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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악마 단장과 유령.

       둘 사이에 싸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적막한 분위기를 깬 것은 엘라의 목소리였다.

         

       “콜록콜록, 뭐?”

         

       간신히 숨을 토하며 원더스타인을 쳐다보는 엘라.

       그녀의 시선에는 어처구니없어하는 그녀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누가 누구보고 쓰레기라는 거야?”

         

       그녀의 적나라한 지적에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하긴 내가 누구를 욕할 처지인가.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쓰레기라는 소리를 백 번은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원더스타인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웃는 남자 덕분에 오히려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꾸할 수 있었다.

         

       “저 남자가 엘라 양을 괴롭혔는데요?”

       “그래서…… 나 대신 화내준 거다?”

       “후후, 네. 맞습니다. 엘라 양은 제 부단장이잖아요. 단장으로서 화 좀 내면 안 되나요?”

         

       이죽대는 그를 보고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엘라.

         

       이 능글맞은 악마 같으니.

         

       그녀가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그때,

       유령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크아아악!”

         

       서걱.

         

       녀석이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더니, 맨튤라의 칼날을 향해 팔을 들이댄 것이다.

       비수가 박힌 쪽의 팔이었다.

       달려드는 속도 덕분에 녀석의 팔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피가 공중에 흩뿌려지고 잘려나간 팔이 바닥을 뒹굴었다.

         

       “끄으윽! 크킄! 큭!”

         

       데릭은 상처 부위를 부여잡고 신음과 웃음을 동시에 토해냈다.

       물질투과를 봉쇄하는 ‘질량’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원더스타인과 엘라를 노려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 어쩌나? 이제 다시 나는 자유인걸?”

         

       휙 하고 그를 향해 비수가 날아들었다.

       엘라가 날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데릭은 물질투과 능력을 사용한 뒤였다.

       비수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데릭은 그런 그녀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뭐냐, 이 계집! 처음부터 아예 그쪽 편이었나? 설마 나에게 털어놓은 과거도 다 거짓말이었냐? 저 괴물이 네 고향 마을을 몰살시켰다면서?”

         

       그의 말에 엘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닥쳐!”

         

       그녀의 반응에 유령은 딱 걸렸다는 듯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하하, 그건 사실이었나 보군. 그런데도 서커스 따위나 하며 같이 다닌다는 거지? 네가 말한 정신적 자유라는 게 이런 거였나, 응? 사부가 불구가 되고, 친구들이 죽어 나갔는데도 나 몰라라! 하하! 대단한 변명이군! 하하하!”

         

       엘라는 머릿속에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엘라의 역린이었다.

         

       철천지원수인 원더스타인.

       즐거운 지금의 생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양립하는 모순.

       간신히 2년 반이라는 시간으로 타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놈이 또 아픈 상처를 헤집고 말았다.

         

       엘라는 비수를 역수로 쥐고 앞으로 나섰다.

       원더스타인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손을 탁 내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친한 척은 어지간히 하라고. 빌어먹을……빌어먹을……악마 주제에.”

         

       싸늘하게 그를 쏘아보는 엘라.

         

       “엘라 양, 저놈은…….”

       “꺼져. 내가 잡을 거야.”

         

       돌무더기 위에 올라서는 엘라.

         

       그 앞에는 반투명한 유령이 그녀를 보며 실실 웃어대고 있었다.

       비록 가면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술만으로 사람을 약 올리는 데는 충분했다.

         

       “하하, 어쩌시게, 응? 몇 가지 재주 좀 익혔다고 해서 날 잡을 순 없어! 내 이 힘이야말로, 키르쿠스에게 받은 축복! 인스피라니까 말이야!”

         

       그의 말에 엘라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뭐?”

       “그래. 그분도 나를 인정해주신 거지! 나의 활동이 예술의 일환인 것을!”

         

       유령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순간적인 실체화로 벽에 있는 스위치를 잡아당겼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무언가가 쇠사슬을 타고 내려왔다.

         

       철커덩하고 도르래가 멈췄다.

         

       엘라의 눈앞에 흔들리는 형체들.

         

       “이, 이건……?”

