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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0

     후작성.

     과거에는 백작성으로 불렸던 장소.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난 뒤, 샤를로트 지브롤터가 누군가의 아내로서 살아온 장소.

     이곳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오직 이 저택의 ‘마법’을 일으킬 수 있는 샤를로트를 제외한다면, 모든 지브롤터는 명령에 따라 자리를 떠났다.

     내가, 언제 여기에 왔더라.

     샤를로트는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빈 성을 훑으며 사색에 잠겼다.

     이곳을 떠났던 적은 많지 않다.

     지브롤터는 언제나 협곡을 지켜야만 했고, 샤를로트는 크림슨의 곁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크림슨 후작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이상 항상 샤를로트는 이 성에 있어야만 했다.

     백작성은 그녀에게 있어, 새장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지켜주는 울타리였다.

     

     -새로운 성을 지으려고 합니다. 두분을 위한 성을. 어머니의 이름에 변주가 들어간 이름으로…캐롤라인 성이라고 하죠.

     그 울타리가 캐롤라인 성으로 이어졌다.

     그레이는 제국산 공법에 따른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백작성을 새로 지어야 한다며 말로는 그랬지만, 정작 가장 많은 신경을 쓴 건 부부의 침실이었다.

     그곳에서 샤를로트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500년 동안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창밖으로는 높다란 성벽이 보이는 구 백작성과 달리, 언덕 위에 올라간 캐롤라인 성은 세상이 한 눈에 보이는 전경이 펼쳐졌다.

     샤를로트는 다양한 장소를 본 적이 없었다.

     렘부르 군터에 있을 때도 저택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고, 아카데미 시절에도 기숙사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캐롤라인 성은 넓은 새장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로트는 이 성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성 밖에는 자신을 노리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비단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저지르려고 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퇴각’이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샤를로트는 겁에 질렸다.

     가장 먼저, 크림슨이 다칠까봐.

     혹은 부상을 입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까봐.

     그리고 크림슨 후작이 퇴각을 결정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지브롤터를 떠나야 한다는 것 자체에서 그녀는 공포에 빠졌다.

     지브롤터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갈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위협이 다가오더라도 반드시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라고 생각했으나, 그 울타리를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곳은 새장이었다.

     평생을 새장 속에서 안전하게 자라온 그녀로선, 이 지브롤터라는 곳을 떠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간신히 되찾은 행복이 무너질까봐.

     한 번 위기를 겪었던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날까봐.

     이 평화롭고 안락한 땅을 적에게 빼앗긴다는 것도 두렵기는 했지만, 지브롤터가 다른 이들에게 짓밟힌다는 건 지브롤터 후작가라는-가족의 보금자리가 깨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황금으로 빚어진 그 끔직한 곳을 향해 다시금 가야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끔찍한 선택이었다.

     만.

     “……정신차려.”

     샤를로트는 자기 자신에게 엄포를 놓았다.

     “네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질문을 던진 샤를로트 본인.

     “누아르도, 레타르도. 모두들. 아이들을 위해서….”

     샤를로트는 어느 한 방으로 향했다.

     “지브롤터의 안주인으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백작성의 어느 한 구역.

     “내가 여기에 있어야, 영지민들이 안심하고 도망칠 수 있어.”

     10년 전, 제국의 그림자가 숨어들었던 때처럼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브롤터의 모두가 모였던 그 장소.

     “내가 여기에 있어야, 마지막 관문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어.”

     끼이익.

     샤를로트는 문을 닫았다.

     “…500년 동안 이어져내려온 지브롤터의 마법. 수호자의 마법이 계속 활성화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는 자신의 약지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에 끼워진 보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핏빛처럼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만이 이 지브롤터 성 내의 마법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지브롤터의 피를 아주 일부나마 가진 이가 있다.

     “…….”

     지브롤터의 대마법은 과연 제국으로부터 지브롤터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성은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저택은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방, 쪼그려앉으면 50명 정도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서 평생을 버틸 수는 없겠지.

     지브롤터 가문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지브롤터 ‘전체’는 더욱.

     그렇기에 지브롤터는 퇴각을 선택했다.

     후작 부인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성을 지키고, 남은 행정관과 가솔들, 기사단은 미성년자인 지브롤터의 핏줄과 영지민들을 데리고 모조리 왕도로 피난길에 올랐다.

     “…영지민 전체를 살린다. 그것이 후작님의 의지.”

     크림슨은 선택했다.

     그렇다면 후작 부인으로서, 그 선택에 그 어떤 후회가 나오지 않도록 책임자로서 조치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

     “후우….”

     영지민들은 이미 대부분 영주성을 빠져나갔다.

     바토리 소장의 도움 덕분에 많은 이들이 오로솔을 향해 이미 떠났고, 남아있으려고 하던 난민들도 하나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혔을 지도 모른다.

     -여, 여기가 아니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세이레네가 멸망당한 걸 보고도 지브롤터에 와서 안일하게 지브롤터에게만 의지하던 이들.

     자신을 향한 위협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능동적으로 자신을 지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던 이들.

