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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교수니임!”

         

       파스텔은 해맑게 웃으며 달려갔다.

         

       호레이스 교수가 돌아봤다.

         

       “오, 후배! 교수님이라니 어찌 그리 딱딱한 호칭을 쓰나!”

       “헛! 맞아요! 선배님!”

         

       선배님이다! 선배님!

         

       파스텔은 기분 따라 양팔을 파닥였다.

         

       “암암! 그거일세, 후배!”

         

       호레이스 교수가 방긋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교단 습격 이후의 건강과 안부를 주고받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학생회 산하의 상단?”

       “네!”

         

       파스텔은 큰 그림을 떠들었다.

         

       “세상엔 절실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들을 위해 저희가 노력하고 있지만 이 작은 손으로 모두를 도울 순 없잖아요?”

         

       손을 뻗었다.

         

       손이 덜덜덜 떨렸다. 마치 돕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나 괴롭다는 듯이 말이다.

         

       밀무역 수요를 못 채워서 아까워 죽겠다는 감상은 전혀 아니었다.

         

       “오오! 맞는 말일세!”

         

       호레이스 교수가 적극 찬성했다. 그리고 짐짓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 선배도 거기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지.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허억.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정말요?!”

       “암암.”

         

       우와.

         

       선후배 관계가 이렇게도 아름답다니.

         

       “후배에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학생회 산하에 상단을 꾸려서 더 많은 손길로 물품을 전달해 주는 거예요!”

       “좋은 생각일세! 그거라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베테랑 밀무역자도 동의한 사안.

         

       그런데 호레이스 교수가 짐짓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한데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네에?”

       “착한 후배는 나쁜 일을 벌이지 않으니 상관 없지만 학생회엔 사실 견제 장치가 존재해. 감사 교수가 학생회의 활동과 자금 운용을 살피고 교수회의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게 돼 있지.”

         

       헉.

         

       감사 제도.

         

       없는 게 더 이상한 제도.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머릿속에 자신이 저지른 각종 공금 횡령, 권한 남용이 무수히 지나갔다.

         

       학생회 공금?

         

       밀무역품으로 초진화~.

         

       공무 권한?

         

       마계 프리패스권으로 초진화~.

         

       둘이 합쳐 판타스틱 밀무역~!

         

       상상 속 교수가 장부를 살피고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어, 감옥이다.

         

       허억.

         

       파스텔의 손목에 수갑이 찰칵.

         

       쇠창살이 주좌장.

         

       으아아.

         

       경제사범 파스텔 대위기……!

         

       생계형 비리로 인정해 주세요……!

         

       “본래 학생회는 폐지될 예정이어서 이번 연도 감사 교수는 뽑지 않았지. 폐지가 철회된 뒤엔 학생회 실권을 쥔 후작 각, 아니 착한 1학년을 감사할 순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아서 공석이었네.”

       “그, 그렇다면?”

         

       파스텔은 안색이 밝아졌다.

         

       호레이스 교수가 상반되게 슬퍼했다.

         

       “하지만 계속 비워둘 수 없으니 2학기부턴 감사를 할 예정이네. 누가 할지까지 이미 정해졌어.”

         

       숨이 턱.

         

       파스텔은 다시 창백해졌다.

         

       교수가 더 슬퍼했다.

         

       “후배의 갸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감사 교수까지 이해해 줄진 모르겠어. 학생회 산하의 상단이라니. 누가 봐도 수상한 구조 아닌가.”

       “그런, 그런! 전 단지 사람들을 위해!”

       “알지, 알아. 어찌 모르겠나.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냉혹할 따름이야.”

         

       그런!

         

       파스텔은 털썩 주저앉았다.

         

       판타지 세상 완전 데스게임.

         

       굶주린 아이에게 가차 없는 세상사.

         

       흐윽.

         

       “감사 교수님의 성함, 아니 존함을 알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 제 진심을 설득하고 싶어요. 전 단지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 배송업을 할 뿐이라는걸.”

         

       세상은 왜 이리도 차가운 걸까.

         

       감사 교수님은 부디 아이의 설득(금괴)에 마음이 열리는 따듯한 어른이었으면 좋겠어.

