 게 아니지.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마룡은 잠잠했다.

거리를 좁히고, 코앞에 다다라, 단검이 제 심장에 쇄도하는 순간까지도.

푹-

크롸아아아아-!!

마룡이 내부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포효를 외치다 빛이 되어 흩어졌다.

녀석 입장에서는 적잖게 억울한 처사일 터다. 브레스는 고사하고 손가락만 써서 으스러뜨릴 수 있는 허수아비겠건만.

한낱 중립 판정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해보고 당해버렸으니 말이다.

근데 뭐 어쩌겠냐. 꼬우면 루이비통이고 맘마통이고 간에 지가 어련히 이기셨어야지.

[예선전을 통과하셨습니다.]

“오빠아.”

가상 공간을 나선 즉시 마리아가 먼저 나를 발견하곤 뚜방뚜방 뛰어왔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은근히 머리를 내미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새 다른 걸 완수하고 온 모양.

아무리 내가 여유 부리며 설렁설렁하고 왔다지만, 위험 요소 하나 없던 나보다 빠르다니. 이건 칭찬감이 맞다.

“아스트레아는?”

“오빠랑 같은 걸로 하겠다고 떼쓰는 거, 마리아가 방금 설득해서 다른 데 밀어 넣었어.”

이제 보니 칭찬할 게 한 가지가 아니었구나.

우리 집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거 같은 마리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파라락 흩날릴수록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번져갔다.

“어디 보자···8번 도전하셨고, 실···성공? 성공···??”

그러던 중. 진행 요원이 결산을 위해 다가왔다. 저리 가성비 넘치게 놀라주니까 보람이 다 느껴진다.

그가 얼떨떨하게 결과를 기록하고, 어딘가에 연락을 넣는 것까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스트레아만 나오면 돌아가자.”

“먼저 가도 알아서 올 거라고 생각해.”

“거기, 자네···”

“응?”

마리아의 볼을 꼬집으며 아스트레아를 기다리려니. 이번에는 거구의 사내가 나타나 슬며시 말을 걸었다.

순간 덩치에 가려져서 샐리랑 같이 온 줄도 몰랐던, 막강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흑발의 남성.

누군가 싶어 고개를 갸웃대다가. 샐리가 뒤에서 입 모양으로 초고추장?이라길래 맥락상 모험가 길드 총지부장이겠거니 이해했다.

“저요?”

“그래 자네···혹시 방금 8번을 통과했나?”

“네. 맞아요.”

아무래도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온 듯했다.

잠시 말을 잃은 총지부장의 반응을 찬찬히 음미하다. 몰래 브이 사인을 보내오는 샐리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응답해 주었다.

“아해 어딨느냐! 감히 이 몸을 마나 실로 조종해 억지로 떠밀다니!”

“마리아. 분명 설득했다면서.”

“하지만 빨랐어.”

총지부장이 달리 뭐라 더 말을 꺼내지 않은바. 마리아랑 인사만 꾸벅하곤 아스트레아와 합류하였다.

저 양반이 친히 행차까지 하셨을 정도면 굳이 내가 더 들들 볶을 필요는 없겠지. 해도 샐리가 나서줄 거다.

공공장소에서 천마신공을 난사하려는 아스트레아를 어르고 달래 집으로 향했다. 이걸로 본선부터는 화제가 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 * *

[크롸아아아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마룡이 심장을 찔리는 장면을 보고는 영상을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봐도봐도 신기하다. 그 마룡이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꼼짝없이 당하다니.

이후에 다른 사람이 들어갔을 땐 멀쩡했다. 딱히 오류가 발생했던 흔적도 없다. 즉 속임수는 명백하게 아니다.

‘당장 내가 들어가도 저렇게는 못 할 텐데.’

잡기야 순식간에 잡기는 하겠지. 그러나 마룡을 아예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건 단연코 무리다.

드래곤이 어디 자기보다 강하다고 움츠러들 그런 족속이던가.

단순 기세만으로 제압하려면 전승의 네필리아나, 드래곤의 피 냄새로 진동을 했다는 용살자 루이비통. 이쯤은 데려와야 하리라.

‘허수아비 아이···’

소식은 익히 전해 들었다만, 직접 마주쳤을 적에는 별 느낌을 못 받았었다.

8번을 통과했다는 특이점만 빼면. 인상적이었던 건 차라리 옆에 있던 소녀들 쪽이다.

허나 그 허수아비는 마룡에게 도전하였고, 깔끔하게 승리를 쟁취했다.

‘덤덤한 태도였지.’

엄연히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칭호를 따낸 건데도.

아이는 자신의 업적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오히려 동료들을 칭찬해 주느라 바빴다.

‘그리고 또 비슷했던 사람이···’

샐리. 8번을 선택한 당사자 본인.

당시에는 정신이 팔려 차마 크게 신경을 못 썼던 부분이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샐리는 한껏 쫄아 있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평정을 되찾았다.

기억을 헤집을 것도 없지. 이번 연도에 8번을 돌파하는 이가 나올 것인가, 이 화제가 대두되고부터다.

샐리 또한 일찍이 확신하고 있었던 거다. 그가 성공할 거라는걸.

‘어쩌면 샐리가 8번을 고르게 부추긴 것도···’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진해서 가장 어려운 종목을 부탁하고 그걸 들어주는 건, 과연 부정행위라 봐야 하는지. 이게 참 애매하다.

그보다 특별한 접점도 없는 접수원을 당최 무슨 수로 꼬셨는지 원.

그러고 보면 아이라는 그 작자. 허수아비면서 어째 웬만한 잘나가는 남자들보다 여성 편력이 화려하다.

파티원을 보더라도 미소녀만 두 명에. 공식적인 인맥까지 나열해 보자면 황녀, 성녀, 기사단장. 하나같이 입이 쩍 벌어진다. 들리는 소문에는 생김새조차 잘 안 알려진 황궁 서고관이랑도 친하다나?

마치 여성을 유혹하는 스킬이라도 탑재한 게 아닐까 싶다.

“하···무슨.”

소버린은 자기가 생각해도 지나친 비약에 고개를 저었다.

허수아비한테 매혹 스킬은 무슨. 설령 있다 쳐도, 저 지경이면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대세를 따르는 게 맞다.

-“우리도 스타성을 지닌 S급 모험가를 배출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진작에 라인을 탄 선지자도 계시는 판국에 말이다.

그걸 떠나서, 확실히 나쁘지 않은 계획이기는 하다. 허수아비라는 점만으로도 어그로 성능은 탁월하고, 이미 대륙에 떨친 영향력도 상당하니.

-“일부는 살짝 뜯어고치기도 하고, 유동적인 룰 조정도 해보죠. 목표는 어디까지나 임팩트로!”

모험가 생활을 한 지 어언 20년. 그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책을 참으로 오랜만에 손에 쥐었다.

모험가 길드의 총지부장으로서, S급 승급 시험의 어떤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텁-

“샐리와 의논해 봐야겠군.”

첫 장을 덮고 통신구를 켰다. 책이라는 게, 핵심만 쓱 훑고 도장 찍는 서류랑은 많이 다르구나.

열정적이고 젊은 샐리라면 괜찮을 것이다. 아니어도 괜찮게 만들면 된다. 총지부장은 그녀가 아니라 소버린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찐감자 독자님 200코인 후원과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부족한 살림에 보태 소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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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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