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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34 – 신원보증인>

     

    1차 관문이 주체성의 시험.

    2차 관문이 창의력의 시험이라면.

    3차 관문은 전투력의 시험이었다.

     

    ‘아카데미 합격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이야.’

     

    3차 관문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합격한 아이린.

    그녀는 3차 관문 시험관에게 물었다.

     

    “매년 이런 시험을 치러왔던 건가요?”

    “그런 편이지.”

    “2차 관문 합격자들의 전투력은 시험하지 않아도 되나요?”

    “뭐하러? 전투력은 주체성과 창의력이 부족한 수동적인 열등생에게나 필요한 건데.”

    “……!”

    “북부대공녀 아이린. 북부에서는 종군마법사로 활약함. 직접 참여한 전선만 13개. 험한 전쟁을 겪어왔다면 더욱 잘 알겠지? 전투가 능사가 아님을.”

     

    아이린은 실감했다.

    전쟁은 아무리 벌여도 끝이 없다.

    죽이고 죽여도 늘어나는 것은 전사자의 숫자와 부러진 병기를 꽂은 무덤뿐.

    마족과의 오랜 전쟁에 지친 북부대공은 수도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것이 아이린이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기까지의 배경이었다.

     

    “이유는 마찬가지다. 참고가 되었나, 싱?”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그게 아카데미의 방침이라면 따르는 수밖에.”

     

    아이린과 싱을 비롯한 우수한 인재들은 3차 관문에서 손쉽게 합격했다.

    3차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도 상급반 시험에 실패했을 뿐, 하급반에서의 재시험에서 합격할 가능성은 차고도 넘쳤다.

     

    ‘이렇게까지 해도 그 꼬맹이만큼도 못한 평가를 받는 점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이린과 싱뿐만 아니라 모든 합격자들은 생각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실력차이를 증명해내었던 최유력 수석 합격자 오크노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배울 점은 전부 배워야겠다고.

     

    ‘예쁜 돌을 모으는 것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겠지?’

     

    아이린은 안주머니에 둥그스름한 돌멩이 하나를 고이 집어넣었다.

     

     

    * *

     

     

    <입학시험 상급반 합격자>

    <A그룹 17명>

    <B그룹 22명>

    <C그룹 5명>

    <총 44명>

     

    <입학시험 하급반 합격자>

    <A그룹 1223명>

    <B그룹 815명>

    <C그룹 48명>

    <총 2086명>

     

    <981기수 총 합격자>

    <상급반 44명>

    <하급반 2086명>

    <전체인원 2130명>

     

    휴게실에서 먹고 자고 쉬면서 소모되었던 체력과 부상을 회복하기를 며칠간.

    마나보드 위로 합격자 상세내역이 떠올랐다.

    도로시와 록펠, 두 소꿉친구들도 합격은 했지만 서로 얼굴 보기가 불편한지 개인실에 콕 박혀있다.

     

    “많기도 해라.”

    “2000명이 넘는 합격자라. 짐작하던 것 이상으로 상당한 인원이군요.”

    “으하핫! 어차피 대부분은 우리 쥐방울만도 못한 한주먹거리들 아니냐?”

     

    신이 난 동료들과 달리 내 기분은 조금 불편하다.

    일전의 미네르바 시험관과의 갈등 때문은 아니다.

    합격자의 그룹구분 때문이다.

     

    “그룹이라. 저런 건 처음 보는군요.”

    “지역 구분이에요.”

    “오크노디양은 뭔가 알고 계십니까?”

    “A는 변방. B는 중앙. C는 특수에요. 중앙은 땅이 넓으니까 대륙 동서남북은 변방으로 치는 거죠. 저희가 아마 A그룹일 거고요.”

    “기껏 합격자를 뽑아놓고 출신별로 다시 나누다니, 이해하기 어렵군요.”

    “다시 나누는 게 아니에요. 변방 출신 응시생과 중앙 출신 응시생은 서로 다른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렀으니 별개로 묶이는 거겠죠.”

