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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 * *

       

       

       핀란드

       

       

       이 무렵, 핀란드는 영국군의 후원으로 좌익들과의 내전이 해결되는 등. 나라를 정비하면서 꽤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더군다나 외부로는 러시아 내전이 한참이었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승기를 완전히 잡은 백군의 차리나 아나스타샤가 보낸 제안이 도착하자 핀란드에서는 다시 소란이 일었다.

       

       제안을 받은 핀란드의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대통령과 전 러시아 제국군 장교이자 현 핀란드 육군 대장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은 골치 아팠다.

       

       그 제안이란 러시아 제국 황제를 핀란드 국왕을 겸하게 한다면 핀란드의 독립을 인정하겠다고.

       

       말이 독립이지 이건 과거 러시아 속령 핀란드 시절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다만, 마냥 거절하지 못한 것은 지금 차리나가 이끄는 백군이 사실상 내전에서 완전히 승기를 잡은 데다가, 핀란드 역시 내전과 붉은 군대의 압박으로 공산주의라면 치를 떨어서다.

       

       

       “백계 러시아에서 이런 제안이. 흠.”

       “어찌하는 게 좋겠소?”

       “이걸 보면 영국 식민지 같은 거 아닙니까. 캐나다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독립하기 이전 속령취급받는 거 아닙니까?”

       “핀란드 군주를 지금의 차리나가 겸하게 한다면 독립을 인정하겠다는 건 나쁘지 않을 텐데.”

       

       

       내각에서는 꽤 시끄러웠다.

       

       하지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만네르헤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러시아 근황주의자였다.

       

       케렌스키의 러시아 공화국에 정떨어져 핀란드로 돌아와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러시아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했다.

       

       실제 역사와 달리 백군이 승기를 잡으면서 스톨베리는 계속 만네르헤임을 육군대장으로 있게 했고, 만네르헤임 역시 그 제안을 수락해 사실상 정치파트너로서 핀란드를 이끌어갔다.

       

       당연히 만네르하임은 이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근황주의자로서도, 스웨덴계 핀란드인으로서도 이건 나쁘지 않은 제안으로 보였다.

       

       

       “흐음. 나는 괜찮다고 봅니다.”

       “육군 대장께서는 핀란드를 다시 속령으로 만들자는 겁니까?”

       “적군이 이기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모스크바에서 적군 지도부가 대부분 붙잡히고 페트로그라드만 남았다고 하면 백군이 이긴다는 뜻. 우린 백군의 편을 들어야 하니 이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낫다고 보이는데.”

       “러시아 속령이 된다니까요?”

       “열강도 우리의 독립을 승인했고, 아나스타샤 차리나가 직접 보장했소. 차라리 한 숟갈 얹는 게 좋지 않겠소?”

       

       

       핀란드의 체급을 보면, 아나스타샤의 제안이 진실과 거짓, 그 둘 중 하나라 해도 애초에 선택지는 없었다.

       

       그나마 독립을 확실히 해주겠다고 했으니. 이것만 믿는 수밖에. 게다가 사실이라면 오히려 핀란드로선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구실만 맞춰준다면 독립을 보장, 유지해주겠다는 거니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쁘지 않겠지요. 사실이라면 말입니다.”

       “후. 그럼 그 잘난 차리나께서는 우리에게 뭘 요구했습니까?”

       “우린 그냥 뒤에서 니콜라이 유데니치의 북서군이 편히 페트로그라드를 공격할 수 있게만 하라더군요.”

       “그 정도야 뭐 괜찮겠지요.”

       

       

       제안을 수락한 핀란드 스톨베리 대통령은 핀란드 내전에서 활약한 만네르헤임에게 핀란드군 총사령관의 지위를 내리고 페트로그라드를 압박하는 니콜라이 유데니치의 북서군을 지원했다.

       

       

       * * *

       

       

       처형의 날이 밝았다.

