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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그런 크로우필드의 눈을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황제의 성격을 고려하면 자기가 그 일에 관련되었다는 것을 완전히 드러냈을지 모른다. 그걸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 황제의 스타일이었으니까.

        

       네 남편은 내가 처리했다. 그러니 너와 남은 너의 딸이 멀쩡하길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라.

        

       이 시대에 녹음기라는 것은 지나치게 거대하고, 그 성능도 좋지 않다. 마력석은 그 자체로 에너지원이 될 수는 있지만 녹음기의 나머지 다른 부분을 전부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황제가 대놓고 그런 말을 하더라도 증거로 수집할 수는 없을 거다.

        

       마법이 완전히 만능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게임을 하는 내내 도청 장치 같은 것이 나왔던 적은 없다. 나름대로 정치적인 상황이나 법적인 상황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도.

        

       “…….”

        

       앨리스도, 샤를로트도. 상대의 살기를 감지할 줄 안다. 살기, 기척, 그런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아니지, 여기서 따지자면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개념이 이 세계에선 당연하다는 듯 통용된다. ‘어떻게 이런 살기가……!’, ‘어떻게 기척을 숨기고……!’ 같은 식으로 놀라는 장면도 나오고.

        

       ……나는 그런 거 전혀 못 느끼지만.

        

       마법도 쓸 줄 모르고, 기척이나 살기도 못 느낀다. 사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 내 표정은 진작에 깨지고도 남았을 거다. 루카스는 나한테 칼질하는 것 말고도 살기로 놀리기도 했으니까. 내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만뒀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냥 못 느낄 뿐인데.

        

       “…….”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지금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에게 살기를 내뿜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검을 쓰는 캐릭터가 아니니 그 살기가 압도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런 분위기를 정면으로 맞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내가 신기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황녀님은, 학생회 활동을 하시나요?”

        

       나를 보면서 또박또박 물어본다.

        

       원작에서의 미아 크로우필드는 매우 조용한 캐릭터였다. 앨리스의 아버지인 황제가 자기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앨리스에게 필요 이상의 살기를 보내지는 않았다.

        

       앨리스가 직접 죽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원작에서는 클레어의 짓이기도 했고.

        

       나중에 클레어의 목숨을 가져가려고 발악하긴 하지. 그냥 손쉽게 제압당하고 절규하긴 하지만.

        

       “그걸 제게 물어보시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죄책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내 행동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 나버렸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면’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크로우필드 백작이 여덟 살도 되지 않은 것 같은 어린아이와 침대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아이도, 크로우필드 백작 본인도 아편에 취한 상태였다.

        

       ‘내가 죽였을 때’는 물론 그런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인간을 그대로 보냈다면 분명 미래에는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이후로 크로우필드 백작령 안에서 그런 일은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부도덕한 일이라 금지된 것이 아니다. 후에 다시 꼬투리를 잡힐까 봐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이 모든 사업을 정리해버린 것이다.

        

       그 부인이 백작의 정체를 알았을 때 죽은 남편에게 실망했을까?

        

       글쎄, 적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보면 딱히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전부 돌아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조금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나에게 살기를 보내……는 것 같던 표정이 조금 무너지고, 주변을 당황한 듯 둘러보는 것을 보면 사실 그렇게까지 담이 센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건 원작이랑 같은데.

        

       “제가 당신의 아버지를 살해했기 때문입니까?”

        

       “……어?”

        

       학생회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조금은 느슨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끊어지기라도 할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살기 같은 것을 느낄 줄 모르는 나도 방 안의 온도가 몇 도 정도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정도로.

        

       이 안에서 그 소문을 들어본 이는 있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긍정한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거다. 애초에 암살이라는 것은 들키지 않을수록 좋은 거니까.

        

       “다, 당신이…….”

        

       “예, 죽였습니다. 마차에 폭탄을 설치해서. 열두 명이 죽었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앨리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나를 보았다.

        

       “제가 크로우필드 백작을 암살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앨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짐작 정도는 하고 있었겠지. 저렇게 대답했더라도. 다만 내가 크로우필드를 죽였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그때 나는 열 두 살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가, 누굴 죽였어?”

        

       “고아원을 탈출할 때도 이미 한 사람 죽였지.”

        

       클레어의 말에 담담하게 대답하자,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학생회에 들어오시면…… 제가 당신과 같은 학생회가 되면 어떤 일을 벌이려고 하셨습니까?”

        

       나는 다시 미아 크로우필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하지만 나를 보는 미아 크로우필드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의혹이 밝혀져서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무기가 없기 때문일까? 아직 나를 죽이려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미아 크로우필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부축하거나 일으켜 세워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알고 오신 것이 아니던가요? 저를 그렇게 바라보던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겁니까?”

        

       “…….”

