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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아마 혐단 새끼도 처음부터 뭔가를 알고 릴리스를 조교했던 건 아닐 거야.”

         

         

        에단의 전속 메이드로서 처신하기로 본격적으로 마음을 굳힌 이후 가장 먼저 내린 결론이었다.

         

        이 돼지 새끼가 열아홉부터 릴리스를 조교하기는 했지만, 아마 그것이 처음부터 성적인 무언가를 목적으로 시작한 능욕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

         

         

        실제로 이전에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가끔 나오는 릴리스 회상 장면을 보면, 괴롭힘의 수준은 혐단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심하고 음습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설정상 나이야 어쨌든 간에 정신적인 내용물의 나이는 –5를 더해야 하는 만큼, 현재의 혐단은 기껏해야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의 지식과 교양밖에 없을 테고.

         

        그 멍청해 보이는 돼지 새끼가 성적 지식만 특별히 더 많이 배우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저 릴리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했다가 무언가를 계기로 그것이 성적인 괴롭힘으로 변했다 추측하는 게 타당하겠지.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레 성에 눈을 뜨게 되고 마침 좋은 교보재였던 릴리스를 제 성노예로 부리기 시작했다던가.

         

         

        그렇다면 아예 에단이 하는 짓거리에 처음부터 전혀 반응을 안 해준다면?

         

        원래 관심 끌기라는 건 상대방이 호응을 잘해줄수록 더욱 하고 싶어지는 법이었고.

         

        반대로 철저하게 무반응을 연기하면 괴롭힘으로 관심을 끌려는 에단의 행위도 금방 사그라들 터였다.

         

        처음 몇 번만 참으면 아마 관심 끌기에 실패한 녀석은 아마 다른 행위로 내 시선을 잡아보려 할 테고, 그때쯤에 맞춰 적당히 호응해주면 혐단 저 새끼도 ‘원작 게임’에서만큼 노답 쓰레기로 성장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일단은, 최대한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보자.”

         

         

        어차피 이제 와서 내가 이 전속 메이드 자리를 벗어던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최대한 평화적이고 잘 풀어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보는 수밖에.

         

        에단 그 새끼와 육탄전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십중팔구 내가 이기겠지만, 블랙우드 가문의 권력과 해럴드를 생각하면 도저히 내 선에서 뒷수습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으니.

         

        딱히 혐단 새끼를 갱생시키는 게 내 목표는 아니었다. 그 새끼가 어떻게 자라든 말든 알 게 뭐야.

         

        그저 조금이라도 멀쩡하게 자라는 편이 내 생존에 유리하니까 한 번 시도해볼 뿐이지.

         

        게다가 에이리아와의 징계위원회에서 나를 위해 증언해 준 것도 있었고, 의외로 막상 또 대하다 보면 근본부터가 그렇게 쓰레기는 아닐지도 몰랐으니까.

         

         

         

        …그 빌어먹을 혐단 새끼의 전속 메이드 자리를 처음 받아들일 때만 해도 나는 그런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 이 안일한 생각이 180도 뒤바뀌게 되기까지는 겨우 한 달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 ⁎ ⁎

         

         

         

        해럴드의 압박감을 못 이기고 어쩔 수 없이 에단의 전속 메이드 자리를 받게 된 날로부터 약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고.

         

        게임 속에서의 릴리스 로즈우드는 결국 19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어엿이 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릴리스와 약 열흘 정도 차이로 먼저 생일을 보낸 에단과 마찬가지로.

         

         

        ‘시발.’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게임 속에서 릴리스의 몸으로 성인이 된다는 건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다른 캐릭터라면 모를까 이 릴리스가 ‘법정 나이로 성인’이 되어서 겪는 미래는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는다’라는 행위는 오히려 더는 안전하지 않음을 재차 자각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에단과 릴리스 모두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 나이를 넘긴 상황이 되었으니.

         

        릴리스가 성인이 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에단의 음습한 마수가 본격적으로 뻗어올 테니까.

         

         

        ‘제대로 긴장해야지. 잘못하면 아차 하는 순간 알몸으로 목줄에 묶여서 저택 안을 산책하는 꼴을 당할 수도 있어.’

         

         

        혐단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지만.

         

        그나마 좋은 소식은 지난 일주일 동안 딱히 에단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전속 메이드 자리라는 건 메이드 중 몇 명의 후보를 뽑고, 선정된 메이드의 특별 교육을 마친 후에나 투입되기 마련이었으나.

