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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트롤링?”

     

    라우가가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예. 쉽게 말하면 공멸, 아군도 승리할 수 없지만 적의 승리를 저지해 경기의 즐거움을 한껏 고양하는 전략입니다.”

     

    내 설명을 들은 라우가가 입꼬리를 길게 쭉 찢었다.

     

    “이럴 줄 알았지. 너, 보기처럼 못된 애구나?”

     

    “그럴 리가요. 어디까지나 흥미진진한 대회를 위해서입니다. 비무대회라는 음식은 본래 훌륭하지만 조미료가 가미되면 더욱 훌륭해지지 않겠습니까.”

     

    “후후, 자극적인 전개는 나도 좋아해. 그 소설 읽어봤니? 요즘 제도에서 유행하는 연애소설인데, 전개가 장난 아니거든.”

     

    라우가가 타다닥,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어느새 다른 주제로 잡담을 시작했다.

     

    또 지루하게 재잘대는 소리를 들어주자니 두통이 일어온다.

     

    나도 아스피린 한 알 먹어야겠어.

     

    “후후, 올해 꽃놀이, 엄청 재밌겠다!”

     

    끝까지 비무대회보다 꽃구경을 기대하는 황녀님이었다.

     

    그렇게 나와 라우가의 거래가 성립했다.

     

     

     

    ***

     

     

     

    라우가에게 마스크를 만들어준 지 이틀이 지나니 제도에서 묘한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글쎄, 요즘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도 못 하겠다니까요?”

    “제 턱선 날렵해진 것 좀 보세요. 진작 이런 물건을 왜 못 만들었는지 몰라.”

    “전염병도 막아준다는데 안 쓸 이유가 없잖아요? 어차피 숨 차는 거야 코르셋보다 덜하구요.”

    “내의원 주치의께서 발명한 물건이라니까 신뢰도 가요.”

     

    제도에서 귀부인과 영애들을 중심으로 마스크가 패션 아이템으로 대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리넨 재질이 기본이라 숨을 아주 막지도 않고, 원래 코르셋에 익숙한 여성들이라 그 정도는 패션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황궁을 드나드는 귀족 여성들은 모두 현대식의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다들 의류상인이 내걸 본떠 만든 마스크를 앞다투어 구매해 서랍장에 쌓아놨다는 모양이다.

     

    “선생님이 처음 고안하신 방어구 아닙니까? 저렇게 아무나 제작해도 괜찮은지요.”

     

    유행을 지켜본 타냐가 걱정 어린 소리를 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의학은 민중에게 널리 퍼지도록.”

     

    그게 기본적인 정신이긴 하지.

     

    “다만 이 세상에서는 대가도 필수지. 개런티는 받아야겠지?”

     

    나는 의사 가운을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

     

     

     

    아셀라의 시녀장, 루시가 빈틈없이 일과를 수행하다 보니 또 하루가 금방 흘러갔다.

     

    자신이 섬기는 주군, 아셀라를 항상 곁에서 보필한다.

     

    기분이 조금 불편해 보인다.

     

    원인은 짐작이 갔다.

     

    이전번의 충돌 이후 카밀라 황비는 아셀라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냉전 상태.

     

    그럼에도 아셀라는 묵묵히 받아야 할 교육을 스케줄에 맞추어 진행했다.

     

    황비가 시켜서 시작한 교육이지만, 차기 황제가 되겠다는 목표에는 아셀라에게도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도 황비님이 새긴 것이겠지만.’

     

    아셀라를 오래 지켜본 시녀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아도 한 단계 높은 마법 시전에 성공할 때면, 아셀라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곤 했다.

     

    보다 높은 경지에 대한 성취욕이다.

     

    황가의 인물들은 누구나 그랬다. 피에 새겨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

     

    능력이 전제된 탐욕의 화신들이라고 할까.

     

    현 황제도 젊을 적엔 그 끝없는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거쳐 제국을 키워온 백전노장이었다.

     

    ‘하지만 황녀님은 높은 마법의 위계에 도달하신다 한들, 칭찬받는 일이 없으셨어.’

     

    불경한 마음을 품는 것조차 당연히 목이 날아가야 마땅한 죄이지만, 어쩌겠는가.