     

    지젤과 이사벨이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귀족가에서는 그런 것까지도 가르쳤습니까?”

    “오크노디는 아카데미 관련만 되면 지식의 편중치가 눈에 띄게 늘어나네.”

    “우, 우연이에요. 배운 게 기억난 것뿐이에요.”

     

    대충 지젤의 말을 주워서 써먹고 있으려니 “그건 이상한데.”라는 진중한 목소리가 훅 들어왔다.

    서부귀족연합 서열 1위.

    안데르센 프레첼 공자가 옆 테이블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끼어들었다.

     

    “서부삼국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이치 왕국의 제 1 귀족가문인 프레첼 대공가의 차남인 이 안데르센 프레첼조차 모르는 이야기를 아는 응시생이라.”

    “그, 그럼 저희 파파가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겠죠!”

     

    미안 파파.

    이럴 때 파파를 안 써먹으면 언제 써먹겠어?

     

    “서부삼국을 대표하는 강대국의 제 1 귀족가문을 능가하는 정보력이라. 기대되는군. 오크노디, 그대가 숨겨온 출신이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동감이에요. 어느 나라의 왕족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이해할 수 없는 정보력이니까요.”

     

    서귀연의 서열 2위.

    홍일점 <아카디아>가 부채 너머로 눈만 내민 채 속을 꿰뚫어보겠다며 눈을 번뜩였다.

    옷차림은 동방의 차이나드레스.

    어깨에는 남만족의 문신.

    중앙 귀족영애들의 필수소품인 부채까지.

    최신 트렌드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죄다 따라한다 하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무근본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인기순위 20위권 후반대의 조연급 여캐다.

     

    ‘칫. 아카디아 주제에 말대꾸라니.’

    “이 꼬마아가씨, 표정이 왠지 열 받는데요.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딱히? 북부의 모피코트만 더하면 동서남북을 다 모았겠다는 생각밖에 안했는데요?”

    “어머. 의외로 센스가 좋네요? 안 그래도 겨울용으로 코트도 마련해뒀는데. 제 센스를 알아주다니, 제법 기특한 아이인데요?”

     

    2티어 조연인 NTR히로인 유이보다 인기 없는 2.5티어 조연의 호감도라니, 하나도 뿌듯하지 않다.

     

    “이건 우리 피렌체 왕국의 명물, 오징어튀김이에요. 휴게소에 딸린 식당에서 팔기에 사왔죠. 여자끼리 가끔 유행하는 소품 얘기나 해봐요.”

     

    오징어튀김을 받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지.

     

    “아카디아는 오늘부터 1티어 최애에요. 아무도 무시할 수 없어요!”

    “…1티어?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들 나름의 칭찬법이겠죠? 고맙게 받아둘게요.”

     

    얌냠냠.

    뫙냥냥.

     

    복스럽게 오징어튀김을 먹어치우며 입 안에서 바스러지는 튀김의 식감과 씹는 맛에 몸을 부르르 떨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뻐하는 사이.

    휴게실의 창문을 부리로 톡톡 두들기며 까마귀 한 마리가 존재감을 어필했다.

     

    “뭐지?”

    “다리에 뭔가 묶여있어.”

    “전서구다.”

     

    동방검객 싱이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말했다.

     

    “동방에서는 통신마법 대신 새의 다리에 전언을 적어둔 종이를 묶고 날려 보내지.”

     

    까마귀는 가까운 책상에 앉아 부리로 다리에 묶인 끈을 풀고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파다닥

     

    그리고는 가까운 사료통을 향해 돌격하는 까마귀!

     

    “오크노디 같네.”

    “후후. 동감입니다.”

    “으하핫! 플라잉 쥐방울이 나타났구나.”

    “우씨. 그런 방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전 쥐방울이 아니에요. 아직 성장기에 키도 앞으로 계속 계속 엄청 자랄 거거든요! 한 2m 30cm까지!”

