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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본선 1회차 종료 직후.

       

        양하나와 결투에서 승리한 나는 집으로 귀가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경기 중, <비를 내리는>송수아의 경기가 남아있던 덕분이다. 몇 없는 지인인 녀석의 경기를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거기다… 애가 요즘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고.’

       

        원래의 히어로 아카데미를 살아가던 송수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최근들어… 그러니까 죽음이 그녀를 빗겨간 후부터 묘하게 엉겨 붙더라고.

       

        콰과과과광-!

       

        [ 번개입니다! 이전 대결에서는 허리케인을 불렀던 그녀가 이번엔 번개를 떨어트렸습니다! ]

       

        해설자의 열띤 목소리가 스타디움에 쩌렁쩌렁 울렸다.

       

        털썩!

       

        [ 아아……! 결국 랭커의 벽은 넘지 못하는 것인가! 송수아의 번개가 작렬하며 상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

       

        송수아의 상대는 A급의 능력자라고 했던 것 같다.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이면 승천전 본선의 첫 경기에서 랭커를 만난 그에게 애도를 빌었다.

       

        [ 다음 경기 또한 아주 흥미롭습니다! <공간왜곡> 김인만과 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B급 히어로! 방어계 능력자 <역장술사> 임덕춘이 붙게 될 겁니다! ]

       

        랭커인 송수아의 결투 이후에 또다시 랭커, <공간왜곡>의 결투다. 말그대로 죽음의 조와 다름 없는 편성에 혀를 내두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수아, 녀석에게 축하 인사라도 전해줄 참이었다. 히어로 계에 몇 없는 텔레포터가 다음 경기라고 할지라도, 딱히 내 관심사는 아니었으니까.

       

        끼익!

       

        터벅터벅 스타디움 시설 안을 걷던 ‘선수대기실’로 향했다. 랭커에게 제공되는 VIP 관람석처럼, 그들은 별도의 선수대기실을 제공받았다.

       

        “잠깐, 누구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저 복도 끝 방에 있을 송수아 아는 사람이지.

       

        송수아를 만나러 향하는데 건장한 양복차림의 사내 둘이 내 길을 막았다. 간이 검문소를 설치한 모습이, 쓸데없는 사람들 간의 접촉을 막은 모양새다.

       

        “사람을 만나려고요.”

        “아! 최근 유명세를 떨치는 <현상거절>님이군요! 누구를 만나려고 하시는지?”

        “<비를 내리는> 송수아.”

        “알겠습니다. 확인 후에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네네.”

       

        과거와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사람들의 친절이다.

       

        좀처럼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승천전에 참가하지 않고 이제껏 무명의 D등급 능력자였다면 이런 대우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거다. 역시 사람은 유명해지고 봐야한다니까.

       

        타닥!

       

        곧장 한 남자가 복도를 달려나가더니,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이내 환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확인되었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과한 사내들의 친절에 이어 간이 검문소의 문이 열렸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랭커’의 선수대기실이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송수아가 보낸 메세지엔 복도 맨 끝의 대기실에 자신이 있다 했으니 그쪽으로 가볼까.

       

        끼이익!

       

        복도를 걷는 와중, 대뜸 내 앞의 대기실 문이 슥 열렸다.

       

        랭커에게 주어지는 선수대기실의 문이 열렸으니, 분명 또다른 랭커가 튀어나오겠지.

       

        “……으음!”

       

        문을 열고 나타난 건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였다. 그는 내 모습을 보곤 놀란 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더니 말했다.

       

        “이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어.”

        “……?”

       

        예상치 못한 손님? 그건 또 뭔 소리야.

       

        “……탐색전인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남자의 모습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뭐, 남자의 정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당장 컴퓨터나 TV할 것 없이, 거리를 잠시 걷기만 해도 전광판에 얼굴이 나오는 랭커 중 하나이니까.

       

        <공간왜곡> 김인만.

       

        나와 같은 2학년이자 송수아보다 한단계 높은 Z급 4위. 텔레포트 능력자다.

       

        그리고…… 독자들이 녀석을 부르는 별명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찐’이었고, 하나는 ‘아싸’다.

       

        성격 자체가 나쁜놈은 아니었다. 그저 과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을 가졌을 뿐이니까.

       

        다만, 문제는 녀석이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숨기기위해 또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이다.

       

        마치 <성녀>처럼, 놈은 어디 귀족집 영식 같은 꼴을 하고있었다. 당장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복 위에 주렁주렁 달린 악세서리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재미있군. 내 능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던 내게 김인만이 속사포 같이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이게 뭐하는 건데.

       

        “내 다음 경기 상대가 예정되어 있던가?”

        “뭐, 뭐야? 설마?”

       

        김인만이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묘하게 시선을 피한다. 심각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설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널 찾아온 게 아니라고.”

        “……어, 어어?”

       

        잔뜩 붉어진 얼굴의 김인만이 말을 더듬거렸다.

       

        방금까지는 왕자병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이제야 본모습이 튀어나오네.

       

        “아, 그리고.”

