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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0

       짐승을 잡아먹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이쪽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면 절대로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인간들 아래에서 ‘짐승 취급’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바라는 것은 무슨 전설 속의 환수 수준이었는데, 나를 대하는 것은 그냥 야수 한 마리를 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먹이는 것도 그랬고, 시키려는 일도 그랬고.

        

       하다못해 정말로 신수라도 되는 것처럼 대우해줬다면 나의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작부터 쇠사슬에 묶인 상태라면 누가 그 말을 제대로 듣겠냐고.

        

       “…….”

        

       나는 내 앞에 남아있는, 피 묻은 깃털 몇 개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우선, 내가 살아있는 새를 직접 죽여서 입에 넣고 씹어먹었다는 것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먹고 난 뒤에 묘한 만족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생살과 생피를 먹고서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직도 솔직히 적응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이런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놈들이 나에게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울 만큼 먹을 것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입에 아직 남아있는 작은 고기를 으적으적 씹으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제 뭐 하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 줄 모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는 나라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그 나라들이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이 세상의 기술력이 얼마나 되고 내가 지켜야 할 예절이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춥지 않다는 것 정도일까.

        

       음.

        

       ……일단 둥지라도 지어야 하나?

        

       일단 내가 그리폰이 되기는 했지만, 그리폰이 독수리에 더 가까운 존재인지 사자에 더 가까운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독수리’ 부분이 더 큰 것 같고, 나는 사자가 어떤 방식으로 보금자리를 만드는지도 몰랐다.

        

       그리폰 깃털이 꽤 따뜻한지 추운 것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포근한 곳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나뭇가지 몇 개를 뜯어다가 둥지 모양을 만들다가 현자 타임이 와서 그만두었다.

        

       그리폰의 몸집은 생각보다 무지 커서, 내 주변을 감쌀 만큼 테두리를 만드는데도 어마어마하게 귀찮았다. 심지어 그 테두리 위에 가지를 쌓아서 담처럼 만들려고 하니 더욱 귀찮았다.

        

       하긴, 내가 알을 낳을 것도 아닌데 굳이 둥지를 만들 필요가 있겠어.

        

       둥지 만들다가 귀찮아서 그만두다니, 무슨 살 뒤룩뒤룩 찐 닭둘기냐고.

        

       나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했지만, 나는 이것도 그 나쁜 놈들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그리폰으로 자랄 만한 시간을 주지 않았잖아.

        

       물론 딱히 그리폰으로 자랄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

        

       그때 그냥 그 실비아라는 애 옆에 남을 걸 그랬나?

        

       하다못해 걔 옆에 있었으면 뭘 할지 생각이라도 났을 텐데. 걔 다니는 대로 움직이면 되니까.

        

       게다가, 다시 생각해보면 걔가 주인공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 세상은 아무래도 내가 살던 현실의 과거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마법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내가 그리폰이다. 그리폰이라는 동물은 내가 사는 세상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체 역사인 건 또 아닌 것 같고. 그 성직자들의 옷에 그려진 것은 십자가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어떤 작품 같은데, 무슨 작품인지를 모르겠네.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일본 쪽 작품인 것 같은데.

        

       인제 와서 그 애를 찾아가도 괜찮을까?

        

       내가 날아오를 때 기사들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폰이라는 생물은 위험한 야수 취급인 모양이었고, 나와 대화 비슷한 것을 해본 애는 실비아밖에는 없었다. 인제 와서 다시 돌아가면 총이라도 맞을지 모른다.

        

       격하게 후회되었다.

        

       주인공이라면 나를 그 망할 놈들처럼 대하지는 않을 테고.

        

       생각이 짧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후회하고 있던 찰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야 한구석이 갑자기 빛에 물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빛의 기둥이 보였다.

        

       아주 먼 곳에서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뻗어가는 빛의 기둥.

        

       여기서 보기에는 다소 얇게 보였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실제로는 아주 넓고 높은 기둥이리라.

        

       음, 뭐랄까.

        

       스토리가 아주 막바지에 다다를 때나 나타날 것 같은 기둥이다.

        

       나는 한동안 그 기둥을 바라보다가, 양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혹시나 해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기둥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럼 저 기둥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뿐이었다.

        

       분명, 이 세계의 주인공들은 저 기둥을 향하겠지.

        

       그리고 아마도 저 기둥 안에서 최종전이 있겠지.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내용상 엄청나게 중요한 이벤트일 거고.

