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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시간은 흘렀다.

       방영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은 태양을 숨긴 달은, 마지막화 시청률을 무려 45%로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반면, 태양을 숨긴 달의 라이벌이라 점쳐졌던 ‘액션왕’의 경우.

       중간에 터진 아이돌의 학폭 논란으로 마지막 화 시청률 4.5%를 기록하며 끝이 났다.

       

       “아, 촬영장에서 서연 양이요?”

       

       드라마가 마무리 지어진 이후, 진행된 인터뷰.

       연화공주의 보모역으로 출연했던, 신연미 배우는 한 아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실한 아이였어요. 천재 아역이라 부르지만, 누구보다 노력을 열심히 한 아이랍니다.”

       

       그녀는 말했다.

       화제가 된 2화 3화를 찍기 위해, 서연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장면을 찍기 위해서, 미리 촬영을 앞당겨 찍었어요. 아역답지 않게 체력도 좋아서, 그걸 전부 해내더라고요. 솔직히 오히려 제가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너스레 떨며 이야기하는 신연미의 말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무래도 농담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고된 촬영이었습니다.”

       

       성장한 연화공주, 이혜월의 역을 맡은 하예서는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솔직히 4화에서 시청률이 뚝 떨어져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연화공주’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도록 노력했죠. 다행히, 3화가 최고 시청률로 끝나지 않아 천만다행입니다. 아역이 너무 연기를 잘해도 고되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는, 그런 귀중한 기회였네요.”

       

       초반에는 부담감 때문인지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예서지만, 이어지는 화수에선 훌륭히 연기를 해냈다. 연기력을 갖춘 청순파 배우라는 명성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마지막 화에서 그 힘을 증명했다.

       

       하예서에 이어 마지막으로 나온 이는, 태숨달의 프로듀서, 하태오였다.

       

       “서연 양은 은퇴하는 게 아닙니다. 아까 신연미 배우님이 말하셨죠. 욕심이 많은 아이라고.”

       

       카메라를 보며, 하태오는 말을 이었다.

       

       “많은 걸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를 촬영하며, 부족한 부분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고 했죠.”

       

       메소드 연기나, 감정 연기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하태오는 굳이 그에 대해선 입에 담지 않았다.

       그건 어차피,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었으니까.

       

       “분명, 서연 양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하태오 PD는 단호히,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 아이는, 배우를 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

       

       당분간 휴식기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말 그대로 바로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태양을 숨긴 달이 방영된 올해까지는 아역 배우 주서연으로 있어야 했다.

       왜냐.

       바로 연말 시상식 때문이었다.

       

       “와, 진짜 너무 예쁘네요.”

       

       서연을 꾸며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무심코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서연은 어여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서연 또한 내심 혀를 내둘렀다.

       

       ‘오히려 드라마 때보다 더 예쁘게 나온 것 같네.’

       

       사실, 그런 서연의 말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아무래도 사극보단 이런 시상식 쪽이 메이크업을 더 다채롭게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어린데도 속눈썹이 진짜 길다…….”

       

       도저히 아이의 속눈썹이라 할 수없었다.

       

       ‘이 아이가 성장하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많은 아역을 만나보았지만, 서연만큼 예쁜 아이는 처음이었다.

       

       ‘이런 아이가, 한동안 일을 쉰다니.’

       

       너무 아쉬웠다.

       특히 태양을 숨긴 달을 재밌게 보았던 그녀로선 더더욱.

       아직도 이 아이가 보여준 연기가 선명히 떠오를 정도였다.

       

       “준비는 다 끝났니?”

       

       그때, 준비를 끝낸 서연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번듯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

       태양을 숨긴 달의 주연이자 성장한 윤서일 역을 맡은 이.

       

       “오, 서연 양. 정말 예쁘게 꾸몄네?”

       

       강성찬 배우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시상식에는 미처 함께하지 못한 수아를 대신하여, 강성찬 배우가 서연을 맡기로 한 것이다.

       마침 이번 태양을 숨긴 달을 함께 촬영한 식구들은 모두 한 자리에 앉는 터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왔어?”

       

       천천히, 시상식장에 도착하자 먼저 와있던 박정우가 말을 걸었다.

       예전에는 아는 척도 하지 않던 것이, 태숨달 3화 이후로는 태도가 달라져 거북했다.