       “나의 ‘작은 새들’이지.”

         

       쇠사슬 끝에는 새장들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 크기의, 크다면 크고, 작으면 작은 새장.

         

       그 안에는 이미 썩어버린 백골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그 골격과 크기로 보아, 전부 여자아이였다.

       10대를 넘지 않은.

         

       “내가 구원해준 아이들이야! 건방지게도 내게 그렇게 은혜를 입고도, 내 구애를 거절한 아이들이기도 하지. 도망치려는 새들은 말이야. 모두 날개를 꺾어 새장에 넣어버렸어. 그리고 첫 번째 새가 굶어 죽는 그 날! 키르쿠스께서 내게 속삭이셨지. 내 재능을 마음껏 펼치라고!”

         

       그의 말에 엘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모든 곡예사가 신성시하는 대상인 재치와 번뜩임과 예술의 신, 키르쿠스.

       저런 놈에게 그분이 힘을 내려주셨다는 것 자체가 그분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때, 원더스타인의 싸늘한 웃음소리가 데릭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하하, 축복이라고요? 축복? 후후, 거짓말하지 마시죠.”

         

       그의 비웃음에 유령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그를 노려보았다.

         

       “뭐, 뭐?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원더스타인의 입가를 스치는 조소.

       뭘 아냐고?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키르쿠스가 당신에게 내린 건 저주입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저주. 감히 무대와 배우를 모욕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 투명해지고 희미해지다 이내는 소멸해야 하죠. 하지만 당신은 간신히 자신을 이 세상에 붙드는 방법을 발견했어요.”

         

       그의 말에 유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닥쳐라! 네가 키르쿠스의 대변인이라도 되나?”

       “당신을 본 적이 있거든요. 이 저주를 증오하며 울부짖는 당신을. 당신은 원래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할 존재. 하지만 ‘한 가지 원소’ 덕분에 이곳에 간신히 머무를 수 있죠. 엄밀히 말해 당신의 능력은 물질투과가 아니에요. 물질투과는 저주가 진행되는 중간 단계죠. 당신이 개발한 능력은 저주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구체화하는 거고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황(黃)’이 필요했고요. 아닌가요? 그게 바로 당신이 이 똥 냄새 가득한 지하에 숨어 사는 이유죠. 분변은 부패하면서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니까요. 황을 흡수해야 당신은 실체화할 수 있죠. 우습지 않습니까? 인간이 먹고 흡수하고 최종적으로 쏟아낸 찌꺼기가 당신의 존재를 현실에 붙잡을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 황만이 당신의 허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죠. 당신의 얼굴이 녹아내린 그것도 당신의 두 번째 새가 당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황산을 뿌렸기 때문이죠?”

       “어, 어떻게 그, 그 사실을…….”

         

       병에 걸린 사람처럼 벌벌 떠는 유령.

       안 봐도 느껴졌다.

       가면 아래 그의 얼굴도 그가 쓴 가면만큼이나 창백하게 변했으리라.

         

       원더스타인은 엘라를 바라보며 외쳤다.

         

       “엘라양, 지금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엘라의 손이 번쩍였다.

       그녀가 던진 것은 바로 원더스타인의 주머니에서 훔쳐 간 ‘유황 가루’.

       유령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그가 챙겨온 것을 엘라가 잠시 안겼던 동안 슬쩍 한 것이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헝겊이 풀어지며 안에 든 가루가 공중에 흩날렸다.

       거기에 휩싸인 유령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어났다.

       유령의 몸에 점점 색이 돌아오더니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엘라는 후련하게 숨을 내쉬며,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구는 유령을 바라봤다.

         

       “훌륭한 솜씨입니다. 저를 속인 연기도요. 순간적으로 정말 엘라 양이 열 받아서 뛰쳐나간 줄 알았습니다. 제 주머니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열 받은 거 맞아. 친한 척하지 말라는 것도 진심이거든? 당신이 내 말을 들어 먹을 리 없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이지.”

       “오, 잘 아는군요.”

         

       그녀를 바라보며 놀리듯 웃어대는 악마 단장.

       엘라는 이제 일일이 반응해주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황 가루는 어디서 났대. 연금술 길드에서 샀어?”