       

       

       드디어 빨갱이 중추들을.

       

       실제 역사 소련의 네임드들을 모조리 처리할 날이 밝았다.

       

       

       “블라디미르 레닌, 게오르기 치체린, 알렉산드르 콜른타이, 파벨 디벤코, 미하일 프룬제, 알렉산드로 예고로프, 세묜 부됸늬, 세묜 티모센코,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바실리 블류헤르, 펠릭스 제르진스키, 야코프 페테르스, 이반 코네프…….이하 포살형에 처하는바이다.”

       

       

       실제 역사에서 들어 본 이름들이 많다.

       

       소련을 보면 몇몇 인물들은 그 능력을 보면 솔직히 살려 두면 좋긴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적백내전에서 내가 커버치지 못할 만큼 열심히 백군과 교전을 해온 인물들이었으며, 미래 지식만 믿고 살려 두기에는 붉은 역병의 종식을 위해서는 죽어야만 하는 붉은 군대의 지휘관들이다.

       

       내가 성녀로서 저들을 살려 둔다고 치면 백군 지휘관들이 불만을 품을 테고. 전쟁 중간에 다 포기하고 이쪽에 붙었으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뭐 봐주기 힘들었다.

       

       그나마 용서받을 만한 위인은 모스크바 전투 이전에 검은 남작에게 백기를 들고 찾아온 적군중에 부사관으로 있던 게오르기 주코프 정도였다.

       

       그리고 시베리아에 보내버린 투하쳅스키.

       

       뭐 그래도 그 자라도 건져서 다행이다.

       

       여기에 백군 지휘관들을 생각하면, 독소 전쟁. 아니, 독러 전쟁이 벌어져도 라인업은 괜찮으니 잘되지 않을까.

       

       퍼어어어엉!

       

       포살형에 처한 이들은 그냥 단체로 포박해서 모아 뒀다가 야포로 쏴서 전부 육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언급되지 않은 자들은 죄다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고자 스탈린과 그 아내도 보내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에는 탈출도 아마 힘들 것이다.

       

       빨갱이에게 전우나 가족이 죽은 백군들이 시베리아를 직접 관리하게 할 테니까.

       

       이상하리만큼 정말 개운하다.

       

       승리해서 내가 죽을 일이 없어져서 그런가. 라기보다는 원래의 아나스타샤가 볼셰비키에게 죽으면서 한이라도 맺혔던 것이 풀린 건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복수를 마친 거 같은 이 개운함.

       

       

       “그래 이 정도 했으면 너도 만족했겠지.”

       

       

       저승이든 아니면 내 옆에 붙어 있든 어디 있는지 모를 아나스타샤에게 중얼거리며 눈을 돌렸다.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이전까지 소련이 유럽러시아를 통치하면서 남겨둔 자료들이다.

       

       트로츠키나 스탈린이 도망치면서 이만큼 남겨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지.

       

       아니면 다 불태우고 남은 것이 아직도 이 정도가 되거나.

       

       앞으로 소련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

       

       

       “그나마 소련 폴란드 전쟁은 없어서 다행이군.”

       

       

       열강들을 의식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실제 역사보다 붉은 군대가 멀쩡하지 않은 탓인지 몰라도 발트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긴 했지만, 폴란드와는 직접 부딪치지 않았다.

       

       그나마 붉은 군대의 업적은 벨라루스 합병 정도.

       

       이건 우리가 냠냠 해 버리면 되는 것이고.

       

       발트 3국 쪽의 붉은 군대는 공세 중이었다가 페트로그라드로 옮긴 모양이다.

       

       

       “네?”

       

       

       혼잣말하는 것을 들은 드로즈돕스키가 의문형으로 물었다.

       

       뭐, 굳이 말할 건 아니겠지.

       

       내가 미래에서 말이야~이러면 기껏 세운 차리나가 정신이 이상하다 그런 말을 들을지도 모르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뜻밖에 브루실로프는 없군요.”

