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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EP.34 EP.34

EP.34

       쨍그랑.

       

       엘리가 닦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그 날카로운 파열음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리디아의 머리보다도 큼직한 젖가슴에 집중하고 있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엘리? 괜찮…어?”

       

       반사적으로 엘리의 안부를 묻다 말고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창백하게 질린 피부. 노란 맹수의 눈은 그 날카로움을 잃고 정처 없이 흔들렸으며, 한쪽 팔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강인했을 터인 몸뚱이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잘게 떨렸다.

       

       평소라면 멋있었을 거친 인상의 잿빛 머리카락과, 깔끔하게 차려입은 바텐더 복장이 지금은 역으로 엘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으니.

       

       지금의 엘리를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그래. 하루아침에 몰락한 귀족 영애, 전 재산에 빨간딱지가 붙은 상인, 상금으로 흥청망청 가챠 돌리다 텅장이 된 통장을 발견한 소설가 같은 느낌이었다.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사람 특유의 현실 부정과 절박함이 담긴 목소리로 외치는 엘리.

       

       “바, 바람은 요나가 피우고 있었잖아!”

       

       “…넹?”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였다. 리디아에 이르러선 사색이 된 얼굴로 마구 고개를 저었고.

       

       하지만 엘리는 여전히 배신감 가득한 절절한 목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나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 저녁에는 내 눈앞에서 리디아의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니….”

       

       쫑긋 서 있던 늑대 귀는 추욱 늘어졌고, 가볍게 흔들리던 꼬리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미동조차 않고 있다.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모습. 이에 내가 엘리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뒤늦게 깨달았다.

       

       매일 재산과 몸이 목적이라면서 결혼해달라고 달라붙는 핑챙 꼬맹이. 이 발랑 까진 것이 어디서 이상한 속옷을 사 왔길래 눈 딱 감고 입었더니 처음으로 키스를 받은 것이다. 볼이지만.

       

       분명 아닌 척하면서도 한껏 들떴겠지. 아무렴. 굴러들어 온 기회도 잡아채지 못하는 모솔 아다 찐따 엘리 아닌가.

       

       그런데 남자 쪽에서 먼저 다가와 볼 뽀뽀를 하고 갔다?

       

       장담할 수 있다. 분명 엘리는 오늘 하루 종일 아이는 몇이나 낳을지, 이름은 뭘로 할지, 결혼식에는 누굴 부르고, 임신하면 가게를 어떻게 할까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갑자기 눈앞에서 친한 후배의 몸에 정신이 팔려 한번 가슴 만져봐도 되냐고 묻는다니.

       

       이거 완전 NTR이잖아…좋게 쳐줘도 BSS고. 나라도 상처받았을 거다.

       

       남녀역전 세계라 여자의 가슴에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여전히 가슴은 대표적인 성감대다.

       

       그냥 눈으로 보는 거면 모를까 직접 만지는 건 꽤 찐한 스킨십이라는 소리.

       

       갑자기 비키니 아머로 등장한 리디아의 가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엘리를 신경 쓰지 못하다니.

       

       내 잘못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그대로 카운터를 뛰어넘어 엘리의 옆에 도착했다.

       

       “엘리.”

       

       “…….”

       

       “나 좀 봐봐요 엘리.”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양손으로 엘리의 볼을 붙잡았다.

       

       평소라면 못 이긴 척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주었을 엘리가 오늘은 요지부동이네.

       

       삐져도 단단히 삐진 모양.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정말 이렇게 나올 거예요? 평생 저 안 보고 사시려구요?”

       

       “…뭐야. 조금 잘해준 것 가지고 연인인 척하지 말라는 말이라도 하려는 거냐?”

       

       “설마요.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해 보세요.”

       

       “흥! 이러니까 핑챙은….”

       

       “아, 방금 그거 아주 위험한 발언이었다는 거 아세요? 저처럼 관대하고 엘리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았다면 바로 싸움이 벌어졌을 거예요. 그랬다면 결국 저희는 그대로 멀어졌겠죠?”

       

       “…….”

       

       자기도 말실수했다는 건 아는 걸까. 입은 꾸욱 다문 채, 목에서 힘을 풀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엘리.

       

       그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하지만 저는 관대하고 엘리도 많이 좋아하니까 봐줄게요.”

       

       “또 그런 번지르르한 말만…!”

       

       “그럼 말이 아니면 믿어주실 건가요?”

       

       “…뭐?”

       

       “뭐긴요. 몸으로 보여드리겠다는 뜻이죠.”

       

       엘리의 머리를 아래로 잡아당기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굽힌다.

