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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클라이스의 주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헤를라인 교수와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나가며 혼성마도를 연구하고는 있었지만, 그만으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했다.

         

       황자와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원초 기획했던 플레어의 개발까지 늦어지고 있으니 클라이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거기에 입학식에 나타난 마수의 처리까지…. 할 일이 산더미군요.’

         

       입학식에 나타난 드레이크의 무리, 그중에는 상급 마수로 분류되는 개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급과는 달리 상급부터는 아카데미를 막 졸업한 초짜 마도사들도 상대하기 어려운 등급이었다. 그들은 군대에 입영한 뒤 본격적인 전술훈련을 받아야만 대처가 가능하다.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에도 클라이스를 포함한 이사회 산하 조사위원들은 틈날 때마다 틸레트의 뒷산을 방문해 마수가 범람한 원인이 무엇인지 수색했다.

         

       특이사항이라고는 산 깊은 곳에서 발견된 하급 마수의 시체.

         

       그리고 중앙광장의 분수대에서 발현되었다던 축조진의 중심부.

         

       ‘설마 제물을 바쳐서 더 강한 개체를 소환한 건가요?’

         

       그런 마도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종류가 다양해서 갈피를 못 잡을 정도였다.

         

       당장 최상급 지계마도인 ‘메카로멘시아’만 해도 죽은 마수를 골렘으로 탈바꿈시키는 마법이다. 원소마도에도 그런 게 있는데, 하물며 죽은 마수로 새 마수를 소환해내는 고유마도가 없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다 보니 자연스레 편두통이 찾아왔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클라이스는 담뱃대를 꼬나물고 밖으로 나왔다.

         

       마력초가 가져다주는 건 마력뿐만이 아니었다.

         

       알싸하면서도 달달한 느낌. 불안한 마음도 잠깐이나마 진정시키는 성분이 들어있는 마력초는 마력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애용받는 기호품이었다.

         

       툭, 툭 하고 담뱃재를 털어낸 클라이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한 곳은 어느 학술기관이었다.

         

       아카데미에 부속으로 있는 제립(帝立) 학술기관. 황제가 세우고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제국 마도 지식의 산실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클라이스 또한 이곳의 정회원이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으니 별다른 조건 없이도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오셨습니까, 하스펠트 교수님?”

         

       클라이스의 주 업무는 연구와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학회의 다른 회원이 낸 논문을 심사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다. 이 일이 정규 업무와 다른 점이라면, 추가 수당을 받는다는 것 정도.

         

       논문 심사로 벌어들이는 돈은 꽤 쏠쏠하다. 심사 인원이 적을수록 그 정도는 더하다. 심사를 요청한 사람이 낸 수수료 대부분을 자신이 받아갈 수 있다.

         

       오늘 클라이스가 심사해야 할 논문은 한 건에 그쳤다. 카테고리는 이론이었다.

         

       뛰어난 전투마도사는 이론가의 역할도 겸비한다. 전투에서 효율 좋은 마법을 사용하는 이론, 더 강력한 마법을 연사할 수 있는 이론 등을 모두 그들이 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라이스가 마도이론 분야의 논문 심사를 진행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심사해야 할 논문을 클라이스가 훑어보았다. 여섯 쪽 분량으로 이루어진 단편이었지만,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제목 : 마소와 마력 에너지는 서로 교환 가능한가?]

       [초록 : 그렇다.]

         

       ‘누가 초록을 이렇게 써요?’

         

       초록은 자신의 연구 내용 중 핵심이 되는 부분만을 압축하여 적는 곳이었다. 보통은 200에서 300단어 내외로 이 공란을 채우는 것이 템플릿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 논문의 초록은 짧다 못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간결해서 나쁘진 않은데.’

         

       적어도 클라이스에게는 처음 보는 양식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클라이스는 논문의 내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로부터 화염계 마소를 측정하는 연산자와 관련된 각운동량의 버금-카시미르 연산자, 마지막으로 시간에 따른 에너지를 측정하는 사차원 벡터 연산자가 모두 교환 가능함을 보였다. 증명 종료.]

         

       [나머지 속성(즉 수계, 공계, 지계)에 해당하는 연산자도 도입하여 같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클라이스라면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읽은 논문의 가치가 얼마나 천문학적으로 높은지를.

         

       이 세상의 반절을 차지하는 마소가 에너지와 교환 가능하다는 가설은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알음알음 주장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 가설을 증명해낸 사람은 전무했다.

         

       클라이스 또한 마법을 사용하면서 경험적으로만 알았던 사실이다. 마법을 쓰면 그만큼 에너지가 마력파 형태로 방출되겠구나, 하고.

         

       그 정확한 양을 새 이론에 기반하여 명료히 설명해내는 모습은 가히 혁신이었다.

         

       ‘이거라면, 할 수 있어요.’

         

       플레어의 다음 단계를.

         

       화계마도의 극강을 완성할 수 있다. 이 이론을 기반으로 보다 정확한 회로를 구축하고, 스크롤을 안정화시키는 계산을 진행할 수 있다.

         

       수정할 거리는 거의 없었다. 오탈자 몇 개만 잡아낸 클라이스는 문제가 없다는 의사로 틸레트의 인장이 새겨진 도장을 같이 딸려 온 서류에 찍었다.

         

       ‘저자가 누군지 알고 싶네요.’

         

       심사 시 심사하는 사람과 심사받는 사람이 작당할 수 없도록 저자의 공란은 심사관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클라이스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내심 아쉬워했다.

