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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0

        

       그것은 신발이었다.

       아주 평범하게 생긴 신발.

       자주 사용한 것인지 조금 낡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신발이었다.

         

       하지만 그 신발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마치 혀라도 달린 것처럼.

       혹은 혀를 재료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 까마귀가 말하길 옛날에 자신은 전쟁의 여신을 모시는 몸이었다나? 옛적에는 여신을 따라서 돌아다니며 허무하게 죽어버린 전사의 시체를 뜯어먹는 것이 낙이었다고 했던가! 하지만 대지에 클로버가 가득 피어나고, 위대한 신의 이름을 등에 업은 작자가 나타나 침략한 이래 여신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군! 하-! 나도 한 허풍 하는 녀석이지만 이 까마귀 녀석은 참 허풍을 잘도 치는 녀석이구나 싶었지. 안 그러겠는가? 어찌 돈이나 밝히는 까마귀 녀석이 위대한 바이브 카흐(Badhbh Cath)의 권속일 수 있냐 이 말이지—-! 』

         

       신발에서는 거나하게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약간의 횡설수설하는 듯한 말투, 거기에다가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 중간중간 고이는 발음까지.

       누가 들어도 술집에서 술 마시고 취해서 주정을 부리는 중년 남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그 목소리를 할 때마다 신발이 조금씩 조금씩 더러워진다는 것이었다.

       미세하게나마 신발이 낡아갔으며, 빳빳했던 신발 끈은 점차 낡아졌다. 게다가 험난한 길을 걷기라도 하듯 밑창은 점차 닳기 시작했으며, 뒤꿈치는 몇 번 구겨서 신기라도 한 것처럼 주름이 졌다.

         

       그 속도는 아주 미세해서 쉽게 눈치챌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집중해서 본다면 분명히 실시간으로 낡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발 앞에 있는 남자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하지만 동시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말이다.

         

       『 하지만 그 까마귀의 허풍은 꽤 들을만한 것이었지-! 술안주로는 그만이었단 이야기야! 하기야 술을 마시고 하는 이야기에 진위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은 팔을 가진 영웅이 바이브 카흐를 모두 취했다는 헛소문도, 바이브 카흐가 바다 건너의 여전사들과 만났다는 것도. 크흐, 그리고 뭐-빛의 영웅이 고자라는 헛소문도 전부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

         

       『 그 까마귀는 말이야. 돈에 미쳤어, 돈에. 생각할수록 돈에 미쳤다는 말이야. 그놈이 얼마나 돈에 미쳤냐 하면, 본래 새라는 것이 위도 보고 정면도 보고 하면서 날아야 하는데 이놈의 까마귀 녀석은 아래만 보고 다녔다는 거야. 왜? 아래를 보지 않으면 땅에 떨어진 돈을, 보석을 놓치고 말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이 까마귀 녀석은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는데, 그게 얼마나 쌓여있었는지 흐레이드마르의 아들놈이 그걸 탐내서 찾아오기까지 했다는 거야! 하하하하! 그게 말이 되는지 원! 이놈 허풍이 조금만 더 심하면 어? 까마귀들 몰고 사람 오갈 수 있는 다리를 공중에다 만들었다고 하겠어! 』

         

       『 그런데 그렇게 아래만 보고 다니다 보니 본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다는데 말이야. 이놈이 최근에 아주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는 게지. 그게 무어냐? 그게 바로 순대, 자네가 있는 나라에서 아주 특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거지! 』

         

       신발은 신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실제로 입이 있었다면 신나게 침을 튀긴 나머지 사방을 침 범벅으로 만들어놓았을 기세로 말이다.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는, 이제순은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 손에 수첩을 들고 필기할 준비를 마친 채 말이다.

         

       『 언제였지? 어제였나? 그제였나? 어쨌든 이 까마귀 녀석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네. 괜스레 독수리가 시비를 걸어서 날개로 독수리의 뺨을 후려쳤다고 하는데, 그렇게 후려치고 나니까 날개가 삐기라도 했는지 은근히 쑤셨다는 거야. 그래서 날개를 접고 어디 쉴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좀 험난한 산이 보여서 거기 깊은 곳으로 딱 들어가서 적당한 가지에 앉았다는 거지. 』

         

       『 그런데 그렇게 좀 쉬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더라는 거야. 이상한 옷을 입은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땅에다가 막대기를 갖다 대고 막 파헤치지를 않나, 카메라를 든 놈들이 요란을 떨면서 이것저것 찍고 있지를 않나. 아주 난리였다고 하지. 가만히 쉬고 있는 까마귀 처지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 그래서 이 까마귀 녀석이 잎사귀를 몸에 칭칭 감고 나무인 척을 하고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그게 아주 가관이었다 이거야. 』

         

       『 웬 이상한 놈들이 땅을 파기 시작하더니 이상한 상자를 딱 꺼냈는데, 그걸 꺼냈더니 사람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 까마귀가 어? 그냥 까마귀야? 그걸 그냥 지나치면 돈에 미친 까마귀가 아니지. 몰래 슬금슬금 가서 그 보물의 정체를 확인해봤는데, 어이쿠야. 보물은커녕 웬 낡은 천 쪼가리로 감아놓은 칼이 있었다 이거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흔한 수준이라 별다른 관심은 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

         

       『 그런데 말이야, 순대. 자네가 내 친구라서 하는 말인데 말이지. 그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주워들었는데 말이야. 그 사람들이 그 비단을 보고 ‘천황’이라고 중얼거렸다는 거야. 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응? 흥미롭지 않나? 』

         

       이제순은 신발이 호들갑을 떨면서 말한 정보에 미소를 지었다.