       

       그렇게 적당한 위치에 엘리의 얼굴이 도달한 순간. 상의 끝자락을 붙잡아, 그대로 엘리의 머리 위로 뒤집어씌웠다.

       

       “에잇.”

       

       “?!”

       

       내 상의에 머리를 집어넣고, 배에 얼굴을 파묻은 자세가 된 엘리.

       

       수인은 후각이 발달했다고 했던가. 내 체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상의 너머로 엘리의 뒤통수를 지그시 눌렀다.

       

       내 배에 짓눌리는 오뚝한 콧날. 거칠게 자란 머리카락은 가슴을 간질였고, 피부에 와닿는 숨결은 뜨겁고 축축했다.

       

       전생에는 남자의 화를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가슴 만지게 해주는 거라는 속설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판 대륙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터.

       

       내 배에 코박죽 중인 엘리. 어느새 꼬리를 발딱 세운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엘리. 미안해요. 내가 많이 불안하게 했죠?”

       

       “으븝….”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는 엘리를 가지고 놀았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으흐븝….”

       

       “음. 그러네요. 언제나 말했듯 몸과 재산이 목적이긴 해요. …하지만 그게 애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흐으응….”

       

       “장담컨데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도, 가장 믿고 있는 것도 엘리일 거예요. 저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한테나 이런 짓을 할 것 같아요?”

       

       “헤으읏….”

       

       “만약 그렇다면 정말 큰 착각이에요. 엘리 말고는 허락한 적 없는걸요. …심지어 리디아 님에게도요.”

       

       “크릉….”

       

       슬슬 달콤하다 못해 인간의 언어가 아닌 것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엘리. 이쯤이면 됐다 싶어 천천히 상의에서 머리를 빼냈다.

       

       그렇게 드러난 엘리의 얼굴은 차마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칠칠치 못하게 풀어진 눈동자. 호흡은 거칠다 못해 가빠 보였고,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는 선홍색 혀가 삐져나와 있었다.

       

       “응? 아, 핥으셨어요?”

       

       “그, 거언…!”

       

       배에 묻은 침 자국을 대충 소매로 닦으며 그리 말하자 엘리가 얼굴을 붉혔다.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그 모습에 피식 웃어주었다.

       

       “괜찮아요. 그러라고 한 거니까.”

       

       “어? 에? 으어?”

       

       “엘리도 참. 나이가 몇인데 옹알이신가요?”

       

       “…옹알이 아니거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엘리가 빼액 외쳤다. 이제야 좀 마음이 풀렸나 보네. 역시 가슴(배) 만질래는 옳았다.

       

       히히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어 엘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목에 팔을 두르며 끌어안는다.

       

       “얍!”

       

       “또 이렇게 넘어가는 내가 싫다 정말…”

       

       엘리의 한숨 섞인 목소리. 이를 못 들은 척, 내 볼을 엘리의 볼에 마구 부볐다. 위치는 아침에 볼 뽀뽀했던 쪽.

       

       아직 어려 말랑한 내 볼살과, 그냥 부드러운 엘리의 볼살이 서로 짓눌리고 비벼지며 기분 좋은 감각을 선사한다.

       

       그 상태에서 엘리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엘리가 싫어하면 뭘 할 수 있는데요.”

       

       “뭐?”

       

       “입으로는 싫다 싫다 하면서도 이렇게 흥분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냐구요.”

       

       “요나 너…그렇게 어른을 도발하다가는 진짜 큰일 나는 수 있다?”

       

       “큰일 내달라고 이러는 거잖아요. 엘리라면 언제든 환영이라니까요?”

       

       “…….”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입을 다문 엘리.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낄낄 웃어준 뒤에야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제가 이렇게나 엘리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아시겠죠?”

       

       “…응.”

       

       “그럼 이제 리디아 님의 가슴을 만져봐도 되죠?”

       

       “…응?”

       

       엘리가 한 박자 늦게 내 얼굴을 떨어뜨리고는 한손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오리너구리의 가죽이 야광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기괴한 표정이 된 엘리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요나야…이 타이밍에 리디아의 가슴이 왜 나와!”

       

       “아니, 그치만 들어보세요 엘리. 리디아 님의 가슴이 장난 아니에요.”

       

       “그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남자는 큰 가슴을 보면 만져보고 싶어지는 생물이니까요.”

       

       “…정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되묻는 엘리. 사실 구라다. 판 대륙의 남자는 성욕이 약한 편이라 가슴 정도로 흥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상시 현자타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발 빼고 나면 갑자기 화면 너머의 가슴이 평범한 살덩어리로 보이곤 하지 않던가.

       

       대다수의 남자가 그런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끔찍하기도 해라….

