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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보아라. 너희 신관들은 이제 보답받지 못하는 신앙을 버리고 새롭게 탈바꿈하리라.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몸만 숨기고 신력마저 차단한 하찮은 신체 대신, 더 완전무결하고 도움이 되는 신을 섬길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랴? 경사로다, 참으로 경사야.”

         

       진성은 절규하는 리세와 절망에 빠진 켄지를 보며 그리 말했다. 그러자 리세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울부짖듯 소리쳤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버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진성은 그 울부짖음을 오히려 가련하게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몽중몽 속에서 헤맬 때 의사가 지었던 표정과 사뭇 닮은 점이 있어 리세는 울부짖는 것을 순간 멈추고 진성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가련하다, 참으로 가련하다. 무지한 것은 분명 행복하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반드시 파탄을 불러오는 법.”

       “하…?”

       “무녀야, 무녀야. 네가 아무리 부정한들 진실은 오직 변하지 않느니.”

         

       그는 그리 말하며 품속에서 작달막한 막대기 여러 개를 꺼냈다. 초록색으로 된 거칠고 가느다란 형태의 그것은 보통 제사에서 많이 보이는 연향(練香)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보통 연향이 초록색 단색인 것에 비해 진성이 꺼내든 연향은 빛을 받을 때마다 색이 변하기라도 하는 듯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반투명한 초록색에서 불투명한 초록색으로, 다시 평범한 향의 질감으로. 거기서 광택이 흐르는 초록색으로, 이끼를 연상케 하는 초록색으로, 나중에는 싱그러운 잎사귀의 색채를. 그렇게 색과 질감을 계속해서 바꾸는 연향은 물건이라기보단 생물. 그것도 자연계에는 없을 것 같은 기묘한 생물을 떠올리게 했다.

         

       진성은 연향을 들고 그대로 리세의 앞에 가서 민들레 홀씨를 불 듯 불이 붙지 않은 향의 윗부분에 후-하고 작게 바람을 불었다.

         

       “꺅!”

         

       그러자 향은 마치 스프레이를 뿌리듯 초록색 가루를 앞쪽으로 뿌려대었고, 리세는 방심하고 있다가 눈에 가루를 그대로 맞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호흡기로도 가루를 양껏 빨아들였다.

         

       “이…이게…대……체….”

       “일어나면 개종을 해야 할 것이야. 잠시나마 삼매의 경지의 맛을 볼 것인즉, 모든 걱정을 덜어내고 투리야(तुरीय)의 세계를 보고 오라.”

       “시일…어…꿈…시러….”

         

       가루를 호흡한 리세는 순식간에 눈이 풀리고 근육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비단 팔다리의 근육뿐만이 아니라, 호흡하는 데 쓰이는 근육마저도 힘이 빠지는지 숨이 막히고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몽중몽으로 빠져들까 두려워 눈을 감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점점 흐릿해지는 머리와 천근의 무게를 짊어진 듯 땅으로 떨어지는 눈꺼풀. 그리고 턱턱 막히는 목과 눕듯이 바닥에 쓰러지게 만드는 풀린 근육은 자연스레 그녀를 잠에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리세는 공포가 서린 얼굴로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또! 또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켄지는 그 모습을 보더니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을 힘차게 비틀며 소리쳤다. 목에 핏대까지 올리며 외치는 그 모습은 얼핏 부정(父情)이 넘쳐 보였으나, 진성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역겨운 약쟁이 놈아. 어찌 제 딸의 안위보다 약의 냄새에 반응하느냐.”

         

       그렇다.

       얼핏 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증거로 켄지의 시선은 쓰러진 딸이 아니라 진성이 손에 들고 있는 연향에 향해 있었고, 약에 취한 상태로 얻었던 쾌락을 생각한 것인지 켄지의 하물(下物)이 부풀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고, 얼굴은 흥분 때문에 새빨갛게 변해있었으니.

         

       참으로 역겨운 모습이 아닌가.

         

       “이 아이는 나에게 감사해야 하느니. 조만간 약에 취해 크나큰 사고를 쳤을 것이야. 쯧.”

         

       진성은 그리 중얼거리며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다. 그리곤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천천히 비비며 말했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고, 한 몸이었던 것은 떨어져도 한 몸이 되려 하느니. 내 몸에 있는 것을 모방하고 생명을 얻어 형상을 이루라.”

         

       그러자 그가 뽑아 든 머리카락은 점차 하얗게 변했다. 탈색되듯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 아닌, 광택을 가지고 또렷한 흰색을 띠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빳빳하게 몸을 세우고, 기쁘다는 듯 몸을 꿈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약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겠네.”

         

       진성은 켄지의 얼굴을 한 손으로 세게 쥐어 잡았다.

         

       “아, 아아아악!”

         

       켄지는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내질렀고, 그렇게 벌어진 입에 꿈틀대는 머리카락이 들어갔다.

         

       “아? 아! 악! 아, 아? 아? 아. 아….”

         

       벌레가 꿈틀대며 몸으로 파고들자 켄지는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마약 때문에 망가진 켄지의 신경은 온전히 고통뿐만이 아닌, 다른 감각을 느끼는지 몸을 뒤틀며 뜨거워했다가 화들짝 놀랐다가 기뻐했다가를 반복하며 이상 반응을 보였다.

