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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치이익 –

       

       살갗이 타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엘프의 몸위로 돋아난 소름을 따라 피가 흘렀다.

       

       “아직 부족하다.”

       

       “예.”

       

       불길에 달아오른 쇠꼬챙이가 다시 한번 엘프를 향해 다가 갔다.

       

       이번엔 방금 찔렀던 엘프가 아닌 다른 엘프였다.

       

       치이익 –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는 엘프는 꼬챙이에 찔린 엘프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어린 엘프.

       

       그녀에게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었다.

       

       “이번엔 누구를 찔러 주기를 바라느냐?”

       

       쇠꼬챙이가 다른 엘프에게로 향했다.

       

       “이년? 아니면 방금 찔렀던 저놈?”

       

       어린엘프에게 비탄이 생겨났다.

       

       잔혹한 인간들의 손속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답이 없으니 둘 다 찔러봐야겠구나.”

       

       눈짓을 받은 네크로맨서가 두명의 엘프를 번갈아가며 찔러댔다.

       

       연기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퍼져나갔다.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함을 유지하던 그들은 기어코 무너지지 않았다.

       

       상처 입은 어린 엘프만을 걱정할 뿐.

       

       “지금 느끼는 것이 공포이더냐?”

       

       푸욱 –

       

       “이번에는 무엇이 느껴지느냐?”

       

       푸욱 –

       

       엘프의 몸에 상처가 늘어갈수록 어린엘프의 절규가 커져갔다.

       

       지금 저 질문에 대답한다면 이 시간을 끝낼 수 있을까?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족들이 고통을 받는 걸까?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양 목 놓아 소리를 질렀다.

       

       “기회를 주겠다.”

       

       흔들리는 눈이 네크로맨서에게로 향했다.

       

       동족의 고통을 덜어 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 중 하나를 고르거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쇠꼬챙이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두 엘프의 목을 찌르고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같잖은 엘프의 정령술과 마법으로 살려보거라.”

       

       함께 했던 동족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이 중에 한명을 어떻게 고르라는 말인가.

       

       어린 엘프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언어라고도 부를 수도 없는 짐승의 흐느낌이었다.

        

       “아..아아….아….!”

       

       굳은 다리를 질질끌며 기어간 그곳에는 엘프들이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살리지 않는다면 둘 다 죽을 것이다.”

       

       그녀의 눈이 오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가슴에서 살을 깎아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결국 선택을 해야했다.

       

       한 명이라도 살려야 했기에.

       

       그녀가 힘겹게 손을 뻗어 올렸다.

       

       파아앗 –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상처에 닿았다.

       

       조금씩 아물어가는 구멍.

       

       다행히 정통으로 목을 관통한것이 아니었다.

       

       엘프가 조금이나마 편하게 호흡을 하는 듯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거리기 시작했다.

       

       “또 너의 선택으로 엘프 하나가 죽었구나.”

       

       “아…아아….”

       

       그녀의 머리가 세차게 뒤흔들렸다.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동족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은 동료마저 잃을까 두려웠던 그녀는 품속으로 동료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귓가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지금 느끼는 것은 절망이더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동료를 치료하며 발버둥 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 앞에 믿기 싫은 광경이 펼쳐졌다.

       

       쇠꼬챙이가 품에 있던 엘프의 목을 꿰뚫었다.

       

       “이놈 마저 죽이면 무엇이 느껴지느냐?”

       

       이번에는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비명 대신에 터져 나온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절망이로구나.”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네크로맨서가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 부족하다. 다른 엘프들을 가져오너라.”

       

       “예.”

       

       “완성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몬스터와 마수들을 끌어 모으도록.”

       

       흠칫.

       

       명령받은 인물이 몸을 굳히며 되물었다.

       

       “그리하면 저희의 존재가 노출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이제는 상관이 없다.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들어 한 곳을 바라봤다.

       

       점처럼 보이는 그것.

       

       세계수라 불리는 엘프의 근원.

       

       “엘프들을 한 번에 없앨 수 있었거늘…”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주 마법이 해제된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엘프의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마법이었다.

       

       마족이나 네크로맨서가 아니고서야 이 마법을 다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의심이 가는 대상은 단 하나.

       

       “허나, 하이 엘프의 능력은 분명히 약해졌다. 두 번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전보다 더 강한 저주를 걸면 될 일.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그때가 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마무리로 아주 제격이구나.”

       

       그의 손이 달궈진 쇠꼬챙이를 잡았다.

       

       더 깊은 절망을 이끌어낼 시간이었다.

       

       

       ***

       

       

       “몬스터가 쳐들어 온다는데 다들 왜 이렇게 태평해?”

       

       나만 호들갑을 떨고있는 기분이다.

       

       당장 멀리서 보이는 몬스터만 해도 우글우글 했다.

       

       그런데 엘프들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성벽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기로 가세요. 여기 있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어요.”

       

       “감사합니다. 크리스님.”

       

       “그쪽 엘프님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네요.”

       

       유난히 죽음의 기운이 두텁게 느껴졌다.

       

       이 엘프는 여기서 싸우면 죽을 수도 있다.

       

       “여기 있으시면 죽으니까 좀 멀리로 가세요.”

       

       “감사합니다!”

       

       “활 쏘는 분이신가요? 흐음…여기 말고 저쪽 나무로 가세요.”

       

       운기가 좋은 엘프였다.

