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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임무창이 딱딱한 글귀를 띄웠다.

         

       [전조, (알 수 없음) 번째 위기]

       [당신은 수로채의 몰락을 앞에 두고 있다.]

       임무 수행을 위한 행동

       선업)수로채를 도와 반란을 진압……

         

       청이 곧바로 임무창을 닫아버렸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까.

       어차피 관심도 없다.

         

       천하의 영향을 미치니 어쩌니 거창한 소리를 해도 이젠 안 속는다.

         

       천하에 영향을 주는 게 뭐 별건가?

       내가 숨만 쉬어도 세상 폐 하나 만큼 없앴으니 천하에 영향을 준 거지 뭐.

         

       어차피 선업 그까짓 거 조금 더 받겠다고 몹쓸 짓 하느니 내 맘대로 하는 게 나았다.

         

       스승님, 제자가 이러고 삽니다…….

       우리 여중생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청이 임무 창을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임무창이 다시 떠올랐다.

       청이 울컥했다.

         

       뭐여, 한번 해 보자는 건가?

       읽을 때까지 뜨겠다는 거야 뭐야?

       수많은 2회차로 단련된 스킵 솜씨를 보여줘?

         

       [구주혈겁 종말도래, 최종장. 마지막 위기]

       [당신은 오랜 추적 끝에, 잔혹한 음모의 진정한 배후자와 마주했다. 그것은 하늘 아래 숨 쉬는 모든 사람의 파괴자이자, 세상의 종말이었다.]

       세상을 위해 언연영을 처치하십시오

       *시혈독인)언연영과 함께 산 자를 몰살하기

       [천하의 운명이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글귀가 아까와는 아주 달랐다.

       게다가 또 처음 보는 서식이었다.

         

       임무창을 읽어내리던 청이 언연영을 보았다.

         

       최종장. 마지막 위기.

       모든 사람의 파괴자이자 세상의 종말.

         

       그러니까, 쟤가 끝판왕이라는 소리지?

       아니, 왜 최종 보스가 벌써 떠?

       임무창에는 오랜 추적 끝에 만나라며?

       버근가?

         

       청은 문득 유쾌해졌다.

         

       청은 그냥 맛난 저녁 먹고 겸사겸사 피도 좀 보려 했을 뿐이었다.

       어쩌다 사공 잃은 배처럼, 그리고 실제로 사공 잃은 배와 함께 흘러흘러 여기에 닿았다.

         

       청은 음모 따윈 알지도 못했다.

       배후자고 뭐고 아예 존재 자체를 몰랐다.

       누굴 추적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놓고는 뭘 위풍당당 펼쳐지는지 모르겠다.

         

       임무? 거 좆도 아니었네.

       이게 어떤 트리거에 의해 떠오르는 멍청한 연산의 결과라면, 글쎄, 그렇게 신경쓸 필요도 없지.

         

       “야. 어녕아. 아녀녕이.”

       

       “어머나. 그건. 저를 부르시는 걸까요?”

       

       “응. 왜, 싫어?”

       

       “어쩜. 갑자기 이리도 당당하실까요. 오들오들 떨던 모습이 참으로 귀여우셨던걸.”

       

       “그래서, 싫다는 거야 뭐야?”

       

       “아니요. 마음에 드는걸요. 마음을 좀. 내어주신 걸까요.”

         

       언연영이 방긋 웃어보였다.

       청이 마주 웃으며 물었다.

         

       “날 지켜준다고 했잖아?”

       

       “그럼요. 제가 있는 한. 당신은 이 세상 가장 안전한 사람이랍니다?”

       

       “근데 날 지킬 필요가 있다는 건, 그만큼 또 위험한 것들이 있다는 뜻 아냐?”

       

       “생강시가 세 구 정도에, 혈강시도 제법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식인마군이 직접 나섰으니, 연약한 서문 소저는 몇 합도 버티지 못하겠죠?”

       

       “식인마군? 어째 들어본 것도 같고.”

         

       청이 그 이름을 몇 번 되뇌다가, 마침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포기했다.

       오다가다 들었나 보지, 무어.

         

       근데 식인마군이면, 와! 별호부터 애미가 없다.

       오죽하면 사람 처먹는 나쁜 놈이라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청이 유들유들 질문을 붙였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좋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 당신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당신은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예요.”

       

       “왜, 내 체질이 특이해서?”

         

       언연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내내 우아하던 표정의 극적인 변화였다.

         

       “알고 계셨나요?”