         

       ‘…이 정도의 연구성과에요. 분명 엄청난 석학이겠죠.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런 생각과 함께, 클라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애탐을 담배로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

         

       클리온은 주말 내내 황성에만 처박혀 살았다.

         

       그가 방구석 폐인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평소와 같았더라면 반반한 평민 여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위장을 한 채 시장가를 어슬렁거렸을 것이다.

         

       “대체 왜 실패한 거지?”

         

       그는 지금 에테르를 수중에 얻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5천 장.

         

       은화나 동화도 아니고, 자그마치 금화 5천 장이다. 그만한 금액을 받고도 꼬리치지 않는 평민 계집아이는 여태까지 없었다.

         

       제국의 황금은 오직 황실에만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오랜 전쟁으로 인해 징세율이 높아지면서 부의 불균형은 커져 있는 상태였다. 그 탓에 서민 대부분은 풍족함이 결여된 삶을 살아갔다.

         

       ‘그런 연놈들한테 금화 한두 푼 쥐어주고 대가리 숙이게 만드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는데….’

         

       에테르는 그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머리 빳빳하게 들고 자신에게 항변했다.

         

       분명 돈이 부족할 텐테. 자신은 하루를 살아갈 만큼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듯이 황자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예 만 장 단위로 들고 갔어야 했나?”

         

       똑똑.

         

       ─ 황태자 전하 계십니까?

         

       “들어와.”

         

       제2황자가 기거하는 침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황실의 모든 사람이 클리온의 성격을 안다. 조금만 핀트가 어긋나도 화를 내기 일쑤였으니까. 급무를 알리려는 시종조차도 들어올 땐 조심해서, 천천히 열고 들어오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클리온은 침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음에도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눈앞에 나타난 인물을 본 황자의 입꼬리가 금세 올라갔다.

         

       “블랜튼 공작! 때마침 잘 왔네!”

       “전하께서 부르시는데 당연히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잭 블랜튼.

         

       사대공작 중 물을 관장하는 그는 클리온을 모시는 제2황자 파벌의 선두주자였다.

         

       “잭, 내 말 좀 들어보게. 자네가 하라는 대로 계획을 짜서 실행했더니 그 건방진 년이 날 내쳤어!!”

       “금안족 소녀가 전하의 돈을 받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래! 필요 없다고 단칼에 거절하더군.”

         

       클리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에테르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의 장대한 목표인 ‘하렘 1000명 건설’에 포함되는 모든 여성은 아름답고, 동시에 특별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금안족 소녀는 클리온의 컬렉션에 포함되기에 딱 알맞은 존재였다.

         

       “그 년을 꼭 침대로 데려오고 싶은데….”

         

       그러려면 아카데미부터 못 다니게 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자퇴를 시키건, 강제로 제적을 시키건.

         

       물론 금안족이니 실기 과목에서 F를 받고 학사경고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없잖아 있다. 한두 번 정도 학사경고를 받다 보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겠지.

         

       “너무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금안족이라면 뭔 짓을 하더라도 졸업시험에서 떨어질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머지않아 황태자 전하께 울고불고 매달리겠지요.”

       “그렇겠지. 하지만 난 그 잠깐을 기다릴 시간이 없단 말이다!”

         

       클리온의 성격이 급한 건 블랜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곧바로 다른 해결책을 내놓기로 했다.

         

       “그렇다면 우선 다른 학생부터 꾀어내는 게 어떤지요?”

       “다른 학생이라니. 혹시 엘리예프 자작의 영애를 말하는 건가?”

       “예. 전에 들여오시려고 했던 그 영애 말입니다.”

         

       그 말에 클리온은 윽, 하고 반사적인 신음을 내뱉었다.

         

       “그 년이 금안족보다 더 다루기 까다롭지 않을까?”

         

       이르카 엘리예프. 군청색 머리칼과 사나운 눈매가 특징적인 소녀.

         

       드세 보이는 외양을 하고 있었지만, 그 외모에서조차 아름다움이 묻어나오는 여인이었다. 애초에 예쁘지 않았더라면 클리온이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르카는 생긴 대로 사는 소녀라는 것.

         

       그녀의 성깔은 클리온과 비견될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클리온의 우려와는 다르게 블랜튼은 묘책을 내놓았다.

         

       “괜찮습니다. 엘리예프 자작가는 황실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는 하급 귀족에 불과하니까요. 자작가를 직접 압박한다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 방법은 저번에도 써먹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 년이 아카데미로 도망 온 거고.”

       “틸레트에 와서 자작가 영애의 신분이 말소되었다고는 해도 가족과의 관계는 그대로죠. 부모를 움직이게 만들면 못 들어먹을 새끼는 없을 겁니다.”

       “호오.”

       “그렇게 그 아이가 학교에서 떠나게 만든다면 금안족 소녀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엉성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생각이었다.

         

       “정말 괜…찮은가? 괜찮겠지?”

       “네. 성공만 한다면 두 열매를 동시에 따먹는 꼴이 될 겁니다.”

       “그렇군. 그래, 잭. 자네 말이 맞네. 내가 무얼 고민하고 있었던 거지?”

         

       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는 건 권력이라는 이름의 칼을 빼드는 것뿐이리라.

         

       “으흐흐…. 블랜튼 공작, 늘 고마워. 늦어도 이번 주중엔 엘리예프 자작에게 가 봐야겠군!”

         

       계획은 월요일부터 실행한다. 클리온의 입가는 썩소로 번졌다.

         

       **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됐다.

         

       클리온은 중앙광장에서 칼침을 맞은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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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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