         

       “흥미, 아주 흥미로워. 흐. 흐흐흐흐.”

         

       험난해 보이는 산에 카메라를 든 사람, 거기에다가 천황이라?

         

       냄새가 났다.

       특종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이제순은 정보를 다 듣고는 신발을 조심스럽게 들어 박스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그 박스를 자신만이 아는 비밀 공간에 소중하게 집어넣은 뒤, 다시 정적이 찾아온 방 안에서 히죽 웃었다.

         

       그는 절전모드가 되어있던 노트북을 다시 켜고는 글을 찾기 시작했다.

       신발이 말한 ‘정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딱히 별다른 것은 없었다.

         

       ‘꽤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녀석인가? 하지만 카메라가 있었고 여러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무조건 촬영팀인데.’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곤 이곳저곳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어, 반갑다. 아니 오랜만은 무슨. 내가 사회부로 옮겨간 지 얼마나 됐다고 오랜만이야. 아 다름이 아니라 내가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말이야, 이게 사회부에선 좀 접근하기가 쉽지 않네. 연예부에 있는 네가 그래도 좀 알지 않을까 해서 전화했거든. 요새 방송국이나 영화사에서 뭐 찍는 거 있어? 응? 모르겠다고? 그럼 뭐 제작사는? 아, 제작사는 알고 있는데 요새 뭐 없다고. 어, 알았어.”

         

       그는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놓은 얄팍한 인맥이자, 그의 ‘주물’에서 나오는 정보를 탐내는 사람들이었다.

         

       친분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타산적인 사이였고, 죄다 하이에나같이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탐내는 놈들 뿐이었지만…. 이런 때에 써먹기에는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본래 정보를 나누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 기본이라서, 이제순에게 정보를 제공해준다면 나중에 이제순에게 얻어먹을 게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특종이 될만한 특급 정보가 아닌 한, 그에게 어느 정도 정보를 알려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기자들에게 정보를 알려달라고 말을 했음에도 아무도 정보를 말하는 이들이 없었다.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는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순은 여기서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한데?’

         

       그래서 이제순은 기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멈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방송국 사람들이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PD님. 예, 연예부에 있을 때 잠깐 만나 뵈었었죠. 예,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말입니다. 아,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냥 동향이나 좀 알까 해서요. 제가 사회부로 가기는 했습니다만 원래 사람 사는 게 딱 어느 구역, 어느 구역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지요. 예. 그래서 방송국에서 뭐 커다란 프로젝트 같은 거 하는 거 없습니까?”

         

       그렇게 이제순은 방송국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명과 대화를 나누고 나자 어렴풋이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 모 방송국에서 특집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

       『 자세한 것은 비밀이니 말해줄 수는 없지만, 꽤 좋은 아이템이다. 』

       『 확답을 내려줄 수는 없지만, ‘소문’으로는 얼마 전 일어났던 괴물 소동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

       『 얼마 전 야외 촬영을 했다고 한다. 』

         

       그리고 그렇게 윤곽이 잡혔다면 충분하다.

         

       이제순은 기자로서의 재능을 발휘해 그 윤곽을 점차 뚜렷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 특집 방송이 ‘추적, 보도, 탐사’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방송국이 그 특집 방송에 큰 기대를 품고 있으며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고 있는 것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면 나머지는 쉬웠다.

         

       ‘움직이는 사람이 몇 명이고, 모인 사람이 몇 명인데. 흐흐, 꼬리 잡기는 쉽지.’

         

       그는 손쉽게 제작진이 어디로 야외 촬영을 나선 것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제작진을 지원하기 위해서 온 공병이 어느 부대에서 왔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제작진이 ‘황장산’에 갔음을 알아내었고, 그는 위치를 알아내자마자 짐을 챙겨서 집 밖으로 나섰다. 짐 속에는 산속을 헤치고 다녀야 할 것을 대비해 식량과 GPS, 충전기, 옷 등이 들어있었다.

         

       회사?

       그냥 ‘특종 거리를 찾아낸 것 같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허구한 날 특종을 물어오는 기자가 특종을 잡았다고 하는데, 당연히 허락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제순은 차를 몰고 황장산으로 향했고, 주변에 물어서 제작진의 발자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어느 등산로로 향했는지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알아내었고, 길이 아닌 곳으로 향한 제작진의 경로는 여러 사람이 남긴 흔적을 쫓아갔다.

         

       그 과정에서 길을 잃기도 했고, 버려진 철조망에 걸려서 긁혀 파상풍에 걸릴 뻔한 위험도 겪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뱀에게 물릴뻔하기도 했고,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순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 황장산에 반드시 특종 거리가 있을 것이라 여겼고, 그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신발은 분명히 말했다. 이곳에 흥미로운 것이 있다고. 흐, 특종이다. 특종이라고.’

         

       신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주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요정에게서 얻은 주물은 그를 밝은 미래로 이끌었으며, 이번에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주물을 따라서.

       주물이 말한 정보를 따라서.

         

       주물이 얻은 정보만 있다면 이제순은 계속해서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믿음에 이제순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것은 진리였으며, 상식이었다.

         

       이제순은 신발을 믿었고, 그 믿음을 품고 위험에 몸을 던질 수 있었다.

         

       ‘찾는다. 찾는다. 구덩이라고 했어. 구덩이가 있든 흔적이 있든 둘 중 하나야. 반드시 찾는다.’

         

       이제순은 그렇게 광기나 다름없는 집착을 품은 채 황장산을 돌아다녔고.

         

       “흐.”

         

       마침내 구덩이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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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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