       

       “나도 방금 알았다. 어쨌든, 나 말고 또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그러면 그땐 내가 필요가 없어지는 건가?”

         

       언연영이 딱 그 표정으로 웃었다.

       귀여워 죽겠다는 바로 그 표정이었다.

         

       “이런. 서문 소저는. 그 신체가 얼마나, 얼마나 경이로운 기적인지 이해해야 해요.”

       

       “기적?”

       

       “수백억을 세어 한 번으로, 그걸 수백억 번을 반복해야 비로소. 그게 바로 당신인걸요.”

       

       “그러면, 세상에 오직 나뿐이라는 거?”

       

       “맞아요. 오로지. 당신뿐이에요.”

         

       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하여간, 진짜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최소한, 친해지고 싶으면 입발린 소리라도 조금 해야하는 법이었다.

       대놓고 당신 몸이 목적이에요, 따위라니.

       좋다고 헤실거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러면 아주 개겨도 될 것 같다.

       청의 줄타기 감각이 언연영을 아예 호구라고 쓰인 한쪽 저 끝으로 밀어버렸다.

         

       이게 다 캐릭터를 잘 만들어서 그런 거다.

         

       그나저나 공략글 또 당신입니까?

       어떻게 그쪽으로 돌아가게 되면, 크게 사례하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목숨 여러 번 건지네요.

         

         

       —-

         

         

       장강의 호걸들은 들어라!

       누군가는 우리를 강도라 욕하고, 또 누군가는 물에 붙어사는 기생충 벌레새끼라 욕한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가?

         

       한 때는 그러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오로지 야만으로 강 위의 도적이었을 때, 나는 장강 위에서 약탈자를 보았고, 흐르는 피를 보았으며, 그로 인한 비통과 원한으로 끝내 스승을 잃었다.

         

       애비가 도적이라 어미마저 강탈한 재물에 가까우니, 그 자식이 보아 배우는 것이 그저 증오요 뒤틀린 살의뿐이었다.

       아비는 부끄럽고 자식은 혐오했다.

       이러한 아픔이 우리가 변한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변했다!

         

       장강의 법도를 세워 정리한 자가 누구냐.

       바로 우리다. 우리가 장강의 주인이기 때문에!

       모두 당당한 아비와 어미로 육지 놈들의 선망을 사는 협객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대의가 흔들린다!

       다시 약탈과 식인의 시대로 돌아가려 하는 망종들이 그 본성을 드러냈다!

       그들이 우리의 본채를, 우리의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

         

         

       본래 전투를 앞두고 하는 연설이 으레 그렇다.

         

       우리는 착한 놈이고 쟤네는 나쁜 놈이다.

       너네 가족을 생각해라.

       싸우자. 삶보다 뭔가 중요한 뭔가뭔가를 위해.

         

       청이 연설을 들으며 생각했다.

         

       저 아저씨 말 되게 잘하네.

       아무나 대장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청이 끓어오르는 전의로 고조된 무인들을 보고, 한편에서 무언가를 연신 대답하기 바쁜 언연영을 보았다.

         

       쟤가 흑막이래요, 쟤가 다 했어요, 하고 알려주고 싶기는 한데, 그래봐야 뭐 씨알이나 먹히겠어.

         

       대장 아들내미 구해주고 나서는 아주 극진하게 대접을 받고 있으니, 그런 소리 해봐야 미친년 소리나 들을 것이 뻔했다.

         

       아주 용한 미치광이 살인마였다.

       그러니까 오랜 추적 끝에 알게 되는 거였겠지.

         

       청이 히죽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강시의 약점은 없다고 생각하세요. 목을 치거나, 팔다리를 잘라 무력화시켜야 해요. 적어도 외기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경지에 있어야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괴물이고, 생강시는 제가 술법으로 약화시킬 수 있으니……”

         

       뭔가 했더니 전략 회의쯤 되는 모양이었다.

       적의 수괴를 앉혀놓고 그 약점을 캐는 것이 딱 봐도 놀아나는 꼴이다.

         

       청이 개중 아는 얼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장강일척 파본무였다.

         

       “아저씨.”

       

       “서문 소저? 무슨 일요? 지금 한참 바쁜 때에.”

       

       “내 검 돌려줘요. 나중에 돌려준담서요?”

       

       “거 나중에 좀. 지금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까 소저는 그냥 안전하게 대기나 하시오.”

       

       “손에 검이 없는데 어떻게 안전해요? 텅 빈 손으로 있으면 적들이 뭐 알아서 피해준대요? 뭐 소리라도 쳐요? 난 상관없어요, 하고?”