         

        이번 인사이동은 워낙 급하게 이루어진 탓에 전속 메이드 자리를 먼저 들어가고 후에 교육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니까.

         

         

        일주일 동안 멜리사의 특별 교육을 받으며 ‘일단은’ 에단의 전속 메이드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 자체는 충분히 갖추어뒀다.

         

        이런 부분에서 최소한의 지식은 미리 갖추고 있어야 나중에 트집 같은 게 잡힐 일도 없을 테고.

         

        만약 어떻게 일이 잘 풀려 혐단의 조교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전속 메이드 자리 자체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최소한 블랙우드 저택의 외동아들을 모시는 기본 지식 정도는 알아둬서 나쁠 게 없었다.

         

        애석하게도 릴리스는 여전히 빚 메이드이고, 블랙우드 저택에서 정당하게 탈출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6년이 넘는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후우.”

         

         

        아무튼, 메이드장의 교육 기간을 제외하면 오늘이 실질적으로 혐단의 얼굴을 마주하며 근무하는 첫날이었으니.

         

        에단의 방 앞에서 한 차례 심호흡을 내뱉은 나는 에단의 아침 기상 시간에 맞춰 문 앞에서 세 번의 노크를 두드렸다.

         

         

        -똑, 똑, 똑.

         

        “에단 도련님.”

         

        “…….”

         

        “에단 도련님? 안에 계십니까?”

         

        “…….”

         

         

        분명히 인기척은 안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뭐, 에단의 성격이라면 지금이 아니라 오후까지도 퍼질러자는 것도 가능한 인물이었으니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틀림없이 아직도 침대 위에 파묻혀서 게으르게 늘어지거나 하는 것이겠지.

         

        원칙적으로 저택에서 일하는 메이드나 집사는 귀족이 있는 방을 방문할 때. 노크 이후 안쪽에서 답이 들려와야만 안쪽으로 출입할 수 있었다.

         

        전속 메이드나 전속 집사, 그리고 메이드장과 집사장을 제외한다면.

         

        에단의 개인실 청소라든가 빨랫감 수거, 혹은 여러 이유로 에단의 방에 출입해야 하는 전속 메이드 릴리스는 본인의 판단하에 허락 없이도 에단의 방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니.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건 말건 나는 별생각 없이 에단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철컥.

         

        “에단 도련님, 기상 시간….”

         

        “와악!!”

         

        “끄아악?!”

         

         

        아무런 경계 없이 에단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문 옆에서 들려오는 느닷없는 고함.

         

        순간적으로 방심하고 있던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순간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고.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서 꼴 받는 표정으로 실실 쪼개고 있는 애새끼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하하! 메이드, 놀랐어?”

         

        “…에단 도련님?”

         

        “겨우 이 정도로 놀라서 자빠지면 어떡해? 메이드 바보야?”

         

        “…….”

         

        ‘시발, 쥐어 패버리고 싶네.’

         

         

        지가 놀라게 해서 넘어뜨려 놓고 그 앞에 와서 꼴 받게 처웃는 에단의 면상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머릿속으로는 불쾌감이 심하게 치솟았고.

         

        가능하면 잘 풀어보려던 나름의 결심이 하마터면 첫날부터 흔들릴 뻔했다.

         

         

        ‘아직 애새끼잖아. 이 정도면 평범한 남자애들 장난이지. 참자, 참자….’

         

         

        저 나이대의 남자애들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려고 장난치고 다니는 게 딱히 희귀 사례도 아니었고.

         

        물론 또래의 귀족 자제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기는 했지만,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혐단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겨우 이 정도 일에 일일이 열이 뻗쳐서는 앞으로 전속 메이드 일 자체를 제대로 해나갈 수 없을 테지.

         

        애초에 이런 장난에 발끈하며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저 애새끼가 마음속에서 가장 바라고 있는 부분일 터였으니.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최대한 덤덤하게 반응했다.

         

         

        “에단 도련님.”

         

        “응?”

         

        “위험하니까, 다음에는 부디 이런 위험한 장난은 자제해주십시오.”

         

        “싫어!”

         

         

        …그래 그렇게 처 지껄일 줄 알았다.

         

         

         

       ⁎ ⁎ ⁎

         

         

         

        에단의 전속 메이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날로부터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첫날부터 난관이 예상됐던 에단의 전속 메이드 업무도 한 달쯤 지나니 슬슬 정신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듯한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매일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빌어먹을 혐단 때문이었고.

         

         

        ‘때려치우고 싶다.’

