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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1

       TT3에 등장하는 광신도의 종류는 대략 130여 가지. 저난도에서 이들은 회피와 점프만 적절히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난도로 가면 각각의 공략법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어야 스테이지 돌파가 가능했다.

         

       호텔 직원들과 암살자들을 때려눕히면서 전진하던 나는 중앙통제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수십 명의 광신도와 마주쳤다. 그들의 몸에는 X자로 교차하는 두 개의 나선이 그려져 있었다.

         

       게임에서 부두교의 상징으로 나오는 그림. 저걸 몸에 낙인처럼 찍는 놈들은 오직 광신도뿐이었다.

         

       그들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나는 TTT에 등장하는 놈들의 패턴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저 남자를 막아!”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의 외침에 가장 가까이 있는 광신도 둘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팔 관절이 사마귀의 낫처럼 휘어지더니 날카로운 칼날의 형태로 변했다.

         

       뛰어난 전사라면 저 팔이 휘둘러지는 것을 몇 번 보는 것만으로 그 사거리와 궤적을 대강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지 않아도 그것을 완벽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게임에서 수만 번은 본 동작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놈들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여기서 원 투! 그리고 오른쪽 훅. 그렇죠. 횡 베기를 한 다음 사선 베기! 정말 예상한 그대로군요.”

       “크윽!”

       “이놈이!”

         

       내 여유로운 태도가 거슬렸을까. 그들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낫의 궤적이 갑자기 역방향으로 변했다.

         

       명백히 사람의 관절 가동 한계를 벗어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고 몸을 젖혀 그것들도 모두 흘려버렸다.

         

       ‘낫 광신도’의 어깨, 팔꿈치, 손목 관절은 모두 역방향으로 꺾일 수 있었다. 가장 쉬운 설정에서는 평범하게 팔 휘두르듯이 움직이지만, 가장 어려운 설정에서는 각각의 관절이 따로 움직이면서 공격이 마구 휘어지며 들어왔다.

         

       이 회피. 그리운 전투의 감각이었다. 웃는 남자의 평정심 덕분에 아무리 위험하고 살벌한 전투의 현장에서도 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듯 냉정하게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놈들이 휘두른 낫의 칼등 부분을 손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대로 놈들의 몸에서 뜯어내 버렸다. 우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팔이 통째로 놈들의 몸통에서 뽑혀 나왔다.

         

       “크아아악!”

         

       피와 살점이 바닥에 튀었다. 두 남자는 비명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뽑아낸 낫을 바닥에 던졌고, 나머지 광신도들은 숨을 크게 들이키며 뒤로 물러났다.

         

       “겨우 이 정도로 겁먹은 겁니까?”

         

       호텔 직원들은 되도록 외상이 남지 않도록 제압했다. 암살자들에게도 구태여 필요 이상으로 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들만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모,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지휘관의 외침에 갖가지 개조 신체를 단 광신도들이 내게 덤벼들었다. 지휘관을 제외한 나머지 놈들은 내 정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두려움 없이 돌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는 몸을 구부정하게 구부리더니 등에서 척추뼈를 가시처럼 날려댔다. 또 일부는 피부를 돌처럼 딱딱한 각질로 만들어 방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머리통을 쩍 벌리더니 안에서 채찍처럼 생긴 끈적한 촉수를 꺼내 휘둘렀다.

         

       다 아는 패턴의 적들이었다. 이 연계 공격도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들의 동작을 슬쩍 보는 것만으로 몇 초 뒤 그들이 어디서 어떤 자세로 서 있을지도 내다볼 수 있었다.

         

       내 육체를 조작한다면 그들의 공격을 모두 힘으로 짓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트릴 트릴로의 톱 플레이어로서 자존심이 있었다. 나는 순수하게 인간의 몸만을 사용해서 그들의 패턴을 하나하나 분쇄해 나갔다.

         

       “끄아악!”

       “그, 그만……!”

       “살려줘!”

         

       척추에서 가시를 내뿜는 놈은 허리를 분질렀고, 촉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뜯어버렸으며, 거기서 뽑아낸 독액 주머니를 각화된 피부의 틈새 사이로 쑤셔 넣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광신도의 절반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 악마…….”