       진성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의 눈이 팽글팽글 돌기 시작하자 향을 꺼내서 그에게 불었다.

         

       후-우.

         

       “아…아….”

         

       그러자 앞서 리세가 그러했듯 켄지 역시 고개를 그대로 고꾸라뜨리며 꿈의 세계로 가버렸다.

         

       “■■”

         

       잠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새타니는 군침이 돈다는 듯 몸을 기괴하게 뒤틀며 머리를 옆으로 뉘었지만, 그는 새타니의 머리를 세게 쥐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아니 되느니라.”

         

       그러자 새타니는 이상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더니 부러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주물렀다.

       깨지고 썩어버린 검은 손톱이 얼굴을 긁고, 부러진 손가락이 찰흙이라도 되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고 또 바꿨다.

       이윽고 새타니가 얼굴에서 손을 떼었을 때, 그 얼굴의 형상은 리세가 꿈속에서 보았던 간호사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새타니는 간호사의 얼굴로 말했다.

         

       “의사 선생님.”

         

       그 목소리는 얼핏 들으면 평범한 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자세히 듣는다면 그 목소리 모두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임은 쉽게 눈치챌 수 있으리라.

         

       다섯 글자의 말.

       그리고 다섯 개의 목소리.

         

       자신의 성대로 말을 한다기보다는 남이 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나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조합되는 것은 마치 신문에서 글자를 오려 편지를 만드는 것처럼 섬뜩하고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왜. 안. 되. 나. 요?”

         

       새타니의 머리는 점점 비틀렸다.

       살짝 기울어진 머리는 90도로 뉜 머리가 되었고, 그것이 120도가 되고, 종국에는 완전히 180도가 되었다. 목을 꺾어야만 가능한 뒤집힌 얼굴의 가장 윗부분의 입은 사람 흉내라도 내겠다는 듯 연신 뻐끔거리며 움직였다.

         

       “놀고 싶어요.”

       “놀고 싶어요.”

       “놀고 싶어요.”

       “놀.고.”

       “싶.”

       “어.요.”

         

       진성은 그 기괴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옴 마니 파드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짜아아악!

         

       그는 품 안에 있는 복숭아나무 염주로 새타니를 후려쳤다.

         

       “끼익! 끼아아악!”

         

       새타니는 가벼워 보이는 손찌검에 맞자마자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를 홀리려 들다니. 내가 그리 우습게 보이더냐?”

       “힉! 잘모태써! 잘모태써!”

         

       새타니는 무너져내리는 얼굴로 용서를 구했다.

       진성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다시 한 번 그리하면 영혼을 갈가리 찢어버릴 것이다. 알겠느냐?”

       “네! 아라써!”

         

       새타니는 뭉개진 발음으로 연신 소리치더니 진성의 시야가 닿지 않을 구석으로 들어가 몸을 쪼그려 숨겼다. 그렇게 하고도 시야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팔을 구깃구깃 접고 다리를 뒤틀었다. 그리곤 머리를 그 사이에 쳐박아 몸을 구형(球形)으로 만들어 그의 시선을 피했다.

         

       ‘쯧.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천방지축이구나. 저것에도 족쇄를 채우는 것이 옳으리라.’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리세와 켄지를 새타니의 정 반대 방향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곤 의식을 시작했다.

         

       “옴 감 가나파타예 나마하(ॐ गम गणपतये नमः).”

       

       진성은 눈을 감고 손에 든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

         

       작은 방울에서 났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거대한 소리. 거기다가 중간에 늘어진 테이프에서 나는 소리처럼 한없이 길고 길게 퍼져나가는 소리는 본전 전체를 진동으로 뒤엎을 정도가 되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진성은 다시 한번 방울을 휘둘렀다.

         

       짤———랑!

         

       맑고 청명한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드드드득!

         

       이번엔 본전 전체가 아닌, 본전 구석의 빈 곳을 향해 날아간 소리는 그곳에서 갇혀 소리를 증폭하고 반사하며 한 곳에 진동을 집중시켰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벽에 갇힌 소리는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는 악령을 떠올리게 했으니,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반드시 악몽이 소리의 형태를 이루었다 여기리라.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ओं अमोघ वैरोचन महामुद्रा मणि पद्म ज्वाल प्रवर्त्तय हूं).”

         

       방울 소리를 뒤잇는 것은 진성이 내뱉는 만트라(मन्त्र). 주술적인 힘이 담긴 진언은 입에서 떠나가기 무섭게 공간을 뒤흔들며 왜곡된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ओं अमोघ वैरोचन महामुद्रा मणि पद्म ज्वाल प्रवर्त्तय हूं).”

         

       짤—-랑!

         

       무언가를 숨기려 안간힘을 쓰는 왜곡된 대기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메아리치며 자신을 뒤흔드는 방울 소리와 밖에서 주술적인 힘을 품고 공간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 하는 진언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ओं अमोघ वैरोचन महामुद्रा मणि पद्म ज्वाल प्रवर्त्तय हूं)!”

         

       이윽고 진성이 세 번째로 진언을 읊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왜곡된 공간이 숨기는 것이 드러났다.

         

       몸을 숨기기 위해 장막의 형태를 이루고 있던 신력.

       정성껏 만든 제단.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개를 닮은 돌덩어리.

         

       진성은 그것을 보며 말했다.

         

       “연결을 끊고 숨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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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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