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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선발 당일.

       

       아카데미의 정문 앞은 제국 곳곳에서 거나 말 혹은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천막을 펴고 책상을 가져다 놓은 접수처에서는 조교들이 지원서류와 실제 사람을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것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정문을 통과해 대강당으로 이동, 가져온 짐을 내려놓고 대기.

       

       최종 참석현황을 확인하고 전반적인 계획과 주의사항 안내 후 바로 평가가 시작된다.

       

       오늘 1일차 평가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바로 짐을 싸서 돌아가고 합격자는 숙소로 이동, 내일 마지막 2일차 평가를 보는 절차.

       

       “정말 많이 지원했네.”

       

       북적북적한 정문을 보며 키르린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나 많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사립도 아니고 황립 아카데미의 졸업반으로 바로 편입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득이니까요.”

       “그걸 감안해도 엄청 많아.”

       

       키르린 말대로 진짜 온갖 사람들이 다 왔다.

       

       남자여자는 가릴 것도 없고 다채로운 피부색과 머리칼, 눈동자에 알아 먹기 어려운 사투리가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복장은 또 얼마나 각양각색인지.

       

       “개인 무장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기 반납하고 보관증을 받아 가세요.”

       

       칼이며 창이며 방패며 줄줄이 달고 온 사람들을 조교들이 막아 섰다.

       

       저 녀석들은 그 유명한 레블란 용병대 소속이네. 돈 잘 버는 놈들이 뭐한다고 여기 지원했을까.

       

       “거기! 연초 함부로 태우지 말아요!”

       

       조교 한 명이 삼삼오오 모여서 연초를 태우며 독한 연기를 내뿜는 털망토 차림의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저놈들은 북부에서 온 놈들. 무식해서 어지간한 사회통념이 통하지 않지. 아카데미생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복장을 단정히 해주십시오! 이곳은 황립 특수임무 아카데미입니다!”

       

       단상에 올라간 행정실장이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상의를 탈의한 근육질 거구의 남자로 온몸이 전부 알아먹을 수 없는 문신투성이다.

       

       문신과 차고 있는 장신구의 형태로 봐서는 분명 저 머나먼 프레토노스 군도 연합에서 온 사람이고.

       

       진짜 별별 인간들이 지원했구나.

       

       그뿐인가. 드워프에 오크에 리자드맨에 노움에 수인에 종족도 다양한 것이 정말 선발 공고를 읽고 여기 찾아올 지능을 가진 제국 국적 사람은 다 몰린 듯 싶다.

       

       그런데 어째 보면 볼수록 다들 액면가들이 빡세다.

       

       아카데미라는 환경의 특성상 연령제한을 뒀는데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지.

       

       접수처에 일러서 지원서랑 실제 신분증명서를 신경써서 대조하라고 해야겠어.

       

       접수처 천막으로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게 무슨소리냥! 연령 초과라니!”

       

       고양이 수인 한 명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하악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수인 나이 계산법에 따르면 선생님은 제국 표준연령으로 사십 세가 넘으십니다.”

       

       조교가 종족별 표준연령 계산표를 보여주자 고양이 수인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공고문에 그런 내용은 없었지 않느냥!”

       “분명 여기에 ‘제국 표준연령으로 이십 세를 초과하지 아니한 자’라고 써져 있잖습니까.”

       “캬아악! 이렇게 세세하게 공고문을 읽는 사람이 어디 있냥!”

       “여튼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저기 저 수염 난 노인네는 그럼 대체 왜 들여보내주는 건데!”

       

       고양이 수인이 분노하며 막 접수처를 통과해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가는 수염 덥수룩한 드워프를 삿대질했다.

       

       “저 애는 올해 열여덟 살이에요. 드워프잖아요.”

       “이건 종족차별이다냥!!”

       

       고양이 수인이 세상 시끄럽게 울다가 갑자기 꿀렁거리면서 헤어볼을 웨엑 토해냈다.

       

       토사물 같은 끈적한 헤어볼이 바닥에 철썩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이 기겁하면서 물러났다.

       

        민폐도 저런 민폐가 없네.

       

       “야. 그냥 그거 하나 쥐어서 돌려보네.”

       

       내 명령에 조교가 한숨을 쉬며 책상 아래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을 본 고양이 수인의 눈이 탐욕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조교의 손에 들린 것은 캣닢 잎파리 몇 개가 든 작은 봉지. 지원서류 중에 고양이 수인이 몇 명 보이길래 혹시나 싶어서 준비하라 지시한 것이다.