         

         

        일단 전속 메이드라는 건 세간의 이미지처럼 24시간 내내 붙어있어야 하는 그런 업무는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내내 붙어있으면 방 청소와 빨랫감 운반은 누가 하고, 식사나 수면 시간은 또 어떻게 해결하겠어.

         

        전속 사용인이 담당 귀족의 곁에 붙어있어야 하는 때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 담당 귀족이 식사하고 있을 때.

         

        둘, 담당 귀족이 외부 활동을 할 때.

         

        셋, 담당 귀족이 전속 사용인을 직접 호출할 때.

         

         

        이 세 번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딱히 전속 메이드건 집사건 귀족의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없었다.

         

        반대로 이 세 가지 경우는 특별한 명령이 없는 한 무조건 곁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귀족 중에는 자신의 개인 시간을 방해받는 것이 싫어서 가능한 한 담당 사용인을 호출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며.

         

        아예 그런 귀찮음을 미리 방지하고자 담당 사용인을 두지 않는 귀족들도 가끔 존재하긴 했다.

         

         

        물론, 이딴 사례는 에단의 전속 메이드인 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내 바람과는 반대로, 에단은 시도 때도 없이 전속 메이드 호출을 사용하여 나를 수시로 자신에게 불러내곤 했으니까.

         

         

        “릴리스, 아까 도련님께서 찾으시던데?”

         

        “리, 릴리스…. 에단 도련님께서 부르셔….”

         

        “릴리스 로즈우드 양, 도련님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진짜 이 빌어먹을 애새끼를 진짜.

         

        가능한 한 엮이고 싶지 않다는 내 바람이 무색하게, 이 혐단 씹새끼는 거의 3주 내내 나를 거의 한 시간에 한 번꼴로 호출하고 있었으니.

         

        가능한 한 잘 풀어보려 했던 첫날의 내 마음가짐을 꺾이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다.

         

        심지어 옆방인 전속 메이드 대기실에 있으면 수시로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이닥칠 정도였고.

         

        혐단의 방에서 나온 빨랫감을 세탁 담당 메이드에게 가져가거나 방을 청소하기 위한 청소 도구를 가지러 이동할 때도 수시로 나를 불러대서 내 일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를 불러서 뭐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면 또 몰라.

         

        기껏 하는 짓이라고는 문 뒤에 숨어있다가 놀라게 하기, 몰래 다리 걸어서 넘어질 뻔하게 만들기처럼 당하는 사람의 기분을 거지같이 만드는 유치한 장난뿐이었으니.

         

        이런 거지 같은 애새끼 장단에 놀아주는 것도 진짜 한두 번이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도 일주일 내내 이런 개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머릿속에 열이 뻗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첫날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어야 했는데.’

         

         

        괜히 과장해서 뒤로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의기양양하게 2차 3차로 지랄하는 그 꼬락서니를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쩌겠어. 별 생각 없이 첫날 에단의 방에 들어갔던 내 멍청함을 탓해야지.

         

        꼴에 귀공자인 혐단 새끼를 평민 메이드인 내가 쥐어 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아아….”

         

         

        이번에는 또 어떤 지랄을 할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각오하며 긴장과 함께 한 차례 한숨을 내뱉었고.

         

        일단 메이드의 본분인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에단의 방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

         

        “……?”

         

         

        문을 열자마자 고함치며 눈앞에 튀어나오는 에단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혐단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방 안쪽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음에도 망할 애새끼는 모습을 드러내기는커녕 아예 방 안에 없는 듯 자취를 감춘 모습이었다.

         

        설마 나한테 장난치려고 호출해놓고 지가 까먹고 어디로 간 거 아냐?

         

        날두도 아니고 제 전속 메이드한테 노쇼를 하는 에단에게 어이없음을 느낀 것도 잠시.

         

        이내 문 뒤쪽에서 튀어나온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한 차례 만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팡!

         

        “……흐앗?!”

         

        “방심했다! 방심했어!”

         

         

        순간적으로 하반신 치마 밑으로 기어든 손바닥에 놀란 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여자애 같은 비명을 내뱉어버렸고.

         

        내 엉덩이를 때린 장본인인 혐단은 이미 계단을 내려가며 아래층으로 나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시발.”

         

         

        ……진짜, 저 빌어먹을 애새끼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직 30화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되게 빠르게 pd픽에 들었네요.

    앞서서 연재했던 두 작품이 공모전 작품이라 그런지, 그냥 별 생각 없이 통상 연재로 시작해서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시는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딩딩딩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함께 따라오시는 거예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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