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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1

        

       구덩이는 위장이 된 상태였다.

       사람이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 나무판과 철판으로 덮어놓았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떨어뜨려 주변과 구분이 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솜씨는 꽤 교묘해서, 알고 온 것이 아니라면 무심코 지나쳤으리라.

         

       “내 눈은 못 속이지….”

         

       하지만 열심히 작업을 했을 군인들에게는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제순은 확신하고 온 상태였다.

       이 황장산에서 ‘촬영’이 이루어졌고, 구덩이에서 아주 특별한 취잿거리…’특종’이 될만한 것이 있다고 확신을 하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는 손쉽게 이질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터엉-!

         

       그는 묘하게 사람 손을 탄 것 같은 구역으로 가서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속이 텅 비어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단하게 몇 겹으로 깔았는지 그 느낌은 매우 옅기는 했지만, 의식한다면 분명히 알아챌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겠지.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걸 발견할 수는 없었을 거야, 그래. 분명 그렇다고. 그렇지?’

         

       그냥 평범한 등산객이나 약초꾼이라면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그가 누구인가.

       주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자, 앞으로 더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기자가 아니던가.

         

       이제순은 자화자찬하며 바닥에 쪼그려 앉고 장갑을 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흙을 걷어냈다. 그렇게 몇 번 흙을 치우자 땅속에 파묻혀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은 나무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땅속에 일정 기간 파묻혀 있었다면 습기를 머금었어야 했지만, 그 나무판은 뽀송뽀송했고, 벌레에 파먹히거나 썩지도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극히 최근에 땅에 묻힌 녀석이었다.

         

       이제순은 기쁨을 감추지 않은 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가리고 있는 이 거추장스러운 걸 모두 치워버린 뒤, 구덩이를 촬영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이제순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임시로 가려놓은 구덩이의 봉인을 풀었고,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챙겨온 줄사다리를 설치해서 아래로 늘어뜨린 뒤 직접 그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구덩이로 들어온 이제순은 가져온 랜턴과 카메라를 이용해 구덩이를 비추고 그 안을 거침없이 찍기 시작했다.

         

       구덩이는 빌라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까마득한 깊이였으며, 광원이 없기에 안은 무저갱처럼 새까만 어둠뿐이었지만 그 정도는 현대문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등대와도 맞상대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는 손전등으로 구덩이를 환하게 밝혔고, 빛이 닿지 않는 곳은 강렬한 플래시를 터뜨려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진을 찍자 이제순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대충 원래 구덩이 모습은 사진으로 찍었으니….’

         

       그는 잠시 숨을 고르려는 듯 몇 번 심호흡하고는 간이 금속탐지기를 꺼냈다. 그리곤 간이 금속탐지기를 손에 들고 반응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구덩이 곳곳을 탐지했다.

         

       하지만 이미 제작진이 의심되는 것을 싹 쓸어간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간이 금속탐지기의 성능이 나빴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가 원하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구덩이에서는 병뚜껑 하나, 녹슨 못 하나 없다는 듯 그 어떠한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은 것이다.

         

       이제순은 약간 실망한 얼굴로 간이 금속탐지기를 다시 배낭에 집어넣고는 다른 것을 꺼냈다.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의 자갈이었다.

         

       물론 진짜 자갈은 아니었다.

         

       자갈 모양의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기였다.

         

       그는 제작진이 다시 구덩이에 방문했을 시 좋은 그림이 찍힐만한 위치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심혈을 기울여 카메라를 벽 곳곳에 박아넣었고, 혹시 영상이 찍히지 않을 것을 대비해 적당한 위치에 자갈 모양 녹음기를 뿌렸다. 그리고 혹여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흙을 그 위에 뿌림으로써 흔한 자갈로 위장했다.

         

       ‘완벽하군.’

         

       그렇게 작업을 마친 이제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다리를 타고 위에 올라갔고, 그가 왔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감쪽같이 원상복구를 했다. 그리고 GPS를 이용해 구덩이의 위치를 파악한 뒤, 그대로 몸을 돌려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떤 경로로 돌아다녔는지 기록이 있었으니 그것을 역으로 되짚으며 돌아가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게 이제순은 무사히 목적을 마치고 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구덩이의 위치를 알아냈고, 사진을 찍었으며, 그 안에 카메라와 녹음기까지 설치할 수 있었다.

         

       완벽했다.

         

       ‘반드시 그곳으로 온다. 제작진이 되었던, 군인이 되었건, 그것도 아니면 뭐 다른 사람이 되었건…그곳에 반드시 누가 온다.’

         

       이제순은 카메라가 설치된 것도 모르고 돌아와서 이것저것 이야기할 제작진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그의 웃음은 자신이 깔아놓은 덫에 걸릴 사냥감을 상상하며 짓는 사냥꾼의 웃음과 매우 흡사했다.