       

       하지만 어차피 남자에 대해 잘 모르는 엘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터. 그냥 이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진짜예요 엘리. 제가 이렇게나 엘리를 좋아하고, 언젠가 엘리의 몸과 재산을 받아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그거랑 별개로 리디아 님의 가슴을 만져보고 싶어요. 마구 주물러보고 싶어요.”

       

       “내, 내 것도 있잖아. 내 걸로 만족하면 안 돼?”

       

       “물론 엘리의 가슴에도 흥미가 있지만, 그거랑 리디아 님의 가슴은 별개라니까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어디 보자. 뭐로 예를 들어볼까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엘리는 저를 좋아하죠?”

       

       “누가 요나 같은 발랑 까진 꼬맹이를….”

       

       “그럼 싫어해요?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지 말고 좋냐 싫냐로 대답해 주세요.”

       

       “…좋냐 싫냐로 따지면 당연히 좋아하지.”

       

       “그쵸? 하지만 저를 좋아하는 엘리도 딸 칠 때는 다른 남자를 반찬으로 쓰지 않나요? 소설이나 그림도 있을 테고, 좀 비싸지만 영상 기록구도 있잖아요.”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영상 기록구는 어떻게 아는 거야?!”

       

       “마도구인 척 당당히 전시해 놓을 거면 어린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놨어야죠. 이건 엘리의 관리 소홀이거든요?”

       

       “앗, 아아….”

       

       수치심에 부들부들 떠는 엘리의 앞에서 당당히 선언했다.

       

       “전 엘리가 좋아요!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리디아 님의 가슴도 만지고 싶어요! 이제 알겠나요?”

       

       “어…응….”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끄덕이는 엘리. 좋아. 이제 엘리가 이해해 줬으니, 남은 건 리디아의 동의뿐이다!

       

       벌떡 일어나, 조금 전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외쳤다.

       

       “리디아 님!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싫어.”

       

       “에.”

       

       단호하게 거절하며, 어디선가 꺼낸 담요로 가슴을 가리는 리디아.

       

       그날. 내 세상이 무너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이 빡대가리너구리가 멍청하게도 어제 삽화 넣는다는 걸 깜빡하고 그냥 예약 걸어버렸어요!

    지금 표지로 쓰고 있는 리디아의 일러지만, 어떻게 써먹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해요!

    다음화 보기


           


EP.34

EP.34





       쨍그랑.


       


       엘리가 닦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그 날카로운 파열음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리디아의 머리보다도 큼직한 젖가슴에 집중하고 있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엘리? 괜찮…어?”


       


       반사적으로 엘리의 안부를 묻다 말고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창백하게 질린 피부. 노란 맹수의 눈은 그 날카로움을 잃고 정처 없이 흔들렸으며, 한쪽 팔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강인했을 터인 몸뚱이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잘게 떨렸다.


       


       평소라면 멋있었을 거친 인상의 잿빛 머리카락과, 깔끔하게 차려입은 바텐더 복장이 지금은 역으로 엘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으니.


       


       지금의 엘리를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그래. 하루아침에 몰락한 귀족 영애, 전 재산에 빨간딱지가 붙은 상인, 상금으로 흥청망청 가챠 돌리다 텅장이 된 통장을 발견한 소설가 같은 느낌이었다.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사람 특유의 현실 부정과 절박함이 담긴 목소리로 외치는 엘리.


       


       “바, 바람은 요나가 피우고 있었잖아!”


       


       “…넹?”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였다. 리디아에 이르러선 사색이 된 얼굴로 마구 고개를 저었고.


       


       하지만 엘리는 여전히 배신감 가득한 절절한 목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나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 저녁에는 내 눈앞에서 리디아의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니….”


       


       쫑긋 서 있던 늑대 귀는 추욱 늘어졌고, 가볍게 흔들리던 꼬리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미동조차 않고 있다.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모습. 이에 내가 엘리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뒤늦게 깨달았다.


       


       매일 재산과 몸이 목적이라면서 결혼해달라고 달라붙는 핑챙 꼬맹이. 이 발랑 까진 것이 어디서 이상한 속옷을 사 왔길래 눈 딱 감고 입었더니 처음으로 키스를 받은 것이다. 볼이지만.


       


       분명 아닌 척하면서도 한껏 들떴겠지. 아무렴. 굴러들어 온 기회도 잡아채지 못하는 모솔 아다 찐따 엘리 아닌가.


       


       그런데 남자 쪽에서 먼저 다가와 볼 뽀뽀를 하고 갔다?