       “도, 도대체 정체가…….”

         

       아나이스를 구하기로 했을 때, 부두교와 부딪치기로 한 번 각오 했었다. 나는 그들의 머릿속에 최대한 공포를 남겨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다시는 내 사람들에게 장난을 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 이 정도로 제 눈앞에 그 문장을 들이댄 겁니까? 형편없군요.”

         

       그들에게 잔혹하게 구는 데에 내 개인적인 감정도 조금 섞여 있었다. 그들의 몸에 있는 그림은 불쾌한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부두교가 광신도의 몸에 찍은 낙인은 TT1부터 등장한 원더스타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나는 시리즈의 첫 편이 발매되기 전부터 그 문양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한때 내가 몸을 담았던 전능교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능교 사건은 언론에 폭로될 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었다. 대규모 인신 공양과 잔혹한 인체 실험, 그리고 경찰의 극적인 체포 작전과 그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 사태 등.

         

       그 자극적인 내용 덕분에 여러 창작물에서 소재로 많이 쓰였다. 사회 고발 영화라든지 수사물 드라마라든지. 만화나 웹소설에서도 전능교를 모티브로 한 악의 사이비 종교가 자주 등장했다.

         

       트릴 트릴로 시리즈도 그중 하나였다. 구원을 미끼로 기형 인간들을 부려 먹는 원더스타인의 이미지가 전능교의 교주와 닮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특히 TT3에 등장한 부두교의 일부 설정은 전능교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확실해 보였다. 신체 일부가 없는 자들에게 그것을 제공해주고 ‘광신도’라 이름 붙이고 부려 먹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게임에서 이 문양을 봤을 때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미 다큐멘터리나 실화 기반 영화 등지에서 사건을 지겹게 우려먹었던 터라, 판타지 레벨에서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애초에 내가 트릴 트릴로라는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컴퓨터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 이 문양을 몸에 붙이고 다니는 놈들을 마주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게임에서 군복 입은 나치를 봐도 별다른 감정을 못 느낀다고 해도, 현실에서 길을 막고 시비를 거는 네오 나치들을 마주쳤을 때는 혐오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크윽, 3분도 안 돼서……전멸이라니…….”

         

       광신도들을 모두 제압하고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뿐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는 내게 달려들었다. 원더스타인의 평소 성정상 엎드려 빈다고 해도 봐주지 않을 거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크아아아!”

         

       놈의 오른팔이 부풀어 올랐다. 옷과 피부가 펑펑 터져 나오면서 진홍빛 근섬유가 폭발적으로 비대해졌다. ‘괴력 광신도’인가.

         

       저 핑크빛 근육질 덩어리는 대포 같은 힘을 지닌 공격기이자 단단한 방어기이기도 했다. 놈이 기합과 함께 내지른 주먹질 한 방에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유라크네가 준 차를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의 내 근육 강도보다 한두 단계 더 강한 것 같았다. 아마 9.0이나 10.0 수준. 우몬의 평소 힘이 저 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공략법을 알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적이었다. 이런 적이 다 그렇듯 강화한 부위를 제외한 곳을 공격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놈이 다음 공격을 위해 근육을 팽팽히 수축할 때, 앞으로 파고들어 놈의 몸과 팔의 연결 부위를 비틀어 뜯어냈다.

         

       “으아악!”

         

       그러자 핑크빛 근육 덩어리는 마치 고무줄을 당겼다 튕기는 것처럼 날아가 버리더니 벽에 쾅 하고 처박혀 버렸다. 무너진 벽 안으로 중앙통제실로 보이는 방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야, 이거 반가운 얼굴들이네요.”

         

       나는 손에 든 광신도 지휘관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곳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마리오 삼 형제.”

         

       그들은 나를 보고 잠시 놀란 듯했지만 금방 각오를 다진 표정을 짓더니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 저들 한 명 한 명의 힘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지만, 셋이 힘을 합하면 사도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한 스테이지의 보스로 나올 수 있었다.

         

       “저희 같은 것들을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교주님!”

       “물러나 드리고 싶지만…….”

       “하지만 우리도 받은 임무가 있습니다!”