       

       고양이 수인은 대부분 독선적이고 오만해서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곤 하는데 쫓아내는 게 여간 골치아픈 일이라.

       

       행여나 마음에 안 들면 날뛰고 할퀴고 난리를 치니 대비책을 준비해 둬야만 했다.

       

       “자요. 이거 가지고 돌아가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빨리… 빨리 주라냥!!!”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캣닢 봉지를 낚아챈 고양이 수인은 다급하게 봉지를 열어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햐아앙….”

       

       흰자가 드러나며 거의 무아지경이 되어 버린 고양이 수인은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면서 몸을 돌려 저쪽으로 멀어졌다.

       

       “수석교수님!”

       

       헤롱헤롱 떠나는 고양이 수인을 보며 웃고 있는데 행정실 직원 한 명이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 싸움이 났어요!”

       “조교들은 없어요?”

       “지금 조교들도 어떻게 못하는 상황입니다. 수석교수님께서 나서주셔야 해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저게 대체 뭐야?

       

       젊은 오크 두 명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각자의 손에는 예리한 쌍날도끼와 흉악한 쇠몽둥이를 든 채였다.

       

       인력지원을 나온 아카데미 경비대원들은 감히 오크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머뭇머뭇.

       

       서로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니 이거 아무래도 적대적인 부족끼리 마주친 것 같은데?

       

       “토막을 쳐서 죽일 놈!”

       “뼈를 발라 고깃국을 끓여 와이번에게 먹일 놈!”

       

       오크 하나가 송곳니를 번득이며 도끼를 들자 상대편 오크가 쇠몽둥이를 바닥에 내리치며 대꾸했다.

       

       “저기요. 여기 투기장 아닌데요. 서로 못본 척하고 무기 반납하든 아니면 선발 포기하고 싸우든 선택하세요.”

       “끼어들지 마라!”

       “오크들의 싸움이다!”

       

       그러며 오크들이 서로에게 피가 싸늘하게 식는 전투함성을 내질렀다.

       

       “히익?!”

       

       나를 따라온 키르린은 귀를 잡아내리며 벌벌 떨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거 난장판이 따로 없네. 아무래도 저것들, 말로는 안 되겠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내 팔찌!!”

       

       막 오크들 사이로 끼어들려는데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여자의 째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회색빛 일색의 호리호리한 여자가 겁에 질려 스스로를 끌어 안은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팔찌를 소매치기 당했어! 모두 도망쳐요! 죽고 싶지 않으면 다들 도망치라고!!!”

       

       저건 또 뭐야?

       

       “나는 늑대인간이에요! 팔찌가 없으면 변해요! 최대한 멀리 뛰어요!!”

       

       늑대인간?

       

       곧바로 여자의 손목을 살폈지만 늑대인간이라면 늘상 차고 있어야 할 변신억제 목적의 은팔찌가 보이지 않는다…?

       

       “멍청하게 있지 말고 빨ㄹ크르르르르르릉!”

       

       갑자기 여자의 몸이 울룩불룩 부풀어 오르고 입이 길게 돌출되기 시작했다.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옷을 찢으며 커진 여자는 순식간에 3미터가 넘는 체구의 이족보행 늑대로 돌변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 한복판에서의 변신한 늑대인간이라니. 도끼와 쇠몽둥이를 들고 전투함성을 지르는 오크 두 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험한 상황.

       

       이래서 늑대인간은 결격사유라고 명시를 했는데…. 하지만 은팔찌를 평범한 장신구라 주장하면 인간폼일 때는 알아낼 방도가 전혀 없다.

       

       이거 진짜 귀찮게 됐네.

       

       “그것 좀 빌립시다.”

       “크르르르르르릉!!”

       

       오크의 손에 들린 쇠몽둥이를 빼앗자마자 늑대인간이 이쪽으로 돌진해 왔다.

       

       망토를 벗어 왼팔에 둘둘 감는데 뒤에서 키르린이 소리쳤다.

       

       “디안, 위험해!! 옆으로 피해!”

       

       키르린이 던진 비수가 내 어깨를 스치며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늑대인간은 팔을 한번 휘젓는 것으로 그것을 모조리 튕겨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늑대인간의 목에 올가미를 던져 걸었다. 굉장한 솜씨.

       

       하지만 저것으로는 변신한 늑대인간을 막을 수가 없다.

       

       목에 걸린 올가미를 움켜잡은 늑대인간이 그것을 채찍처럼 휘두르자 키르린이 허공에 붕 떠서 호에엥 저편으로 던져졌다.

       

       “어어어! 으앗!”

