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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선택과 고민에 앞서, 당신은 회고해야만 했습니다. 당신의 기원을.

       여전히 당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짙은 그림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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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손들이 지내는 거처 회화궁(槐花宮)은 좋은 곳이었습니다.

       

       숨바꼭질하기 좋은 넓은 건물과, 정원사들이 신경 써서 미학적으로 꾸민 정원. 매일같이 제공되는 고급 음식들과,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주는 사용인들.

       

       회화궁에 유일한 결핍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한 애정이었습니다.

       

       노인 황제의 염려에, 궁전의 사용인들은 매 주기마다 교체당했으니까. 또한, 황손들과 정이 쌓이려는 기미가 보이면 어김없이 치워버렸으므로.

       

       황손들이 사용인들을 없는 사람 내지는 골렘 따위로 생각하게 된 건, 그래서였습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도 두지 않고, 설령 흥미나 감사함 같은 감정이 생기더라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떨어뜨린 손수건을 주워 준 메이드의 친절에 감사를 표하는 순간, 내일부터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리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그러니 회화궁에서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애정이었습니다. 그 애정의 공백은, 황손들 서로에게 서로가 채워나갔습니다.

       

       “누나, 오늘은 누나가 술래지?”

       

       “스레도, 집사가 그러는데 누님이라고 불러야 한댔어.”

       

       “그건 너무 딱딱해서 싫은걸.”

       

       제왕학 교육을 받고, 온갖 가문의 문장과 의미를 외우고, 상류층의 제스처와 품위를 온몸으로 녹여내는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어린이였습니다.

       

       일레인, 이리드, 스레도는 정답게 놀았습니다.

       이 작은 세상에 그들만이 존재하던 것처럼.

       

       그리고 그 모습을, 1황자  ▒▒▒는 안락의자 위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의젓했고,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손잡고 뛰어다니는 동생들과 어울려 놀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실컷 놀고 돌아오면 칭찬을 해 줬습니다.

       

       위험한 곳에는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동생들이 성취를 얻으면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을 했습니다. 황손이 사용인들 모두와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

       

       1황자  ▒▒▒는, 어른의 역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실수를 포용하는, 정서적인 지지대 말입니다.

       

       ===============================================================

       

       때는, 황제의 소집 이후로 1년이 지난 시점.

       

       회화궁(槐花宮)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층 발코니에서 떨어진 찻잔에 마당에서 뛰어놀던 3황자 스레도가 다쳤습니다. 약간의 화상과 베인 상처가 생겼습니다.

       

       2황자 이리드가 발을 헛디디자, 우연히도 그곳에 있었던, 끝이 뾰족하게 깎인 대걸레의 자루 부분에 눈이 꿰일 뻔했습니다.

       

       1황녀 일레인, 당신 또한 기이한 ‘불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1층의 홀을 가로지르던 도중, 갑작스럽게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끊어졌습니다.

       

       그때, 옆에 있었던 헌신적인 시종이 당신을 밀쳐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죽었거나, 죽지 않았더라도 큰 부상을 입었을 겁니다.

       

       당신은 시종이 샹들리에에 깔려, 뭉개진 토마토처럼 죽어버리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불운’은 아주 소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목숨을 직접적으로 노려오는 것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제들을 불러와 건물 전체에 축성해도, 궁중 마법사를 데려와 조사시켜도 밝혀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불운이라기에는 그 악의가 섬뜩하여.

       

       당신은 황손 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는── 1황자 ▒▒▒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어른스럽게 동생들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또, 자연스럽게 두른 그 분위기는 어떤가요.

       

       그는 누구보다도 찬란한 금발을 갖고 있었습니다. 깊고 푸르른 눈동자는 장난기로 반짝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일거수일투족에 부드러운 위엄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되어야 한다면 이 사람 말고는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렇기에, 당신은 믿었습니다. 이번에도, 1황자에게 답을 구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리라고.

       

       

       작은 테이블과, 테이블보다도 커다란 안락의자의 위에서. 그는 홍차를 곁들여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리지만 의젓했던 당신은, ‘불운’에 대한 두려움으로 울면서 그에게 안겨 칭얼거리는 대신. 예의에 맞게 노크하고, 단정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당신은 작은 입을 열었습니다.

       

       “오라버니, 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가요?”

       

       “일이라면⋯⋯ 스레도의 얼굴에 흉터가 나고, 이리드가 크게 다칠 뻔한 것 말이니? 아아, 가엾은 시종 한 명도 죽었지. 네가 안 다쳐서 다행이야, 일레인.”

       

       “⋯⋯네. 저는, 단순한 ‘불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법사도, 사제도, 모두가 이상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저는, 악의를 느꼈어요. 누군가가 저희를 해치려 한다고⋯⋯. 오라버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거, 내가 그랬어.”

       

       “⋯⋯⋯⋯네?”

       

       당신은 이해가 따라가지 못해서, 되물었습니다.

       

       

       1황자 ▒▒▒는 상쾌하게도 웃으며, 거듭 긍정했습니다.

       

       “내가 꾸민 일이야. 증거도 찾을 수 없고, 나를 범인으로 몰아갈 수도 없겠지만, 내가 했다는 것만큼은 진실이니까. 믿어도 좋아!”

       

       “⋯⋯짓궂은 농담이세요. 오라버니.”

       

       “그렇게 들렸어?”

       

       그렇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다정다감하던 눈동자는, 어느샌가 당신을 체스의 장기 말처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내려다보는 시선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시선으로부터 지독한 장난기를 느꼈습니다.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어째서?”

       

       어째서 그런 짓을 벌였는가, 와. 어째서 내게 알려주는 것인가. 중의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건 그저⋯⋯ 사소한 게임이야. 심심풀이지. 시간은 한 달을 줄게, 일레인. 한 달 후에는 스레도부터 죽을 거야.”

