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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언제나 내키는 대로 자고, 일어났던 백우진은 오랜만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다.

         

       용봉 비무제 본선의 주 무대가 될 중앙 비무대에서 대진표 추첨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무단으로 불참할 시 자동으로 탈락 처리되니 꼭 참여하라는 주의사항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기숙사를 나서자 대연무장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백우진은 그 속에 몸을 맡겼다.

         

       그러던 와중, 몇몇 무리가 심상찮은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자네는 누구한테 걸 셈인가?”

       “그야 당연히 소림의 기재인 명진에게 걸어야지 않겠나.”

       “안전한 길을 택하겠다?”

       “잃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않겠나. 그러는 자넨 누구에게 걸려고?”

       “내 이곳저곳 다니며 비무를 보아하니, 남궁수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더군.”

       “허어, 남궁세가 대 소림이라. 이거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되는군!”

         

       이것 봐라?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우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내기가 있었어?’

         

       조심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면 대놓고 성행하는 건 아닌 듯했으나 곳곳에서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면 아는 사람은 또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인 것도 같다.

         

       그들의 입에서 거론되는 이름은 대다수가 비슷비슷했다.

         

       남궁세가의 남궁수, 소림사의 명진, 무당파의 한백.

         

       이들은 생도들 사이에서 ‘삼룡(三龍)’이라 불리며 이미 용의 자리를 꿰찬 거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다른 상위권 생도들에 비해 두, 세 수는 앞서가고 있었다.

         

       세간의 평가 또한 비슷했다. 외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는 정무학관 내부에도 일꾼으로 위장한 하오문도는 숨어 있었고, 그들이 퍼다 나른 정보에는 학관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후기지수들에 대한 정보 또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내기라.”

         

       이거 재밌겠는데.

         

       이번 비무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영약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닐 듯했다.

         

       백우진은 가장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내를 향해 친근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갔다.

         

       “이보시오들.”

       “…무슨 일이오?”

         

       두 사내 중 하나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백우진을 쳐다봤다.

         

       “그 내기하는 곳, 나도 좀 알려주시오.”

       “무, 무슨 내기 말이오.”

       “신성한 정무학관에서 내기라니! 경을 치고 싶은 게요?”

         

       오리발을 내미는 솜씨가 제법이다. 허나, 이미 모든 내용을 들은 백우진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좋게 좋게 갑시다. 응?”

         

       웃는 얼굴 위로 흉흉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두 사람이 곧장 태세를 전환했다.

         

       “모, 모시겠습니다.”

       “가시지요!”

         

       그들이 빠른 걸음으로 안내한 곳은 학관 외곽에 입점해 있는 한 객잔이었다.

         

       평소 생도들도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 언제 가도 손님이 가득했던 곳은 오늘 같은 대목에 휴점이라고 적힌 패를 걸어둔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깁니다.”

       “…휴점인데?”

       “헤헤, 눈속임이지요.”

         

       떳떳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요.

         

       확실히 귀에 내공을 담아 객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자 휴점이라고 걸어둔 객잔치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속속들이 들려왔다.

         

       “소개해줘 고맙소.”

       “아이고,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요.”

         

       끝까지 깍듯한 이들의 모습에 감동받은 백우진이 두 사람을 가까이 불러놓고 입을 열었다.

         

       “내 그대들의 친절에 보답할 겸 중요한 정보 하나 드리지.”

       “어떤…?”

       “백우진에게 거시오.”

         

       이번 비무제 우승은 그가 될 테니.

         

       두 사람은 얼굴의 반은 웃고, 반은 일그러진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듣도 보도 못한 놈을 추천하다니!’

         

       들어본 적 있다. 자신이 점찍은 대상의 배당률을 높이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려 사람을 혼동하는 선동꾼들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눈앞의 백우진이 그런 부류일 거라 확신했다.

         

       ‘정말 나쁜 놈이군.’

       ‘쓰레기구나!’

         

       상종 못할 쓰레기가 된 백우진은 그들의 속내도 모른 채 오늘도 좋은 일을 했다며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잠깐 다른 길로 샜다가 마침내 도착한 대연무장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만리장성처럼 굳건한 벽을 세우고 있었다.

         

       비무대 위에는 이미 자신을 제외한 모든 진출자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을 한 채 대진표 추첨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 백 공자…!”

         

       그중 한 사람, 좌측 끄트머리에 있던 제갈연지가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며 본선 진출자들의 면면을 살피던 백우진은 어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신예화를 발견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제갈연지와는 정반대인 우측 끄트머리에 서서 뒤늦게 나타난 백우진을 원망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래.’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린다.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새. 허나 백우진은 그녀를 쌩하니 지나쳐 제갈연지에게 향했다.

         

       ‘지 알아서 하겠지.’

         

       애도 아니고 일일이 먼저 다가가서 화를 풀어줄 귀찮은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우진은 아리송하고 알쏭달쏭한 것들을 싫어했다. 그중에는 소위 말하는 여자어(語)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여자였다면 그래도 한 수 접어준다는 생각으로 풀어줬겠으나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형이 알아서 풀어주겠지.’

