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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

         

         

          사선이 번뜩인다. 오네스트는 곧장 고개를 틀어 탄환을 피해냈다.

         

         정확히 미간을 노린 일격이었다. 빌어먹을, 오네스트는 입술을 씹으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제기랄, 진심인가? 감히 칼리온의 군함 내에서 함장을 사살하겠다고? 감당할 수 있는 짓을 저질러라, 병사!”

         “감당을 내가 해야 하나?”

         

         

         이반은 도끼를 돌리며 다가갔다. 성급하게 거리를 좁히진 않았다.

         

         천천히 놈의 상태를 훑었다. 마법사군. 검술을 익힌.

         

         엘프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검을 들지 않는다. 특히 장교급이라면 더욱이.

         

         엘프 군인 중 영관급 인사들은 전원이 고위 귀족들이며, 엘프 귀족들은 땀 흘리는 일을 천하게 여기는 탓이다.

         

         그러나 개중에 검을 든 자들이 있다. 여기부턴 문제가 다소 복잡해진다.

         

         다른 이들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검술을 익혔다는 건, 장생종 특유의 기나긴 삶과 더불어 대단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엘프 대부분은 근접 백타를 혐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계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이는 엘프였다. 그녀는 과거 용사의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즉, 그러니까.

         

         검을 쥔 마법사 엘프 장교라는 점이 이반을 저지하고 있었다. 설령 첫 급습에 다리 한쪽을 부숴 놓았더라도.

         

         

         “엘리자베타가 대단한 사냥개를 보냈군. 네 이름이 무엇인가, 병사?”

         “시간을 끌면 유리해진다고 보나?”

         

         

         오네스트는 이반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눈치 하난 빠르군.

         

         그는 짧게 혀를 찼다.

         

         섣불리 주문을 엮을 수 없다. 이른바 ‘초인’으로 분류되는 자들을 대상으로, 그와 이반의 거리는 한걸음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공격 사정권 내에 있었다.

         

         잠시간의 대치 후에, 엘프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항복하지. 병사들을 물리겠네.”

         “검을 던져라.”

         “아예 항복 문서에 조인하라 하지 그러나? 그쪽이 당장 내 목을 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반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엘프가 이렇게 빨리 항복한다고?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심지어 영관급 귀족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반은 말없이 도끼를 들어 올렸다. 항복은 무력화시킨 이후에도 할 수 있으니.

         

         그 모습을 보며 오네스트는 혀를 찼다.

         

         

         “제기랄. 알겠네. 받게.”

         

         

         그리고 칼을 그대로, 이반을 향해 전력을 다해 투척했다.

         

         

        -챙!

         

         

         이반이 날아드는 검날을 쳐낼 때, 오네스트는 이미 뒤로 뛰어오르며 품속에 손을 넣고 있었다.

         

         이반은 오네스트를 향해 도약하며 자세를 낮췄다. 꽉 조인 제복 아래엔 병장기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 해 봐야 권총, 또는 단검, 혹은 폭발형 마도 병기.

         

         개 중 가장 마지막 것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가장 성가시다.

         

         

         “베올그린 경!!”

         “…?”

         

         

         갑자기 그 양반 이름이 왜 나오지…?

         

         이반은 순간 몰려드는 당혹감을 떨쳐 냈다. 지금은 그런 것을 고민한 때가 아니었다.

         

         본디 기술명 외치기, 또는 유력자 이름 외치기는 아주 멍청한 전술이었으니까.

         

         이반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의 등으로 섬세하게 타격할 시간 따윈 없었다. 날을 곧게 세우고, 곧장 오네스트의 팔뚝을 향해 내려찍었다.

         

         마법사의 수상한 마도구를 상대할 때 방심 따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딸깍.

         

         

         예상대로 오네스트가 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쇠구슬 모양의 마도구였다. 보라색 주언이 빽빽하게 막힌, 굉장히 불길해 보이는 모습의.

         

         이반의 도끼가 막 오네스트의 팔뚝을 가르기 직전에, 그의 엄지가 마도구의 상단을 꾹 눌렀다.

         

         그리고 곧. 파동이 일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반은 거친 충격파에 튕겨 나가며 생각했다.

         

         임무 실패로군. 자폭을 하다니.

         

         엘리자베타가 내린 임무는 군함의 함장과 알렉산드르의 접선 현장을 확보하는 것.

         

         함장이 대뜸 자폭 스위치를 눌러버릴 줄이야. 이걸 어떻게 예상하고 대비하겠는가.

         

         이반은 거친 충격파에 이명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복도 구석으로 떨어졌다.

         

         

         “크흑.”