       

       “네, 선배님.”

       “…….”

       

       차마 다른 호칭으로 부를 수 없던 서연은, 정우를 꼬박꼬박 ‘선배’라고 불렀다.

       물론 박정우는 그런 서연의 어투가 워낙 딱딱했기에 불만이었으나, 딱히 지적할 것도 없었다.

       

       실제로 서연이 박정우보다 연하이고, 후배인 건 분명했으니까.

       

       “자, 서연 양은 여기 하예서 배우님 옆에 앉고……, 혹시 오늘 할 말은 생각해뒀니?”

       “할 말이요?”

       

       갑작스런 강성찬 배우의 말에 서연은 의아해졌다.

       오늘 뭔가 할 말이 있나?

       

       “아, 이거 말이 전달이 안 됐나? 보통 후보들에겐 미리 말이 가는 편인데?”

       “네?”

       “전 왔어요.”

       

       의아해하는 서연을 대신해 박정우가 답했다.

       덕분에 서연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정우는 픽 웃었다.

       

       “청소년 연기자상 말이야.”

       “……?”

       

       서연은 순간 그게 뭐냐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대충 이름만 들어도 아역에게 주어지는 상인 모양이었다.

       

       “올해에는 태숨달이 다 먹었으니, 아마 거의 확실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강성찬도 들뜬 기색이었다.

       무려 시청률이 45%로 마무리 지어진 태숨달.

       그 주역인 강성찬이니 기대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당장 하예서도 상기된 얼굴이 아닌가.

       

       “넌 무조건 받을 거다.”

       

       그때, 박정우가 그런 말을 꺼냈다.

       

       “화제성으로나, 연기로 보나.”

       

       칭찬인 걸까.

       서연은 아리송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박정우가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서연의 입장에선 참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었다.

       

       “오늘도 눈부시게 별이 밝은 밤입니다. 당장 여기 선 저는 눈이 멀 것 같네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시상식장의 불이 일부 꺼지며, 단상을 비췄다.

       진행자로 나온 두 남녀 배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객석을 훑었다.

       

       수많은 별이 많은 자리.

       서연은 새삼, 자신이 이런 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 그럼 KMB 연기대상을 시작하겠습니다.”

       

       큰 소리와 함께 시작된 KMB 연기 대상.

       별 생각 없이 앉아있던 서연은, 이곳이 별세계임을 뒤늦게 느껐다.

       

       그동안 너무 현실감이 없어 느끼지 못했던 거다.

       고개를 둘러보면, 여기도 배우. 저기도 배우.

       TV에서만 보던 이들이 잔뜩 있었다.

       

       “자, 먼저 인기상입니다.”

       

       앞을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비친 올해 방영된 드라마들이 흘러나왔다.

       올 한해 방영된 수많은 KMB의 드라마.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태양을 숨긴 달이었다.

       후보의 설명과 함께 나열되는 배우의 수는 너무나 많았고.

       

       그중에서 극히 소수의 배우만이 상패를 안고,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다.

       작은 상에도 눈물을 흘리는 배우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상식이 진행됐을 무렵.

       

       “그리고, 다음은 이 순서네요.”

       

       본래 아역상이라 불리던 것.

       

       “바로 청소년 연기자상입니다!”

       

       진행자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각각 남녀 청소년 연기자상의 후보가 나타났다.

       일일 연속극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아이.

       드라마에서 내뱉은 말이 올 한 해 최고 유행어로 뜬 아이.

       

       대부분 서연보다 한두 해 빠르게 배우 일을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7살인 서연은, 이 자리에서도 유독 어린 편이었다.

       

       ‘오늘 할 말은 생각해뒀니?’

       

       문득, 강성찬 배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현실감이 없어 딱히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말이, 머릿속에 빙빙 맴돌았다.

       

       ‘이건…….’

       

       서연은 일반적으로 겁이 없다.

       그건 아마 전생의 영향일 것이다.

       

       어디에서 공포를 느끼고 긴장하는지 잘 몰랐기에.

       그것은 환생한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어지간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았다.

       

       ‘긴장.’

       

       서연은 가슴을 꾹 움켜쥐었다.

       괜시리 떨리는 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

       

       “서연 양.”