    “그건 너무 크지 않냐?”

     

    근육남캐시절의 키를 말하니 손오천이 배를 잡고 폭소까지 했다.

    진짜 내가 남캐였으면 저 건방진 원숭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눈높이의 차이를 알게 해줄 텐데!

     

    “오크노디 응시생. 널 부르는 쪽지다. 아래층의 상담실로 오라는 미네르바 시험관의 호출이야.”

     

    윽. 하필이면 그 여자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상담실로 향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절 부르셨어요?”

    “오늘은 다른 용무로 응시생을 불렀다.”

     

    미네르바가 하나의 도표를 보여주었다.

     

    “이게 먼데요?”

    “A그룹과 B그룹, C그룹을 나눈 그룹표기다. 합격자는 변방의 A그룹, 중앙의 B그룹, 그 외의 C그룹으로 나뉘지. 입학 후에도 이 그룹은 계속 유지된다.”

    “저야 어차피 A그룹이잖아요? 변방에서 티켓을 받고 변방시험장에서 입학시험을 치렀으니.”

    “그게 문제다. 확인해보니 오크노디 응시생은 국제신원등록마도보관서에 한 번도 등록을 하지 않은 미등록자더군.”

    “앗.”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아니지?

     

    “신원 미등록자는 변방에도 중앙에도 소속될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 출신이 불분명한 이들을 모은 C그룹이다.”

    “에엣.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운신에 자유가 사라지고 어딜 가든 항상 교관의 감시 및 허락 하에 다녀야 하지.”

     

    안 돼!

    그럼 스탯석도 못 모으고 꼭 미리 깨야 할 이벤트도 깨러 못 다니잖아.

    몰래 서고에 침입해서 일반 책으로 위장한 금서를 찢을 수도 없고, 조각상 사이에 숨은 가고일과 싸우지도 못하고, 정원에 불을 질러서 만드라고라를 불태울 수도 없는걸!

     

    “힝. 한 번만 봐주면 안 돼요?”

    “안 된다.”

     

    미네르바는 매정했다.

     

    “그러니 오크노디 응시생은 앞으로 본관이 붙인 교관과 24시간 동행해야 한다.”

    “너무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난 3일. 72시간 동안 오크노디 응시생의 신원을 보증할 인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보증인이 나타났지.”

     

    미네르바가 손을 까딱 하자 상담실 구석의 커튼이 열리며 익숙한 정장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조나!”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건강히 지내셨습니까.”

     

    와다다 달려가서 와락 다리를 껴안았다.

    한 번 호루라기를 불어서 소환하면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충성도 100의 집사.

    이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배신하지 않는 나만의 집사, 조나 와이히엠하이.

     

    “안 됩니다.”

    “으겍.”

     

    이마를 한 손으로 꾹 누른 조나가 나를 떼어놓았다.

    나름 강해졌다 싶은데도 근력으로는 쨉도 안 될 정도로 조나는 힘이 강했다.

     

    “아카데미 시험관이 보고 있습니다. 체통을 지키십시오, 아가씨.”

    “치. 어떻게 사람이 하나도 안 변해요? 오랜만에 봤는데 또 ‘안 됩니다.’부터 나오고.”

     

    조나는 반갑지도 않은 걸까?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자 조나가 특유의 험악한 얼굴로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입꼬리를 올렸다.

    우와…….

    아무리 내 집사라지만 저건 심하다.

    사람 하나 족칠 것처럼 살벌하게 웃는 것 봐라.

    이 사람은 어디 가서 웃으면 안 되겠어.

     

    “조나. 웃는 얼굴 3주 압수!”

    “……?”

     

    나 아니면 누가 이런 미소를 참아주겠어?

    그니깐 앞으로는 나 혼자만 봐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든든한 집사

    1화의 내용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내용상에 큰 변화는 없고 어수선했던 내용을 조금 정돈한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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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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