        “뭐, 뭐!”

        “반말하지 마라.”

       

        짧게 말한 나는 복도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새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나, 나도 2학년인데?”

       

        억울함 가득한 항변이 곧장 날아들었으나, 가볍게 무시했다.

       

        ……그랬던가? 관심 없다.

       

        * * *

       

        “혜성몬! 안녀엉!”

        “경기 잘 봤다. 역시 대단하던데?”

       

        선수대기실의 문을 열자마자 환한 인사가 날아들었다.

       

        능력을 사용한 피로는 없던 모양인지, 송수아는 평소의 생글생글한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였다.

       

        “헤헤. 최선을 다 해야지. 상대도 진지하게 결투에 임했으니까!”

       

        송수아의 목소리에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딱히 그렇기 보다는… 그냥 상대방은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게 아니었을까.

       

        “참! 만약 예정대로 흘러가면, 다다음 혜성 상대가 정해진 것 같아!”

        “그래?”

       

        호기심이 절로 동하는 말이었다.

       

        딱히 내 상대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본선 첫 경기가 <뇌전검>양하나가 나올 줄 몰랐던 것도 애당초 무관심했기 때문이었고.

       

        하지만.

       

        이제 얘기가 달라졌다.

       

        첫 경기부터 <뇌전검>이라는 거물이 튀어나왔으니, 이제 언제라도 랭커급 거물이 튀어나온다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원작과 달리 랭커들이 대거 참가해서 그런가?’

       

        며칠 전, 박 사무관과 만났을 때 그가 말해줬다.

       

        올해의 승천전이 아주 뜨겁고 치열할 것이며, 그만큼 세간의 기대도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아마… <공간왜곡>. 그가 상대일 확률이 높아.”

       

        약간은 굳은 얼굴의 송수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대로 내가 걱정된 건지, 그러면서도 그녀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건 쉽지 않은 문제긴 하네.”

       

        조금 전 마주친 <공간왜곡>. 그가 내 다음 상대일 확률이 높다고?

       

        아싸 중의 아싸 같은 성격의 김인만이다. 그렇기에 그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지만, 녀석의 능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신 없는 싸움이 되겠네.’

       

        그의 장기는 공간을 왜곡해 건너뛰는 능력. 한마디로 순간이동이다.

       

        딱히 <공간왜곡>과 비교한 내 능력의 힘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변수가 존재해 나도 앞일을 예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잖아! 혜성이는 <현상거절> 능력자니까!”

       

        내가 긴장했다고 생각한 걸까?

       

        슬쩍 내 눈치를 보던 송수아가 이내 씩씩하게 소리쳤다.

       

        “무상성의 능력이긴 하지. 아마 지독하게 치열하거나, 아니면 싱겁도록 허무할 거야.”

        “응응! 나도 열심히 응원할께!”

       

        주먹을 꽉 쥔 송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뭔데 이렇게 귀엽냐.

       

        “그러고보니 너, 내 능력은 어떻게 알고 있다?”

        “다, 당연하지이! 설마 내가 혜성이 능력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어?”

        “…….”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과거, 나는 송수아에게 ‘예언’ 능력자라고 둘러댄 적이 있었다. 

       

        자연히 아직도 나를 예언계 능력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눈치 없는 녀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유리가 알려줬거든.”

        “그래?”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보니, 요즘 한유리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회의 일이 바쁜 건지, 아니면 승천전 덕분에 업무가 과한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꿈’에 갇혔을 당시에 밀린 일을 처리하는 걸 수도.

       

        며칠 전 홀연히 나타나 소갈비찜을 해준 뒤로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저, 저기.”

        “왜?”

        “혜, 혜성이는 유리를 어떻게 생각해?”

       

        헌데 뜬금없는 송수아의 질문이 내게 날아들었다.

       

        한유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보기보다 정이 많은 녀석, 의외로 클래식한 타입의 츤데레녀. 재벌가 여식이라는 배경과 달리 은근히 소탈한 스타일. 뭐 그정도?”

        “오, 오옹.”

       

        스윽.

       

        짧게 반응한 송수아가 내 소파 옆자리에 슬쩍 앉았다.

       

        “그건 왜 물어봐? 뜬금 없이.”

        “……그냥. 듣기로는 혜성몬이 유리랑 빌런의 꿈에 붙잡혔다고 했잖아? 그래서 조금 궁금했어.”

        “뭐야. 싱겁기는.”

       

        둘이 싸우기라도 한 건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나 물어보다니. 평소의 송수아는 이런 질문을 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나 요즘 궁금한게 생겼어!”

        “뭔데? 편하게 말해. 대답할 수 있는 건 다 대답해줄게.”

       

        그리 말한 나는 고개를 젖혀 벽면에 걸린 TV를 바라보았다.

       

        쿠우우우웅-!

       

        [ 함선! 함선입니다! <공간왜곡> 김인만이 대양 어딘가에 난파된 선박과 함께 다시 결투장에 나타났습니다! ]

       

        “…….”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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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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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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