        

       내가 해본 게임이나 소설, 만화 속의 세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원래 이런 세상에서 벌어지는 스토리가 거의 다 정해진 라인이 있는 법이다. 굳이 그 라인을 벗어나 보겠다고 이상한 스토리를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작품이라면 애초에 내가 이런 식으로 구출될 일도 없었겠지.

        

       뭐, 좋아.

        

       그렇다면 저쪽으로 날아가 볼까.

        

       기왕이면 근처에 가서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보자.

        

       적어도 이쪽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본 적은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20세기 초반의 분위기이니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지만, 내가 먼저 조심하면 어떻게든 피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소총탄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지만, 비행기에 달려있을 기관총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최대한 높이 날아 그 지역을 향했다.

        

       *

        

       나는 그곳에서 며칠 정도 하늘을 날아다니며 상황을 살폈다.

        

       주로 높이 날면 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진 밤에 하늘 높이 날아다니며 빛 주변을 살피자, 그 주변으로 군인으로 보이는 인간들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몇 사람이 들어가려다가 화상을 입고 쓰러지는 것도.

        

       ……다짜고짜 들어가지 않길 잘했다.

        

       하마터면 그대로 그리폰 구이가 될 뻔했으니까.

        

       낮에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 숨었다가, 밤이 되면 주변을 살피고 들키지 않게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며칠.

        

       드디어 주인공 일행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왔다.

        

       내가 지하에서 보았던 일행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조합이었다. 아니면 완전히 같거나. 사실 당시 나는 몸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몇 초 되지 않았다. 싸우던 때는 내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리고, 아이들은 말릴 틈도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아이들은 멀쩡했다. 빛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인영들은 멀쩡이 걸어서 그 빛기둥이 감싼 도시 안으로 사라졌다.

        

       어…….

        

       나도 따라 들어가야 하나.

        

       아이들이 들어간 것을 보니 어떤 조건이 있으면 상처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지만, 문제는 나는 그 조건을 모른다는 것이다.

        

       “…….”

        

       결국, 나는 다시 주변에 잠복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아프다가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벌써 몸을 버리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

        

       다행히,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하늘 위를 날면서 상황을 살핀 지 몇 시간 정도 흘렀을까.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다소 지루한 시간이 지난 후, 갑작스럽게 빛기둥은 사라졌다.

        

       해가 뜬 뒤의 시간이었기에 저 멀리 떨어진 채 비행하고 있던 나는, 그대로 빛기둥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았다.

        

       혹시나 했지만, 빛기둥이 있던 곳에 간다고 내가 다치는 일은 없었다. 그 경계에는 접근하는 모든 생물체를 태우는 벽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원래대로라면 사람들이 가득했을 도시는 고요했다. 그렇기에 저 멀리서 들리는 싸움 소리가 나의 귀까지도 들릴 수 있었다.

        

       나는 곧장 그곳을 향해 날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다는 것처럼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간 나는, 그대로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힘껏 부딪혔다.

        

       내가 가루를 내버린 것은 공교롭게도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하늘로 날아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 세계의 종교가 믿는 여신인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부수는 김에 겸사겸사 일부 벽까지 부수고 들어간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 소녀, 실비아였다.

        

       배에 구멍이라도 난 듯 붉은 피가 울컥울컥 나오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그쪽으로 강하했다.

        

       그 뒤로부터 나에게 일어난 일은, 누군가에서 배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할 줄 알았다는 듯 거의 본능에 따른 것이었다.

        

       내 날개 근처에 빛의 몽우리가 맺혔다. 그 빛이 닿는 날개가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날개를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몸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듯,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낙하하여,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바닥에 착지했다.

        

       콰직, 발아래서 바닥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던 인물들 몇 명이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리를 벌리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퓌요오오오오!”

        

       영화에서나 들어보던 독수리 울부짖는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순간 조금 뿌듯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우박이아저씨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후원감사는 연중성녀때 엄청 고민했습니다. 무료 소설에 후원해주시는 분들께 어떻게 감사인사를 전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생각나는 말을 전부 해보자고 결정하고 답변을 달았던 것이 꽤 길어졌고, 그런 답변을 제게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하다 보니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지금도 후원해주시는 분들께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돈까지 벌 수 있었고, 작가라는 꿈도 이룰 수 있게 되었는데 후원까지 해주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저 여러분께서 저의 작품을 읽고 즐거워해주실 수 있도록, 돈을 결제해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제게 후원해주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겠죠. 아직 많이 부족한 글쟁이입니다만, 그저 앞으로 더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이 초심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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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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