       

       

       1차대전의 명장 브루실로프는 분명 적군에 합류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엔 합류하지 않은 것인가.

       

       페트로그라드까지 트로츠키를 따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골수 빨갱이도 아니고.

       

       실제 역사에서 브루실로프가 적군을 택한 것은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이번에는 역사가 많이 바뀐 모양인데.

       

       애초에 적군에 가담했으면 오흐라나가 알아냈을 터다.

       

       

       “예. 단지. 이번 모스크바에서 생포된 볼셰비키 중, 브루실로프 대장의 자식인 알렉세이가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었습니까?”

       “네. 어제 백군에 항복한 적군들이 붙잡았습니다. 처형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황녀님께 보고하려 했습니다.”

       

       

       그래. 그놈이 살아 있다 그건가.

       

       원래 역사에서는 죽는데 말이지.

       

       여기서는 지금까지 어떻게 잘 살아 있었다.

       

       그의 죽음이 브루실로프가 적군을 편들게 하였다던데. 아들이 죽지 않아 지금까지 중립을 유지해온 것인가.

       

       

       “음. 우리 백군을 많이 죽였습니까?”

       “빨갱이들이 브루실로프 장군을 회유하기 위해 위험한 곳에는 안 내보냈는지, 이번 모스크바에서도 후방을 담당했습니다.”

       

       

       그런가. 어지간히도 브루실로프에 목을 멘 모양이다.

       

       하긴 그 인간이 어느 쪽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도 많은 영향이 있을 테니까.

       

       

       “흠. 그럼 뭐 살려 줘도-”

       “문제는 골수 빨갱이란 겁니다. 열성적인 지지자더군요. 생포된 후에도 백군 제국주의자들은 패배할 것이라며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런 놈이었나.

       

       이런 건 일단 사상이 중요하거든.

       

       실제 역사에서의 소련 네임드 장군들을 죽인 건,

       

       백군이 승리한 이상, 그들이 네임드가 될 미래는 없으니 죽여야만 했다.

       

       그 블루실로프의 아들놈도 마찬가지.

       

       사상적인 것은 진짜 뭐 어떻게 커버칠래야 칠 수도 없다.

       

       골수 빨갱이란 말이다.

       

       저걸 살려 두면 어디서 분탕질을 칠지 모른다.

       

       끽해야 빨갱이 애새끼 따위가 개혁으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를 뒤집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골수 빨갱이를 살려 둔다면 선례로 남으니 안 된다.

       

       그런 놈 살려 둘 거였으면 애초에 독소전 생각해서 보험으로 소련 명장들도 살려 뒀겠지.

       

       

       “참나. 그럼 죽여야.”

       “황녀님. 황녀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 패튼 때가 떠오르지. 아니지. 목소리는 패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내 집무실까지 쳐들어온 이는 브루실로프였다.

       

       아들이 죽을 거 같으니 찾아온 건가.

       

       그거밖에 없겠지.

       

       지금까지 어느 쪽도 가담하지 않고 가만히 중립 기어 박고 있다가 아들놈이 잡히니 이러는 것 봐라.

       

       아니, 뭐 중립 기어 박은 것으로 뭐라 안 한다.

       

       제국은 망했고 소련도 상태가 이상하다.

       

       백계 러시아가 있지만, 그가 볼 때 백계러시아는 제국의 뒤를 이은 존재로 보이겠지. 그러니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선택은 중립일 뿐.

       

       문제는 그중립이란 것은 다툼이 끝났을 때, 애매한 위치라는 거지.

       

       지금처럼 말이다.

       

       중립을 지킬 힘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브루실로프는 글세다.

       

       물론 그가 나선다면 영향력은 좀 있겠지만.

       

       그것도 우리 편을 들어야 가능한 일 아닌가.

       

       아니지. 가능한가?

       

       아들로 협박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들을 구명해 달라고 오셨습니까.”