       

       나무의 기운과 가까이 하면 화살이 한대라도 더 몬스터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나는 인사를 하고 가려는 엘프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잠깐! 5쿠퍼 내고 가세요. 죽기 싫으면.”

       

       “…예?”

       

       “제가 죽인다는 게 아니라…하여튼 내고 가세요.”

       

       이제 돈통이 꽉 차서 더 담을 곳도 없었다.

       

       벌써 돈통을 몇 번이나 비워냈는데도 이랬다.

       

       눈에 보이는 엘프란 엘프는 모조리 쫓아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어디로 가면 되겠는가? 점이라는 것은 전쟁 시에 아주 유용하겠군.”

       

       나를 따라다니던 파라몬 영감이 흥미로운 듯 나에게 물어왔다.

       

       “….”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건강할 운기만 가득했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점사조차 안 나오던 파라몬 영감은 오히려 운수가 대통이었다.

       

       “영감님은 알아서 하시고요…애초에 몬스터가 위험하기는 한가요?”

       

       “허허, 전투는 누가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다네.”

       

       아무리 알 수가 없다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 영감탱이들 만은 멀쩡 하리라는 걸.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보이는 숲밖을 바라봤다.

       

       성벽 위로 올라왔더니 탁 트인 지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몬스터가 저렇게 사이가 좋나요?”

       

       그곳에는 온갖 몬스터들이 모여 있었다.

       

       점처럼 보이는 거리였지만 그 점의 크기가 천차만별이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블린과 트롤, 오우거가 한 군데 섞여 있다는 것을.

       

       “대륙전쟁 때는 오히려 저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

       

       “그렇다는 건….”

       

       “로셀이 황실과 연락을 취하고 있네. 결국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 같군.”

       

       파라몬 영감의 처지에서는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일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내 기색을 읽은 듯 영감이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네.”

       

       “흐음…”

       

       영감이야 그렇다 치고 내가 문제였다.

       

       아무리 무당팔자가 고생길이 훤한 팔자라지만, 전쟁까지 겪게 될 줄이야.

       

       여기서 죽은 영혼들은 또 어느 세월에 다 위로를 한단 말인가.

       

       “긴장 할 것 없네. 또 눈앞에서 동료를 잃지는 않을 테니.”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괜히 그때의 악몽이랑 겹쳐지지 않는가.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키지 못해 미안 하다고 말하며 죽어 가던 영감의 모습을 말이다.

       

       “영감님.”

       

       “음?”

       

       “가슴에 칼 꽂히는 거 조심하세요.”

       

       “허…죽으라고 기도를 하는 군.”

       

       “그건 영감님이 하신 거고…”

       

       영감 말고도 죽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잔인하게 머리만 꿈에 나왔던 엘프.

       

       “아이린이 몇일 동안 안 보이는데 어디로 간거예요?”

       

       깨어난 후부터 아이린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파라몬 영감의 손끝이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숲 근처를 가리켰다.

       

       “저기 어디쯤 있을 것이네.”

       

       “…저기예요?”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위치였다.

       

       몬스터들과 제일 먼저 맞닥뜨릴 장소.

       

       “저곳이 원래 그녀의 자리일세. 가지를 지키는 잎사귀란 그런 것이지.”

       

       “멀쩡한 성벽을 놔두고요?”

       

       “엘프들에게는 숲이 성벽이네. 저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

       

       목이 잘려 죽지는 않겠지?

       

       하긴, 세계수가 있는 엘프의 숲에서 아이린의 목이 잘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태평한 분위기의 이곳.

       

       어째서인지 불길함도, 찝찝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점사에도 횡액이 껴있을 뿐, 당장 벌어질 일들은 아니었다.

       

       “마침 오는군.”

       

       “…..?”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주변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엘프들에게서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진 것이다.

       

       “사수들은 준비하라.”

       

       척 –

       

       엘프들의 활에 화살이 물려졌다.

       

       아직 몬스터와의 거리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이거리에서 활을 쏜다고?”

       

       아직 화살이 닿는 거리가 아니었다.

       

       “자네도 사냥꾼이었으니 활을 다룰 줄 알겠군. 하지만 엘프의 화살은 인간과는 다르다네.”

       

       영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살이 쏘아지며 하늘을 뒤덮었다.

       

       진한 바람의 냄새와 함께.

       

       “어…?”

       

       분명히 화살이 쏘아졌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야 함에도 마치 바람이라도 되는 듯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프…”

       

       정령이었다.

       

       엘프의 활 주위를 실프들이 맴돌고 있었다.

       

       연거푸 화살이 쏘아졌다.

       

       화살에 맞아 땅을 뒹구는 몬스터를 밟고 또 다른 몬스터가 달려왔다.

       

       어느새 맨눈으로도 그 형체가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몬스터.

       

       파라몬영감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몬스터들을 가리켰다.

       

       “자네가 지금 딛고 있는 성벽. 이것 또한 인간들과는 달리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네.”

       

       “예?”

       

       “보게나.”

       

       쿠구구구구구구구 –

       

       방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동이 느껴졌다.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난생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아이린이 있을거라 말했던 곳에서 땅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런 건 미리 말해줬어야죠…”

       

       천 년을 산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대륙전쟁을 겪은 종족이란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러면 마치 내가 점을 봐준다는 핑계로 엘프들에게···.

       

       “삥 뜯은 것 같잖아…”

       

       복채를 환불해 준 적은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열심히 필력을 키워나가는 중입니다!

    여담으로 3월 21일은 321이라 기분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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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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