         

         

         충격에 폐가 쥐어짜이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반면 그의 안색은 여전히 침착했다.

         

         곧장 팔다리의 상태를 확인하고, 손끝과 발끝의 움직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한 뒤에 몸을 추스른다.

         

         그것은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장비 점검’이었다. 단련된 요원의 육체란 장비품의 일종이니까.

         

         

         ‘근접 대인 폭발물에 휘말린 것치고는 너무 멀쩡한데?’

         

         

         이반은 여진이 휘몰아치는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폭발의 충격에 시야가 살짝 흔들렸다. 이명이 점차 잦아들자, 다시 복도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좋은 징조였다. 청각마저도 정상이란 뜻이었으니까.

         

         

         “이건 예상 밖인데.”

         

         

         그리고 곧 들려온 소리에 이반은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다. 그리고 여기에서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다.

         

         4년 만에 들어 보는 음성에 이반은 순간 성대모사를 의심해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특징적인 암녹색 불꽃.

         

         두 눈, 안저 아래에서부터 타오르는 귀화.

         

         너무나 익숙한 마력 배열까지.

         

         

         “진짜… 베올그린…?”

         “그래. 왜 자네가 여기에 있지? 자네 살아 있었나?”

         

         

         폭발로 엉망이 된 제복, 그 아래로 보이는 체형과 신장, 그리고 외모까지. 모두 오네스트의 것이었지만….

         

         이반은 반사적으로 깨달았다. 이 녀석, ‘영혼’이 바뀌었다.

         

         

         “빙의…?”

         “재밌는 단어 선택이로군. 이건 [영혼 전송의 술]이라고 한다네.”

         

         

         용사 파티의 마법사. 요새파괴자 베올그린.

         

         익숙한 마력과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오만함을 담아서. 현존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알렉산드르는 어디에 가고 자네가 여기에 있지?”

         “….”

         

         

         베올그린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애초에 예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이반은 이번 임무의 성격을 떠올렸다.

         

         

         ‘알렉산드르 왕세자와 엘프 함장 사이의 커넥션을 확인. 그리고 채증.’

         

         ‘엘프 함장… 아니, 이 공중 전함은 아마 기능 고장을 겪고 있는 것으로 예상됨.’

         

         ‘엘리자베타는 공중 전함의 함장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 알렉산드르 왕세자가 되도록 설계했음.’

         

         ‘그리고 베올그린의 저 말.’

         

         

         알렉산드르는 어디에 가고 자네가 있지. 이 건조한 질문이 내포한 짙은 함의에 이반은 눈살을 찌푸렸다.

         

         베올그린은 처음부터 함장에게 [영혼 전송의 술]이 담긴 마도구를 건넸다.

         

         왜? 알렉산드르와 대면하기 위해.

         

         그렇다면… 왜?

         

         알렉산드르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계획했었나?”

         “암. 칼리온의 공중 전함은 군도 기술의 집약체일세. 갑작스레 기능 고장을 일으킬 리가 없지 않나. 고작 보름 남짓 항행한 것 정도로?”

         

         

         심지어 이 군함이 출항한 이유는 베올그린의 딸, 엘피헤라를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함이었다.

         

         엘프 최강자 중 하나이며 용사 파티의 마법사, 베올그린의 딸이다. 칼리온 군도의 수많은 고위 귀족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존재다.

         

         그런 요인을 경호하기 위해 출항한 함선이 고작 보름 만에 기능 고장을 일으킬 리가 없다.

         

         ‘누군가’가 의도하고 고장 낸 것이 아니라면.

         

         오싹, 소름이 끼쳤다.

         

         

         “맞네. 처음부터 엘리자베타 공주를 자극하기 위함이었지. 그 꼬마가 화가 나면 알렉산드르가 접촉해 올 것이 뻔하지 않나.”

         “왜지? 왜 이런 짓을 저질렀지?”

         “글쎄.”

         

         

         베올그린은 피식 웃었다. 그는 손가락 끝을 까딱이며 마력을 직조하더니, 문득 물었다.

         

         

         “귀관의 충성은 어디로 향하지?”

         “위대한 선왕 폐하께.”

         “언제나와 같군. 보기 좋네. 기왕이면 살아 있다고 기별이라도 하지 그랬나. 우리 사이의 친교가 그 정도는 되지 않았나.”

         

         

         이반은 베올그린의 말을 흘려 들으며 도끼를 고쳐 쥐었다.

         

         다행히도 육체 성능은 정상이었다. 애초에 그가 튕겨 나갔던 충격파는 공격 주문이 아니었던 탓이었지만.

         

         베올그린을 정면으로 상대해 승리할 수 있는가?