         

       ‘증거, 증거가 필요해….’

         

       지금 이 사안을 기사로 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증거도 없고, 자세한 내용도 알기 힘들었으며, 제보자조차 없었다.

         

       ‘연예부에 있을 때는 그런 거 없어도 됐는데….’

         

       물론 저것들이 없다고 기사로 쓰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가 연예부에 있을 적에는 찌라시만 가지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많았고, 찌라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문을 사용해서 소설 비슷하게 써서 기사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여부?

       맞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조회수였고, 관심이었다.

         

       하지만 사회부로 오니 이런 공기가 달라졌다.

       최소한의 물증이나 상황 증거가 없다면 OK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뭐…간단했다.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예부에 있을 적에는 그냥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를 쓰면 그만이었다.

       연예인은 그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되 단지 그뿐인 존재였다.

         

       인기가 무섭지 않냐고?

       무섭다.

       왜 무섭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인기라는 것이 꼭 연예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높이 있는 사람을 동경하는 사람보다는 높이 있는 사람을 끌어내려서 시궁창에 처박으려고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언제든 물어뜯을 기회가 생기면 거침없이 달려들어서 온갖 폭언을 날릴 사람들이 넘쳐났고, 이러한 안티들은 팬들보다도 더 활동적이고, 공격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연예부의 기자들은 항상 잠재적 아군이 함께하고 있었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단순한 뜬소문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신나게 물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며 기자와 함께 욕을 해줄 아군이 말이다. 그들은 욕을 할 때는 기자의 아군이 되며, 기사가 틀렸다고 알려졌을 때에는 ‘대중’이라는 이름의 훌륭한 방패가 된다.

         

       그렇기에 연예부에서 기사를 올릴 때는 어지간한 톱스타가 아닌 이상은 기사에 대한 리스크를 크게 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부는 달랐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을 쓰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 결이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사람들의 인기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정치인, 교수, 의사, 재벌, 기업인, 정부….

       금력이면 금력, 인맥이면 인맥, 권력이면 권력.

       스스로가 힘을 가지고 있으며, 여차하면 그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들을 뜬소문만으로 공격한다?

       그러면 연예인을 공격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리스크를 짊어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리턴이라도 좋은가?

       그것도 아니다.

       십중팔구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썼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반향을 불러오는 데 그친다.

         

       그렇기에 사회부에서는 기사를 내기 전 철저하게 각을 잰다.

       이 기사를 냈을 때 후환이 두렵지 않은지를 철저하게 체크하고,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그것을 낸다.

         

       일종의 리스크 관리였다.

         

       이게 나쁜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바위에 박치기하는 멍청이같은 행동을 막아주는 행동이었으니까.

       멍청하게 들이댔다가 험한 꼴을 보는 것을 미리 방지해주는 행위인데 이걸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게 기자의 올바른 태도냐 하면…그건 좀 애매했다.

       말이 리스크 관리지, 권력에 굴복하는 것과 비슷한 행태였으니까.

         

       ‘뭐 그건 알 바 아니긴 한데….’

         

       물론 이제순은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그가 원하는 것은 올바른 기자니, 깨끗한 기자니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높은 자리와 명성이었으니까 말이다.

       특종을 계속해서 터뜨려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제순 석 자를 박아넣고, 기자 하면 이제순이라는 공식을 만들 정도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증거가 필요했다.

       누가 보더라도 부정하지 못할 확실한 증거가 말이다!

         

       ‘이 건은 무조건 내가 먹는다. 무조건, 무조건 내가 먹는다. 내가 정보를 알아내고 취재한 거니까 이건 내가 무조건 먹어야 해….’

         

       이제순이 보기에 이 건은 너무 커다랬다.

       전국의 산에 괴물이 출몰한 소동에 천황이 연관되어있다?

       이건 무조건 정부가 나설 사안이었다.

         

       그러니 그가 기사를 아무리 기막히게 써서 올려도 무조건 퇴짜를 맞게 되리라.

       기자를 할 정도의 머리통이 있다면 그 뒤에 있을 후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특종을 포기해야 한다?

       그럴 수 없었다.

         

       절대로,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 얻은 정보인데 이걸 포기한단 말인가?

       끔찍한 공포 속에서도 꾸역꾸역 의식을 행해서 얻어낸 주물에서 얻은 정보다.

       그의 노력으로 얻은 정보이며, 그의 보물로 알아낸 특종이었단 말이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후환?

       외교 마찰?

       전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가 감당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지금 이 건은 특종이며, 이걸 그의 이름을 달고 기사로 써 보내면 그의 이름이 대한민국…. 아니, 대한민국을 수준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증거가 나오면 그대로 인터넷에 풀어버린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냥 기사로 써버리자는 말이 나오게 말이야….’

         

       흐흐흐.

         

       이제순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 눈은 분명히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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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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