       “연금술 길드는 명백한 출처와 자격이 없으면 재료를 안 팔아요.”

       “그럼 훔쳤어?”

       “아뇨. 정당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대동했지요. 그 자격 중 하나에 총사가 있습니다.”

       “총사? 아, 그 콧수염 아저씨.”

         

       총사가 쓰는 머스킷에는 흑색화약이 쓰였다.

       그러나 어떤 총사도 화약을 그대로 들고 다니지 않았다.

       화약은 습기 때문에 보관하기도 어려웠고, 자칫 잘못하다간 터질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화약을 원료 상태로 지참하다가, 필요한 날마다 재료를 조합해 화약을 제조했다.

         

       화약의 재료에는 초석과 숯 그리고 황이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극장에 있는 동안, 어제 오후에 아나이스의 경호원인 포르슈 경을 설득해 루즈의 연금술 길드를 찾아 황을 구매했다.

         

       -어디 쓸 건지 물어봐도 되겠소?

         

       성격과 취향을 잘 알고 있는 덕에 쉽게 친해진 포르슈 경.

       그러나 아무리 허술한 그라도 황 같은 물질을 구해주는 데 사용처까지 안 물을 순 없었다.

         

       “폭죽을 만들고 있다고 했죠.”

       “그럴듯하네.”

         

       원더스타인과 엘라는 유령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옷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시뻘겋게 화상을 입어 있었다.

       여전히 몸을 뒤틀고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것이 몸에 달라붙은 황을 다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하죠?”

       “경찰에 넘겨야지.”

         

       엘라의 말에 그는 잠시 고민했다.

       퀘스트는 분명 유령을 처치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라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 듯했다.

         

       뭘 고민하는 거지?

         

       그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이번에 엘라와 엮이면서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첫 번째는 장미 풍차 꼭대기에서 유령을 막지 못한 것이며, 두 번째는 그녀에게 신경을 쓰느라 유령이 자신의 팔을 끊어버리고 도망칠 기회를 줘버린 것이다.

         

       양쪽 다 퀘스트의 공략에서 벗어나, 원더스타인의 캐릭터에서 벗어나, 그 자신의 기분대로 행할 때 벌어진 일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누구와 입맞춤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좀 맞았다고 해서 욕을 내뱉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수습이 되긴 했지만, 만약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감정대로 가다가 실패한다면? 꼭 달성해야 할 퀘스트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두 가지다.

         

       죽거나, 사지가 없는 몸뚱이로 현실로 돌아가거나.

         

       둘 다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는 태도를 확실히 정해야 할 때다.

         

       “후후, 미안하게 됐습니다, 엘라 양.”

       “뭐?”

         

       푹.

       맨튤라의 칼날이 유령의 어깨를 꿰뚫었다.

         

       “크헉, 컥!”

         

       그리고 연이은 타격.

         

       푹. 푹. 푹. 푹.

         

       배, 가슴, 허벅지, 팔.

       이어서…….

         

       푹.

       머리.

         

       “끄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유령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확실히 죽었다.

         

         

       [‘서브 퀘스트-카바레의 유령’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유령의 가면’이 제공됩니다.]

         

         

       알림창에 뜬 은빛의 가면.

       손을 내밀어 잡으면 그대로 현실로 끌려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창을 닫고 가면을 꺼내는 것은 잠시 보류해두기로 했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니.

         

       원더스타인은 칼날에 박힌 유령의 몸을 들어 그대로 물에 던져버렸다.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며 그의 시체가 천천히 흐름에 휩쓸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

         

       엘라는 유령의 시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후후, 좀 충격이었나요?”

       “뭐, 그 정도까지는……. 당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에 비하면 약과지. 동정할 대상도 아니었고.”

       “그래요? 다행이네요.”

         

       엘라는 잠시 그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지나쳐 배로 향했다.

         

       “그냥 안심했을 뿐이야.”

       “후후, 뭐가요?”

       “당신이 미워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남아줘서.”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늦게 도착하느라, 엘라와 유령이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것이 왜 안심할 일이지?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고민해가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바레의 유령은 내일이 마지막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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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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