     ‘어떻게’라는 말만 외치며 갈팡질팡하던 이들을 보며, 샤를로트는 이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환멸과 분노를 느꼈다.

     결은 다르지만, 어쩔 줄 몰라하며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20년 전의, 10년 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와는 달라. 그러니까….”

     이 선택이 맞기를.

     샤를로트는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하며,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차라락.

     붉은 핏방울이 들어있는 유리병에서 핏물을 꺼내, 그녀는 엄지로 반지의 보석을 문질렀다.

     파ㅡㅡ앗.

     붉은 결계가 사방팔방에서 펼쳐진다.

     지브롤터가 외부의 적을 상대할 때,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결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지브롤터가 안전하다는 신호.

     

     내부에 이미 들어온 적은 기사들이 확인하고 떠났으니-

     똑똑똑.

     

     문밖에서 들린 노크 소리.

     

     익숙하면서도 낯선, 하지만 기억 깊은 곳에 묻어놓았던 리듬에 샤를로트는 소름이 돋았다.

     “설마-”

     [부인!]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집사장, 말콤입니다! 급하게 전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부디 문을!”

     “…….”

     집사장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분명 틀리지 않았고,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고 해도 그 육성이 선명했다.

     그러나.

     “말콤. 우리 아홉째 이름은 뭐죠?”

     샤를로트는 물었고, 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부인, 지금 그럴 때가…!]

     “지브롤터의 결계가 펼쳐졌을 때, 지브롤터 이외에는 그 누구도 이 문을 열 수 없다. 그 규칙을 잊은 건가요?”

     [그, 그것이…!]

     “설령 노스트럼의 왕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규칙은 마찬가지.”

     […….]

     문 밖.

     “그리고, 우리는 아직 아홉째가 없어요.”

     노크가 멈췄다.

     [……끄흐.]

     그리고 앓는듯한 소리와 함께.

     [이야.]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눈치 빠르네?]

     문틈 아래.

     [크, 히힛, 히히힛…. 내가 너를 만나려고, 키흣, 대륙을 횡단해서…!]

     황금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기어오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듯 흘러들어온 액체는 황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더러운, 마치 황금에다가 온갖 오물을 섞어놓은 것과도 같은 색이었다.

     “다, 당신은 설마…!”

     [크흐흐, 네 아들에게는 신세를 졌다.]

     문틈을 빠져나온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인간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어린 아이보다도 더 작은 인간의 형태였으나, 얼굴 만큼은 누군가를 정확하게 모사하고 있었다.

     [네 아들이 나를 죽였으니, 그 복수를 네게 하고 떠날 것이야.]

     “어, 어떻게…!”

     [글쎄. 나도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보니 이렇게 되었더라고.]

     쯔어억.

     [내가 너를…응?]

     손을 앞으로 뻗지만, 붉은 그물망 같은 것이 황금으로 된 무언가를 억누른다.

     붉은 결계는 비록 문틈 사이로 이물질이 흘러들어오는 걸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으나, 그것이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내부에 들어오지는 못하게 전력을 다해 막고 있었다.

     결계가 물렁해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만, 결계가 끊어지지는 않아서 계속 출입 자체는 막는 것처럼.

     단단한 옷감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더라도, 그 옷감이 찢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이, 이…!]

     “…소용없어요. 설령 당신이 지오 노스트럼이라고 해도, 여기는 지브롤터야.”

     [어,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야! 틈이 있다면, 분명 어디든! 흐흐흐, 너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앞으로 몸을 쭉 뻗어도 한 발자국 이상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황금의 무언가가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샤를로트는 구두를 벗고 소파의 위로 올라간 뒤,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디, 누구든.”

     뿌지직.

     무언가 찌그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장의 틈 사이로 오염된 황금은 들어오려고 했으나.

     [끄으, 으아아!!]

     

     오염된 황금은 들어오지 못했다.

     그저 또다른 곳을 찾아나설 뿐.

     

     “…….”

     

     샤를로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나 뿐.

     믿고 기다리는 것.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가 도착할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

     혹은 바깥에 있는 누군가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도우러 올 때까지, 저 더러운 손길에 닿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

     쯔어억.

     아래에서 치솟한 황금의 손길을 피해, 샤를로트는 소파의 등받이 위로 올라가며 그 손길을 피했다.

     [어디냐, 어디에 있는 거냐…! 끄아아…!]

     저것이 무엇이든.

     부디, 빨리 도착해주기를.

     * * *

     부ㅡㅡ웅.

     전방, 한 무리의 마차들이 보인다.

     콘테이너에 바퀴를 단 것 같은 모습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느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으로 왕도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선두에는-

     “말콤!”

     “도, 도련님?!”

     집사장 말콤이 있다.

     “왜 지금 여기에…?”

     “지브롤터 후작께서 피난을 명하셨습니다! 저희가 빠져나올 때는 제 2관문에서 황제와 대치를…!”

     “동생들은?”

     “저기, 뒤에.”

     “…….”

     마차의 위.

     마부석, 허리에 검을 찬 누아르.

     그리고 창 너머에서 동생들을 다독이는 레타르.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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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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