     

    시녀장은 카밀라 황비가 결코 좋은 부모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5위계라는, 재능과 노력 모두 전제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인외의 영역에 들어선 천재적인 마녀다.

     

    아셀라가 저 어린 나이에 벌써 3위계 마법을 구사했음에도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더 높은 경지를 강요하며 구박할 뿐이다.

     

    자신에게는 당연하게 쓸 수 있는 초보적인 마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십대에 3위계 마법을 쓰는 건, 마탑이었다면 불세출의 천재 소리를 들었을 어마어마한 위업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설령 모험가를 평생 업으로 삼는다 한들, 백발 노인이 되어서야 겨우 3위계 마법을 하나 구사할까 말까다.

     

    그녀의 스승인 시모어가 이백 년만에 나타난 역사적인 대마법사― 현자라 그럴까.

     

    더더욱 비교가 되어버린다.

     

    ‘황녀님은 이렇게 초라한 대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거늘.’

     

    시녀장에게 사소한 불만이 있다면 그런 것이었다.

     

    카밀라 황비에게 아셀라는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애초에 자신이 입궁하기 위해 낳은 존재다.

     

    평범하게 자신의 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늘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다른 가족은 아셀라를 제거하려 들거나, 이용하려는 배다른 형제들뿐이니 황가에 아셀라의 편은 없었다.

     

    ‘황녀님이 차기 황제가 되시려는 것도….’

     

    카밀라의 바람을 이루면 칭찬을 들을 수 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시녀장은 그리 추측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나가봐.”

     

    개인 교사가 교습실을 나섰다. 실력 있는 전직 용사아카데미 교수지만 아셀라가 예를 갖추지는 않는다.

     

    시녀장은 잠시 주어진 아셀라의 휴식 시간이라도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미리 정성껏 준비한 홍차를 대접했다.

     

    “황녀님, 다과입니다.”

     

    “따라줘.”

     

    다람쥐처럼 홀짝홀짝 잔을 기울이는 아셀라의 모습에 시녀장은 조금 안도했다.

     

    지금처럼 감기가 유행할 땐 따뜻한 물을 많이 먹는 게 좋다고 주치의가 이야기했다.

     

    ‘황녀님이 선생님 말씀은 잘 지키셔.’

     

    그나마 최근 주치의 덕분에 걱정을 조금 덜었다.

     

    그가 오고부터 이 몇 주간, 아셀라는 확실히 전보다 얼굴이 편해 보였다.

     

    전처럼 밤에 발작하는 사고가 생기더라도 그라면 어떻게든 해결해주리라.

     

    “아셀라, 있느냐.”

     

    유리장 위에 떨어진 망치 마냥 휴식을 깨는 목소리.

     

    갑작스런 방문이었다.

     

    카밀라 황비가 호위기사들과 함께 아셀라의 교습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시녀장은 즉시 몸을 떨어트려 예를 갖추었다. 카밀라가 아셀라의 책상 앞에 섰다.

     

    “어마마마.”

     

    카밀라는 아셀라가 방금까지 공부하던 서적을 슥 훑어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꼴에 공부하는 흉내는 계속하고 있구나. 내 감독 없이 퍽이나 열심히 하겠어. 항상 집중도 못 하는 주제에 말이야.”

     

    숨도 쉬지 않고 독설을 쏟아내는 카밀라의 말을 아셀라는 묵묵히 듣기만 한다.

     

    “네가 그런다고 하여 나 없이 차기 황제를 승계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언제쯤 머리를 조아리러 오나 했더니 끝까지 머리털도 비치지 않는구나. 그 망나니가 아주 흑색으로 물들여 놨어.”

     

    카밀라가 라스를 언급하자 아셀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무대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구나. 폐하께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사실지도 모를 일이야. 그 얼빠진 1황자가 내정되기 전에 후계자 자리를 뺏어와야 한단 말이다!”

     

    시녀장은 황비에게 반박하고 싶은 말이 한 트럭이었지만 전부 목으로 삼켜냈다.

     

    아셀라가 비무대회를 열심히 준비하는 건 옆에서 늘 지켜보던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교육으로 가득한 일정에서도 기사단 관리를 잊지 않고, 직접 퍼포먼스를 보이기 위해 마법 연습도 멈추지 않는다.

