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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1

       오호라.

        

       묶여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이렇게 다리로 버티고 서서 내려다보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작아 보였다.

        

       원래 크기라는 게 상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 상대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이의 기준이고.

        

       나는 시선을 내렸다.

        

       그곳에는 엎드린 채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려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실비아가 있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조금 웃겼다. 내 얼굴에도 웃음이 드러났을까? 눈은 조금 가늘어졌을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이 죄다 굳어서 말이 없었다. 내가 구해준 소녀도 말이 없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

        

       주인공이라면 제대로 일어나 싸워야지.

        

       나는 앞발— 내 기준으로는 손이나 다름없는 발의 발톱을 살짝 세워서 실비아의 몸 아래 넣어 그녀를 옆으로 뒤집었다.

        

       겉보기에도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는 몸이었지만, 확실히 그리폰의 힘으로 뒤집어버리니 너무 쉽게 뒤집혔다.

        

       “으겍.”

        

       주인공이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뒤집힌 그녀는, 얼른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 쪽을 보며 일어난 실비아는 비틀거리며 뒤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났다.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이 자기 위를 덮치듯 떨어져서 무섭기라도 했을까?

        

       음.

        

       확실히, 조금 우스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적들이 근처에 있는데 그런 상황을 보였으니 체면이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지난번에 실비아 앞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

        

       순간 당황한 듯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던 실비아도, 이내 마음을 먹었는지 지난번에 했던 것 같은 멋들어진 귀족식 인사를 보여주었다.

        

       “팬그리폰…….”

        

       누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이쪽 세계만의 언어인 것인지, 아니면 무슨 이름 같은 것인지. 그리폰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나한테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 뭐, 지금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누군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누가 봐도 ‘내가 최종 보스요’ 하는 것 같은 인상의 중년 남성이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덩치는 비슷한 나이의 같은 성별의 인간보다 더 클 것 같았고, 한 손에 큼직한 칼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는 검도 잘 휘두르는 남자일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뭐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내 기준으로는 이 상황이 다소 혼란스러웠다. 성당 같은 곳이니 장소 자체는 나를 학대하던 놈들의 본거지 같은 곳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외에 여기서 이 양반들이 왜 싸우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겠다.

        

       대충 실비아 편을 들면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나를 구해준 쪽이니까. 그래서 세상이 멸망한다면 뭐 그러라고 하지. 이쪽에서 별다른 미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구나.”

        

       내가 듣기에는 다소 뜬금없는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이 대화를 마쳤다.

        

       지금이 타이밍인가?

        

       게임이나 만화로 따지면 지금이 타이밍 같은데? 보통 저런 허심탄회한 대화가 끝나면 바로 싸움으로 이어지잖아?

        

       주변을 보면서 조금 눈치를 보던 나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질러버리기로 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퓌요오오오오오!”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던 실비아가 흠칫 놀랐다.

        

       아니, 네가 놀라면 어쩌자고. 기껏 각도 같은 것도 잘 생각해서 네 뒤에서 울부짖은 건데.

        

       하아, 뭐, 됐다.

        

       처음 만났을 때는 엄청나게 쿨해보이고 감정 폭도 적은 존댓말 미소녀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주 허당이었구만.

        

       내가 튀어나오지 않았으면 엄청 위험했던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숙여서 실비아의 목덜미 부분을 물었다. 당연히 살이 집히지는 않게 조심했다. 내 부리에 잘못 물리면 살이 뭉텅 잘려 나갈 테니까.

        

       그리고 힘을 살짝 주어 위로 던져올렸다.

        

       “으꺅!?”

        

       이번에도 첫인상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른 그녀를 등으로 받았다. 다행히 튕겨 나가지 않고 제대로 안착했는지, 내 등에 엎드려 깃털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눈치는 있구만.

        

       나는 속으로 씩 웃으며, 위로 뛰어올랐다.

        

       “퓌요오오오!”

        

       있는 힘껏 날아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하강했다.

        

       사실 처음 날아올랐을 때부터 생각한 건데, 내 몸의 무게는 단순히 날개를 펄럭인다고 띄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날개가 무척 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족보행을 하는 그리폰의 몸집을 생각하면 그냥 날개가 있다고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날개를 좌우로 고정하고 앞으로 빠르게 달리며 고정익기처럼 날아오르면 모를까, 그저 날개를 펄럭이면서 하늘을 호버링하려면 그냥 힘 말고 다른 것도 필요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미 그때부터 나의 몸에는 마법이 적용되고 있었으리라.

        

       교회 놈들이 나한테 마법을 써보라고 했던 것은 별로 무리한 협박은 아니었던 셈이다.