       


       장담할 수 있다. 분명 엘리는 오늘 하루 종일 아이는 몇이나 낳을지, 이름은 뭘로 할지, 결혼식에는 누굴 부르고, 임신하면 가게를 어떻게 할까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갑자기 눈앞에서 친한 후배의 몸에 정신이 팔려 한번 가슴 만져봐도 되냐고 묻는다니.


       


       이거 완전 NTR이잖아…좋게 쳐줘도 BSS고. 나라도 상처받았을 거다.


       


       남녀역전 세계라 여자의 가슴에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여전히 가슴은 대표적인 성감대다.


       


       그냥 눈으로 보는 거면 모를까 직접 만지는 건 꽤 찐한 스킨십이라는 소리.


       


       갑자기 비키니 아머로 등장한 리디아의 가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엘리를 신경 쓰지 못하다니.


       


       내 잘못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그대로 카운터를 뛰어넘어 엘리의 옆에 도착했다.


       


       “엘리.”


       


       “…….”


       


       “나 좀 봐봐요 엘리.”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양손으로 엘리의 볼을 붙잡았다.


       


       평소라면 못 이긴 척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주었을 엘리가 오늘은 요지부동이네.


       


       삐져도 단단히 삐진 모양.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정말 이렇게 나올 거예요? 평생 저 안 보고 사시려구요?”


       


       “…뭐야. 조금 잘해준 것 가지고 연인인 척하지 말라는 말이라도 하려는 거냐?”


       


       “설마요.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해 보세요.”


       


       “흥! 이러니까 핑챙은….”


       


       “아, 방금 그거 아주 위험한 발언이었다는 거 아세요? 저처럼 관대하고 엘리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았다면 바로 싸움이 벌어졌을 거예요. 그랬다면 결국 저희는 그대로 멀어졌겠죠?”


       


       “…….”


       


       자기도 말실수했다는 건 아는 걸까. 입은 꾸욱 다문 채, 목에서 힘을 풀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엘리.


       


       그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하지만 저는 관대하고 엘리도 많이 좋아하니까 봐줄게요.”


       


       “또 그런 번지르르한 말만…!”


       


       “그럼 말이 아니면 믿어주실 건가요?”


       


       “…뭐?”


       


       “뭐긴요. 몸으로 보여드리겠다는 뜻이죠.”


       


       엘리의 머리를 아래로 잡아당기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굽힌다.


       


       그렇게 적당한 위치에 엘리의 얼굴이 도달한 순간. 상의 끝자락을 붙잡아, 그대로 엘리의 머리 위로 뒤집어씌웠다.


       


       “에잇.”


       


       “?!”


       


       내 상의에 머리를 집어넣고, 배에 얼굴을 파묻은 자세가 된 엘리.


       


       수인은 후각이 발달했다고 했던가. 내 체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상의 너머로 엘리의 뒤통수를 지그시 눌렀다.


       


       내 배에 짓눌리는 오뚝한 콧날. 거칠게 자란 머리카락은 가슴을 간질였고, 피부에 와닿는 숨결은 뜨겁고 축축했다.


       


       전생에는 남자의 화를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가슴 만지게 해주는 거라는 속설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판 대륙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터.


       


       내 배에 코박죽 중인 엘리. 어느새 꼬리를 발딱 세운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엘리. 미안해요. 내가 많이 불안하게 했죠?”


       


       “으븝….”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는 엘리를 가지고 놀았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으흐븝….”


       


       “음. 그러네요. 언제나 말했듯 몸과 재산이 목적이긴 해요. …하지만 그게 애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흐으응….”


       


       “장담컨데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도, 가장 믿고 있는 것도 엘리일 거예요. 저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한테나 이런 짓을 할 것 같아요?”


       


       “헤으읏….”


       


       “만약 그렇다면 정말 큰 착각이에요. 엘리 말고는 허락한 적 없는걸요. …심지어 리디아 님에게도요.”


       


       “크릉….”


       


       슬슬 달콤하다 못해 인간의 언어가 아닌 것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엘리. 이쯤이면 됐다 싶어 천천히 상의에서 머리를 빼냈다.


       


       그렇게 드러난 엘리의 얼굴은 차마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칠칠치 못하게 풀어진 눈동자. 호흡은 거칠다 못해 가빠 보였고,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는 선홍색 혀가 삐져나와 있었다.


       


       “응? 아, 핥으셨어요?”


       


       “그, 거언…!”


       


       배에 묻은 침 자국을 대충 소매로 닦으며 그리 말하자 엘리가 얼굴을 붉혔다.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그 모습에 피식 웃어주었다.


       


       “괜찮아요. 그러라고 한 거니까.”


       


       “어? 에? 으어?”


       


       “엘리도 참. 나이가 몇인데 옹알이신가요?”