       

       누군가가 서연의 손을 움켜쥐었다.

       

       “심호흡하세요.”

       

       은혜대비 역으로 나왔던 정은선 배우.

       그녀는 오늘도 칼 같은 눈매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혹시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그런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정은선 배우는 말했다.

       

       “……솔직히.”

       

       그녀는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

       

       “이전이었다면, 서연 양의 결정이 옳다고 했을 거예요.”

       “네?”

       “물론, 지금도…… 서연 양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품은 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정은선은 잠시 말을 곱씹었다.

       마치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이전에는, 서연 양이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키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정 연기는 그만두라고, 그런 식으로 말했다.

       덕분에 공정태 감독에게 경고도 받았지만,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켜보며 바뀌었습니다.”

       

       정은선은 이번 태숨달을 보며, 많은 걸 깨달았다.

       아역이라고 마냥 보듬어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 명의 배우라는 걸 말이다.

       

       “서연 양은 강한 아이예요.”

       

       두 번.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연기를 펼쳐 보였다.

       한번은 정은선의 눈앞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조금 먼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 연기를 위해, 서연이 한 노력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그녀도 메소드 연기를 오랫동안 해왔으니 알 수밖에 없었다.

       

       “늙은 배우 하나가, 노파심에 그것을 못 보았던 거죠.”

       “아, 아뇨.”

       “그러니.”

       

       당황하며 답하는 서연의 말을 끊으며, 정은선은 재차 말을 이었다.

       

       “떨 필요 없습니다.”

       

       그런 그녀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바로, 주서연.

       자신.

       

       청소년 연기자상.

       남성 부분에 박정우가.

       그리고, 여성 부분에 서연의 얼굴이 나타났다.

       

       박수가 들렸다.

       우레와 같이, 귀를 울리는 박수가.

       

       빛이 서연을 비추었고.

       정은선은 그런 서연의 등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당당히, 한 명의 배우로서 다녀오세요.”

       

       떠나는 마지막까지.

       그제야 서연은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떨리던 심장도, 어느새 진정되어 있었다.

       

       평소처럼, 고요한 심장을 느끼며 서연은 한걸음을 내디뎠다.

       

       “서연 양.”

       

       단상을 향해 가는 서연의 등 뒤로, 정은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전에는 미안했습니다.”

       

       그 말을 등지고, 서연은 단상에 올랐다.

       정은선의 말처럼.

       한 명의 배우로서.

       

       “안녕하세요, 태양을 숨긴 달에서 어린 연화공주 역을 맡은 주서연입니다.”

       

       언제나 하던 배꼽 인사를 모두에게 하며.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별을 바라본다.

       

       그곳은 너무나 눈부셔서.

       서연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 생각한 말을 주절거려보지만, 솔직히 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연 양, 울어요?”

       

       그때, 진행자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그제야 서연은 손가락으로 눈을 훔쳤다.

       눈물.

       

       아, 감정이 격해져도. 기뻐도 울 수 있구나.

       이전에 연기에서 울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역시 이것도 잘 모르는 것이다.

       

       전생의 자신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으로.”

       

       그때는 슬픔이라면, 지금은 좀 더 복잡했다.

       서연은 심호흡하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여기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숨을 내쉬고, 활짝 웃으며.

       

       “꼭, 돌아올게요.”

       

       그것이 서연의 마지막 말이었다.

       일곱 살 주서연.

       

       그리고, 어린 아역의 끝.

       유년기의 마지막.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몇 번의 봄.

       또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이.

       

       “주서연.”

       

       교복을 입은 이지연이 눈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가 있었다.

       

       “뭐해, 안 가? 빨리 안 가면 늦거든요?”

       

       자신과 같은 교복을 입은, 검은 긴 흑발의 소녀가.

       열일곱의 주서연이.

       

       “응.”

       

       과거와 같은 담담한 얼굴에.

       

       “갈게.”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연이가 자랐읍니다…

    아 그리고, 초반 4~6화에 ‘김선아 배우’라고 나오는데요.
    후에 ‘한선아’랑 이름이 겹치더군요.

    아마 오늘 내일 중, 김선아 -> 김정하로 이름이 바뀔 예정입니다.
    이게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적다보니 겹치는 것들이 종종 나오네요…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I Want to Be a VTuber

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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