         

       더군다나 사람 속 풀어주는 데에 탁월한 백무혁이 그녀의 곁에 있어줄 테니 걱정은 접어둬도 되리라.

         

       “자, 잘 주무셨어요?”

       “응.”

         

       백우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언제까지 내 앞에서 말을 더듬을 예정이야?”

       “그, 그게에.”

         

       훅 들어온 질문에 제갈연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아무래도 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됐어, 그냥 한 번 해본 말이야. 편할대로 해.”

       “네에….”

         

       미묘하게 시무룩해진 표정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작은 고양이나 햄스터 한 마리를 키우는 듯한 기분에 백우진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였다.

         

       갑자기 느껴지는 짜릿한 시선에 고개를 돌려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유화연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뭐지.’

         

       불길함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벌써 시작된 건 아니겠지.

         

       백우진의 안색이 갑작스레 어두워지자 제갈연지가 크게 당황한 얼굴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한쪽 면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상자와 함께 부관주 언진섭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오래들 기다리셨소! 지금부터 용봉 비무제 본선, 대진표 추첨을 시작하겠소!”

       “와아아아!”

         

       하늘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강렬한 환호성이 뒤따랐다.

         

       즐길 거리가 한정적인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용봉 비무제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지 알려주는 예였다.

         

       “누가 가장 먼저 대진표를 뽑겠는가!”

       “제가 먼저 뽑겠습니다.”

         

       내기가 실린 언진섭의 외침에 가장 먼저 손을 들며 나선 이는 다름 아닌 남궁수였다.

         

       백우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관종 같으니.’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기다 못해 만끽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나쁜 체질은 아니긴 해.’

         

       저런 유형의 인물들은 사람들이 많이 지켜보는 곳에서 오히려 실력 발휘를 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금처럼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비무제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체질이다.

         

       당당한 걸음으로 나아간 남궁수가 상자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뺐다.

         

       “24번이오!”

       “남궁수, 24번!”

         

       큼지막한 대진표의 좌측 서른두 칸 중 가장 아래에 남궁수의 이름이 적힌 패가 걸렸다.

         

       남궁수를 필두로 제 실력에 제법 자신 있는 이들이 앞다투어 나가 대진표를 뽑았다.

         

       “신예화 12번!”

       “황보준걸 4번!”

       “명진 36번!”

       “한백 60번!”

         

       대진표가 서서히 채워져 갔다. 백우진은 이쯤 해서 제갈연지의 등을 떠밀었다.

         

       “아앗….”

         

       콩콩거리며 앞으로 나아간 제갈연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제갈연지 42번!”

         

       그녀의 명패가 내걸림과 동시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유화연이 나섰다.

         

       “유화연 48번!”

         

       그녀의 명패가 걸리는 걸 확인한 백우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난감하게 됐네.”

         

       제갈연지와 유화연이 각각 두 번의 승리를 거둬 16강에 진출하게 되면 두 사람이 붙게 되는 대진표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하필 16강이냐.”

         

       용과 봉의 별호는 8강에 도달한 여덟 명의 생도들에게 주어진다. 아예 처음부터 떨어진다면 모를까 16강에서 패배하면 그 뒷맛이 얼마나 씁쓸할지는 뻔했다.

         

       “너, 너무해요…!”

         

       추첨을 하고 돌아온 제갈연지가 조금 전 자신을 떠민 것이 별로였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고민이 괜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 단순한 대진일 뿐인데 걱정할 필욘 없겠지.’

         

       이미 유화연과는 사이를 깔끔하게 정리했고, 제갈연지는 오로지 자신과 친분이 있을 뿐 그녀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이 아니던가.

         

       개인적인 욕심을 조금 가미하자면 백우진은 제갈연지가 8강에 진출하여 봉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참모로 점찍어 두었기에.

         

       쭈구리 같은 표정으로 조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만면에 미소가 그려졌다.

         

       “흐흐, 좋아.”

       “뭐가 좋아요…?”

         

       아리송한 백우진의 말에 제갈연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게 있어.”

         

       차마 미안한 마음에 지금 한 생각을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대진표가 거의 가득 찼을 즈음, 백우진은 이때다 싶어 느릿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상자 안에 몇 장 남지 않은 종이를 뒤적거리다 느낌이 좋은 녀석을 하나 골라잡았다.

         

       꺼내어 펼쳐보자 십사(十四) 번이 적혀 있었다.

         

       “백우진 14번!”

         

       백우진의 시선이 대진표를 훑었다.

         

       “어…, 음.”

         

       그의 첫 상대가 될 13번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힌 명패가 걸려 있었다.

         

       시선을 데굴데굴 굴려 대진 상대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입이 떡 벌어진 채 굳어버린 상대가 눈에 들어왔다. 백우진은 웃으며 다가가 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쳤다.

         

       “광수야, 안녕?”

         

       백우진은 뱀을 본 개구리마냥 얼어버린 구왕수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린 아무래도 운명인가 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광수… 아니, 구왕수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편 더 작성하여 퇴고 중에 있습니다!

    독자님들의 중증 월요병 예방을 위해 자정 전에 한 편 더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선작, 댓글, 추천, 알람 설정 부탁드립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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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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