       

       “⋯⋯⋯⋯.”

       

       “슬슬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으러 가야 하거든. 마침 발견한 것도 있고 해서⋯⋯ 시간이 없네. 가능하다면, 너랑은 조금 더 놀고 싶었어!”

       

       그는 그렇게 대화를 끝냈습니다. 

       

       당신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장난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장난이라기에는 선명했으며. 지난 약 10년간의 세월을 함께 지낸 오라버니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 또한 믿기 어려웠습니다. 

       

       더해서, 오라버니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며, 그와 보냈던 추억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라고 하면, 조금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는 점은── 당신의 공포심을 부추겼습니다.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불행’은 하루가 다르게 거세졌습니다.

       

       시종이 크게 다치거나 죽었고, 스레도는 뾰족한 물건에 공포증을 얻었으며, 이리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열한 살의 어린 몸으로 울고, 불안에 떨고, 패닉에 빠졌다가,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황자는 당신에게 게임을 제안했으므로.

       

       이리드와 스레도, 나아가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규탄했습니다. 이 모든 ‘불행’은 1황자가 꾸민 흉계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설득할 증거도, 증거 없이 믿게 만들 힘도 없었으므로. 당신은 ‘벌써부터 황위 경쟁을 위해서 오라비를 억지로 깎아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애원했습니다. 1황자의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을 멈춰달라고.

       

       그러나 그는 당신의 그런 반응마저도 기꺼이 즐기는 듯했습니다. 화를 내도, 울어도, 웃어도, 그 모든 것들이 재미있는 놀잇감에 불과하다는 듯. 

       

       그리고는, 많은 사람 앞에서 이렇게 말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힘들었구나, 일레인⋯⋯.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있으니, 네가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망상과 현실은 구분해야 해.”

       

       당신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언동이었습니다. 

       

       당신은 깨닫습니다. 저것⋯⋯ 1황자  ▒▒▒가, 중간부터 바꿔치기를 당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랬지만, 본성을 숨기고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것은, 인간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노인 황제는 알고 있었던 걸까요?

       

       황실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저것에 대해서.

       

       황제가 살아남아라, 고. 충고한 것은.

       

       생존. 

       

       어쩌면 정말로, 이 모든 게 자신의 정신병이 아닐까 하는 불안. 1황자에 대한 실낱 같은 믿음과, 타오르는 분노. 위장을 갈아내는 것 같은 신경증. 동생들이 다칠 때마다 늘어나는 죄악감과, 한 달이라는 시간제한이 주는 압박.

       

       당신은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 금색으로 반짝이던 금발이, 빛이 바랠 정도로. 그리고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답을 내었습니다.

       

       이 모든 감정은 외면하기로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오직 살아남는 것을 생각한다면, 답은 분명했습니다. 위협은 배제해야 하고, 그렇다면. 1황자를 죽이는 것만이 활로였습니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 굴며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함을 담아. 오랜 사전공작과 함께, 1황자의 찻잔에 독을 흘려 넣었습니다.

       

       그날의 풍경은 낙인처럼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차를 마시고, 검은 피를 토해내는 1황자. 그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눈짓하고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회화궁의 모두는 압니다. 1황자를 독살한 것이 누구인지. 어려서부터 권력을 잡기 위해, 가장 유력한 계승권자를 죽여버린 독심이 누구의 것인지.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며 안도하는 당신에게, 어째서 그토록 자상하던 1황자를 죽였느나며, 축축하고 날 선 시선이 날아들었습니다. 사용인들은 당신을 피하거나,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열심히 했어⋯⋯ 살기 위해서, 모두를 지키려고 한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제는 다 괜찮다며. 이리드와 스레도에게, 이전처럼, ‘불운’이 회화궁을 덮기 이전처럼, 서로 마당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자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모두를 지켜낸 건⋯⋯데.”

       

       그러나 돌아온 것은, 동생들의 두려움 섞인 눈빛뿐이있습니다.

       

       마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가슴으로부터. 당신은 그 모든 시선에 지쳐서, 그냥⋯⋯ 그렇게 되기로 했습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 이후로, 이리드는 당신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시선에 비친 당신은, 더 이상 자상하던 누님의 모습이 아니었으니. 

       

       스레도는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해친 이는, 가족으로 여기지도 않겠다는 듯이.

       

       당신 또한, 당신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거울을 바라보면, 당신의 배후에는 노인 황제의 시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타인의 시선은 따끔거렸습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또다시 장난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독한 짓을 벌이던 1황자가, 고작 이렇게, 독이 든 차 한 잔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생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권력을 모으고, 잠재적으로 적이 될 것 같은 이들을 박살 내고, 위업을 세우고, 육신을 단련하고. 그것은 어떤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아니, 그것이라도 챙겨야 했습니다. 생존, 그 짧은 단어 하나만이라도 챙겨야 했습니다. 유년기의 아름다운 추억도, 유일한 가족이었던 이리드와 스레도의 애정도, 모조리 잃어버리고 간신히 거머쥔 생존이었으니까. 

       

       당신의 손아귀에 남은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당신은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거머쥔 생존이라는 숙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가 무거워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방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방향은 의미를 잃었습니다. 방만한 듯 굴어도 내실은 없고, 반성하여도 나아짐 없고, 서글프게 외친들 반향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당신은, ‘낙원’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도피행을 끝낼.

       

       ===============================================================

       

       ‘낙원’까지 남은 거리.

       약 30cm.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중에서 나온 30cm은,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를 대강 재봤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기⋯⋯ 조심하셔요, 마이 프렌즈!
    따뜻하게 잘 입고, 잘 자고, 잘 먹고 살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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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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