       “황녀님. 부디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아직 백군을 살육하지도 않은, 전투 경험도 없는 아이입니다. 제발.”

       

       

       아들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란 참.

       

       아들을 위해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사람 차르의 퇴위도 요구했었지.

       

       그래. 뭐 그까지 아들놈 구명 정도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이쪽도 받아 낼 건 받아 낼 생각이다.

       

       애초에 그래서 이렇게 판을 짜는 것이고.

       

       

       “사상이 이미 골수 빨갱이면 죽어야 합니다. 제 부모가 빨갱이들에게 죽은 것처럼요.”

       “그 복수심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시는 공산주의에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겠습니다. 가택 연금을 시키고 살 테니.”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 아들의 구명을 원하시면 제대로 딜을 거셔야죠. 그저 노장이 봐달라고 빌어도 봐줄 수 없습니다.”

       

       

       그제야 브루실로프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나를 애절하게 바라본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때마침 전향한 적군들이 있거든.

       

       이들은 일단 백군에 편입시켰다.

       

       그놈들을 이끌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 전향한 적군들을 이끌고 반공선전을 하시면서 서쪽으로 진격하세요. 내가 페트로그라드를 탈환할 동안 볼셰비키들을 다 잡으세요.”

       

       

       그게 조건이다.

       

       당신이 나선다면 아마 더 쉽겠지.

       

       볼셰비키에도 그다지 정이 없는 이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딱히 충격을 받거나 그런 얼굴은 아니었다.

       

       

       “서쪽의 볼셰비키를 토벌하란 말입니까.”

       “네. 그게 불가하다면,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제국의 명장으로서 적군 토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겠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적군을 선택한 것처럼.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백군에서 반공선전을 하는 것뿐이다.

       

       솔직히 그는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래도 내전이 끝날 때까지는 백군의 감시하에 두겠습니다. 그 사상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쥐 죽은 듯이 사세요. 이 내전의 끝에 성립될 새로운 러시아는 볼셰비키를 증오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브루실로프는 1차대전의 명장, 러시아군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 이제 그가 반공선전을 한다면. 적군은 더 쉽게 허물어지겠지.

       

       그것만 믿을 뿐이다.

       

       브루실로프에게 백군 서부전선 사령관의 자리를 넘기고 나서는 레닌이 남긴 볼셰비키의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그리고 트로츠키에 대한 소식도 들었다.

       

       

       “안톤 데니킨 중장의 군대가 모스크바 주변의 빨갱이들을 털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녀님의 예상대로 페트로그라드로 트로츠키가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그놈도 오래 못 버틸 거다.

       

       붉은 군대는 모스크바 전투의 패배로 사실상 주력이 궤멸하고, 소비에트의 수괴 레닌과 대부분의 볼셰비키 간부와 당원들이 죽어 나가면서 구심점이 완전히 잃었다.

       

       트로츠키는 남아 있지만, 다 죽고 혼자 남은 트로츠키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과격한 트로츠키는 볼셰비키에서도 알게 모르게 은따 당하고 붉은 군대를 키워내겠다고 인민들을 착취하고 협박하고 온갖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

       

       페트로그라드에 고립된 그놈이 뭔 짓을 해도 소련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다.

       

       그래도. 쉴 틈을 줘서는 안 되겠지.

       

       어쨌든 빨갱이들은 빠르게 죽여야만 하니까.

       

       

       “핀란드에서 저희의 제안을 수락했고, 유데니치를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그럼 다 되었다.

       

       

       “자, 그럼 갑시다.”

       

       

       내가 아나스타샤가 된 지 2년.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가 19살이 되는 1920년 봄.

       

       모스크바에서 정비를 마친 백군은 서방공세를 펼치던 남은 볼셰비키와 페트로그라드의 트로츠키를 잡기 위해 마지막 공세를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를 달아야 할까.

    표지는 외주를 넣어야 할까. 고민이 많습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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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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