         

       이 호텔의 직원들을 조종한 ‘하이브 마인드’는 마리오 던넬론이 중심이 된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나머지 두 사람이 중심이 된 마법이 각각 하나씩 더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건물 바닥을 발바닥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호텔 건물 전체가 요동치듯 우르르 떨었다.

         

       이것은 마리오 몬투라가 중심이 된 마법이었다. 그는 가정과 가사의 마신, 오이코스의 마도사. 오이코스는 집을 아끼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에게 나타나 축복을 내려주는 마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오이코스는 그 설명만 들으면 별로 위험한 마신이 아니었다. 실제로 원래 과거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편에 속하는 마신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이 마신이 나타나는 장소는 버려진 외딴 저택이나 오지에서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의 이성이 고도화되고 합리적 사고관이 발달함과 동시에 밤의 어둠 역시 몰아내는 시대가 오자, 마신이 깃들 수 있는 곳은 그런 곳밖에 없는 것이다.

         

       원작에서 몬투라가 선보인 마법은 집주인이 집을 방위할 때 쓰는 것이었다. 침입자들이 헤매도록 집을 미궁처럼 바꾸거나 혹은 집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려 침입자를 격퇴할 수 있었다. 게임에서 그는 플로랜드의 시청 건물 전체를 함정으로 만들어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시청도 그렇고 이 호텔도 그렇고, 놈이 조종하는 건물은 놈의 집이 아니었다. 마리오 던넬론이 이 호텔 직원들을 부려먹은 것도 그렇고 뭔가 다른 마법적 매개가 필요할 것이다.

         

       원작에서는 시장과 시장의 인감도장, 시장의 임명장이 그 역할을 했다. 그중 둘만 파괴하면 마법을 무효로 만들 수 있었었다. 아마 이곳도 비슷할 것이다.

         

       “이 호텔 전체가 바로 내 뱃속이나 다름없다!”

         

       하는 대사도 별 다를 바 없고.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건물의 천장과 바닥과 벽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지켜봤다.

         

       “하하, 아무리 교주님 당신이라도 당황스럽나 보죠?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사도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광신도들은 어쩔 수 없다고 쳐요! 신체 조작은 교주님의 특기니까요! 하지만 처음 보는 마법의 공략법을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그의 당돌한 선언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저게 감히 누구에게 하는 소리일까?

         

       “공략법을 모른다고요?”

         

       나는 팔짱을 풀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마지막엔 힘으로 승부를 볼까 했는데 이렇게 또 도발을 걸다니?

         

       “어디 한 번 해보시죠.”

         

       나의 선언과 동시에 평범했던 복도가 나를 짓누르기 위해 순식간에 좁혀져 들어왔다.

         

         

       ***

         

         

       마리오 삼형제가 원더스타인을 본 것은 부두교에 입단했을 때 딱 한 번이었다. 그때도 인사만 하고 지나갔을 뿐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이후로 그를 마주친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하지만 그는 자신들에 대해 몰랐다. 오늘 그들이 선보이는 능력은 지금까지 부두교 내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정보의 격차와 사도를 뛰어넘는 힘. 이 정도면 충분히 교주와도 한 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들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너무나도 쉽게 그들 세 사람의 합동 마법을 격파해냈다. 마리오 던넬론의 ‘하이브 마인드’도, 마리오 몬투라의 ‘움직이는 집’도, 마리오 알버클의 ‘무기 융합’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정확하게 그 약점을 찔러 들어왔다. 자신들조차 알지 못했던 허점을.

         

       “크억!”

         

       세 사람의 마리오가 건물 잔해 사이를 나뒹굴며 피를 토했다. 그들은 여기저기 몸이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금발의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로시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을 받음에도 연재 주기가 빠르지 못한 것은 늘 죄송합니다.

    아마 3, 4화 정도 안에 이번 파트가 끝날 것 같습니다. 19금 파트도 한 화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전 레카체프 시험과 서커스 찰리가 아무래도 엘라 위주의 서사였기에 이번에는 소외되었던 등장인물들을 모두 조명해보자는 마음에 분량이 폭주하게 되었습니다. 늦어진 연재 주기에 전개 속도도 느려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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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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