         

       황금빛 반짝반짝.

         

       마음이 따듯따듯.

         

       소녀가 오예오예.

         

       “허어. 진심이 담긴 설득을 할 셈인가?”

         

       호레이스 교수가 안타까워했다.

         

       허억.

         

       완전 안 좋은 표정.

         

       파스텔은 주저앉은 바닥에서 차가움을 강렬히 느꼈다. 마음이 추워지고 있어.

         

       “호, 혹시 설득도 안 먹힐 분인가요? 카를로 교수님 같은? 아니 카를로 교수님인가요?”

         

       단호박처럼 학생회 폐지라고 통보하던 교수님?

         

       “본래 카를로 교수가 하려 했지만 다른 교수가 학생회 감사에 열정을 불태우며 단호히 나섰지. 모든 교수를 설득하고 감사 교수가 됐어.”

         

       으아아.

         

       완전 안 좋은 소식.

         

       파스텔은 눈가를 훔쳤다.

         

       “선배님, 후배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세상의 오해와 차가움을 가득 안고 감옥으로 가겠어요.”

         

       호레이스 교수가 탄식을 내뱉었다.

         

       “허허! 그래도 후배에겐 작은 희소식이 하나 있어.”

       “뭐죠?”

         

       파스텔은 울상으로 올려봤다.

         

       눈물이 뚝뚝 나올 거 같아.

         

       “그 감사 교수는…….”

         

       호레이스 교수가 돌연 방긋 웃었다.

         

       “바로 날세!”

         

       웃음소리가 울렸다.

         

       파스텔의 눈이 점점 커졌다.

         

       허억.

         

       감사 교수가 사실 선배님?

         

       나 그러면 여태 놀림당한 거?

         

       “아하하!”

         

       파스텔은 빵 터졌다.

         

       슬픔과 공포가 뾰로롱 날아갔다.

         

       “선배님! 완전 센스 있으셔! 파스텔은 깜빡 속아 버렸잖아요!”

         

       눈물이 쏙 나올 만큼!

         

       괜히 눈가를 훔쳤다.

         

       역시 세상은 살아갈 만해.

         

       기대감을 담아 호레이스 교수를 올려봤다.

         

       “선배님은 신생 상단의 선량함을 충분히 이해하시겠죠?!”

       “알고말고! 혹여 그런 나쁜 오해가 있을까 봐 내가 손수 감사에 나서는 거 아니겠나! 우리 후배가 일을 하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어! 선배로서 오해를 막아줘야 도리일세!”

         

       호레이스 교수가 우하하 웃었다.

         

       “역시 선배님!”

         

       파스텔은 양팔을 파닥였다.

         

       완전 기뻐!

         

       “후배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죠! 학생회에 방문하실 때마다 입이 심심하지 않으시라는 의미로 과일 바구니 하나씩은 성의껏 준비해 놓겠습니다! 언제든 오세요!”

         

       과일(금괴) 바구니.

         

       호레이스 교수가 헤벌쭉해졌다.

         

       “오오! 그리해 줄 텐가? 전혀 바라지 않았지만 후배의 성의라니 받을 수밖에! 감사 교수로서 정기적으로 방문하겠네! 의무를 저버릴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럼요그럼요! 자주 오세요!”

         

       아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것이 선량하고 정의로운 배달 종사자의 모임?

         

       오예.

         

       『하아.』

         

       악마가 중얼거렸다.

         

       『자연스럽게 뇌물을 건네지 마라…….』.

         

         

         

       #

         

         

         

       “상단을 꾸리려면 좋은 상인을 골라야 하네. 특히 후배처럼 독특한 상단이라면 말이야.”

       “새겨듣겠습니다!”

       “음!”

         

       호레이스 교수가 깃펜을 움직였다. 유려한 글씨가 편지지를 채웠다.

         

       “알맞은 상인을 찾는 건 매우 힘겨운 과정일세. 독특한 상황이니 수소문해서 찾기엔 곤란하고 그렇다고 아무나 고르기에도 난감하지.”