     

    “네가 계속 멋대로 굴겠다면 나도 원조를 끊을 뿐이다. 게오르크 2황자가 내 마법사들이 자기 파벌에서 연무를 보여주길 원하더구나.”

     

    “제자들을 다른 파벌에 빌려주시겠다고요?”

     

    아셀라가 반응하자 카밀라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우위를 점한 자의 여유였다.

     

    “게오르크 황자는 전부터 우리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느냐. 다른 파벌이라고 배척할 사이도 아니지.”

     

    “게오르크가 왜 저희를 원조했는지는 충분히 아시잖아요. 아군이 아니에요. 승계권자라고요.”

     

    아셀라가 분노하며 쏘아붙였다.

    시녀장 역시 이유는 추측할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차기 황제직을 노리는 이에는 게오르크 2황자와 헤이케 1황녀가 있다.

     

    둘 중 황가의 강력한 마도병기가 될 아셀라를 컨트롤할 수 있는 쪽이, 후일에 강한 입지를 점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2황자의 지원은 선의나 형제의 우애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오히려 아셀라가 승계권이 없는 도구라고 여겼기에 취한 정치 전략이었다.

     

    “아셀라, 내가 너에게 늘 뭐라고 했지?”

     

    “차기 황제가 되라고 하셨죠.”

     

    “잘못 들었구나.”

     

    카밀라가 아셀라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내게 황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네가 내 편이 아니라면 필요 없어.”

     

    잔인한 말이라고 시녀장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돌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2황자의 파벌로 돌아서겠다.

     

    협박이나 다름없다.

     

    아셀라가 늘 태도는 차가워도, 자신의 소유물이라 인식한 것에는 애착이 많다고 시녀장은 생각했다.

     

    그 증거로 시녀인 자신이나 기사들에게는 결코 모질게 구는 일이 없다.

     

    업무량이 많기는 해도 합리적인 명령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렇기에 월광궁의 소속인들은 아셀라에게 충성을 바친다.

     

    황비 역시 아셀라에게는 자신의 것 범주 안에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황비는 적어도 시녀장이 아는 한 아셀라에게 애정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지금처럼 애정을 줄 것처럼 유혹할 뿐이다.

     

    “비무대회에서 나 없이 우승하여 폐하를 감복시킬 수 있겠느냐? 그런 소꿉장난 같은 훈련으로 말이야!”

     

    “그건….”

     

    아셀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조건이 너무나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일단 기사단의 숫자가 적다.

    카밀라의 말대로 훈련은 소꿉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2황자도 1황녀도 훨씬 정교한 전략을 준비해올 것이 틀림없다.

     

    “이제 현실을 좀 알겠니? 아셀라, 넌 내가 없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에 불과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어라. 특별 교육을 받으면 그날의 일은 용서해줄….”

     

    ―쿵쿵.

     

    힘찬 노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린 건 그때였다.

     

    “황녀님, 주치의 의사 고트베르크가 보고 올립니다.”

     

    카밀라가 홱 고개를 돌려 주치의를 노려보았다.

    짜증이 치민 얼굴이 인상으로 구겨진다.

     

    “너…! 지금 내가 아셀라와 중요한 이야기 하는 게 안 보여?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끼어들어!”

     

    “외부인이 왜 여기 계시는지요?”

     

    “뭐라고!”

     

    라스가 이를 가는 황비를 무시하고 아셀라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비무대회에 참가할 저희 월광궁 기사단을 임시로 재편성했습니다. 승인해주시면 진행하겠습니다만.”

     

    아셀라가 슥, 보고서를 넘겼다.

     

    “백사십 명?”

     

    “예.”

     

    심상치 않은 이야기에 카밀라가 눈을 부릅 떴다.

     

    “백사십이라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주치의!”

     

    “어허, 황녀님이 보시는 기밀문서를 어디서 훔쳐보려고 그러세요. 아무리 황비님이셔도 선은 지켜주십시오.”

     

    라스가 등으로 카밀라의 시선을 마크한다.

     

    아셀라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이건 뭐야?”

     

    “마스크 특허권 신청서입니다. 황녀님 권한이면 바로 패스시켜주실 수 있겠지요?”

     

    라스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특허 수익은 월광궁 예산으로 씁니다. 제 주머니에도 조금 넣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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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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