        

       미아 크로우필드는 대답이 없었다.

        

       “……당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미아 크로우필드를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려니, 옆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샤를로트가 눈빛으로 얼음이라도 얼릴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제국의 황제가, 자기 휘하의 귀족을 죽였다는 말을 하는 건가요?”

        

       이런 상황에서도 예의를 차리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예절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일까?

        

       “그렇습니다.”

        

       “어째서?”

        

       “황제 폐하의 권력을 위해서입니다.”

        

       앨리스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이미 앨리스에게 내가 앨리스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했다. 혹시라도 내가 앨리스 대신 차기 황제로 지목되더라도 오로지 앨리스만을 지지하겠다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앨리스의 눈에는, 내가 그 백작을 죽인 이유가 앨리스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샤를로트가 진심으로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보았다.

        

       “제 개인적인 판단도 겹쳤습니다.”

        

       “개인적인, 판단…….”

        

       클레어가 내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개인적인 판단이라 함은?”

        

       구역질나는 것을 보는 눈이었지만, 샤를로트는 그럼에도 나의 말을 끊거나 하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

        

       왕국의 왕녀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를 공평한 눈으로 보고자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말을 온전하게 믿지 못하는 건지도. 하긴, 내가 죽였다고는 하지만 증거는 없다. 황제가 나에게 시켰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얼추 상황은 맞아떨어진다.

        

       “백작은 아편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작령에는 아편굴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아편과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이용한 창관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백작이 주도적으로 거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백작은 명백하게 그 창관의 손님이었습니다.”

        

       “……근거는?”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수사와 재판은—”

        

       “불가능했습니다.”

        

       가능했다면 애초에 백작령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제국의 황제가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영지 내에서 최고 권력자는 백작이다. 황제가 백작령에 직접 행차해 권력을 휘두를 수는 있겠다. 그리고, 황제는 그렇게 했다. 폭력이라는 이름의 권력을 휘둘러 백작을 날려버렸으니까.

        

       “왕국이라면 가능하겠습니까?”

        

       “…….”

        

       내가 되묻자, 샤를로트는 입을 다물었다.

        

       괴물을 보는 것 같던 표정이, 조금 이상해져 있었다. 그 감정을 정확하게 뭐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아빠가……? 왜……?”

        

       내 이야기를 들은 미아 크로우필드가 혼자 중얼거렸다.

        

       “미아 크로우필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학생회에 들어오시면 어떻게 하려고 하셨습니까? 제가 백작을 죽인 자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대로 저를 살해하려고 하셨습니까?”

        

       “…….”

        

       미아 크로우필드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다가,

        

       “……죽일 거야.”

        

       그렇게 말했다.

        

       “죽일 거야!”

        

       “당신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던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아이를 희생시키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안 믿어! 안 믿는다고!”

        

       “크로우필드 영애!”

        

       학생회장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아 크로우필드가 금방이라도 나에게 달려들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제가 당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은 믿어도, 당신 아버지가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믿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당신을…… 내 손으로……!”

        

       학생회장이 나서는 것을 보고, 주변 귀족 영애들이 전부 뛰어들어 미아 크로우필드를 말리고 있었다.

        

       “잠깐, 크로우필드 영애! 일단 진정……!”

        

       “……알겠습니다.”

        

       내가 조용히 대답하자, 다시 한번 학생회 전체가 딱 굳어버렸다.

        

       “그런 생각이시군요.”

        

       “언니, 잠깐만.”

        

       나는 살기를 감지하는 법을 모르듯, 당연히 살기를 내뿜는 법도 모른다. 아마 최선을 다해봐야 상대를 노려보는 것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열두 살 때부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고 다닌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이 자리에서 크로우필드를 그대로 제거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이미 클레어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더 이상의 살인은 안 된다는 생각일까? 적어도 나를 보는 클레어의 눈은 경멸하고 혐오하는 무언가를 보는 눈은 아니었다. 그저 걱정이 가득한 눈빛.

        

       “자, 잠깐, 클레어.”

        

       앨리스가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모두 진정해 봐. 저게 전부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앨리스는 어떻게든 나를 감싸려고 했다.

        

       레오는 완전히 얼어버린 모습이었고, 샤를로트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음.

        

       그래, 다들 그런 식으로 반응한다, 이 말이지.

        

       나는 마지막으로 학생회실의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며 머릿속에 그 모습을 최대한 새겼다.

        

       그리고—

        

       다시.

        

       *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녀님…… 아니, 앨리스가 하겠다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 아, 어, 응.”

        

       미아 크로우필드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앨리스가 조금 당황했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데.”

        

       “그렇다면 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밀크티를 입안에 살짝 흘려 넣었다.

        

       “……그렇다면 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싶습니다.”

        

       나를 노려보던 미아 크로우필드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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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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