       “아! 맞아요!”

         

       끄덕끄덕끄덕.

         

       백번 공감.

         

       “일단 적당한 상인을 찾아도 문제야. 입이 무거우면서 실력까지 겸비한 자. 그러며 독특한 윤리관을 갖춘 상인.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상인이라면 도중에 주인을 배신하기 딱 좋아.”

       “아! 완전 공감해요!”

         

       천 번 공감!

         

       무려 10배나 증가한 공감!

         

       “하지만 어딘가엔 알맞은 상인이 있기 마련이지. 약간의 단점만 감수한다면. 단지 이때 필요한 건 상인을 알아볼 연륜과 경험일세.”

         

       허억.

         

       “전 둘다 없어요!”

         

       으아아.

         

       파스텔은 그냥 벚꽃 나무였어……!

         

       벚꽃벚꽃.

         

       호레이스 교수가 웃었다.

         

       “이 선배만 믿게나.”

         

       깃펜이 놓였다. 편지지가 곱게 접혀 봉투에 들어갔다.

         

       “연륜과 경험을 채워 줄 테니.”

         

       봉투가 닫혔다. 촛불이 기울여지고 촛농이 떨어졌다. 밀랍이 편지 봉투를 고정했다. 교수의 반지가 밀랍 위에 찍혔다. 가문의 문양이 밀랍에 남았다.

         

       호레이스 교수가 편지를 건네줬다.

         

       “소개서네. 경계심을 풀 수 있을 거야. 그 이후엔 쉽겠지.”

         

       눈동자가 분홍 머리를 슬쩍 바라봤다.

         

       “후배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으니.”

         

       파스텔은 마른침을 삼켰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개 편지를 두 손으로 받았다.

         

       “선배님의 과일 바구니를 위해서!”

         

       호레이스 교수가 순간 당황하다가 우하하 웃었다.

         

       “물론일세!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파스텔은 교수실을 나왔다.

         

       살랑살랑한 걸음으로 총총대며 걸었다.

         

       “선배님 완전 착하세요!”

         

       총총.

         

       총총!

         

       그러다 한 바퀴 빙그르르.

         

       시야가 회전하며 우와앙.

         

       아름다운 세상!

         

       『어린 크래프트, 네 감상은 이해하기 참 곤란해. 저놈의 못된 심보를 생각해 봐라. 뇌물 좀 받겠다고 널 돕는 게 아니다. 언젠가 중앙 정계로 진출할 후작에게 미리 연줄을 대는 거야. 애한테 뭔 짓인지. 정말 못된 놈이다.』

       “아이참!”

         

       파스텔은 양팔을 휘저었다.

         

       “칙칙한 생각을 하시니 칙칙한 말이 나오는 거예요! 저 보세요, 저!”

         

       하나, 둘, 셋!

         

       “파스텔 회전!”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하얀 원피스가 나풀거렸다.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하나, 둘, 셋!

         

       “파스텔 역회전!”

         

       반대로 빙그르르 돌았다.

         

       하얀 원피스가 나풀나풀.

         

       분홍 머리가 휘날휘날.

         

       기분은 아하하!

         

       “악마님 완전 칙칙해!”

         

       아하하.

         

       파스텔은 악마의 속삭임은 상큼하게 무시했다.

         

       상큼상큼 레모네이드~.

         

       우왕.

         

       아카데미를 벗어나 비공정 정박장으로 갔다.

         

       상단 건물이 늘어섰다. 하늘섬의 지정학적 가치를 이용해 인간계와 마계를 오가는 상단들은 경호 인력과 무장이 탄탄한 게 특징이었다.

         

       지난번에 팔씨름으로 제압한 아카데미 주변 상가 연합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지출도 많지. 넌 제대로 겪지 못 했지만 해적을 잘못 만나 무역선을 강탈당하고 그대로 파산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하루아침에 건물이 팔리고 간판이 바뀌는 건 흔한 일이야.』

         

       오호.

         

       『밀무역은 간편한 돈벌이가 아니다. 특히 해적이 눈독 들일만큼 규모가 커질수록 말이다. 꼭 좀 자각했으면 좋겠군.』

         

       허억.