        

       나를 묶어두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이 패착이었지만.

        

       “으아악!”

        

       내가 하강하는 방향에 있던 기사들이 급하게 좌우로 뛰어서 몸을 굴렸다.

        

       애초에 기사들을 공격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소총을 잡아 위로 던져올렸다.

        

       그리고 내 등에 타고 있는 소녀가 잡을 수 있도록 빠르게 다가가 등으로 받아내었다.

        

       정확히는, 내 등에 타고 있는 소녀가 받았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바닥에 내려앉은 상태였기 때문인지, 적어도 소녀는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받아내었다.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눈을 크게 뜬 소녀가 양손에 소총을 받아든 채 내 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한 번 더 웃음이 나왔다.

        

       그 어벙한 표정이, 그 나이에 딱 맞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는 그 나이가 정확히 어떤 나이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10대 중반 정도 되었겠지. 대충 그렇게 보이니까.

        

       그런 소녀가 이런 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니, 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세상일까.

        

       ……뭐, 내가 그런 것을 따져 뭐 하겠어. 애초에 그런 세상이니 싸우고 있겠지. 예전에는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의 기준이 달랐다니, 이 세계도 대충 그렇겠다고 생각하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등에 올라탄 소녀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꽉 붙잡고 있으라고.

        

       지금부터 열심히 달리고 날아다닐 테니까.

        

       주변이 다시 고함소리와 칼 소리로 차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 소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

        

       싸우면 싸울수록 흥이 나는 것 같다.

        

       이건 그리폰의 본능일까?

        

       적이 휘두르는 검에 맞춰 앞발을 휘둘렀다. 아무리 긴 검이라도 나의 발톱에 닿으면 뒤로 밀려나고, 튕겨 나가고, 가끔은 두 동강이 났다.

        

       날개 끝부분에는 얼음으로 된 창이니, 커다란 불덩이니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들을 마치 내 손가락 움직이듯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전장을 날뛰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었을 때, 그 본능이 갑자기 내 머릿속에 적신호를 띄웠다.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나를 보는 느낌.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몸 여기저기가 썩어들어가는 상황에서 나를 적대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조차 느껴보지 못한.

        

       나는 황급히 몸의 방향을 틀어 소녀를 내 등 뒤로 숨기고, 날개로 내 몸을 가렸다.

        

       팍, 하고 날개에 뭔가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사각, 깃털이 잘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른쪽 날개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길게 무언가에 베이는 느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고 넘길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날개를 내리고, 그 공격을 한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놀랍게도 거리는 꽤 멀었다. 적어도 칼이 그냥 와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한 그 녀석은, 나를 보고 신난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이지.

        

       하긴, 마법이 존재하니 오러니 검기니 하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철컥.

        

       내 등 뒤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총을 쥐고 있던 소녀가 두 손으로 그것을 들어 올리는 소리였다.

        

       아마 실비아는 내 앞의 그 붉은 머리를 겨누고 있으리라.

        

       그 녀석도 내 쪽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나를 노리는 것일까, 실비아를 노리는 것일까.

        

       탕!

        

       총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붉은 머리 녀석에게 닿지는 않았다. 총이 자기를 향하는 것을 보고 먼저 옆으로 몸을 틀었는지, 총알은 그대로 빈 바닥을 때렸다.

        

       탕!

        

       나는 검으로 총알을 쳐낼 수 있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이번에는 그 검 끝에서 검기 비슷한 것이 날아오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다. 나는 굳이 그것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쪽에서도 급하게 휘두른 것인지, 검기는 우리를 맞추지는 못했다.

        

       탕!

        

       붉은 머리는 다시 몸을 옆으로 틀어 그것을 피했다.

        

       여기서 내가 끼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붉은 머리가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고 해도 종족의 차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등에 앉은 소녀에게 뭔가 활약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아서—

        

       —아니지, 그보다는, 뭐랄까.

        

       이건 둘 사이의 일인 것 같아서.

        

       나는 일단 진짜로 위험해지는 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탕!

        

       이번에 총알이 향한 곳은, 붉은 머리가 ‘피하던 쪽’.

        

       실비아가 페이크를 쓴 것인지, 아니면 저쪽의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탕, 총소리가 들렸다.

        

       양쪽 어깨에 총알을 한 번씩 맞은 그 붉은 머리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굳이 그런 사연이 있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등 뒤에 앉은 소녀, 실비아를 보았다.

        

       화약 냄새가 물씬 풍겼다.

        

       겨누고 있던 총을 천천히 내리고, 내 쪽을 보았다.

        

       조금 놀란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의연한 표정이었다.

        

       그런 모순적인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나는 그 표정이 무척 훌륭한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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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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