       

       “아. 그렇군. 야, 주형아, 내 방에 보면 침대 밑에 검이 한 자루 있는데, 그것 좀 갖다다오.”

         

       그렇게 청이 다시 월광검(8호)를 손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 속에서 홀연히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강수로채의 본채, 수로성이라 불리는 바로 그 섬이었다.

       선착장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는데, 척 봐도 돌아온 가장들을 반기는 태도는 아니었다.

         

       창칼 꼬나쥐고 주욱 일렬로 선 것이 누가 봐도 한 판 붙어보자는 신호가 아닌가.

         

       청이 난간을 붙들고 그 꼴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하늘을 수놓는 붉은 호선들이 있었다.

         

       “화시다! 방패 들어! 소화조 대기해!”

         

       수백의 불화살들.

       타다다다닥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갑판이며 선체에 틀어박힌 불화살들이 용케 꺼지지도 않고 연신 아롱거리며 제 몸을 살랐다.

         

       난리도 아니었다.

       불화살은 계속 날아들고, 사람들은 불길을 밟고 모래를 뿌리다 재수 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기도 하고.

       화살 맞은 무인을 끌어내려다 또 화살을 맞거나, 몸에 불이 붙어서 난리를 치며 뛰어다니거나.

         

       그러나 청이 보기에 모함이나 마찬가지였던 거대한 선박이 그 정도로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배를 댄다! 엎드려!”

         

       모래사장으로 그대로 돌진하는, 다소 거칠고 화끈한 정박법이었다.

       충돌과 함께 거선이 백사장을 타넘으며 지진이 일어났다.

         

       선미가 열리며 무인들이 백사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고수들은 갑판에서 뛰어내리며 곧장 그 인파에 합류했다.

         

       화살이 백사장으로 쏟아지자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총이 없기는 해도 꽤 긴박한 상륙전이었다.

       직관하기에는 퍽 좋은 눈요기였다.

         

       그때 청을 부르는 소리.

         

       “서문 소저는 여기서 기다릴 수 있지요?”

       

       “엥. 지켜 준다며?”

       

       “이 아이들이 당신을 지켜줄 거에요.”

         

       동시에 언연영의 뒤에서 쏙쏙 사람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정말로 애들이었다.

       눈에 흰자위가 없어 온통 새까만 것이 징그럽기 짝이 없다. 얘네도 정상은 아니었다.

         

       “얘네가? 내가 지켜주는 게 아니라?”

       

       “아. 이래 보여도 천강시라고 하는 대단히 강한 아이들이랍니다? 하나하나가 초절정 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들이에요.”

       

       “오우.”

         

       끝판왕의 호위병쯤 되는 모양이었다.

       아마 중간 보스 같은 걸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그럼, 일이 끝나면 다시 만나요. 당신.”

         

       언연영이 손을 흔들었다.

         

       청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싫은데?”

       

       “어라아. 소저? 이건 부탁이 아니랍니다?”

         

       청이 고개를 저었다.

         

       “식인마군이 제일 센 놈이라고 했지? 나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우리 약속 지키기다?”

       

       “무슨……”

         

       청이 무시하고 훌쩍 뛰어내렸다.

       상쾌한 자유 낙하. 백사장의 모래가 폭신하게 떨어지는 몸을 받쳐준다.

         

       진기를 발바닥으로 돌린다.

       내공 하나는 이미 일절이라고 스승님이 그랬다.

       막대한 진기를 담아 나아가니 곧 세상이 나를 두고 뒤로 달려나가는 것 같았다.

         

       청이 웃었다.

       이 세상 끝판왕이 날 지켜준다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나.

       이미 확답까지 듣지 않았던가.

         

       청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야! 식인마군! 초면에 죄송하지만! 그렇게 애미가 뒤지셨다면서요! 배고파서 애미애비도 처먹은 새끼야!”

         

       뒤이어, 사자후와 닮은 거대한 외침이 쩌렁쩌렁 천지를 뒤흔들었다.

         

       “어떤 년이냐! 감히!”

         

       멀리서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분노였다.

         

       청이 뒤를 슬쩍 훑었다.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언연영과, 그 뒤로 바짝 따라붙는 다섯 아이들이 보였다.

       저 애들 하나하나가 초절정이랑 맞먹는다고 했지.

         

       청이 다시 언성을 높혔다.

         

       “내가 서문청이다! 정정당당하게 일 대 일로 한판 붙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뭔가 더 붙었네요. 퇴고의 흔적이라고 어여삐 봐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수정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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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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