       

       조교들이 우르르 몰려와 떨어지는 키르린을 받아냈다.

       

       “다들 끼어들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늑대인간이 충분히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망토를 두른 팔을 앞으로 뻗자 놈이 그것을 콱 깨물었다.

       

       말린 망토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어 놈의 혓바닥을 꽉 움켜 잡으며 대가리에 쇠몽둥이를 내리쳤다.

       

       “깨갱!”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늑대인간이 깨갱대면서 바닥에 풀썩 떨어졌다.

       

       버둥거리며 일어나려는 늑대인간의 혀를 잡은 채로 무자비하게 쇠몽둥이를 내리치며 지시했다.

       

       “누가 가서 예비 은팔찌 좀 가져 와라.”

       “깨개갱! 깨갱!”

       “여기 있습니다, 수석교수님!”

       

       조교가 던진 은팔찌를 낚아챈 나는 쇠몽둥이를 두어 번 더 내리쳐 저항을 못하게 한 후에 손목에 은팔찌를 채웠다.

       

       그러자 변신했을 때와 비슷하게 늑대인간은 순식간에 나체의 인간여자로 돌아왔다.

       

       호오오옥시 몰라서 캣닢처럼 은팔찌도 몇 개 준비하라고 했는데 이걸 또 써먹네.

       

       설마 진짜로 늑대인간이 정체를 숨기고 지원했을 줄 누가 알았냐.

       

       “감사합니다….”

       

       희미한 눈으로 내게 인사한 여자는 실신했고 조교들이 달려와 여자를 수습했다.

       

       “의무소로 데려가. 마야 사제님한테는 꼭 늑대인간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조교들이 여자를 의무소로 데려가자 몸을 돌려 오크들을 쳐다봤다.

       

       “계속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고 아니면….”

       “우리는 친구다!”

       

       얼이 빠진 채 나를 쳐다보던 오크들이 갑자기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어휴, 저 멍청한 놈들.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늑대인간을 때려 눕혔어….”

       “폴리모프한 드래곤이라도 되는 건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밀치며 키르린이 달려왔다.

       

       “너 괜찮아?!”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완전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네요.”

       

       처음 시행하는 거라 착오가 많다. 내년에는 올해의 일들을 교훈 삼아서 지원자격을 더 강화해야겠어.

       

       키르린이 안 그래도 검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걱정스럽게 내 팔을 붙잡았다.

       

       “벌써부터 이러는데… 이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걱정마십시오. 아마 오늘 점심 전에 여기서 또 절반은 떨어져 나갈 겁니다.”

       

       지원자들의 첫 번째 평가는 바로 체력측정.

       

       졸업 후 현장으로 빠지든 내근으로 빠지든 상관없이 ‘특수임무’ 아카데미인 만큼 체력은 기본적으로 받쳐 줘야만 한다.

       

       체력이 좋지 않으면 제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우리 아카데미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일단 체력부터 확인해서 부적격자를 빨리 걸러낼 생각이다.

       

       몸 약하고 머리 좋으면 여기가 아니라 다른 훌륭한 전통 아카데미에 가는 편이 낫지.

       

       “교장님. 여기는 대강 정리된 것 같으니 대강당으로 이동하… 죠….”

       

       막 키르린을 돌아보던 나는 말끝을 흐리며 키르린의 어깨 너머에 보이는 것에 주목했다.

       

       그것은 북적대는 인파 사이에 섞인 선명한 분홍색 머리칼이었다.

       

       희귀한 분홍색 머리칼을 양갈래로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여자애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장의 형태로 봐서는 저쪽 접수처 앞에 서있는 레블랑 용병대 소속 같은데 거기에 저런 여자애가 있던가?

       

       전쟁 때 레블랑 용병대하고 같이 작전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듣기로 레블랑에서는 여자 용병은 뽑지 않는다고 했었다.

       

       하지만 저 애는 용병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여리여리해 보이는데…. 마법사나 다른 클래스인 걸까.

       

       뭐, 나중에 최종선발되면 그때 자세히 알아 보자고.

       

       “갑시다, 교장님.”

       

       대답이 없어 돌아보니 키르린이 인파에 밀려 호에엥 떠내려 가는 중.

       

       얼른 달려가 손을 붙잡아 접수처 천막 뒤로 데려왔다.

       

       “어휴, 큰일날 뻔했네. 고마워, 디안.”

       “다크엘프면서 도약이라도 하시지 뭐한다고 떠밀려 가요?”

       “공간이 너무 비좁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는 법이야.”

       

       키르린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참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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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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