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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1

       도술을 막 배웠을 무렵. 본인이 세상에 굴하지 않고 강제로 현상을 일으키려하자 생겨났던 무언가.

       

       내기와 의지를 흩트리는 것으로 본인이 그린 그림을 지워버리던 녀석.

       

       내기 사이에 만들어지던 완벽한 공허. 그것이 책의 장과 장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책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바루에게 배우기를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도가 있어야 한다 하였는데 저 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현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책장을 넘긴다는 단순한 동작마저도.

       

       “바루야.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느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말을 꺼내 보았다. 맨 처음 이것을 지적한 것이 바루이니까.

       

       허나 바루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모른다. 내 길고도 긴 생에서도 처음 보는 것이군.”

       

       역시 그런가. 언젠가 다시금 도전하고자 했던 녀석을 왜 이런 곳에서 마주하게 된 건지 모르겠구나.

       

       “다만 몰라도 추측정도는 할 수 있겠지.”

       “짐작가는 부분이 있느냐?”

       “있을 수밖에. 최근에 자주 보았던 것이거든. 그대에게도 익숙할 것이다.”

       “본인에게도?”

       “그래. 천마신교에서 가져와 그대가 사용하고 있는 도술과 비슷하지 않은가.”

       

       바루의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굳었다가 웃음과 함께 한 쪽 눈썹을 내렸다.

       

       주변의 모든 것을 없애 공허를 만드는 것과 닮아 있다고?

       

       그 소리를 듣고서 세상 위에 그림을 그렸다.

       

       본인의 도술이 펼쳐지고 내 시야를 혼잡하게 만들던 그 모든 것이 사라져 공을 만들어낸다.

       

       그리고서 책의 장 사이에 존재하는 공을 본다.

       

       공허 위에 공허가 겹쳐진다 한들 그것은 공허일 뿐이었으니. 그 부분에 달라짐은 존재치 아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허가 사라지고 세상에 색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책장의 사이는 투명했다.

       

       과연 그렇구나. 그대가 말했던 대로 이는 본인이 고독의 건물에서 가지고 온 것과 한없이 닮아 있어.

       

       정확하게는 그 곳에서 가지고 온 도술의 일부일 뿐이지마는.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 서책을 쓴 자와 고독의 건물을 만들어냈던 자가 서로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일 터.

       

       읽으면서도 이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의심스러웠다만 이로써 확정이 되었구나. 이 서책은 진짜다. 먼 과거의 사람이 마공에 관하여 써 내린 내용이다.

       

       “즉, 이 자가 바라는 자격을 충족시키면 본인이 바라던 것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일 지언데.”

       

       이 마지막에 적힌 자격이라는 것은 공허를 없애는 것이겠지.

       

       색채가 지워진 곳에 색채를 만들어내어 그 곳에 현상을 일으키는 것.

       

       그 정도 요건을 갖추어야지 그대가 남긴 지식을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더냐?

       

       “재밌어 보이는구나.”

       “정확하다. 지금 본인은 무척이나 즐겁거든.”

       

       본인은 말이다. 본인의 앞을 걸어간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온 지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렀던 지라 다른 이의 지표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

       

       허나 보라. 본인의 앞을 걸어간 자가 있지 않나.

       

       본인이 모르는 곳을 먼저 보고 온 이가 남겨둔 지표가 존재하지 않나.

       

       이 너머에 무어가 있을지는 모른다.

       

       본인이 나아갈 길일지. 아니면 헛된 길을 걷다가 돌아온 자의 것일지. 깨달음일지. 방해일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으니 그 대답조차 할 수 없다만.

       

       허나 그 너머가 있다는 것만으로 본인은 즐거웠다.

       

       “앞전에 적힌 것이 그리 대단했던 것이냐? 그래서 다음이 기대되는 것이야?”

       

       본인이 이렇게나 들뜬 모습이 신기한 것일까. 바루가 나를 올려다보며 고갤 갸웃거렸다.

       

       “으음. 그에 대해선 답변하기 곤란하구나. 지금의 본인이 보기에 이 저자가 지닌 무의 깨달음은 대단치 않아 보이거든.”

       

       이 책을 쓴 자가 살아있던 시기는 아직 천마신공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때의 시대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이 책의 저자는 작금에 이르러 헛소리라 치부되는 것을 당당히 떠들고 있고. 본인이 걸어보았기에 잘못되었단 걸 아는 사실을 진실인 것마냥 소리치고 있다.

       

       무공 서적으로써는 별 가치가 없단 이야기다. 이 서적이 저 아래에 처박혀 있던 까닭도 그런 것이겠지. 이 곳에 거주하는 멍청이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은 아니니.

       

       “허나 그는 그리 중요치 않다. 중요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이 책의 저자가 본인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뿐.”

       

       그렇기에 기뻐하는 것이다. 이 서책은 분명 본인이 벽이라 규정한 것의 정체를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

       

       본인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을 자격이라고 걸어놓은 걸 보라.

       

       이 너머의 모든 지식이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작금의 본인에게 나아갈 여지를 주는 것만 하더라도 대단하단 사실은 변치 않는다.