         

         떠올린 순간 알 수 있었다. 불가능하다.

         

         그러나 베올그린이 과연 본신의 모든 힘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느껴지는 마력량은 함장의 것에 불과했으니까.

         

         

         “오, 싸울 생각인가. 하긴… 자네는 항상 그랬지. ‘작은’ 이반.”

         “다른 선택이 있나?”

         “물론. 하지만 자네가 그런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군. 오게나. 오랜만에 실력을 한번 보지.”

         

         

         함장의 마력량은 물론 인간에 비해 많았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수준의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즉, 충분히 도모해볼 만한 차이라는 뜻.

         

         그러나… 그 정도의 마력을 쥐고 있다 하더라도 그 몸을 조종하는 것이 베올그린 본인이라면, 과연 승산이 있을 것인가.

         

         

         ‘없다.’

         

         

         이반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건 훈련 받은 요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으니까.

         

         자기 자신 또한 임무 수행의 도구로 파악해야 했으므로, 자신의 카탈로그 스팩을 정확히 파악해야 했던 탓이다.

         

         그러므로 이반은 그 자신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베올그린은 저 수준의 절반에 불과한 마력만을 가지고도 그를 손쉽게 조각낼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승산은 중요하지 않다.

         

         

         “한 수 배우지.”

         

         

         이반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도끼를 고쳐 쥐었다.

         

         승산은 중요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 그런 것 따위를 중요하게 여긴 적은 없었다.

         

         해야 하는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훈련 받은 요원이라면, 실패가 아니라 포기를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니까.

         

         

        *

        

        

        결심은 최대한 짧은 순간에, 그리고 행동은 최대한 신속하게.

        

        이반은 공격을 결심한 순간 몸을 던졌다. 정면으로, 베올그린을 향해 곧장 앞으로.

        

        초로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을 쪼개어 박리(剝離)하는 감각.

        

        몸에 부딪히는 공기 저항이 시간의 흐름 자체를 느릿하게 해리(解離)하는 촉감.

        

        신경의 가닥가닥에 마력을 때려 박아 강제로 활성화시킨 시점에서 돌입하는 ‘초인’의 감각이다.

        

        순간을 도해(圖解)한 찰나의 시간. 이 시점이 바로 곧, 초인들의 전장이다.

        

        호흡마저 분절되는 이 시간 속에서, 이반의 도끼가 공중을 유영하듯 흐른다. 부드럽게, 날카롭게, 그러나 강인하게.

        

        

       -후우우웅—!!

        

        

        암녹색 마력이 맺히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려서 곧장.

        

        마력에 감싸인 도끼는 그 자체로도 해주(解呪)의 공능을 가진다. 마법이 직조되는 순간, 그 사이를 분절시키며 마법의 완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법사의 천적은 지근거리의 전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콰아아아앙!!

        

        

        충격은 곧장, 그러나 소음은 한 박자 뒤에 들렸다. 음속에 근접할수록 소리와 반응의 괴리가 생기는 탓이다.

        

        마법 한 꺼풀을 찢어냈다.

        

        닿았다. 베올그린.

        

        이반은 눈으로 그렇게 말하며 다음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완성 직전의 마법을 벗겨낸 순간, 다음 주문을 영창하기까지 걸릴 시간을 고려한다면 명백히 자신의 도끼가 더 빠를 테니까.

        

        그러니까, 닿았다. 그 시절 앞서 걷던 거인들의 위치에.

        

        

        “훌륭하군.”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투웅—!!

        

        

        가벼운 저항감이 몸 앞을 가로막는다. 이반은 곧장 반응하며 허리를 틀었다. 그 사이로 날카로운 얼음 송곳 다섯 줄기가 파고들었다.

        

        사선 감지를 뛰어넘은 속도. 주문을 의식한 순간 완성된 마법이다.

        

        이반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도끼를 들어 올렸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여전히 순간을 분절한 찰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짧은 격돌 끝엔.

        

        

        “하.”

        

        

        한눈에 보기에도 마흔 개가 넘는, 각각 다른 구조로 직조된 마법이 허공을 아로새기고 있었다.

        

        베올그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더 보여주게나. 얼마나 성장했는지.”

        

        

        이반은 이를 아득 깨물며 몸을 튕겨 달려들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실아 님, 지나가는나비 님, dokirby 님, flying fish 님, 채륜 님, 스톰소더 님, 헤엄치는새 님!!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도해 : 분해의 유의어
    해리, 박리 : 분해의 유의어
    채증 : 증거를 수집함

    이 소설 : 로맨스코미디 아카데미물 우당탕탕 유쾌상쾌통쾌 어드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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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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