       


       “…옹알이 아니거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엘리가 빼액 외쳤다. 이제야 좀 마음이 풀렸나 보네. 역시 가슴(배) 만질래는 옳았다.


       


       히히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어 엘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목에 팔을 두르며 끌어안는다.


       


       “얍!”


       


       “또 이렇게 넘어가는 내가 싫다 정말…”


       


       엘리의 한숨 섞인 목소리. 이를 못 들은 척, 내 볼을 엘리의 볼에 마구 부볐다. 위치는 아침에 볼 뽀뽀했던 쪽.


       


       아직 어려 말랑한 내 볼살과, 그냥 부드러운 엘리의 볼살이 서로 짓눌리고 비벼지며 기분 좋은 감각을 선사한다.


       


       그 상태에서 엘리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엘리가 싫어하면 뭘 할 수 있는데요.”


       


       “뭐?”


       


       “입으로는 싫다 싫다 하면서도 이렇게 흥분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냐구요.”


       


       “요나 너…그렇게 어른을 도발하다가는 진짜 큰일 나는 수 있다?”


       


       “큰일 내달라고 이러는 거잖아요. 엘리라면 언제든 환영이라니까요?”


       


       “…….”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입을 다문 엘리.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낄낄 웃어준 뒤에야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제가 이렇게나 엘리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아시겠죠?”


       


       “…응.”


       


       “그럼 이제 리디아 님의 가슴을 만져봐도 되죠?”


       


       “…응?”


       


       엘리가 한 박자 늦게 내 얼굴을 떨어뜨리고는 한손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오리너구리의 가죽이 야광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기괴한 표정이 된 엘리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요나야…이 타이밍에 리디아의 가슴이 왜 나와!”


       


       “아니, 그치만 들어보세요 엘리. 리디아 님의 가슴이 장난 아니에요.”


       


       “그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남자는 큰 가슴을 보면 만져보고 싶어지는 생물이니까요.”


       


       “…정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되묻는 엘리. 사실 구라다. 판 대륙의 남자는 성욕이 약한 편이라 가슴 정도로 흥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상시 현자타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발 빼고 나면 갑자기 화면 너머의 가슴이 평범한 살덩어리로 보이곤 하지 않던가.


       


       대다수의 남자가 그런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끔찍하기도 해라….


       


       하지만 어차피 남자에 대해 잘 모르는 엘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터. 그냥 이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진짜예요 엘리. 제가 이렇게나 엘리를 좋아하고, 언젠가 엘리의 몸과 재산을 받아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그거랑 별개로 리디아 님의 가슴을 만져보고 싶어요. 마구 주물러보고 싶어요.”


       


       “내, 내 것도 있잖아. 내 걸로 만족하면 안 돼?”


       


       “물론 엘리의 가슴에도 흥미가 있지만, 그거랑 리디아 님의 가슴은 별개라니까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어디 보자. 뭐로 예를 들어볼까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엘리는 저를 좋아하죠?”


       


       “누가 요나 같은 발랑 까진 꼬맹이를….”


       


       “그럼 싫어해요?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지 말고 좋냐 싫냐로 대답해 주세요.”


       


       “…좋냐 싫냐로 따지면 당연히 좋아하지.”


       


       “그쵸? 하지만 저를 좋아하는 엘리도 딸 칠 때는 다른 남자를 반찬으로 쓰지 않나요? 소설이나 그림도 있을 테고, 좀 비싸지만 영상 기록구도 있잖아요.”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영상 기록구는 어떻게 아는 거야?!”


       


       “마도구인 척 당당히 전시해 놓을 거면 어린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놨어야죠. 이건 엘리의 관리 소홀이거든요?”


       


       “앗, 아아….”


       


       수치심에 부들부들 떠는 엘리의 앞에서 당당히 선언했다.


       


       “전 엘리가 좋아요!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리디아 님의 가슴도 만지고 싶어요! 이제 알겠나요?”


       


       “어…응….”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끄덕이는 엘리. 좋아. 이제 엘리가 이해해 줬으니, 남은 건 리디아의 동의뿐이다!


       


       벌떡 일어나, 조금 전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외쳤다.


       


       “리디아 님!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싫어.”


       


       “에.”


       


       단호하게 거절하며, 어디선가 꺼낸 담요로 가슴을 가리는 리디아.


       


       그날. 내 세상이 무너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이 빡대가리너구리가 멍청하게도 어제 삽화 넣는다는 걸 깜빡하고 그냥 예약 걸어버렸어요!

    지금 표지로 쓰고 있는 리디아의 일러지만, 어떻게 써먹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해요!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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