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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이 개새끼들이 감히 심판관님을!"

       "뭐 하는 새끼들이야!"

       "지, 진정해!"

       "그게 아니라 이건…!"

         

       흠. 개판이군.

         

       나는 옥신각신하는 두 세력에게서 떨어져 멀리 내다보았다. 뱀 교단 시체는 없고, 떠나간 흔적만 잔뜩 있다.

       좋아. 좋아. 내 사랑스러운 이자벨라는 멀리 도망갔나 보군.

         

       멀리 가거라. 그리고 필요할 때 돌아오너라.

       나에게 은혜를 입은 걸 잊지 말고.

         

       오해는 금세 풀렸다. 훌쩍거리던 디모나가 라다토크에게 달라붙었다.

         

       "라, 라다토크가…주, 죽은 줄 알고…"

         

       어린아이처럼 디모나는 펑펑 울어 젖혔다. 권모술수에 능하던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라다토크도 의외였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이내 천천히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하드 형제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자하드…형제님이요?"

         

       디모나가 눈물을 닦고 나를 돌아보았다. 라다토크가 그답지 않게 활짝 웃었다.

         

       "듣고도 믿지 못하실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동하면서 하죠."

       "저도 잠 좀 자고 싶네요. 피곤해서 죽을 거 같아요."

         

       슬슬 눈 감아도 되겠지.

         

       나는 풀썩 눈밭에 쓰러졌다. 아. 몰라.

       누가 업어가든가 하겠지. 이제 진짜 한계다.

         

       "라다토크님."

       "예. 형제님."

       "저 잠 좀 잘게요."

       "물론입니다."

         

       그가 쓱 나를 등에 업었다.

         

       "좋은 꿈 꾸십시오. 형제님."

         

         

         

       . . .

         

         

         

       눈을 뜨니 대충의 상황이 전부 정리된 상태였다. 내리 연속 3일을 잤다나 뭐라나.

       이단심판관은 안에 있었던 일을 통 믿지 못하고 있었다. 깨어난 나를 보러 와서는 대뜸 물었다.

         

       "자하드 견습 사제. 태양신 라의 새로운 사도로 발탁되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저기요."

       "네?"

       "일단 밥 좀 주세요. 배고파 뒤지겠어요."

         

       이단심문관들이 슬쩍 일어나 밥을 가져왔다. 디모나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제 말이랑 라다토크 말 말고는 안 듣던 사람들인데…어떻게…"

       "형제님은 저희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죠."

       "받은 게 산더미이니, 평생 갚아도 모자랍니다."

         

       슬쩍 바라본 이단심문관들 허리춤에는 그때 가져온 듯한 무기들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아직 장인의 손길도 안 거쳤는데 그대로 쓸 정도라니.

       아예 푹 빠졌구먼. 음. 고기 맛도 아주 훌륭하군. 나만큼은 아니지만 맛있어.

         

       나는 야영지에서 가볍게 식사를 끝냈다.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라다토크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심판관 디모나의 입은 시종일관 닫히지 않았다.

         

       "라다토크 심문관이…나말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쓴다고요?"

       "형제님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라다토크님이 보는 눈은 있죠."

       "뭐가…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디모나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예쁘장한 외모에는 웬일로 진지함이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니까…자하드 견습 사제?"

       "네."

       "당신은 정말로 교단 지부에서 고대의 악과 만난 다음, 계승자로서 사도로 간택된 건가요?"

       "맞아요."

       "증명할 수 있나요?"

       "증명할 수는 있는데…여기서요?"

         

       디모나가 거느리고 온 사람들 대다수는 이단심문관이 아닌 듯했다. 소속된 부대가 다른 듯, 달고 있는 마크가 달랐으니.

       그녀가 내 말을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인도했다.

         

       "…보여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쓱 수르트를 꺼내 보였다. 디모나가 눈을 크게 떴다.

         

       "이 무슨 사악한…! 말도 안 돼요! 이게 교단 지부에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다고요?"

       "깊은 곳에 갇혀 있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찾았죠?"

       "라가 계시를 내렸어요. 교단 지부 지하에 봉인이 깨져 가는 고대의 악이 있다고.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 해야 한다고."