       

       “자아. 일단 한 가지 수확은 건졌으니 다른 것도 살펴보도록 할까.”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은 광신자라 할지라도 마냥 쓸모 있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구나.

       

       자아. 이미 본인은 이 곳까지 당도한 보람을 얻었다만 굳이 여기에서 만족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이 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다음에 어떤 것이 나올지를 기대하던 본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기적은 한 번 뿐이었다.

       

       이외의 모든 서적은 백화령조차도 좋아할까 말까 싶은 그런 서적들 뿐.

       

       일단 이 곳에 놔두어 봐야 좋을 건 없었기에 챙기기는 했다만 본인에게 있어 수확은 하나였다.

       

       서고의 모든 책을 살핀 나는 바깥으로 나와 바닥에 널부러진 정신병자 무리를 집어 들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이 자들이 또 다시 빙궁을 점거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런 꼴을 두 번이나 보고 싶지는 않다.

       

       “바루야. 결계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

       

       그렇게 수십 명이나 되는 녀석들을 모두 눈밭에 내던져 준 후에 바루에게 부탁을 꺼냈다.

       

       “결계?”

       “그래. 검선에게 배움을 얻지 않았느냐.”

       

       지난 번 본인은 바루와 검선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검선 그 노친네가 만들어낸 결계에 관심을 보이기에 물어볼 것이라면 본인에게 물어보라는 식이었지.

       

       본인이 부탁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가 바루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검선은 바루의 물음에 적극적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 날이 지나고 성과를 얻었다 외치던 것을 분명 들었으니. 그 대나무 숲에 펼쳐져 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터.

       

       “한 번 보여다오. 신령님이여.”

       “이럴 때만 신령님이더냐.”

       

       바루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툴툴 댔으나 정작 휙휙 돌아가는 꼬리를 감추진 못했다.

       

       아주 신이 났구나. 자신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토록 기쁘더냐.

       

       “잘 보도록 하라.”

       

       허공 어딘가에서 지팡이를 꺼낸 바루가 그것으로 땅을 내리 찍는다.

       

       그러자 세상의 위에 수많은 줄기가 뻗어 나와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본인이 애용하는 도술과는 격이 다른 수준의 복잡한 그림.

       

       본인이 평면을 그려낼 적에 바루는 입체를 준비하고 있으니. 이를 비교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어른의 힘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신령님은 격이 다르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세상의 위에는 수많은 그림이 수놓아졌다.

       

       본인의 방송을 보는 이들은 저를 눈에 새기지 못하는가.

       

       아쉽구나. 본다면 누구라도 감탄을 금치 못할 풍경인데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바루가 도술을 그리길 끝마치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곳은 감추어졌다. 허락 받은 이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 곳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야.”

       “수고했다.”

       

       어차피 빙궁은 멸망했고 재건의 여지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괜한 자가 이 곳을 점거하는 것보다는 빙궁의 여아를 위한 거대한 무덤으로 남기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낡은 기색이 묻어나는 빙궁의 터를 가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바루가 빤히 내 쪽을 바라보았다.

       

       “무어냐.”

       “할 말이 남아있지 않으냐?”

       

       아하. 칭찬을 바라는 것이야?

       

       쫑긋거리는 귀를 보고 있자니 녀석의 생각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으음. 바라는 것이 너무도 티가 나서 그런가 심술궂은 마음이 생겨난다마는.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니 칭찬을 해주어야겠지.

       

       “정말 대단했다. 과연 신령님이다. 본인으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겠더군.”

       “그리고?”

       “도술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한참을 칭찬해주고 나서야 흐뭇한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갤 끄덕이는 바루의 모습을 보던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할 일은 대충 다 했으니 떠나자꾸나.”

       

       이 곳에 더 이상 있다가는 어깨는 물론이고 머리카락마저 흰색에 뒤덮일 것 같으니 말이다.

       

       *

       

       빙궁에서의 일을 끝마친 나는 마을로 돌아가 남성에게 그의 부탁을 처리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결계를 만들어 허락받지 못한 이는 침입하지 못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요. 그는 들어갈 수 있도록 해두기도 했다.

       

       남자는 그 짧은 새에 모든 일을 처리했다는 사실이 미심쩍은 듯 했으나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이미 모든 일을 처리한 이상 내가 할 도리는 끝마친 셈이니까. 저가 알아서 확인을 하건 무얼하건 하겠지.

       

       그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을 종료한 나는 공을 없애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혹여 서적에 무언가 단서가 적혀 있지 않을까 싶었다마는 다시 한 번 읽어봐도 도움이 될 내용은 없더구나.

       

       그 서적을 쓴 것이 무인이 아닌 도술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게 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겠지만 굳이 알아야 할 것은 아니었지.

       

       오랫동안 고민을 이어가던 나는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오랜만에 아피스의 세상에 발을 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곳이라면 내가 무얼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까.

       

       흙으로 가득한 공터 위에 발을 올린 나는 기지개를 키며 몸 안을 관조했다.

       

       막 화경에 들어선 몸. 현실의 본인에 비한다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육신.

       

       이것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시험을 해보아서 나쁠 것은 없으니.

       

       자아.

       

       저 공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시험해 보자꾸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력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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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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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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