         

       그렇구나.

         

       파스텔은 대강 흘려들으며 주변을 구경했다.

         

       “근데 뭔가 이전보다 무장한 인력이 많네요?”

         

       무슨 날인가.

         

       『방학 시즌이라 그렇다. 지켜야 할 학생들이 돌아가면 아카데미의 하늘섬 방비가 느슨해지지. 하지만 정작 무역은 끊기지 않으니 상단의 용병이 늘어난 거다.』

       “해적들도 알겠네요? 활동이 왕성해지겠어요.”

       『그래서 방학 시즌마다 상단 연합이 해적 소굴을 일부 토벌하는 거로 안다. 아마 토벌 준비 중이라 이리 소란스러운 거겠지.』

       “으아아.”

         

       해적이래.

         

       덜덜덜.

         

       완전 무섭.

         

       파스텔은 벌벌 떨며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다 교수가 알려준 간판을 발견하곤 반색했다.

         

       “저기네요!”

         

       우와아.

         

       주변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의 상단이었다. 특이한 건 무장 인력이 상단 규모보다 많았다.

         

       파스텔은 마른침을 삼키고 상단에 들어섰다.

         

       성큼성큼 데스크 직원에게 향했다. 멋모르고 방문한 애를 보는 시큰둥한 시선이 왔다.

         

       그러다 시선이 분홍 머리에 닿고 생각하는 듯한 시간이 흐르더니 직원의 안색이 변했다. 우당탕 소란이 일었다.

         

       잠시 뒤 파스텔은 건물 최고층의 응접실에서 곧 상단주가 돌아올 거라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우왕.

         

       혼자 남게 되자 소파에서 몸을 들썩였다.

         

       소파가 푹신푹신.

         

       소녀는 우와우와.

         

       고급 소파를 만끽하곤 차분히 앉았다. 최고층 응접실에 걸맞은 귀족의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힐끔 내려봤다.

         

       엄청 비싸 보이는 찻물.

         

       품위 있게 양손으로 잡고 들었다.

         

       후후 불다가 꼴깍 마셨다.

         

       씁쓸함이 입안을 채웠다.

         

       으에엑.

         

       완전 맛없어.

         

       품위 있게 찻잔을 내려놨다.

         

       그러다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바보처럼 이럴 때가 아니야.

         

       상단주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소개서가 있다 해도 방심할 수 없었다.

         

       으아아.

         

       얼마나 냉혹한 현실이 굶주린 아이를 덮쳐올까?

         

       비정한 데스게임이 여기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으아아.

         

       똑똑한 파스텔이 필요해……!

         

       상단주가 응접실에 당도했다.

         

       편의성을 고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복장의 중년 여성이었다. 접이식 부채가 손에 들려 있었다.

         

       허억.

         

       완전 무섭.

         

       비즈니스 모드, 비즈니스 모드.

         

       파스텔은 냉철한 얼굴이 됐다.

         

       상단주가 정면에 마주 앉았다.

         

       염탐하는 듯한 시간이 흘렀다.

         

       문득 상단주가 미소 지었다.

         

       “혹시 저 못 알아보시겠어요? 부고 편지를 보내주시기도 했는데요. 어릴 적에 뵌 적도 있답니다. 한 무릎 높이쯤 되실 때.”

         

       오잉.

         

       파스텔은 기억을 되짚었다.

         

       전혀 모르겠어.

         

       표정에 드러났는지 상단주가 살짝 아쉬워했다.

         

       “저 엠마 하녀장의 동생입니다. 크래프트의 하녀직에 응시했다가 떨어지기도 했죠. 그땐 울었는데 지금은 언니 말고 제가 아가씨와 마주 앉았네요.”

         

       씁쓸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엠마 하녀장의 동생?

         

       희생한 가신의 동생……?

         

       오이잉.

         

       악마가 말해왔다.

         

       『방심하지 마라. 아카데미가 바로 옆인데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윤과 숫자를 좋아하는 자야.』

         

       아, 그건 알고 있어요.

         

       엄연히 비즈니스 모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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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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