       "하지만…이건…"

         

       디모나가 수르트와 나 사이에 엮인 기묘한 실을 눈치챘다.

         

       "평생 이 악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요! 저주나 마찬가지예요! 이걸 들고 있다간…언젠간 몸이 오염되어서 죽을 거라고요!"

       "그것 또한 제 사명이겠죠."

         

       수르트를 한 번 씀으로써 인해, 그것의 소유주는 나인 것이 확실시되었다.

       마검 수르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종관계.

         

       그건 확실히 나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성력이 가끔 꿈틀거리고, 아주 미세하게 마(魔)에 의해 몸이 더럽혀지는 게 느껴졌으니.

         

       응. 근데 아니야.

       내 레벨업 속도가 더 빨라.

         

       나는 술술 털어놓던 거짓말 위에 진실을 한 스푼 더 얹었다. 생긋 웃었다.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라와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설령 못 버틴다 하더라도, 후계는 확실히 정하고 갈 생각이에요."

       "대체 왜…"

         

       디모나가 인상을 썼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나를 바라보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일단…인사가 늦었어요. 이단심판관 디모나가 당신에게 정중히 예의를 표해요. 이단심문관 라다토크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물론 다른 이단심문관들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제게 그런 말이 통할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확실히. 당신은 저 사람들과는 다르죠."

         

       눈앞에 있는 건 여우. 교단 내부의 정치 속에서 살아남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라다토크보다 훨씬 어린 주제에, 그 수완 하나만큼은 장난 아니었지.

         

       나는 어깨를 폈다. 얼굴에서 자상한 웃음을 싹 지웠다. 디모나가 나를 노려보았다.

         

       "뭘 원해요? 자하드 견습 사제?"

       "제가 원하는 건 일단 하나에요. 언젠간 도달하게 될 과정이지만, 제일 중요한 거죠."

       "…그게 뭔데요?"

       "아카데미 입학권."

         

       드디어 시작점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내년도 아카데미 입학권을 원해요."

         

       디모나의 대답은 한 차례 늦게 나왔다. 긍정도 아니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아니. 그러니까. 사도가 되었다는 사람이…원하는 게 고작 아카데미 입학권…"

       "그게 무슨…아니, 거쳐 가는 과정이더라도…다른 엘리트 코스도 아니고 고작…"

       "기껏 나에게 은혜를 입혀놓고서는…주교들도 구할 수 있다는 아카데미 입학권을 요구…"

         

       투덜거리는 디모나의 뺨을 쿡 찔렀다.

         

       "시끄러우니까 그만 떠들래요?"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디모나가 발끈했다.

         

       "내 힘이라면 더한 것도 쓸 수 있어요! 예를 들면…그래! 이단심문관들 전체가 당신의 세력이 된다든가! 그런 것!"

       "안 그럴 거잖아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기엔 이단심판관 디모나는 누구 밑으로 들어갈 만한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바에는 부하보다는 동료 관계가 낫지 않아요?"

       "…호오?"

         

       디모나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혹시 저에 관해서 사전 공부라도 해본 건가요?"

       "설마요. 제가 그냥 사람을 잘 봐서."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날 너무 잘 아는 거 같은데."

       "저는 저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워낙 유능한데, 뭐하러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겠어요?"

       "아하하. 콧대가 좀 높으시네요. 그러다 부러질라."

       "푸하하. 그럴 리가요. 콧대가 높은 것도 다 잘났기 때문인데, 이걸 누가 부러트릴 수 있을까요."

       "…두분 다 그만하시죠."

         

       라다토크가 우리 둘 사이를 중재했다. 쓱 나를 돌아보았다.

         

       "일단 형제님.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건 내부 고발 건입니다."

       "아 맞다. 까먹고 있었네. 대충 후딱 끝내버리죠."

       "후딱 끝낼만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저희가 사라진 지 한 달. 심판관님이 직접 말해주셨습니다."

       "심문관 말이 맞아요. 일이 이상하게 꼬였어요. 드웨인 대주교가 직접 나설 줄은 몰랐는데, 뒤에서 베버릭 견습 사제의 아버지인 브로디 주교와 모종의 거래를 한 모양인가 봐요."

         

       디모나가 서류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건 다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렸어요. 증거물들은 전부 은폐되었고요. 심문관들의 행보에 신경을 쓰고 있던 동안, 드웨인 대주교가 직접 깔끔하게 일을 정리했더라고요."

       "…진짜요?"

         

       아니. 잠깐만.

       기껏 내부 고발을 했는데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 넘어간다고? 나는 낙인까지 찍히는데?

         

       "거짓말이죠?"

       "아쉽게도 거짓말이 아니에요. 아이린 견습 사제의 성추행으로 일을 엮을 수는 한데…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신성 재판에 오를만한 건은 아니죠."

       "에이. 설마. 천하의 디모나가 그렇게 무능력할 리가."

       "…칭찬을 하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네요."

       "칭찬이에요. 칭찬."

         

       디모나가 나를 째릿 노려보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쓱 품에서 서류를 더 꺼냈다.

         

       "…물론 다 정리해뒀어요. 증거를 없애려 했던 흔적까지 전부."

         

       역시나!

         

       라다토크가 주인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디모나를 쳐다보았다.

         

       "저, 저에게는 아무 말씀도…"

       "비밀리에 붙여야 했으니까요.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들뿐이잖아요? 자하드 견습 사제는 아직 애매하지만, 이미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고요."

       "유능한 디모나 이단심판관에게 찬사를!"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마세요. 자하드 견습 사제. 닭살 돋잖아요. 반응이라도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놀라지도 않아서 재미없네요."

         

       놀라긴 놀랬다. 다만 다른 방법도 있어서 말이지.

       그냥 여차하면 다 뒤엎을 생각 했다. 나에겐 이제 무려 브류나크가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이용가치가 있다고 하니 그대로 교단에 있는 편이 나아 보였다. 날 싫어하는 무리가 있다고 해도, 이제는 나와 한팀을 맺은 사람 또한 있으니까.

         

       애초에 집단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원래 있는 걸 집어삼키는 게 훨씬 빠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고 말이지.

         

       "디모나 이단심판관님."

       "뭐요."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심문관. 이 사람 좀 마차 밖으로 던져주실래요?"

       "하하. 농담도."

       "농담 아닌데."

         

       디모나가 나를 째릿 노려보았다.

         

       "저는 심문관의 말을 신뢰해요. 하지만 그것도 다 제 나름의 검증을 거쳐야만 온전히 믿죠. 자하드 견습 사제.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얻고 싶다면, 당신의 능력을 증명해주세요. 그렇다면 저는 모든 이단심문관의 뜻을 대신해, 당신의 편에 서주겠어요."

       "부하로서?"

       "동료로서요."

       "그건 아쉽네요."

       "아까 당신 입으로 말한 거잖아요."

         

       놀리는 듯한 말투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도시를 떠나기 직전까지는 완전히 우위에 선 상태로 나를 갖고 놀았는데 말이지.

       이렇게 뾰로통한 디모나도 제법 귀여웠다. 음. 맛있군. 아주 맛있어.

         

       역시 사람은 유능해지고 봐야 한다니까.

         

       "걱정 마세요."

         

       거기다가 나는 강해질 길을 벌써 얻은 상태였다. 한쪽에만 달린 내 귀걸이가 찰랑거리며 움직였다.

         

       "아주 차고 넘치게 증명해줄 테니까."

         

       우리는 꾸준히 교단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잤던 시간과, 베이그니스 안에서의 시간을 모두 포함해 거진 한달 반 만에 나는 드디어 교단 본부가 있는 도시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도시 아인카드.

         

       얼어붙은 겨울의 끝에 출발했던 여정도, 어느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아인카드의 향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아아. 좋다.

         

       반갑지 않은 이들도 없다면 더 좋았을 텐데.

         

       "……"

         

       교단에서 나온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상만 보면 똥통에 집어넣고 싶어지는 베버릭 견습 사제 그의 아버지 브로디 주교.

       약간의 신도들을 거느린 채 그들이 우리를 맞았다.

         

       똥 씹은 얼굴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재판
    샤샤샥 진도 빼봅시다

    ps. 저 근데 이거 공지 어떻게 올리나요? 히로인들 외모 하나씩 정리하고 싶은데 ㅜ 공지 어떻게 올리는지 몰라서

    찾았습니다 ^^^^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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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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